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천천히 (박솔뫼 장편소설)

머리부터 천천히 (박솔뫼 장편소설)

$12.00
Description
서로를 증언하는 존재들의 이야기!
희망 없는 세대와 미래 없는 시대를 사유하는 작가 박솔뫼의 네 번째 장편소설 『머리부터 천천히』. 발밑을 디딘 공간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흘러가버리는 사람들, 이야기로써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그곳을 거쳐 가는 사람들과 함께 사건을 경험하고 시간과 기억을 나눠 가지며 살아가는 공간을 구성하는 사물들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본다.

이 작품에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헤매는 ‘어떤 세계’가 있다. 세계와 어떤 세계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소설은 총 여덟 부분으로 나뉜다. 01의 화자는 ‘나’이고, 02부터 04는 각각 번갈아 우경과 병준의 이야기다. 05, 06은 병준, 07은 우경, 08은 다시 병준이 화자인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우선 ‘나’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깨어났다 하는 아버지가 정신이 들 때마다 속리산에서 빨래를 하는 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며, 내게 그걸 꼭 써야 한다고 말하기에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큰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져 ‘어떤 부산’을 맴도는 ‘병준’과 병준의 보호자로 중환자실을 드나들고 있는 5년 전 병준과 헤어진 옛 애인 ‘우경’. 우경은 옛 애인 병준을 계기로 ‘부산’의 작은 동네부터 찾아가보기로 하는데…….
저자

박솔뫼

저자박솔뫼는1985년광주에서태어났다.2009년자음과모음신인문학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그럼무얼부르지』,장편소설『을』『백행을쓰고싶다』『도시의시간』을펴냈다.문지문학상,김승옥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01
02
03
04
05
06
07
08
해설텍스트소셜리즘,모든이름들을위한바다-유운성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이바다의이름을붙이는것이나의오래된숙제라면
나는이바다의이름을무어라붙여야할까”

나의말이너에게닿기를
흩어져있는이야기들에게손을뻗으며
많은이들의이름을불러보았다


희망없는세대와미래없는시대를사유하는작가박솔뫼가네번째장편소설『머리부터천천히』를펴냈다.다섯권의책을내는동안박솔뫼는문지문학상,젊은작가상에네번선정되었으며문지문학상과김승옥문학상을수상했다.이번소설에서도박솔뫼특유의‘쉼없이흘러가다가익숙해질무렵덜컥변하는리듬같은문체’와“과거도현재도미래도아닌공간”(금정연)이여전히빛을발한다.
『머리부터천천히』속에서발밑을디딘공간이어디인지모르고“흘러가버리는사람들”,세계를헤매는점같은존재들은자신들이지도위에그리는선이영영겹쳐지지않는다해도절망에빠지지않으며,이야기로써서로의존재를증거한다.사실박솔뫼의소설과‘세대’나‘시대’같은거창한말은어울리지않는다.다만시제가증발한시공간과,어디에서든하루를자연스럽게살아가는사람들,표지판(묘비명)처럼불쑥불쑥나타나저마다의역사인‘기억’으로시간과공간을증언하는사람과사물들의이야기가,그리고그모든것을“아주당연하고평평하게바로그렇게”전하는문장들의“어디에도발을들여놓지않은사람의선명함”이박솔뫼의이야기를‘오늘의것’으로만들고있다.

나는현대문학이란,재현이라는배우를위해문학적평면의무대를제공하던언어가스스로배우가되는순간에성립된것이라고이해한다.대신문학은그만의물리학을,즉텍스트의물리학을지니게되었다.박솔뫼는문학적텍스트의물리학에걸맞은사교의양식을보여준다.이것을텍스트소셜리즘이라불러보면어떨까?사회주의라기보다는‘사교주의’,이는이름들간의무한한사교의양식을가능케하는조건들을모색하는문학적실천이라해도좋을것이다._유운성(영화평론가)

지도위를걷는사람들
『머리부터천천히』에는‘세계’가있다.그리고혼수상태에빠진사람들이헤매는‘어떤세계’가있다.세계와어떤세계는비슷하지만완전히같지는않다.우경은,혼수상태에빠져‘어떤부산’을맴도는옛애인병준을계기로‘부산’을걷게된다.
소설은총여덟부분으로나뉜다.01의화자는‘나’이고,02부터04는각각번갈아우경과병준의이야기다.05,06은병준,07은우경,08은다시병준이화자인이야기라할수있겠다.
먼저,‘나’의이야기가있다.“혼수상태에빠졌다깨어났다하는아버지”는정신이들때마다“속리산에서빨래를하는할머니이야기를하고또”하며,내게그걸꼭써야한다고말한다.그것은아버지“자신의소설이지만자신도모를수있”는,“길을잃은사람들”이야기다.‘나’는번번이실패하면서도그런이야기를쓰기시작한다.
‘병준’은큰사고를당해중환자실에누워있다.중환자실뒤쪽벽에붙어있는큰세계지도위에는환자들의이름이씌어져있다.온세계에점점이찍힌이름은환자들이어떤도시에머물거나헤매고있는지확인시켜준다.병준의이름은몇개의점이되어‘부산’과‘오키나와’두곳을맴돈다.“시제가지워진시간”(금정연)이자시간이뒤섞인공간일‘그곳’은거의늘여름이며,카프카가“혼자흑백화면속에종이처럼앉아흑맥주를마시고있는”‘더블린’이라는술집이있고,중앙동노천카페에서소설가리처드브라우티건,다카하시겐이치로와함께잔을기울일수있는시공간이다.대체로“8,90년대의모든번화가”를형상화한듯하며,“여러번접어만든동서남북같은형태”로,“이세계인듯하지만곧다른면을보여주”곤한다.“아무이름도붙어있지않아서이곳이어디일까이곳의이름은무엇일까곰곰이생각해야만했”던,“발을디디면금세다른쪽면으로바뀌어버리는”그곳은원래애쓰지않아도자연히길을걷다보면도달할수있었지만,어느날갑자기아무리걸어도찾을수없게되어버린다.그뒤로‘여름의부산’과멀어져오래걷던병준은한주유소에들어가게되고,그곳에서‘도미’와‘전구’‘물고기’와단발머리‘여자애’를순차적으로만나이야기를나눈다.그가도착한‘어떤국제’는남자와여자,전구라는사물과물고기라는이종의생물이조금은어색하지만비교적자연스럽게‘이야기’를나눌수있는곳이다.“부산의국제시장과오키나와의국제거리와그리고모든국제들,[…]전혀다른곳같지않을것같은모든국제들의길과역상점과풍경,바람과그런것들.실제로는다들제각기다른표정이겠지만”병준은”어떤국제라는곳을마치종로를혜화동을산책하듯이”활보한다.
한편,5년전병준과헤어진옛애인‘우경’이병준의보호자로중환자실을드나들고있다.병준이가족과오래연락이끊긴상태였다는걸알고는있지만자신과도몇년전완전히연락이끊겼기때문에어째서자신이병준의보호자가되었는지는우경도모른다.“아무런성격도능력도추악함도치졸함도보이지않”고,“기계를통해숨만겨우쉬고있는”병준을“이전처럼커다란감정은없지만아주아무런마음도없다고할수없는”도무지알수없는심정으로매일면회하러오던우경은,주말에시간을내병준의이름이적힌지도위장소들중부산의작은동네부터찾아가보기로한다.“병준은우경을걸어가게하고있었다.좀더먼곳으로.그먼곳은전적으로거리에의한것은아니었다.”“이어지는길들을걸었다.보이는모든골목에들어갔다.우경은스스로가정말무얼하고있는지는모르겠지만계속해서걷는것에아무런의심이없었다.”

얼지마죽지마부활할거야,
서로를증언하는존재들의‘이야기’

지금의자신도지금의자신이손잡고있는많은것들도그랬다.매일누군가에게연락을받고전화를걸고이메일을확인하고거기서또연결된각종연락수단들은의외로마음먹으면간단하게아무것도아닌것이될것이다.텅빈계정들이누추하게남아있겠지.아니면그것조차간단히지워버릴수있을것이다.(p.80)

겨울이딱하루있는그세계,‘여름의부산’에서누군가가말했듯춥다는것의의미가입을열지않고“비밀과함께죽어가는것”이라면,자신의이야기를하고그이야기를또다른누군가에게전하는행동은죽어가는존재가춥지않도록돕는일이라말할수있을것이다.
“이덕자의그림은훌륭하지만이덕자는조용하고깨끗하지만누구도이덕자를알수없게되었다.이덕자는죽고이덕자는너무조용했으니까.”그렇다.이야기하지않는다면,있었던누군가나무언가에관해“알수있는방법이사라질것이다.아주쉽고간단하게.그리고오랜시간이흐른후아주쓸쓸한기분으로”기억하게될것이다.병준과우경은헤매고머물다누군가(혹은무언가)를만나그들의이야기를듣는다.반드시기억하겠다는마음으로듣는것은아니었고,언젠가잊게될지도모르지만,이야기란이소설에서‘벌판에“이름”을붙이고“표지판”을세워놓는일’이된다.“우리는가장적합하고알맞은이름을붙일수있을까.이름을붙이려는시도를할수있을까.”이름을붙인다면“사람들의마음을움직이고사람들은그이야기를입에서입으로전하게될까.”

『머리부터천천히』에서는또한,공간을구성하는사물들역시그곳을거쳐가는사람들과함께사건을경험하고시간과기억을나눠가지며살아간다.“침대가된이후로너무많은사람들이/내위에서죽어버렸다”고괴로워하는중환자실의침대와의자위에앉은사람들의악몽을함께꾸는보호자대기실의의자가거기눕고앉았던사람들에공감하고,대도시구도심오래된국숫집화장실에달려있던전구가어떤끔찍한사건을기록하듯이,공간과사물이시간과사건을기억하고증언한다.

우리가무엇이건간에양동이든변기를닦는솔이건나와창처럼유리이든산산이깨어질것같은기분이들게했다.그렇게겨울의밤보다길고긴아무도없는시간들이처참하게지나고있었다.나는창문이천장과흰벽정사각형의흰타일이박혀있는벽이그벽과벽안의시멘트가변기가변기옆솔과붉은색양동이가후들후들떨고있다는것을느꼈고그것은한몸같았다.내가달려있는화장실천장은화장실의일부이고화장실은식당의일부이며식당의옆집은화장품회사사무실과가발회사사무실이들어와있는건물이고식당위에는변호사사무실이그위에는식당만큼이나오래된치과가있었는데식당의화장실의전구인내가알수있을정도로화장품회사사무실도가발회사사무실도변호사사무실이나오래된치과도모든벽과천장과바닥이불안에떨고있었다.[…]청소를하고음식을나르던남자애는그후로볼수없었고나는그애가아무도오지않고벽과천장과전구가후들후들떨던그때죽었다는것을누가말해주지않았지만알고있었다.그것은천장도벽도바닥과수도꼭지도식당의그릇과의자도그위의변호사사무실과변호사사무실의고동색소파도재떨이도알고있었다모두.모두가알고있었다.(pp.150~51)

단정(端正)하지않아,쉽게단정(斷定)짓지않을수있는문장들
자신의기분을위험한곳에내던지고내던진다는분명한의식을가진채내던지고내던져진결과를본다.눈을떼지않고그대로본다.정작그길은별거없겠지,하지만하고나서별거없다고말하면뭐가별게아니야확실히선택을하는것에는무언가약간의것이라도있기는하지하고알게될것이다.그러니자신의우스움에서고개를돌리지않는다.(p.88)

사람들의말이라는것,[…]이말이정말로나에게하는말인가,이것은어떤말인가,이런하나마나한말들사이에서어떤식으로예민한상태를유지할수있는가같은질문이머리와마음속을뱅글뱅글맴돌았다.[…]모든말들에훨씬조심스레더듬거리며다가가게되었다.[…]동료와친구라는말,공간과기억,시간과역사,죽음을지고가는사람들과많은이들의이름을불러보았다,[…]계속해서이름을불러보게되었다.[…]길위에서있는나자신이이렇게확실히눈에보인적이없었다.나는길위에서있고여전히이름들을불러보고있으며계속해서가고있다.(박솔뫼,「9월도쿄에서」,『말과활』2016년1-2월호)

박솔뫼는“잘쓰는것같다는생각이조금이라도들면그게싫고그럴때면‘약간넘어져야지’생각”(「연합뉴스」)하게된다는“곡예에반대하는곡예사”(금정연)다.이번소설에서도“문어체와구어체가패턴없이뒤섞인서술스타일”(손정수)과,“비문에근접한문장,불완전한문장도있고‘나’의생각,추측,소망,그리고가상적대화상대자의목소리가하나의문맥에무차별적으로섞여있기도하며화자의‘전의식’에서솟아나는상념들이두서없이전사되어있기도한문장”(김홍중)들이혼란스럽게느껴질수도있을것이다.
그러나정돈된문장보다더많은생각들이우리머릿속에있다.여러선택지중하나를골라단언할때생각의과정을덜어내정리된문장을내어놓지만,박솔뫼는말에좀더“조심스레더듬거리며”접근한다.“선택을하게하는것선택을하는자신을보는것”을드러내며머릿속생각들을다듬고덜어내지않기로작정하고그대로전달하려한다.“마치여우가자신의꼬리를잡으려고뱅글뱅글도는것처럼앞선생각을덥석물고이상하다고뱉고다시물고를반복하는것처럼(「우리의사람들」)생각의과정들,머뭇거림을문장의리듬으로받아들이면서.
소설을읽는것을소설가가꾸려놓은세계를여행하는것에비유한다면,박솔뫼의소설은자유여행에가까울것이다.빡빡하게짜인숨가쁜일정에맞추어놓쳐선안될포인트를반드시짚고움직이기보다는,여유있게일정을잡고오래머물러야하는,“적당한시간에잠이들어어느시간엔가자연스럽게눈을”뜨고,눈에보이는모든골목을산책하다길도잃어봐야하는여행말이다.그리고이곳의경치를그저지켜보기보다,풍덩빠져흐름을따라가볼필요도있겠다.박솔뫼의바다에몸을맡기며,중간중간마음이맞는문장에닻을내려오래도록기억하는것도좋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