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부서진 (조수경 소설집)

모두가 부서진 (조수경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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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옥을 버티는 사람들의 이야기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조수경 작가의 첫 소설집 『모두가 부서진』. 지난 10년간 SBS라디오 작가로도 꾸준히 활동해온 저자는 그간 호기심을 자극하는 강력한 서사, 인간 사회의 어둡고 추한 민얼굴에 주목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이번 소설집에서 저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모두가 조금씩 부서진 채로 살아가는 우리 일상의 면면, 그 안에 도사린 등골 서늘한 균열들에 집중한다.

성인용품 판매점에서 일하는 고독한 장애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등단작 《젤리피시》, 거짓으로 유지되었던 기나긴 연인 관계가 이미 끝나버렸음을, 나아가 이들의 관계가 서로 먹고 먹히는 좀비들의 관계만큼이나 적대적임을 보여주는 작품 《할로윈―런, 런, 런》 등 누구나 하나쯤 자기 몫으로 가지고 있을 법한, 누구나 피하려 하지만 아무도 비껴갈 수 없는 각자의 불행을 작가는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조수경

저자조수경은1980년에태어나서울과경기를오가며자랐다.경희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고,2013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단편「젤리피시」가당선되어등단했다.

목차

유리
마르첼리노,마리안느
젤리피시
떨어지다
할로윈-런,런,런
사슬
지느러미
오아시스

해설“앞으로도네소설잘지켜볼게”_김형중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사는게,재앙같아”

악몽보다지독하고공포영화보다참혹한
일상의뚜렷한균열,발밑의지옥


내시선이머무는곳은어둡고악취가풍기는곳이다.누군가는그곳을들여다봐야한다고생각한다.(조수경,인터뷰「징후들」,『문학과사회』2013년겨울호)

2013년『서울신문』신춘문예로등단한조수경작가의첫소설집『모두가부서진』이출간되었다.지난10년간SBS라디오작가로도꾸준히활동해온조수경은그간발표한소설들로호기심을자극하는강력한서사를구사하는데탁월함을보여주었으며,인간사회의어둡고추한민얼굴에주목하는날카로운시선으로독자의마음을사로잡아왔다.성인용품판매점에서일하는고독한장애여성의이야기를다룬등단작「젤리피시」는“단순한유행감각의소산이아니다.이작가는인간의깊은내부세계를들여다보는안목을갖추었다.또현실과환상을넘나드는묘사능력도탁월했다”(문학평론가방민호·소설가성석제)라는평을받기도했다.이번소설집에서작가는아무렇지않은듯보이지만모두가조금씩부서진채로살아가는우리일상의면면,그안에도사린등골서늘한균열들에집중한다.

몸도,마음도조금씩부서진사람들의도시

잠결에서늘한기운을느끼고눈을떴을때,그것이그저느낌이아니라는것을깨달았다.어두컴컴한방에서그녀는내머리맡에무릎을꿇고앉아있었다.희고가느다란두팔을치켜든채로.단단하게모아쥔두손에는과도가들려있었고칼끝은나를향해있었다.내가잠에서깨어났다는것을알아차리고그녀는흐느끼기시작했다.심장에칼날대신눈물이내리꽂혔다.[……]오직나만이그녀를구원해줄수있다는어리석은믿음.그렇게몇년을더보내고난뒤에야나는그녀가불행안에머물러야하는사람이라는걸인정하게되었다.(「오아시스」,pp.216~17)

도시는말끔하고행복한사람들로가득찬듯한착시를불러일으키는장소지만,한편으론그허상에의해자기삶에서조차주변화되어버린,흠많고길잃은사람들의집합소이기도하다.『모두가부서진』의수록작여덟편에등장하는모든인물들또한각자의부서짐을치열하게경험해간다.이는하반신마비(「젤리피시」)처럼눈에보이는장애에서부터,눈앞에직면한이혼(「유리」),아버지의외도에서기인한강박적순결콤플렉스(「마르첼리노,마리안느」),부모에게버려진뒤방향을잃어버린청춘(「떨어지다」),거짓으로유지된연인관계의파경(「할로윈―런,런,런」),임신문제를둘러싼고부갈등(「지느러미」)등다양한방식으로구현된다.누구나하나쯤자기몫으로가지고있을법한,누구나피하려하지만아무도비껴갈수없는각자의불행을작가는집요하게들여다본다.

악몽과현실이혼재된일상

여느여고생들처럼명랑하던소녀가침묵과가까워지게된것은한여자가전동차로뛰어드는모습을목격한뒤부터였다.그일은마리안느의눈앞에서벌어졌다.검은원피스를입고있던여자가검은보디백에담겨플랫폼으로옮겨지기까지마리안느는의자에굳은듯앉아있었다.시신을직접보지는못했지만,그것을수습하는데꽤오랜시간이걸린걸보면여자의몸은부서지고,찢기고,으깨진채사방으로흩어진것이분명했다.
(「마르첼리노,마리안느」,p.47)

살인마수한은꿈속에서의수한.
현실에서의수한은착하고다정한사람.
꿈은가짜.현실은진짜.
무엇이진짜인지잘알고있었지만,몇달간계속이어지는꿈때문에이제나는정말로수한이두려웠다.처음엔가짜라는걸알고도무서운정도였지만,점차가짜를진짜라고믿게되었다.요즘에는이불속에망치를숨겨두고그것을한손에꼭쥐어야만간신히잠이들정도였다.오랜불면이꿈과현실의경계를허물어뜨리고있었다.(「할로윈―런,런,런」,p.143)

사소한균열은점차뚜렷한붕괴가되고이내걷잡을수없이일상을망가뜨린다.결말에이르러인간본성에존재하는기괴하고뒤틀린면모를마주하게한다는점은조수경소설의특장이다.특히작가는소설도입부에종종꿈을배치함으로써이불쾌한진실을고지하곤하는데,일반적인도피처로서의꿈이아닌지독한악몽을통해어떤각성을이끌어낸다.예를들어「할로윈―런,런,런」의거짓으로유지되었던기나긴연인관계가이미끝나버렸음을,나아가이들의관계가서로먹고먹히는좀비들의관계만큼이나적대적임을보여준다.한편,「마르첼리노,마리안느」의마르첼리노가꾸는꿈은마르안느와의사랑이오로지쾌락에만골몰한불륜일뿐임을,그죄를알면서도늘신과의약속을저버리고있음을스스로알게한다.“조수경의인물들은꿈들이고지하는진실을부인함으로써가까스로현실의삶을유지한다.혹은불쾌하게도현실의삶이실은살만한것으로‘상상’된것에불과하다는사실을자꾸알려주려애쓰는꿈과사투를벌이며,고통스럽게살아간다”(김형중,해설「“앞으로도네소설잘지켜볼게”).

지옥을버티는저마다의방식

여자의얼굴이크게인쇄된면을찾아방바닥한가운데에잡지를펼쳐놓았다.그아래에실리콘가슴을가져다놓았다.다시포르노스타의토막난은밀한부위,그리고여자의다리를본뜬쿠션을차례로늘어놓았다.나는내가창조해낸여자옆에나란히누웠다.
카리브해의바닷바람이얼굴을스친다.여자와나는백사장에누워하늘을바라본다.분홍빛파도가밀려와여자와내몸을적신다.여자의분절된몸이하나로이어진다.여자는몸을천천히일으켜세운다.한걸음씩발을내딛다춤을추기시작한다.전라의아름다운육신이부드럽게출렁인다.여자는춤을추며내게다가온다.(「젤리피시」,p.94)

조수경이들여다보는삶의진실은언뜻망치로짓이겨진살점과찢기고끊어져버린신체,피가낭자한지하실에서개가갓난아기를잡아먹고마약에취한채에이즈보균자와동침하는죽음충동으로귀결되는듯하다.혹은왜곡된욕망에이끌려약한사람이더약한이에게폭력을가하고타인의불행을집요하게캐내며균열을은폐해가는방식으로만생이유지될수밖에없는것처럼보이기도한다.하지만작가는악몽이야말로우리가살아내야하는현실임을분명히보여주고,누군가는완벽한고독속에서이미분절되어버린몸을다시잇는재생의꿈을꾸도록한다.모두쉽게눈감고합리화함으로써왜곡된진실이세계를지배하게된우리의오늘에각성의안경을건네줄,조수경소설의첫걸음이시작됐다.

해설에서

조수경의인물들은꿈들이고지하는진실을부인함으로써가까스로현실의삶을유지한다.혹은불쾌하게도현실의삶이실은살만한것으로‘상상’된것에불과하다는사실을자꾸알려주려애쓰는꿈과사투를벌이며,고통스럽게살아간다.조수경소설속에서꿈은실재를향해나있는문이고,그것을돌파하려는지난한노력이이작가의글쓰기를윤리적이게한다._김형중(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