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서효인 시집)

여수 (서효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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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겨우 다스린 역마 기억과 반성으로 씌어진 우리 곁, 거리의 역사시인 서효인의 세번째 시집 『여수』.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백 년 동안의 세계 대전』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이다. 분노를 비틀어 뿜어내며 오늘의 소년소녀들에게 메시지를 투척하던 첫 시집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정치·경제·사회적 폭력의 지도를 그려내던 두번째 시집이 마그마처럼 들끓고 있었다면, 이번 시집은 상온에 가깝다. 서효인이 그려온 시의 궤적으로 미루어보자면, 이 변화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어질 폭력의 세계에 응전하기 위한 대안 모색이자 일종의 시적 성장일 것이다. 끓는점을 높이고 깊이를 더한 『여수』에서 시인은 ‘역사의 공간화’를 시도한다. 하나의 공간을 두고 과거와 현재가, 사적인 기억과 공적인 역사가 겹쳐지면서, 서효인이 스쳐간 어딘가는 객관적 ‘공간’이기를 멈추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여 유일무이한 ‘장소’가 된다.
수상내역
- 2017 대산문학상 수상
저자

서효인

저자시인서효인은1981년목포에서태어나광주에서자랐다.2006년시인세계신인상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소년파르티잔행동지침』,『백년동안의세계대전』『여수』,산문집『이게다야구때문이다』,『잘왔어우리딸』이있다.2011년제30회김수영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여수
불광동
곡성
이태원
이모를찾아서
강릉
부평
남해
양화진
강화
자유로
목포
인천
진도
평택
송정리역
1990년1월1일3
친구를찾아서
서울
구로
북항
나주
안양
남자를찾아서
안성
덕담을찾아서
신촌
대전
서귀포
구미
분당
파편을찾아서
파주
익산
마포
취향을찾아서
마산
장충체육관
효창공원
영광
연희동
학교연못
고기를찾아서
압해도
철원
개성
송정리
올림픽고속도로
지축역
한강철교
정체성을찾아서
진주
압구정
금남로
주차장
기계
진해
바울과나
화정
경기북부
귀향
무안
죄인의사랑
발문|역마의기원?김형중

출판사 서평

겨우다스린역마
―삶과죽음의간격에서
“수평적공간뿐아니라공간의위아래를꿰뚫는수직의시간,공간이품고있는분위기와공기를예민하게캐치하고싶은욕망이있다”(『씨네21』No.1062인터뷰).서효인의시에서공간은시간의체취가담겨있는곳이다.『여수』속63편의시들가운데50편의제목이공간과관련된것인데,크게는서울,목포,여수처럼지역의이름이거나연희동,이태원,금남로같은도시안의구역,자유로와올림픽고속도로처럼지역들을잇는길들,작게는학교연못이나주차장까지를포함한다.
이시집의발문을담당한문학평론가김형중은서효인의세번째시집속에서만나게되는장소들이과거와현재가겹쳐지고사적기억에공적역사가중첩되어새로운의미를갖게된곳들이라고말한다.이를테면자유로위출근길만원버스에서의나와1968년의무장공비김신조가오버랩되고(「자유로」),체육관에서는1970년대의프로레슬링과1980년대의체육관선거,최근의외국뮤지션공연이동시에펼쳐진다(「장충체육관」).성장과가족사,조문,짧은여행,출퇴근과일상의범위를넘지않는여정들이다.“비동시적인것들이동시적으로존재하는특이한장소들,역사가공간화된장소들”,사적기억과공적기억들이누적·교차된서효인의장소들은그러므로여기아닌어딘가로도망치기위한것이아니라,그곳을겹쳐밟았을언젠가의누구에대한물음에서시작된치밀한기록,지리지로읽히곤한다.시간과공간이세로축과가로축이되어만날때,장소는생명을얻는다.그교차지점에서효인의시가위치한다.

나는앉는일에대해오래생각했다.그는대통령의목을따버리기위해빠른속도로능선을타고넘었다.생각보다는결과가중요하다.누군가어젯밤의뒤숭숭한결과를빈자리에토해놓았다.누군가그를목격했지만,그는겨울짐승처럼보였다.나는비칠거리는몸뚱이를손잡이하나에기댄채,토사물을오래노려보아야했다.그는남쪽과서쪽의중간즈음,목표지를정확하게가늠했다.예측보다는결과가중요하다.버스기사가라디오볼륨을높인다.뉴스는중요한소식을아무도모른다는듯이호들갑이다.그는주파수를맞춰동료들의죽음을확인한다.오른편에는얼어버린한강이,왼편에는지저분한도로가누워있다.나는부러웠다.왼쪽가슴팍엔붉은심장이,오른손에는날카로운단도가날을세웠다.그는무서웠다.결과는중력처럼정해져있는것이다.서울로진입하는모든도로가정체라고라디오는전한다.야전지도는서울의서쪽어딘가로그를이끈다.우린늦었고그는목사가되었다.

자유로는광명과자유를주고,자유로는출근과퇴근을주며……
―「자유로」부분

사람이죽는일은거대한일은아니다.우리는잠자코앉거나서서,각자의도착지를생각할것이다.[……]사방이어두운역,전철은대체여기서왜멈추는것일까.지축역지난다.상주의표정은전철에서빈자리를찾는것처럼조급하면서평온했다.사람이죽었지만거대한일은아니다.지축역을묵묵히지나는우리에게는다발로묶인시신도그다지큰일은아닐것이다.[……]지축역에서모두가작은흔들림에몸을맡기고각자의휴대폰을본다.날마다죽는사람은분명히있고,이유를물을경황없이다음역이온다.[……]슬픔을자랑하지않으려흔들리는지축을붙잡은노인과내가노약자석앞에서잠시겹쳐앉았다가,다시일어나제갈길을간다.지축역지난다.별일없었다.
―「지축역」부분

“문학은반성을토대로지속될것이다”
―반성과망각의틈에서
서효인은몇년전출간한에세이의프로필을이렇게꾸렸다.시와문학,“세상을구원할힘이그들에게는없다.그저바라볼뿐이다.세상을오래바라보는일은생각보다힘들다.어쩌면구원보다더어려운일일지도모른다.”“삶과죽음의간격에서,반성과망각의틈에서”(뒤표지글),서효인은싸움꾼이아닌관찰자로서오늘의시를쓴다.
그는말한다.“우리의배는세상에두들겨맞아푸르다”(「친구를찾아서」).“세상은원래부터숨을곳이없게끔만들어졌고,우리는설계자를궁금해할권리가없다”(「안성」).“거대함을증명할수는없지만,거대하다고하니우리는두려워하기로결정했다”(「북항」).언제인지모를처음,“그때부터우리는최대한의보폭으로살아왔고여기에이르렀다”(「이태원」).변함없이“사나운시절”은이어진다.“싸움은시작되었다.끝난적이없다”(「송정리역」).“끝나지않을훈련의나날”(「파편을찾아서」),“죽기직전의상태로오래살것같다는예감”(「강화」)속에서오늘도“눈을뜬다.눈을감으면죽을것같아부릅뜨고지켜온시간이있다”(「익산」).
시절은쉽게호전되지않을것이다.단기전에서장기전으로돌입한지금,솟구치는분노를대체한생활인의우울은반성을만나특별해진다.‘심상지리지’『여수』를닫는시는「죄인의사랑」이다.장소를제목으로삼지않았고,사적기억과공적역사의교차에서슬쩍비껴나있는이시에서‘반성’이란시어는여러차례반복된다.“죄인은반성한다/반성을위해서는기억이필요하”다.
서효인에게반성은방패가아닌창이다.“졸렬과수치가그들자신을반성하지않는것처럼/바람은딴데에서오고/구원은예기치않은순간에오고/절망은끝까지그자신을반성하지않는다”던김수영의시제목이「절망」이었다면서효인은반성으로써어렵게희망을말하고자하는것이아닐까.굴뚝을지나쳐“끝이라생각한곳에서다시바다가나타나고/길이나타나”(「여수」)듯이,한때“반성을모르는굴뚝”이었던그의문학은“반성을토대로지속될것이다”(뒤표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