충분하다

충분하다

$15.00
Description
‘끝과 시작’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미발간 육필 원고가 수록 된 책.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유고 시집 『충분하다』. 존재의 본질을 향한 열린 시선을 고수하며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에서 삶의 비범한 지혜를 캐내는 비스와바 쉼보르카의 작품이 담겨있는 이 책은 작가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시집 《여기》와 사후에 출간된《충분하다》를 묶은 것이다.

보통 스무 편 정도의 시를 묶어 정규 시집을 출간했던 쉼보르스카는 숨을 거두기 전까지 총 열세 편에 불과한 시를 완성했고, 나머지 여섯 편의 시는 시작은 했지만 미완성으로 남겨지고 말았다. 이 여섯 편의 미완성 작품들은 동료 시인이지 편집자인 리샤르드 크리니츠키의 편집 후기와 함께 책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책에는 쉼보르스카의 육필 원고를 촬영한 사진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시인이 삭제 또는 첨삭하거나 수정한 대목들, 혹은 몇 가지 버전을 놓고 고민을 거듭한 대복들을 그대로 만나볼 수 있다. 섬세하고 정교한 시인의 고유 필체는 물론이거니와 시어나 구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을 통해 창작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쉼보르스카 시의 구심점은 존재의 본질과 참된 가치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는 심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작품 세계는 근본적으로 시선의 힘에 크게 의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기존의 관습이나 편견을 깨끗이 비워낸 상태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직시하게 만들고, 상식이나 관습의 명목으로 지나쳐버렸던 생의 수많은 이면들에 눈을 돌릴 수 있게 해준다.
저자

비스와바쉼보르스카

폴란드중서부의작은마을쿠르니크에서태어나,여덟살때인1931년폴란드의옛수도크라쿠프로이주하여평생을그곳에서살았다.야기엘론스키대학교에서폴란드어문학과사회학을공부했으나제2차세계대전으로인해중퇴했다.1945년[폴란드일보]에시「단어를찾아서」를발표하며등단한뒤,첫시집『우리가살아가는이유』(1952)부터『여기』(2009)에이르기까지12권의시집을출간했다.타계직후인2012년4월미완성유고시집『충분하다』가출판되었다.가치의절대성을부정하고상식과고정관념에반기를들면서대상의참모습을바라보기위해부단히노력했고,역사에함몰된개인의실존을노래했으며,만물을포용하는생명중심적가치관을반영한폭넓은시세계를펼쳐보였다.정곡을찌르는명징한언어,풍부한상징과은유,절묘한우화와패러독스,간결하면서도절제된표현과따뜻한유머를동원한시들로‘시단(詩壇)의모차르트’라불리며,전세계독자들로부터많은사랑을받고있다.독일괴테문학상,폴란드펜클럽문학상등을받았으며,1996년노벨문학상수상의영예를안았다.

목차

여기
충분하다
마지막시들_육필원고에대한간략한설명과사본(寫本)들

편집후기를대신하여
옮긴이해설_“이미충분합니다”-시인이건네는따뜻한작별인사
작가연보

출판사 서평

그해겨울,별이지다

“나는참으로길고,행복하고,흥미로운생(生)을살았습니다.그리고유달리인복(人福)이많았습니다.이러한사실에대해운명에감사하며,내삶에서일어났던모든일들에화해를청합니다.”
_비스와바쉼보르스카

2012년2월1일,쉼보르스카가향년89세로세상을떠났다.그리고그해4월30일유고시집『충분하다』가출간되었다.폴란드언론들은이시집에관한서평을게재하면서‘유고시집’이아니라‘신간시집’이라는표현을사용했다.반세기가넘는세월동안열두권의시집을발표하면서꾸준히독자들과만나왔던쉼보르스카시인이,이제정말마지막시집을내고생을마감했다는사실을인정하고싶지않은폴란드인들의안타까운마음이담긴것이다.

쉼보르스카는보통스무편정도의시를묶어정규시집을출간하곤했는데,숨을거두기전까지완성한시는총열세편에불과했고,나머지여섯편의시는시작은했지만미완성으로남겨지고말았다.이여섯편의미완성작품들은동료시인이자편집자인리샤르드크리니츠키의편집후기와함께책의말미에별도로수록되어있다.

또한이책에는쉼보르스카의육필원고를촬영한사진도함께실려있어,시인이삭제또는첨삭하거나수정한대목들,혹은몇가지버전을놓고고민에고민을거듭한대목들을그대로볼수있다.섬세하고정교한시인고유의필체는물론이고,시어나구절을선택하는과정에서치열하게고민했던적나라한흔적을통해창작과정의일부를엿볼수있어쉼보르스카를사랑하는독자들에게는귀중한선물이될것이다.

존재의본질과참된가치를포착하는심안(心眼)을가진시인

단어하나하나가모두의미를갖는시어(詩語)의세계에서는그어느것하나도평범하거나일상적이지않습니다.그어떤바위도,그리고그위를유유히흘러가는그어떤구름도.그어떤날도,그리고그뒤에찾아오는그어떤밤도.아니그누구의것도아닌이세상의모든존재도.
이것이야말로시인들은언제어디서든할일이많다는,그런의미가아닐는지요.
_노벨문학상수상소감연설문중에서

스웨덴한림원은노벨문학상수상자발표연설문에서쉼보르스카의시를“모차르트의음악같이잘다듬어진구조에,베토벤의음악처럼냉철한사유속에서뜨겁게폭발하는그무엇을겸비했다”고칭송했다.쉼보르스카는독자의이성과감성을동시에자극하는완성도높은구조를만들고,그안에역사와문학에대한고찰이나현대문명에대한비판,그리고인간의실존문제에대한철학적명상을담은,독특한작품세계를보여주었다.

이러한흉내낼수없는독특한쉼보르스카시의구심점은바로존재의본질과참된가치를놓치지않고포착하려는심안(心眼)에있으며,그렇기때문에시인의작품세계는근본적으로‘시선의힘’에크게의지하고있다.평범하고일상적인대상을향해따뜻한시선을던지는것,사물이지닌본연의가치를놓치지않고주시하는것,그것이쉼보르스카가꿈꾸는시인의진정한사명이기때문이다.세상문물에대해호기심을잃지않겠다는시인의신념은기존의관습이나편견을깨끗이비워낸상태에서새로운시각으로사물을직시하게만들고,상식이나관습의명목으로지나쳐버렸던생(生)의수많은이면들에눈을돌릴수있게해준다.

쉼보르스카는이미등단초기부터자신이하고싶은이야기가무엇인지,전달하고싶은메시지가무엇인지명확히인지하고있었고,평생일관되게외길을걸어온시인이다.사물이나현상을함부로재단하거나단정짓지않고고정관념을과감히벗어던진채,투철한성찰의과정을거쳐대상의본질에접근하고자했던시인의고유한개성은이시집에서도생생하게빛나고있다.

평범한일상에서건져올린비범한삶의지혜

쉼보르스카의시를통해우리는우리를둘러싸고있는평범하지만아름다운삶의단면들을,세상에깃들어있는환희를,그리고늘감탄스럽고미소지을만한가치가있는일상의다양한체험들을새롭게발견할수있다._브로니스와프코모로프스키(폴란드대통령)

쉼보르스카시의가장큰특징은지극히평범하고일상적인것들로부터건져올리는비범한삶의지혜이다.이것은대상을바라보는시인특유의독창적인관찰방법과오랜철학적사유의소산이다.그리고오랜숙고와관찰을통해얻은실존적자각을현학적인수사가아니라소박하고진솔한시어,절제되고압축된표현을통해생생하게풀어낸다.쉽고단순한시어로정곡을찌르는언어감각,풍자와아이러니가결합된특유의해학적인유머는이시집에서도여전하다.

이땅위에서의삶은꽤나저렴해.
예를들어넌꿈을꾸는데한푼도지불하지않지.
환상의경우는잃고난뒤에야비로소대가를치르고.
육신을소유하는건육신의노화로갚아나가고있어.

그것만으로는아직도부족한지
너는표값도지불하지않고,행성의회전목마를탄채빙글빙글돌고있어.
그리고회전목마와더블어은하계의눈보라에무임승차를해.
그렇게정신없이시간이흐르는동안
여기지구에서는그무엇도작은흔들림조차허용되지않아.
_「여기」부분

서점에서는프루스트의작품에
더이상리모컨을제공하지않는다,
그래서너는더이상채널을돌릴수가없다,
축구경기나
볼보자동차를상품으로받을수있는퀴즈게임을보기위해.

우리는훨씬오래산다,
하지만덜명확한상태로
그리고더짧은문장들속에서.
_「책을읽지않음」부분

또한쉼보르스카는예전부터사물에대한획일적인식과인간중심적인편견을거부하고,만물과현상에대해철저하게다원주의적상대론을견지할것을촉구했다.이책『충분하다』에서도특유의생태학적상상력,포괄적이고화합적인사고를읽을수있다.

바람에실려온먼지조각은그들앞에선
깊은우주공간에서날아온별똥별,
손가락의지문은광활한미로,
그곳에서그들은모인다,
자신들만의무언(無言)의퍼레이드와
눈먼일리아드,그리고우파니샤드를위해.
-「마이크로코스모스」부분

또한시인자신의미적취향과예술적기호를드러내는시(時)도주목할만하다.폴란드낭만주의를대표하는시인율리우시스워바츠키에게바치는헌시라고할수있는「우편마차안에서」나미국의흑인재즈가수엘라피츠제럴드를소재로쓴「엘라는천국에」,베르메르의대표작“우유따르는하녀”를모티프로한「베르메르」에는어떤전통적인사조나미학이론에얽매이지않는,시인의자유분방한우주적상상력이투영되어있다.기존의사고틀에얽매여제한하지않는쉼보르스카의시세계를잘보여주는작품들이다.

레이크스미술관의이여인이
세심하게화폭에옮겨진고요와집중속에서
단지에서그릇으로
하루또하루우유를따르는한
세상은종말을맞을자격이없다.
-「베르메르」전문

독자와지인들에게보내는위로의텍스트

쉼보르스카의작품속에는위대한문학,위대한예술작품에서만발견할수있는,뭐라이름짓기힘든‘위안’의정서가녹아들어있다._아담자가예프스키(시인)

쉼보르스카는죽음을삶과의단절로보지않고,생생한삶의현장속에서도죽음의의미를부단히성찰한시인이었다.초기작에서부터존재의유한성을겸허히받아들였던시인은,결국유작이된말년의작품에서도생성과소멸이라는단선적이고이분법적인구분을과감히거부한채,어쩌면곧자신의차례로다가올죽음을삶의한과정으로,담담하고초연하게받아들이고있다.

가까운이가죽음을맞이하는건누구에게나언젠가는일어나는일,
존재할것이냐사라질것이냐,
그가운데후자를선택하도록강요당했을뿐.

단지우리스스로받아들이기를힘들어할뿐이다,
그것이진부하기짝이없는현실이란걸,
과정의일부이고,자연스런귀결이란걸.

조만간누구에게나닥치게될낮이나저녁,
밤또는새벽의일과라는걸.
_「누구에게나언젠가는」부분

죽음이란사실우리모두에게가까이다가와있고,예측불가능한섭리임을쉼보르스카는일깨워준다.그런데주목할것은이시의초점이망자(亡者)가아닌살아있는사람들에게맞춰져있다는점이다.시인은사랑하는사람을떠나보낸뒤상실감을경험할살아남은사람들에게말을건네고있다.그렇기때문에이시는그녀자신을포함하여,피할수없는이별로상처입은독자들이맛보게될슬픔을어루만지기위해쓴‘위로의텍스트’로읽히기도한다.

유고시집『충분하다』에서,시인이말년에쓴시들에서발견되는또하나의특징은1993년에발표한시집『끝과시작』이후찾아보기힘들었던‘제2차세계대전’과‘독일강점기’등인간을향해휘두르는체제의폭력과관련된테마가다시등장했다는것이다.쉼보르스카는개인의내밀한영역이보편적인공감으로확장되는순간을절묘하게포착해내는특유의재능으로,이번에도「거울」「사슬」「얼마전부터내가주시하고있는누군가에대하여」에서정치적?사회적문제에다시눈길을던진다.

쉼보르스카는스스로도마지막을예감했을시집『충분하다』에서죽음을관조하듯성찰하면서생사(生死)의번뇌를이겨내는데그치지않고,자신의삶을뒤돌아보며아직현실에서끝나지않은문제와사명의끈을놓지않은것으로보인다.그렇게시인으로서외길인생을걸은쉼보르스카는자신의삶을시로서마무리했다.폴란드어판유고시집의편집인은이책을다음의미완성시로마무리한다.이시가시인의가장사적인고백처럼느껴졌기에마지막에배치한다는설명과함께.

어쨌든나는돌아가야만한다
내시의유일한자양분은그리움
그리워하려면멀리있어야하므로

공산주의에대한내믿음은
이미흔들렸다
나는내게허락된것보다더많은걸알고
필요한것보다더많은걸생각하기시작했다
그리고그때서방에서한시인이왔다
내게서경탄을불러일으켰던시인이
나는거대한희망을품은채그의말을기다렸다
요란한박수를받으며그가연단에섰다

그것은생각하는인간이쓴시였다
아무런구속도,제한도받지않은
-미완성원고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