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기 그루브 (서준환 소설집)

다음 세기 그루브 (서준환 소설집)

$13.00
Description
서준환의 네번째 소설집 『다음 세기 그루브』. 이 책에서 작가는 편집증을 앓는 안드로이드, 기억상실증에 걸려 떠도는 남자 등을 다룬 수록작을 통해 실제와 망상 사이,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오가며, 현실의 항구성을 벗어 던진 불안정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특히 소설집 화자의 대부분이 ‘자기 진술’의 형태, 즉 타자와의 대화가 아닌 독백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감으로써, 화자의 언술 바로 앞에 독자를 앉힌다. 독자가 화자의 진술 중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하느냐에 따라 무한히 생성, 변모하는 유동체로서 독특한 소설 읽기의 체험을 선사할 것이다.
저자

서준환

저자서준환은2001년『문학과사회』로등단했다.소설집『너는달의기억』『파란비닐인형외계인』『고독역시착각일것이다』,장편소설『골드베르크변주곡』『로베스피에르의죽음』등이있다.

목차

리핑Ripping
파라노이드안드로이드
튜브맨
다음세기그루브
전자인간장본인
창백한백색그늘
모조노벨레이어하기

해설|파괴하면서생성하는이열광적순환·박진

출판사 서평

흐르고순환하는불안정한세계
수많은가능성을낳은채유동하는이야기


서준환의네번째소설집『다음세기그루브』가문학과지성사에서출간됐다.『고독역시착각일것이다』(문학과지성사,2010)이후6년만의소설집이다.이책에서작가는편집증을앓는안드로이드,기억상실증에걸려떠도는남자등을다룬수록작을통해실제와망상사이,현실과비현실사이를오가며,현실의항구성을벗어던진불안정한세계를만들어낸다.특히소설집화자의대부분이‘자기진술’의형태,즉타자와의대화가아닌독백을통해이야기를끌어감으로써,화자의언술바로앞에독자를앉힌다.『다음세기그루브』는독자가화자의진술중무엇을믿고,무엇을의심하느냐에따라무한히생성,변모하는유동체로서독특한소설읽기의체험을선사할것이다.

우리가서준환이라고부르는한사람은,이질적인목소리들을계속‘들으면서’글을쓰는자,또는“말과말하기의자발적동력학을시연”하는“말하기의인공생명체”같은것으로이책에출현한다.그의컴컴한목구멍과연결된혀와입천장사이,끈적거리는침속에서우글대던온갖사물과관념들은뜻하지않은몇개의말과함께마치우연인듯바깥으로뛰쳐나온다._박진(문학평론가)

망상과착란의무대에오른안드로이드,
실제와망상사이에놓인화자의모놀로그


안드로이드
인간과똑같은모습을하고인간과닮은행동을하는로봇.또는그런지적(知的)생명체.공상과학소설따위에등장하는인조인간을이른다.
―국립국어원표준국어대사전

소설집에서가장눈에띄는화자는인간같은로봇,즉‘안드로이드’의존재이다.흔히인간과로봇의대립속에서로봇들이반란을일으키는서사의수많은공상과학소설이있었다면,이책은인간의가장아픈고리인혼란스러운자아,거기서비롯된정신질환을안드로이드가닮을수있다는상상에서시작한다.

나는이제부터나를압도하고있는자술의무대위에서그런모놀로그를펼쳐가야하는배우다.배우는우울하고신경증적인안드로이드이다.그러니무대의고독에민감할수밖에없다._「파라노이드안드로이드」

이작품의안드로이드는무대위에서모놀로그의형식으로자신의이야기를꺼낸다.자신의말에취해이말,저말갖은말들을쏟아내는작품속유일한화자이기도하다.이독백에서안드로이드는인간에게서마음의병을옮아신경정신과를방문한이야기,거기서만난‘마빈’이라는의사에대한이야기,‘강가딘’이라고불렀던엄마,‘판다’라불리는와이프의이야기(안드로이드에게엄마와와이프가있을리없다!)등을끊임없이풀어놓는다.그의많은이야기는실제로일어난일이라고확신할수없거나,일어날가능성이전혀없는이야기들이얽히고설켜어지럽게이어진다.때문에독자에게그의독백은들으면들을수록망상에젖은‘편집증자’의언술로느껴진다.더욱이그의말을뒷받침해줄만한타인의진술이없는모놀로그의특성상그의이야기중무엇이실제이고,어디까지가망상인지점점더모호해지고만다.

나는무슨이유에서인지몰라도인간세계로내던져진이우주의유민(流民)이니까.[……]‘유민’이라는말이지나치게멋스럽게들린다면차라리‘난민’으로고쳐말해도무방하다._「파라노이드안드로이드」

인간세계에그저내던져진,(흔히인간들이그러하듯)가족이나고향등자신을증명할만한무엇도찾을수없는안드로이드를“우주의유민”,다른말로“난민”으로칭할수있다면,이러한배경을공유하는인간역시“난민”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실제로작가는소설집곳곳에서‘난민’을등장시킨다.자기자신이누구인지모르는,기억상실에걸린사람(「튜브맨」),고향을버리고서울에자신들의삶을송두리째바친가족(「창백한백색그늘」)등의이야기가그러하다.그중「모조노벨레이어하기」는재벌가딸‘미스프랑신’과사랑에빠졌다고주장하는‘난민M’의이야기이다.“고향이지워진사람”,돌아갈곳도없지만현실에완전히맞닿지도못한어떤시공간에난민M이있다.M의이야기에서독자는난민M의존재뿐만아니라,M이하는얘기역시믿을수없는것들투성이임을발견한다.재벌가의딸과사랑에빠졌다는것만해도의심스러운데,거기에더해그녀가아무도모르게자신을찾아왔던이야기,그녀의가족들이자신을위협했다는각종믿을수없는에피소드들은읽는이로하여금의심을더하게한다.“M형,지금무슨이야기를하는거요?”라는작중소설가S의말처럼,M의사랑이야기는증거가없는망상일거라는확신만가중된다.
그럼에도독자는읽는내내“난민M이강조한대로만약이이야기가허구도망상도아닌실제라면어떻게되나?”라는질문에사로잡힌다.모든정황은화자의말이실제가아닌망상일거라고말하지만,그럼에도실제일수있다는일말의가능성을완전히떨치기는힘든것이다.때문에소설집은망상과실제를구분하는독자개인의판단에따라수없이다른이야기가만들어질수있는가능성을내포한다.

독존적창조정신을무화시키는창조의등장
‘할말’을찾지못한채거듭반복되는글-글쓰기


「다음세기그루브」의화자‘나’는「나는나다」라는시를준비중인시인이다.‘나는나다’라는문장이말해주듯,나는나-시인으로서의자신,개별자로서의자신에대한자의식이유난히강한사람이다.이는‘시쓰기’를향한태도에서도드러나는데,그에게시를쓴다는행위는“주체의절대적창조성”을바탕으로한“나만이창조할수있는하나의언어적우주”이다.

테크노DJ란이런시인의정의에가장날카롭게부딪치는창작세계의표현주체입니다.한마디로이들한테는자기만의독자적인표현세계란없다고까지말할수있겠습니다.왜냐하면이들의음악은온통남들이이미내놓은음악적결과물들의부분적인짜깁기거나노골적인혼성모방의흔적이니까요.[……]그렇다면창작또는무엇인가를창조한다는개념자체의장(場)이달라진거라고말할수있을지도모르겠군요.아무튼시인의창작개념이일렉트로니카의필드에서는거의통용되지않는다는거죠._「다음세기그루브」

시쓰기를위해골방에틀어박혀지내던그는디지털피아노의음향,우연히듣게된라디오에서흘러나온일렉트로닉음악등자신의글쓰기와는전혀다른새로운소리를접하면서창작의고유성과독자성이흔들리는경험을하게된다.시쓰기로채워져야할순수한창작의영역에모방,짜깁기등으로구성된“혼종적인”소리/텍스트가자리하게된셈이다.
창조적글쓰기에대한어떤회의와그에대한의구심등이이어지는한편,말로써이를다시설명하고,다시이야기하고자하는화자들의의지는소설집곳곳에서다시고개를든다.「창백한백색그늘」은목사손정목씨의사고를두고그진실을밝히려는형사의이야기다.그는자술서를유독중요한자료로여기기에,목사의아들J씨의자술서를중심으로이작품은꾸려진다.

“그래서자살한형이어떤글에그토록매달렸다는거죠?”나는J씨가자기의말을이어가도록채근해야했다.“그렇습니다.스스로목숨을끊기전까지어떤글이형의정신을강하게사로잡고있었습니다.”_「창백한백색그늘」

J씨의자술서를토대로J씨를심문하던중또다른‘글’,그의형이매달렸던글이튀어나온다.형은“죽음의결단이앞질러형을덮치고말았기때문에”,스스로목숨을끊었기때문에결국누구도형이그리고자했던명확하고구체적인이야기는알수가없다.글에서다시글로,금방이라도실체가드러날것같았지만형의유고를이어쓰겠다던J씨마저실종됨으로써모든것은원점으로돌아간다.
글쓰기,언어에강력하게매달리는화자들의모습과는반대로,서준환의글쓰기는그들의글을사실상‘무(無)’로되돌린다.텍스트가많아질수록할말이명확해지는것이아니라,오히려수많은해석의가능성,변화의가능성만을남긴채모호해진다.즉,다시얘기를해야하는,‘할말’이없는상태로되돌아오는셈이다.“이무한한회귀의움직임은텍스트의이면에또다른텍스트가일렁거리게”(박진문학평론가)만들며소설집전체에서거듭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