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경남진주에서태어났다.그곳에서자라고대학역시그곳에서다녔다.오래된도시,그진주가도시에대한원체험이었다.낮은한옥들,골목들,그사이사이에있던오래된식당들과주점들.그인간의도시에서새어나오던불빛들이내정서의근간이었다.대학을졸업하고밥을벌기위해서울로올라왔고그무렵에시인이되었다.처음에는봉천동에서살다가방송국스크립터생활을하면서이태원,원당,광화문근처에서...
목차1부농담한송이그그림속에서이가을의무늬이국의호텔베낀포도나무를태우며네잠의눈썹병풍2부딸기레몬포도수박자두오렌지호두오이포도메기목련라일락3부동백여관연필한자루우연한감염문득,너무일찍온저녁죽음의관광객내손을잡아줄래요?나비그늘라디오온몸도장아침식사됩니다돌이킬수없었다아사(餓死)나의가버린헌창문에게우산을만지작거리며4부수육한점사진속의달발이부은가을저녁방향우리브레멘으로가는거야루마니아어로욕얻어먹는날에매캐함자욱함운수좋은여름섬이되어보내는편지유령들빙하기의역가을저녁과밤사이너,없이희망과함께지구는고아원푸른들판에서살고있는푸른작은벌레겨울병원5부눈엄마와나의간격네말속지하철입구에서가짓빛추억,고아설탕길카프카날씨1언제나그러했듯잠속에서카프카날씨2카프카날씨3밥빛나는춤추는중해설|저오래된시간을무엇이라부를까|이광호(문학평론가)
출판사서평“저오래된시간을무엇이라부를까”그모든시간의‘사이’를둘러싼상상력과질문들우리말의유장한리듬에대한탁월한감각,시간의지층을탐사하는고고학적상상력,물기어린마음이빚?은비옥한여성성의언어로우리내면깊숙한곳의허기와슬픔을노래해온시인허수경이여섯번째시집『누구도기억하지않는역에서』(문학과지성사,2016)를출간했다.2011년에나온『빌어먹을,차가운심장』이후5년만의시집이다.물론보다아득한세월이시인과함께한다.1987년에등단했으니어느덧시력30년을바라보게되...“저오래된시간을무엇이라부를까”그모든시간의‘사이’를둘러싼상상력과질문들우리말의유장한리듬에대한탁월한감각,시간의지층을탐사하는고고학적상상력,물기어린마음이빚은비옥한여성성의언어로우리내면깊숙한곳의허기와슬픔을노래해온시인허수경이여섯번째시집『누구도기억하지않는역에서』(문학과지성사,2016)를출간했다.2011년에나온『빌어먹을,차가운심장』이후5년만의시집이다.물론보다아득한세월이시인과함께한다.1987년에등단했으니어느덧시력30년을바라보게되었고,1992년에독일로건너가여전히그곳에거주하고있으니햇수로25년째이국의삶속에서모국어로시를쓰고있는셈이다.아주오래전,“내가무엇을하든결국은시로가기위한길일거야.그럴거야.”(『내영혼은오래되었으나』,2001)라고했던그의말을새삼스레떠올려보게도되는,산문도소설도아닌다시시집으로만나는,마디마디가뭇없이사라지기전가슴깊이파고들어먹먹하기만한시62편이이번시집에담겼다.대부분돌아오지않거나돌이킬수없다는무참한예감속에,대체“얼마나오래/이안을걸어다녀야///나는없어지고/시인은탄생하는가”(「눈」)스스로묻고다녔던이국의거리와광장과역에서씌어진시들이다.“내일이라도이삶을집어치우며먼바다로가서검은그늘로살수도있었다언제나차마그럴수없었다몸은커녕삶도추상화가아니어서”(「오렌지」)쓰리고아린고독의시간들.시집을열면,차마“그냥,세월이라”(「네잠의눈썹」)하고지나치기엔,묻고싶은말들이넘쳐연신쌓여가는그시간의내력속에한발한발들이게된다.시간이날때마다터미널로나가돌아오지않는가방을기다렸다술냄새가나는오래된날씨를누군가매일매일택배로보내왔다마침내터미널에서불가능과비슷한온도를가진우동국물을넘겼다가방은영원히돌아오지않을거라는예감때문이었다그예감은참,무참히돌이킬수없었다―「돌이킬수없었다」부분“어떤삶이라도단한빛으로모둘수없어서”생과죽음을넘어서는깊고오랜시간의감각“영원히역에서있을것같은나날”(시인의말)은어쩌면내삶에서조차끝내이방인일수밖에없는,하여“누구도기억하지않는역”으로우리모두의채우지못한마음의공동(空洞)을가리키는지도모른다.한때생생했던그모든생과기억도시간의힘앞에서는무력할수밖에없고,남아있는우리가그의미를알아내기란영영불가능할터.시인은“토해놓은사랑과죽음으로도돌이킬수없던”(「나의가버린헌창문에」)생에대한감각을다시시간의감각으로옮겨놓는다.삶도,사랑도,기억도“모든죽음이살아나는척하던/지독한봄날의일/그리고오래된일”(「오래된일」)이라고.남은우리는그‘오래된일’을어떻게기억하고이름불러야하는지,또무엇으로남아현재의시간을비추고있는지를묻고또물어야한다고.눈앞에타들어가는포도나무를바라보며오래된시간에대한상상과뼈아픈시간에대한쓸쓸한질문을보태는일이‘장례’와‘애도’그리고‘어루만짐’의시간이될수있는연유가여기에있다.서는것과앉는것사이에는아무것도없습니까삶과죽음의사이는어떻습니까어느해포도나무는숨을멈추었습니다사이를알아볼수없을만큼살았습니다우리는건강보험도없이늙었습니다너덜너덜목없는빨래처럼말라갔습니다알아볼수있어너무나사무치던몇몇얼굴이우리의시간이었습까내가당신을죽였다면나는살아있습니까어느날창공을올려다보면서터뜨릴울분이아직도있습니까그림자를뒤에두고상처뿐인발이혼자가고있는걸보고있습니다그리고물어봅니다포도나무의시간은포도나무가생기기전에도있었습니까그시간을우리는포도나무가생기기전의시간이라고부릅니까지금타들어가는포도나무의시간은무엇으로불립니까정거장에서이별을하던두별사이에도죽음과삶만이있습니까지금타오르는저불길은무덤입니까술없는음복입니까그걸알아볼수없어서우리삶은초라합니까가을달이지고있습니다―「포도나무를태우며」전문“잘가,라고말하는순간”깊숙한고요와오래된시간을품은영혼의이름들차마가늠할수없는시간에대한시인의상상력은그의실존적몸과영혼의기억을한껏확장시켜“무언가,언젠가,있었던자리”를한데불러모은다.그렇게‘내속의할머니,아주머니,아가씨,계집아이와고아’,다시‘내안의노인과신생아와태아’의중얼거림이“고요한연”처럼이어지고“눈보라속에서믿을수없는악수”를나누며“기별의기척”을건네고헤어진다.(「빙하기의역」)시간의지도를그려볼수있는여러겹의계절을소환하는일도허수경의시에서는독특한이름과무늬를낳는다.밤과새벽의틈새에서열매맺은모든“당신이나에게왔을때”(「딸기」),시인은‘아주영영익어버린환한봄빛’을,‘손바닥처럼구겨지며몰락해가는’지난여름의꿈을(「레몬」),‘익은속살에어린단맛으로눈치채는말이전에시작된여름’을(「자두」),그리고‘그대영혼쪽으로가는기차를타고싶어한욕망과가을의살빛’(「호두」)을동시에꿈꾼다.아마도그병안에우는사람이들어있었는지우는얼굴을안아주던손이붉은저녁을따른다지난여름을촘촘히짜내던빛은이제여름의무늬를풀어내기시작했다올해가을의무늬가정해질때까지빛은오래고민스러웠다그때면,내가너를생각하는순간나는너를조금씩잃어버렸다이해한다고말하는순간너를절망스런눈빛의그림자에사로잡히게했다내잘못이라고말하는순간세계는뒤돌아섰다만지면만질수록부풀어오르는검푸른짐승의울음같았던여름의무늬들이풀어져서저술병안으로들어갔다그리고새로운무늬의시간이올때면,너는아주돌아올듯망설이며우는자의등을방문한다낡은외투를그의등에슬쩍올려준다그는네가다녀간걸눈치챘을까?그랬을거야,그랬을거야저렇게툭툭,털고다시가네오므린손금처럼어스름한가냘픈길,그길이부셔서마침내사윌때까지보고있어야겠다이제취한물은내손금앞에서속으로울음을오그린자줏빛으로흐르겠다그것이이가을의무늬겠다―「이가을의무늬」전문“아무도그심장을거두지않던오후여”삶의지반을뒤흔드는이상하고도불안한날씨한편,이방인의운명을타지에서의실존의삶으로이어가는시인에게모국어만큼이나절실하고그래서의지하게되는것이모국의존재였을것이다.때문에세월호의유가족들,정권의폭력에희생된시민들,하루하루알바를전전하며불안한미생의삶을살아가는젊은이들이국가의보호는커녕하루아침에‘해충’으로,‘불순세력’으로전락하고고국안에서또다른‘이방인’으로내몰리는모습들은그야말로삶의기반을뒤흔드는충격이되고말았다.이는마치이국의거리에선그가눈앞에서목도하는풍경,전쟁과종교근본주의자들의무자비한폭력을피해중부유럽으로향하는난민들의행렬과그들앞에국경의빗장을내건유럽국가의모습과다를바없었던것이다.이“이상하고도불안한날씨”속을걸어가는시인이계속해서‘무엇이었을까’묻고,살아남은우리만이라도쉬지않고‘기별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