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문헌 (강영숙 소설집)

회색문헌 (강영숙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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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일보문학상, 강유정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수상 작가 강영숙의 다섯번째 소설집 『회색문헌』. 현대인의 일상을 파고드는 불안과 파국의 조짐을 세심하게 짚어내 무심하고 과감한 필치로 써 내려온 강영숙은 수년간 발표한 8편의 소설을 묶어낸 5년 만의 소설집을 통해서, 한층 어둠이 짙어진 오늘의 도시와, 그 어두운 미로의 복판을 한없이 서성이는 존재가 자신의 상처를 낯선 타인과 가감 없이 공유하는 기묘한 연대를 그려내고 있다.
저자

강영숙

저자강영숙은강원도춘천에서태어나서울예대문예창작과를졸업했다.1998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단편「8월의식사」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으로『흔들리다』『날마다축제』『빨강속의검정에대하여』『아령하는밤』,장편소설로『리나』『라이팅클럽』『슬프고유쾌한텔레토비소녀』가있다.한국일보문학상,백신애문학상,김유정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귀향
폴록
불치不治
맹지盲地
해명海鳴
검은웅덩이
가위와풀
크훌ㅡ백신애풍으로

해설상처,그신비한열림에대하여_이소연

출판사 서평

알것같아요,
세계는무너진적이없다는것
무너지는것은,나의내부라는것

조금씩파괴되는일상,금가며마모되는세계
도시,그출구없는미로를걸어온사람들을기록하는무채색초상

한국일보문학상,김유정문학상,백신애문학상수상작가강영숙의다섯번째소설집

“불길함을응시하는문장의피카소처럼명도만으로이어두운시대의심연을그려내”(서희원)는강영숙의다섯번째소설집『회색문헌』이문학과지성사에서출간되었다.현대인의일상을파고드는불안과파국의조짐을세심하게짚어내무심하고과감한필치로써내려온강영숙은수년간발표한8편의소설을묶어낸5년만의소설집『회색문헌』을통해서,한층어둠이짙어진오늘의도시와,그어두운미로의복판을한없이서성이는존재가자신의상처를낯선타인과가감없이공유하는기묘한연대를그려내고있다.

캔버스위로되는대로물감을쏟아버리기,혼돈에몸을내맡기기,나를괴롭혀온것들을창고에가두고문을콱잠가버리거나가위로싹둑잘라버리기……작중인물들은삶과죽음으로향하는충동을동시에작동시키면서황폐하기짝이없는세계한가운데를맹렬하게가로지르고있다.이단계에이르면,어쩌면삶과죽음을분간하는일조차무의미해질지도모른다._이소연(문학평론가)

고장난나침반,무용한내비게이션을쥐고떠나는여정
“인물들이지닌비애,불안,공포는그들이거주하는세계전체를물들이고있다.세계를퇴락으로몰아넣는원인,그것은다름아닌그안에서고통받는인간자신인것이다.”_이소연

일상은매일같이익숙하게밀려오지만,더는안온하다고표현할수없다.사전적의미의재해와자본주의적재난의나쁜시너지속에서살아남은사람들은연옥의유령들처럼도시라는미로의이쪽저쪽을오가는데,고작그것을우리는일상이라부르고있는것인지도모른다.강영숙의소설속인물들은삶의의미가와해되는경험을맞닥뜨리고문득일상을떠나려시도하지만,방향을잃은사람들의내비게이션은말을듣지않는다.일상에서발을뗀그들은현실인듯아닌듯“삶과죽음의경계에모호하게걸쳐있는동시에이둘을모두포함하고있기에삶-죽음상태에있는유령들에의해곧잘점유당하곤”하는또다른연옥같은공간에“던져진다”(이소연).
강영숙의인물들은파편화돼있다.떠나더라도붙들사람이없다.알지못하는사람을찾아가사랑을나누고,관계라고할만한감정의교류없이만나다가,연락이끊기자자기자신을찾으려고향으로간다(「귀향」).「불치(不治)」의진욱은다른사람의모범이될만큼“늘공격적으로”일하던은행원이었다.그는대출을받으러온수연과연인이되었다가헤어진뒤역시귀향한다.「해명(海鳴)」의리리는일본인으로대지진트라우마가있다.지진을겪은다음부터깊은잠에들수없었고,오직푹자기위해한국을찾는다.자의로떠나지않은경우에도도착한곳이허를찌르긴마찬가지다.「맹지(盲地)」에서전자회사에근무하는‘나’는부품창고가있는‘건수산업단지’로외근을간다.건수는개발이멈춘일종의‘유령도시’로,나는짝사랑하는동료지영에게줄마카롱상자를들고불길한도시를배회한다.「검은웅덩이」에서25년동안일하던직장에서퇴직한정연은한무리의사람들과술을마신뒤졸다보니지하철막차에갇히게된다.그들이도착한어딘가는그들이바라는것을마법처럼이루어주는곳이아니다.고향은알아볼수없는장소가되어있고,이방인에게서울북촌은무엇이든일어날수있는낯선곳이다.반폐허도시인건수에서,처음와본버스종점정류장에서,잘못들어선골목길과지하철막차칸에서그들은여전한혼란을맞닥뜨리게된다.

낯선사람에게만전하는비밀
ㅡ“아,당신한테이런얘기를했군요.[…]어차피우린다시안볼사이니까괜찮아요.”

홀로길을떠나는강영숙의소설속인물은여정에서수없이많은사람들을“관문”처럼만난다.미친여자,점쟁이,봉사자,유타주에서온모르몬교도,대리기사,아랍여자,할머니,생떼쓰는할아버지,목욕탕의배구선수들,갑자기자라버리는여자애들……여정을떠난사람들은간혹이들을그저스쳐지나가기도하지만대개이들은“허락도받지않고자연스럽게문턱을넘어”(「검은웅덩이」)말을걸어오고,동행하고,영향을미친다.
세상은말로가득차있지만그것은말이아닌말의거품이라,강영숙의인물들에게는“대꾸할가치가없”는것들이다.동시에그들은누구에게든이해받으려는욕구로가득차있다.누구라도붙들고이야기하고싶은데들어줄이가없다면신에게라도소리를친다(「크훌」).대화상대를앞에두고도진짜하고싶은말은못하고스스로에게문자를보내기도하는데(「폴록」),어차피제대로전할수없다면아예말하지않겠다는것은진정한대화상대를갈구하는것의다른말이다.
그래서강영숙의소설에는생전처음본이방인과맘속깊은이야기를꺼내어하거나둘만의경험을공유하는장면이종종등장한다.그러나“다시안볼사이”끼리의대화한번으로모든것이달라지진않는다.이후에도불면증은사라지지않을것이고,그들은“여전히아무것도알수없”을것이다.그러나내부에서곯아가는감정들을노출하여보여주는것만으로도의미가있다.재난과고난이후,그들이도달하게될곳은빛도아니고어둠도아닌곳,천국도아니고지옥도아닌곳,절망인지희망인지알수없는곳,다시현실이기때문이다.

J는아무런소용도없는글을쓰기시작했다.그리고장르를정할수없어고민하다가전공인도서관학에서들은한가지개념을빌려왔다.최종단행본이되기이전의자료,공식자료이전의자료,과정을보여주는회의자료,최종결과물이나오면결국폐기-폐기도장을찍는일은주로해당지역인근중학교학생들의방과후봉사활동일감이다-하게될자료를통칭하는,회색문헌greyliterature을작성하게된것이다.「폴록」에서

‘내인생을망치러온나의구원자’
또눈여겨봐야할것은갈림길에서만나는것이늘여성이라는점이다.갈림길을만들어내는것이여성이라고하는편이더적확할것이다.그간강영숙의소설에서그래왔듯,『회색문헌』에서도여성들은길을제시하고,혼란스러운누군가를더혼란속으로끌어들이거나,혹은그혼란에서빠져나올실마리를제공한다.타로점을봐주고손금을보는점쟁이,또래집단을이끌며길가에쓰러진사람들과노인들을돌보는‘검은군화소녀’,나와닮아있는,어렸다가어느새불쑥성장하는여자아이들……여성은몸을바꿔가며소설에서능동적인역할을맡는다.소설속인물들은조금씩변화하면서기억속의어머니를떠올리고,마침내제울음에묻혀들리지않던‘어머니’의울음을듣게된다.그것이강영숙의소설로써가능해지는변화의지점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