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 괴물 (임철우 소설집)

연대기, 괴물 (임철우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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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안타깝게 죽어간 존재들을 살려내고 위로하는 치열한 윤리적 작업!
임철우의 다섯 번째 소설집 『연대기, 괴물』. 그동안 역사의 환부를 집요하게 추적해가면서도 절제된 정서와 문학적 깊이를 유지해왔던 저자는 이번 소설집에서 비극을 응시하고 그 연원을 좇아 기어코 악몽 같은 심연을 마주하고야 마는 일곱 편의 소설을 모아 엮었다. 이번 소설집에서 저자는 오래 천착해온 기억과 죽음에 관한 사유를 고스란히 녹여냈다. 기억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죽은 자와 아직 살아 있는 자, 그들의 이름 없는 숱한 시간들, 사랑과 슬픔과 고통의 시간들을 기억하고자 한다. 전작들에게 마련했던 마술적이고 신화적인 공간, 환상과 위로의 여지를 등장시키지 않는 대신 반성하고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지 못한 채 격변해온 사회,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조그만 숨구멍조차 마련할 수 없게 된 현실을 밀도 있게 채워 넣었다.
저자

임철우

저자임철우는1954년전남완도에서태어났다.1981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개도둑」이당선되어문단에나왔으며,소설집『아버지의땅』『그리운남쪽』『달빛밟기』『황천기담』,장편소설『붉은산,흰새』『그섬에가고싶다』『등대』『봄날』『백년여관』『이별하는골짜기』등을펴냈다.한국일보창작문학상,이상문학상,단재상,요산문학상,대산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흔적
연대기,괴물
세상의모든저녁
간이역
이야기집
남생이
물위의생

해설임철우,사도바울_김형중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그울음은목숨을가진지상의모든것들에게서흘러나오는소리였다”

역사의악몽을되짚어살아내는생생한기억체험
더이상해원도위안도없을고통의연대기

1981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개도둑」으로등단한이래지난36년간이상문학상,단재상,요산문학상,대산문학상등을수상하며활발하게활동해온작가임철우의다섯번째소설집『연대기,괴물』이출간되었다.“사건들의기록자”“기억의발굴자”(문학평론가김형중)이자“탁월한서정시인”(문학평론가김현)이라는평가가공존하는그의소설이력은역사의환부를집요하게추적해가면서도절제된정서와문학적깊이를유지해온그의오랜작풍으로설명할수있다.이번소설집또한비극을응시하고그연원을좇아기어코악몽같은심연을마주하고야마는일곱편의소설이묶였다.하지만전작들인『백년여관』『이별하는골짜기』『황천기담』등에서임철우가마련했던마술적이고신화적인공간,환상과위로의여지는전혀등장하지않는다.그자리에작가는반성하고고민할시간이주어지지못한채격변해온사회,그리고지금에이르러조그만숨구멍조차마련할수없게된현실을더밀도있게채워넣는다.제목처럼연속된수난의역사를생의연대기로기입해나가며,그고비마다들끓었던폭력들을포착해낸다.대체적으로요즈음단편들보다좀더긴호흡으로씌어진이소설들은일견쓸쓸하고어두운이야기들로읽힐수도있지만,임철우가오래천착해온‘기억과죽음에관한사유’가고스란히녹아말로다할수없는감정,언어를넘어서는공감의장으로독자들을데려간다.

괴물의시대,너와나의고통을잇는연대기

괴물과처음맞닥뜨렸던날을그는생생히기억하고있었다.일곱살,아니여덟살이었던가.아마여름방학이었을것이다.머리위로땡볕이폭포처럼쏟아지는한낮.외가의툇마루에걸터앉아뒤란의작은대숲을그는멍하니건너다보고있었다.집안은물밑처럼조용했다.여느때처럼그는혼자였다.얼음조각을어금니에물고있는것같은그지독한외로움에그는이미익숙했다.그에겐부모에대한기억이전무했다.세살때헤어졌다는생모는얼굴윤곽조차지워진채아슴푸레한체취로만남았고,생부는아예그존재자체가비밀에묻혀있었다.덥고바람한점없는날씨였다.뒤란대나무숲은미동도없이정적에싸여있었다.피묻은쇠갈고리를쥔사내.바다위를떠다니는수많은시체들.수면위에해파리처럼풀어져너울거리는여자들의치렁한머리채……(「연대기,괴물」,pp.53~54)

어느한순간한걸음만돌아서면커다란구멍이랄까함정이발밑에무수히깔려있다는걸알게됩니다.정말이지어느사이에괴물로변해버린이끔찍한세상에서,어떻게하면우리가괴물이아닌인간의모습을하고살아갈수있을지,이런일을계기로다시한번주변을둘러보고사회든개인이든너나없이진지한반성을해야한다고믿습니다.
(임철우?류보선대담,「기담이라는장르의발명과모계사회라는역성혁명」,『문학동네』2014년여름호)

그간임철우소설은해방과한국전쟁을전후로좌우이데올로기갈등에서비롯된양민학살,독재군부정권을정당화하기위한계엄군의폭력진압등한국역사의가장처참한사건들을소설화해왔다.전쟁을직접경험했던임철우이전세대에서이러한비극을‘외부적요인으로인해별안간들이닥친일’,혹은‘화해하고극복할상처’로종종상정해왔던것과는다르게임철우는광기에사로잡혔던사람들의면면,그리고이들로인해그고통스런기억을되새김질하며지옥같은삶을살고있는사람들의생애에집요하게파고들어왔다.표제작「연대기,괴물」은보도연맹사건부터베트남전쟁,세월호사건을잇는비극의연대기,이연속된고통을괴물의환상으로겪어내는한남자에대한이야기를다룬다.긴세월무연고자로살아온,고엽제후유증으로물집에뒤덮인채끝내환각을쫓아지하철로돌진해생을마감해버리는그는한세대의상징적초상처럼읽히기도한다.제정신으로버텨내기어려운시대,너나없이함정으로빠져들고광기에몸을맡기게되는순간,가해와피해,죽음과살인이혼재된긴흐름을작가는서늘하리만치정직하게재현해낸다.

죽음이란벽앞에서절실하게살려내는,당신이라는기억

거기시간의덩어리하나,세월의불룩한자루하나가홀로방치된채소리없이녹아내리고있다.그누추한자루속에담긴한생애의모든시간,추억,풍경들그리고이야기들도함께지워지고있다.그렇다.아무도모르는사이,작고이름없는세계하나가지상에서영원히사라진것이다.(「세상의모든저녁」,p.152)

그런데,막상떠날준비를해야한다는사실을깨닫는순간갑자기무서워졌어요.문득주위를돌아보니,이넓은세상에내겐아무도없는거예요.부모,형제,친구조차도요.아무도나를모른다면,난존재하지않는거나마찬가지였어요.이지상에잠시왔다간흔적조차없이사라져야한다고생각하니,견딜수없도록외롭고무서웠어요……(「간이역」,p.202)

이소설집을관류하는주제는무엇보다도기억과죽음이다.“당신이말하는해묵은역사니지나간사건따위를나는얘기하려는게아니다.난단지사람을,사람들을기억하고싶을뿐이다.죽은자와아직살아있는자.그들의이름없는숱한시간들을,사랑과슬픔과고통의순간들을나는잊지못하기때문이다”(「작가후기」,『백년여관』,한겨레출판,2004)라고말한바있듯임철우의소설에서죽은자의시간은기억하는사람들을통해현재형이된다.지상에홀로방치될육신,아무에게도기억되지못한채사라질운명들의애처로움에주목하는그의안타까운시선이특별한의미를갖는이유다.이번「작가의말」에서인용된“기억한다는것은일종의윤리적행위이며,그안에자체만의윤리적가치를안고있다.기억은이미죽은이들과우리가공유할수있는가슴시리고도유일한관계이다”라는수전손택의말에서발견할수있듯임철우에게기억은,멀리서불타고있는존재들에게손내밀고함께통증을살아내는,그럼으로써안타깝게죽어간존재들을살려내고위로하는그의치열한윤리적작업그자체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