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병들고아픈시대에대한혹독한예감
‘살아있음’에대한이토록치열한존재증명
최승자.삶과사랑,그리고죽음을누구보다치열하고독한언어로품어내며우리들의한시대를순식간에잠식했던80,90년대에도,쇠약해진육체의감각에박힌어떤체험들을“뼈만남은이가난한언어”(황현산)로말해온2000년이후에도여전히변함없는우리들의시인.그의근황을담은시집『빈배처럼텅비어』(문학과지성사,2016)가출간됐다.오랜침묵을깨고11년만에선보였던『쓸쓸해서머나먼』(2010)과대산문학상,...
병들고아픈시대에대한혹독한예감
‘살아있음’에대한이토록치열한존재증명
최승자.삶과사랑,그리고죽음을누구보다치열하고독한언어로품어내며우리들의한시대를순식간에잠식했던80,90년대에도,쇠약해진육체의감각에박힌어떤체험들을“뼈만남은이가난한언어”(황현산)로말해온2000년이후에도여전히변함없는우리들의시인.그의근황을담은시집『빈배처럼텅비어』(문학과지성사,2016)가출간됐다.오랜침묵을깨고11년만에선보였던『쓸쓸해서머나먼』(2010)과대산문학상,지리산문학상을연이어수상하며묶어낸『물위에씌어진』(2011)에이은여덟번째시집이다.매번결코벗어날수없는‘나’라는‘빈감방’에서그럼에도탈출하려안간힘을써온그의일기가92편의시로묶였다.“병든세계에서병이들어하릴없이살아있는자가,살아있는것인지아닌지알기쉽지않은자가여전히시를써서생존을증명하고있다.살아있기때문에가까스로새로이시를쓴다.”(김소연)
나의생존증명서는詩였고
詩이전에절대고독이었다
고독이없었더라면나는살수없었을것이다(「나의생존증명서는」부분)
살았능가살았능가
벽을두드리는소리
대답하라는소리
살았능가죽었능가
죽지도않고살아있지도않고
벽을두드리는소리만
대답하라는소리만
살았능가살았능가
삶은무지근한잠
오늘도하늘의시계는
흘러가지않고있네(「살았능가살았능가」전문)
먹먹하고도멍멍한,잿빛구름처럼자욱하고그을린시간속에서,“내생애에한音”(「玄同」)을더하듯쉼없이흘러가는부운몽을응시하는이번시들역시,“가장가벼운육체로,가장잘활용된감각으로,인색하게허락되는언어로,간명한사상으로,경제적으로그러나확실하게사용되는시적선회로,우리시대에가장투명한말의거울”(황현산)의맥락에서읽힐만하다.
虛위에서춤추는有의아름다움(「虛위에서춤추는」부분)
우리는쩍벌리고있는아구통이아니다
우리는人도아니고間도아니다
우리는별다른유감과私感을
갖고사는천사들일뿐이다
우리가천사처럼보이지않는것은
세상환영에속아살고있기때문이다(「우리는」전문)
얼마나오랫동안
세상과떨어져살아왔나
“보고싶다”라는말이있다는것을
오늘처음깨달았다
(아으비려라/이날것들의生)(「얼마나오랫동안」전문)
나는육십년간죽어있는세계만바라보았다
이젠살아있는세계를보고싶다
사랑찌개백반인삶이여세계여(「나는육십년간」부분)
발문에서시인김소연은“진실의추한모습을드러낸용기와순수에만가치를둘수는없다.발설된추의세계와발설하는자의용감하고아름다운태도,이둘의‘격차’가주는충격이최승자시의진짜가치이기때문이다.이격차에관해서라면,이시집도여전한가치를지닌다.지독하고치열했던열기가사라진자리에표표하고괴이한권태가자리잡은것이다를뿐”이라고말한다.또한지금껏‘부정혹은비극의시학’으로읽혀온최승자의시세계는그부정과비극,비천함과추함과독함이작동하게된근본적이유를다시묻고,다시읽혀야한다고거듭말한다.
그게우리의삶이라는거지.죽음은시시한것이야.
왜냐하면우린이미죽어있으니까.
―「서역만리」부분(『내무덤,푸르고』,1993)
죽은하루가쌓여간다
미(美)도추(醜)도각기몽당연필
인류여코메디여
하늘의퉁소소리는
대지의퉁소소리와는다르다
(나만빙긋이웃는다왜냐하면미쳤으므로)
―「죽은하루하루가」부분(『빈배처럼텅비어』,2016)
1980,90년대이후줄곧자기부정과자기모멸과위악으로해석돼온최승자의시들은2016년,“갖가지퇴행을겪으며골고루망가져가는이시대에이르러서야”너무도‘정확한직시와예감’으로우리의식을타격한다.그러기에,오래도록이번시집을읽어온김소연의말들은저리도록아프고또뜨끔하다.“파국의파토스가문학의귀결점이라는사실에그많은시인들이동의해왔으면서도,한편으로는파국의파토스를끝까지수행해온시인을우리는목격해본적이없다.최승자는끝까지살아남아,이길에서이탈하지않은유일한시인이되어있다.‘그가겪은정신적위기는개인적위기이기만한것이아니라이땅의시가멀지않아감당해야할위기이기도’(황현산)하다는걸,우리는최승자의곁에서예감할수있다.[……]최승자만의혹독한예감이리얼리티가되어있는지금,최승자가‘아픈자’라면우리는‘병들었지만아프지않은자’(이성복)라고표현해야옳지않을까.최승자가혹독한예감에시달리는예민하고건강한시인이었고자신의상태에대한자각이누구보다정확했고지금도그러하다는것을받아들인다면,지금의우리는도대체누구일까.”
(김소연,발문「우리시대의유일무이한리얼리스트」에서)
아침이밝아오니
살아야할또하루가시큰거린다
“나는살아있다”라는농담
수억년해묵은농담“(「아침이밝아오니」전문)
낯가리고울다웃는이文明의본성(「쓸쓸한文明」부분)
시인은괄호치고중얼거리듯,이렇게쓴다.“지나가는소리를잘들으려면/고요해져야한다/바람의전언은쉽게잡히지않는다”(「가다가다가」).이번시집의처음과끝에자리한시두편을찬찬히곱씹어읽을이유가여기에있다.
내손가락들사이로
내의식의층층들사이로
세계는빠져나갔다
그러고도어언수천년
빈배처럼텅비어
나돌아갑니다(「빈배처럼텅비어」전문)
너의존재를들키지마라
그림자가달아난다
(내詩는당분간허공을맴돌것이다)(「내詩는당분간,전문)
[뒤표지글]
한몇년군시렁거리는구름의말만들으며
갈길못가고또다시흐르기만하였다
어디로어디로라고밤바람은말하지만
고통처럼행복처럼기어코올그무엇
그러나참더디다
하여간에여하간에
갔다가왔다.왔다가또가려고한다
하여간에여하간에
또다시흐르기로작정하였다
또다시이륙하기위하여
떠나자꾸나
너무무거운것들은모두버리고
너무무거운것들은모두벗어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