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으로스스로를때리고배에면도날을긋는예술가
피아노앞에앉아단하나의음도내지않는피아니스트
관객에게모욕을퍼붓거나눈가리개를씌운채희롱하는배우들……
관객과배우,몸과정신,삶과예술의경계를허문
동시대예술의수행적전환과새로운미학의도래
1975년퍼포먼스예술가마리나아브라모비치가선보인「토마스의입술」공연도중에흥미로운사건이일어났다.나체로앉아1킬로그램이넘는꿀과와인을삼키더니자신의배에별모양으로면도날을긋고채찍으로자신의등을때린뒤얼음십자가에...
채찍으로스스로를때리고배에면도날을긋는예술가
피아노앞에앉아단하나의음도내지않는피아니스트
관객에게모욕을퍼붓거나눈가리개를씌운채희롱하는배우들……
관객과배우,몸과정신,삶과예술의경계를허문
동시대예술의수행적전환과새로운미학의도래
1975년퍼포먼스예술가마리나아브라모비치가선보인「토마스의입술」공연도중에흥미로운사건이일어났다.나체로앉아1킬로그램이넘는꿀과와인을삼키더니자신의배에별모양으로면도날을긋고채찍으로자신의등을때린뒤얼음십자가에누운이예술가를관객들이끌어내린것이다.예술가가의도한행위를하고있는데그걸지켜보던관객이개입하고나선,일종의사건이었다.
이제예술가가작품을창조하는주체이고,관객은그것을수동적으로받아들이기만하는객체라는이분법적사고는더이상유지될수없게되었다.다수의공연에서관객은박수치기같은관습적행위만하는것이아니라실제로배우못지않은권리를가지고참여하고있다.오늘날에는기존의가치와규범을뒤흔들고관객이휘말려드는사건을창출하는새로운장르의공연예술이범람하고있으며,그에따라관객과예술가의관계도다변하고있다.이처럼달라진예술환경,즉예술과삶,미학과윤리의경계가허물어지고생산자와수용자,예술작품의구분이불명확해진동시대예술은전통적인미학이론만으로는정확하게설명할수없으며시대착오적으로보이기까지한다.1960년대이후작품개념에서사건개념으로나아간예술의수행적전환을예민하게관찰하고연구하고설명하기위해서는새로운미학이론의등장이불가피했다.그리고그중심에는바로이책『수행성의미학』이자리하고있다.
연극기호학의대가에리카피셔-리히테의대표작
『수행성의미학』은연극학및퍼포먼스이론에서빼놓을수없는책으로,베를린자유대학연극학연구소소장을역임한에리카피셔-리히테의국내첫번역서다.수행성이란‘자기지시적이고현실구성적인행위’로서,저자에따르면수행성의미학은지각주체가지각대상과의역치적경험을통해변화한다는점에주목한다.다시말해서수행성의미학은바로‘새로운현실을구성하게하는변환적힘’에근거하고있다.수행성의미학은예술적현상뿐만아니라,비예술적현상이갖는힘과현실구성력,나아가삶과예술을넘나드는미학적현상과경험도포괄하며,이들을설득력있게설명해준다.저자는현대사회학의창시자인뒤르켐의이론과방주네프의통과의례이론,그리고제의를변환적퍼포먼스로간주하는문화인류학이론을토대로1960년대이후의동시대연극,퍼포먼스아트,문화현상을분석한다.특히요제프보이스,마리나아브라모비치,헤르만니치,크리스버든,막스라인하르트,리처드셰크너등의대표적인공연들을예로들어이책에서제시하는미학이론을좀더쉽게설명해나간다.
과거부터현재까지예술과미학이론의전개과정을개괄하며,다양한문화장르를가로질러탐구하는이책『수행성의미학』은육체성,공간성,소리성,시간성등새로운미학이론의분석틀을실제공연에적용해분석함으로써일반관객에서전문평론가에이르기까지,문화적퍼포먼스를좀더깊이있게이해하고열린눈으로보게하는새로운독법을선사해준다.
지금-여기의공연예술을이해하는데가장탁월한이론서
수행성의미학은연극,오페라,춤,퍼포먼스아트와같은다양한표현예술뿐아니라제의,축제,스포츠경기등모든문화적공연장르를아우른다.본질적으로이러한공연장르는그참여자들에게경계에존재하는경험,‘이도저도아닌’문지방경험을하게하며변환의체험을유도한다.이와관련된경향과흐름을수행적전환이라할수있으며,이는예술을생산하고수용하는조건이결정적으로달라졌음을의미한다.이제허구세계의재현이아니라행위자와관객사이의특별한관계성립이관건이되었다.즉텍스트가어떻게무대에옮겨졌고어떤수단을이용했는가가핵심이아니라,배우와관객의관계를근본적으로새롭게규정하고역할바꾸기의가능성을여는‘사건’이공연의핵심으로여겨진다.이러한현상을설명하기위해저자피셔-리히테는연극공연을중심으로이론을정립해나간다.행위자와관객의행위는서로에게어떠한방식으로영향을끼치는가?공연은미학적과정인가,사회적과정인가?배우의몸이지닌영향력과작품의의미사이에는어떤관계가있는가?공연에서물질성은어떻게수행적으로드러나며어떤위상을지니는가?공연의과정과결말이고정된것이아니라매번다르게나타나는것이라면,그것은어떠한상황과조건에따르는것인가?이책은이러한질문들을순차적으로던져가며독자들이‘수행성의미학’이론에한걸음씩다가서도록이끈다.
1960년대이후수행적전환은우연성을공연의조건이자가능성으로받아들였을뿐아니라기꺼이활용하도록만들었다.이에따라오늘날연출전략은자동형성적피드백고리에주목하며행위자와관객의역할바꾸기,공동체형성,상호간의접촉을지향한다.저자는슐레프의합창연극이나카스토르프의「기회2000」을통해공연의‘공동체형성’에대해탐구하고,보이스의「켈트족+~~~」을통해친밀성과공공성사이에위치한‘접촉’의역할을살펴보며,전자기술매체의발달에직면해관객의지각반응을실험한카스토르프의「백치」를통해공연의라이브성에관해고찰해보는등풍성한사례를통해좀더친절하고명료하게수행성의미학이론을전개해나간다.무엇보다예술의발전에지대한영향을끼친대표적공연들,다양한실험과놀라운상상력이더해진공연들에대한소개가이책을한층더흥미롭게만든다.
결론적으로이책『수행성의미학』을통해현대예술의전개와발전상을한눈에개괄하고,미학적경험을새로운시각에서바라보며,무엇보다‘퍼포먼스’가촉발하는‘변환’의경험에주목할수있을것이다.예술과삶의경계가어느때보다허물어져있는오늘날,이책은전문평론가나이론가,예술가,연출가만이읽어야할책이아니라,일반독자들에게도많은깨우침과흥미를주는책으로서톡톡히제역할을해낼것이다.
[책속으로추가]
내가만약행위자의신체를그자체로특별한몸과살로지각하면,가령니치의썩은양고기퍼포먼스에서행위자와관객에게뿌렸던피를그특유의붉은색으로보고,거기서이상한달콤함을맛보거나내장특유의질김과꿈틀거림을발밑으로느낀다면,나는이모든현상을어떤것그자체로지각하는것이다.여기서관건은일반적자극이아니라,어떤것을그자체로지각하느냐이다.어떤사물은존재하는그대로,즉현상적으로나타나는그대로를의미한다.[……]자기지시성속에서물질성,기표,기의는하나가된다.[……]반복해서말하자면,사물의물질성을지각하는주체는그물질성의의미를받아들이는것이다.다시말해그현상적존재를수용하는것이다.어떤것으로지각된대상이의미하는것은지각된어떤것그자체다.(제5장「의미의창발」,313쪽)
우리의문화는젊음,날씬함,탄탄한근육에대한광적인강박관념이지배한다.이에절대적으로부합하지않는몸은비정상으로낙인찍히고,공적세계에서제한을받는다.질병과죽음은우리사회에서금기이거나매우싫어하는대상으로여겨지고,그러한육체는혐오,구역질,메스꺼움,수치를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