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봄 (황동규 시집)

연옥의 봄 (황동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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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황동규 시집 『연옥의 봄』. 미당문학상·대산문학상·호암상 등 국내 굴지의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적인 사랑 노래"로 꼽히는 [즐거운 편지] [조그만 사랑 노래] 등으로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한국 현대 대표 시인 중 한 명이 황동규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연옥의 봄] 연작 네 편을 포함한 총 77편의 시가 묶였다. 직전 시집 [사는 기쁨]에서 꺼져가는 삶도 생명의 진행 과정에 있음을, 살아 있는 한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아픔의 환한 맛"을 달게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삶의 숭고를 표현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일상적인 부재와 소멸의 '사소함'을 생의 일부로 수용하고,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기다림의 자세에 대한 생각'을 심화해간다.
저자

황동규

목차

시인의말

제1부천남성열매
그믐밤
시계청소(視界淸掃)
앤절라휴잇의파르티타
이환한저녁
살것같다
열대야백리향
천남성열매
안보이던바닥
외등(外燈)불빛속석류나무
몸이말한다
참아야살수있는곳
햇빛에놀란무지개춤
간월암가는길
명품테킬라한잔
파계사대비암(大悲庵)
팔공산황태
새처럼노래하자
세상의끝
오체투지(五體投地)

제2부발
저꽃

아픔의부케
서교동에서
춤추는은하
마지막날1
마지막날2
견딜만해?
아랫동네산책
봄은역시봄
젊은시인에게
살다가어쩌다
그때그고민
겨울날오후4시,뻥뚫린

마음보다눈을
사는노릇?
달없는달밤
잔물결들
섬쥐똥나무들의혼

제3부나폴리민요
쌍(雙)별
나폴리민요
풍경의풍경
폴루이스의슈베르트를들으며
기억의집에서나오다
미래더듬기
일없는날
함백산
나의동사(動詞)들
마음어두운밤을위하여
반짝이고만시간조각들
귀가(歸家)
강원랜드버스터미널에서
삶의본때
무릎
성자(聖者)의설교
이즘새들
양평에가서
옛안경끼고운전하기
정화(淨化)된탑

제4부연옥의봄
북촌
바가텔(Bagatelle)
미소
초행길빈을뜨며
마지막시신경
꽃피는사막
봄비
초원이초원을떠나네
이세상에서
황사(黃砂)속에서
들리지않는신음소리
지금이가을,고맙다
늦가을에
별사(別辭)
연옥의봄1
연옥의봄2
연옥의봄3
연옥의봄4

해설-연옥의봄에는눈이내린다/김수이

출판사 서평

유한한존재들의'홀로운'삶,
그사소하고보편적인생의감각
"맨삶을노래하자!"


상처많은삶이라도
애써별일아닌듯상처들을살다가게했다.
이젠내보일만한상처하나흠집하나남아있지않다고?
두손으로무릎을탁치게.
(/'무릎'중에서)

황동규시인의열여섯번째시집[연옥의봄]이출간되었다.시인은1958년[현대문학]추천으로등단한이래지난58년간존재와예술,세계를향해질문하는절실하고독한시창작여정을계속해왔다.미당문학상·대산문학상·호암상등국내굴지의문학상을수상한이력뿐만아니라"우리나라최초의현대적인사랑노래"로꼽히는[즐거운편지][조그만사랑노래]등으로독자들에게잘알려진한국현대대표시인중한명이황동규이다.이번시집에서는[연옥의봄]연작네편을포함한총77편의시가묶였다.직전시집[사는기쁨](문학과지성사,2013)에서꺼져가는삶도생명의진행과정에있음을,살아있는한생명이다하는날까지"아픔의환한맛"을달게받아들여야만한다는삶의숭고를표현했다면,이번시집에서는일상적인부재와소멸의'사소함'을생의일부로수용하고,삶과죽음을아우르는'기다림의자세에대한생각'을심화해간다.미완을스스럼없이긍정하며,시안에살아숨쉬는인간과삶의미묘한섬광을담아내고자꾸준히들여다보고사유해나가는시인황동규의열정은여전히현재진행형이다.

"짜릿함"에이르는경지,텅빈감각의카타르시스

잔눈맞고밟으며왔다.
어느결에눈이그치고
달도별도없는바닷가
파도도물소리도없다.
먼데서울던밤새소리도없다.

어둠속에서혼자불빛비추고있는등대
나무몇만사는조그만섬도길잃은배도없는
수평선마저없는바다를천천히훑고있다.
더없는것은없냐?반복해훑고있다.
가만,마음에모여있던생각들다어디갔지,
자취하나남기지않고?
순간가슴한끝이짜릿해진다.
이짜릿함마음의어느함에넣을까?
(/'바가텔(Bagatelle)'전문)

눈이그친밤바닷가,달도별도,물소리도새소리도없는이곳은"없는것"들의세상이다.수평선마저없는바다멀리어둠속에서혼자빛나고있는등대만오롯하다."더없는것은없냐?"는시인의물음은현재의'나'의실존이"없는것들"(부재)에의해지탱되는역설을피력하며,문득심중의생각으로눈을돌리게한다."마음에모여있던생각들"이사라졌음을깨닫는순간의"짜릿함",이'텅빈감각의카타르시스'는존재를유지하고운동하게하는부재라는근본조건에대한이해를관통한다.여기서,이시의제목"바가텔bagatelle"이'하찮은것,사소한일'을의미한다는점은의미심장하다.이번시집의해설을쓴문학평론가김수이는이'사소함'의기표를이렇게분석한다.

황동규는없음과사라짐앞에서안타까움과슬픔등의감정적반응에충실하지도,의미부여의가공작업에매진하지도않는다.한인간으로서피할수없는감정과물음들을보존하면서도,없음과사라짐자체를향유하고있는그대로받아들이는일에몰두한다.그가부재와소멸을존재가수시로겪는바가텔로명명한것은그것이정말사소해서가아니라,사소함의빈도로부재와소멸을살아내야하는것이유한한존재의필연적이며불가역적인삶의원리이기때문이다.(해설-연옥의봄에눈이내린다'중에서/p.164)

꿈이멈추는곳을대하는여유,여전한유머감각

지평선인가수평선인가그냥가로금인가
위아래검붉은색채속으로번져지워지고
하늘과땅이하나가된다.
언젠가나와친구들이가로금처럼걷다가
하나가된검붉은땅검붉은하늘로스며들어가
하나가되리라는이느낌!
흉치만은않으이.
(/'서교동에서'중에서)

휴대폰은주머니에넣은채갈거다.
마음데리고다닌세상곳곳에널어뒀던추억들
생각나는대로거둬들고갈거다.
개펄에서결사적으로손가락에매달렸던게,
그조그맣고예리했던아픔되살려갖고갈거다.
[......]
피곤한아스팔트같은삶의피부에비천상(飛天像)하나새기다
퍼뜩정신들어손털고일어나갈거다.
(/'연옥의봄4'중에서)

이제무거운추떨어졌으니홀가분해진서부영화의늙은악한처럼
총알구멍뚫린맥주통문앞에세워논살롱앞에서얼씬대다
엉뚱한총탄에맞더라도
회한같은것없이환히비틀거리거나
맥주통에두손얹은채생뚱맞게서있을거다.
(/'살것같다'중에서)

뒤표지글에서죽음을"꿈이없는곳"으로선언하며끝마치듯,[연옥의봄]의시편들은하나하나황동규가삶과죽음에대해갖고있는인간적인생각을선명하게보여준다.이생각들은초월적인지향이아닌소박하고천진무구한인간적감각과행위의산물이다.시인은짧은실존과덧없는소멸에연연하지않고절대고요의순간에도달하며,이를'황혼의지평선'이나'게가물었던조그맣고예리했던아픔'같은평소일상감각으로구체화한다.또한"엉뚱한총탄에맞"은"늙은악한"이나"휴대폰을넣은채갈거다"라는다소위트있는표현들은언젠가꿈이멈추는곳에가닿을운명을생의의미로온전히받아들이는시인의여유를보여준다.

사라진다고무의미한것은아니라는생각

무엇이건드려졌지?창밖에달려있는잎새들의낌새에
간신히귀붙이고있던마음의밑동이빠지고
등뼈느낌으로마음에박혀있던삶의본때가
몸숨기다들킨짐승소리를낸다.

한창때원고와편지를몽땅난로에집어넣고태운
외로움과구별안되는그리움과맞닥뜨렸을때나온소리,
'구별안될땐외로움으로그리움을물리친다!'
몸에불이댕겨진글씨들이난로속을뛰어다니다
자신들을없는것으로바꾸며낸소리.
(/'삶의본때'중에서)

"자신들을없는것으로바꾸며낸소리"가모든존재가공들여이룩한삶의결실이라는것.이번시집에서황동규가전하는메시지는그의평생의시작업을일목요연하게압축한다.황동규의고유어"홀로움"이단독자로서의능동적인향유,즉홀로의존재를황홀하고도적막하게느끼는복합적인감정을뜻하듯,탄생과소멸의공통운명을지닌존재들각각은빛나는개별자의가치로빛나고있다.그렇기에"언젠가그칠"눈내리는밤이더라도,시인은언제까지나시를써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