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별의 지옥

어느 별의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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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여성 시인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이 거대 담론-남성적 세계를 향한 비명에 가까운 시쓰기를 지속해온 김혜순의 세번째 시집 『어느 별의 지옥』. 맑은 날이 하루도 없던 1980년대 시인은 그 나날을 ‘어느 별의 지옥’이라고 부른다. 권위적인 언어와 폭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잔뜩 겁먹은 짐승처럼 하고 싶은 말을 삼켜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불온서적을 번역한 번역가의 이름을 대라며 뺨을 때리던 경찰들,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을 쏟아내면서 겨우 버텨낸 그곳, 그 지옥에 대한 시들로 이번 시집은 빼곡하다.
저자

김혜순

저자시인김혜순은1979년계간『문학과지성』을통해시단에나왔다.시집으로『또다른별에서』『아버지가세운허수아비』『어느별의지옥』『우리들의陰畵』『나의우파니샤드,서울』『불쌍한사랑기계』달력공장공장장님보세요』『한잔의붉은거울』『당신의첫』『슬픔치약거울크림』『피어라돼지』『죽음의자서전』,시론집으로『여성이글을쓴다는것은』,산문집으로『않아는이렇게말했다』등이있다.김수영문학상,현대시작품상,소월시문학상,미당문학상,대산문학상등을수상했다.현재서울예술대학문예창작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목차
1부
그곳1/그곳2/그곳3/그곳4/그곳5/그곳6/동구밖의민주주의/불타오르면서얼어붙는나라/모월모일미상가/그망자의눈물/눈동자/비상/부엉새/어느날의이명/한사코시(詩)가되지않는꽃/소금/큰눈/혼자가버린녀석/두눈에안대를하고있어도보여/먹이의역사/지도/없음으로있음보다/역사(逆史)
2부
죽은줄도모르고/전세계보다무거운시체/전염병자들아2/산으로가야지/둥근벽앞에서/추수/날마다맑은유리처럼떠올라/새들이모두가버린다음/희극적인복화술사/먹고있는반고흐를먹고있는태양부인
3부
마녀승천/껍질의삶/엄마의식사준비/참아주세요/문/눈오는날의갑갑함/유리/어느별의지옥
4부
잠시후의나를위하여/행진/큰돌/연습/앞에앉은사람/고통에찬매스게임/제삿밥먹으러온망자들이보이니/뒤로걷는사람/하늘아래새로운것없다더니/가는길/검은새/큰눈이다가온다/나를싣고흘러만가는조그만땅/눈/오후만있던일요일
해설|그곳,그날,그리고지금-여기·오연경
기획의말

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멈춘적이없던‘어느별의지옥’
매순간새롭게생성되는김혜순의언어적지평
여성시인으로서의글쓰기에대한고민을바탕으로이거대담론-남성적세계를향한비명에가까운시쓰기를지속해온김혜순의세번째시집『어느별의지옥』이2017년문학과지성시인선R시리즈로새롭게출간됐다.이시집은1988년출판사청하와1997년문학동네를거쳐세번째발간되었다.
맑은날이하루도없던1980년대시인은그나날을‘어느별의지옥’이라고부른다.권위적인언어와폭력적인분위기속에서잔뜩겁먹은짐승처...
멈춘적이없던‘어느별의지옥’
매순간새롭게생성되는김혜순의언어적지평
여성시인으로서의글쓰기에대한고민을바탕으로이거대담론-남성적세계를향한비명에가까운시쓰기를지속해온김혜순의세번째시집『어느별의지옥』이2017년문학과지성시인선R시리즈로새롭게출간됐다.이시집은1988년출판사청하와1997년문학동네를거쳐세번째발간되었다.
맑은날이하루도없던1980년대시인은그나날을‘어느별의지옥’이라고부른다.권위적인언어와폭력적인분위기속에서잔뜩겁먹은짐승처럼하고싶은말을삼켜야만했던시절이있었다.불온서적을번역한번역가의이름을대라며뺨을때리던경찰들,“뺨한대에시한편씩”을쏟아내면서겨우버텨낸그곳,그지옥에대한시들로이번시집은빼곡하다.어떤곳도내영토가될수없던시대,결코땅에발을붙이지못한채허공을맴돌던타자로서의기록이다.타자의언어는주체의공간,주체의언어로는씌어질수없는것이다.때문에김혜순의언어는필연적으로미지의영토,새로운지평으로나아가야만비로소시가될수있었다.1988년에씌어진김혜순의시들이지금까지읽힐수있는데에는,비단지금의한국사회가또다른지옥이어서만이아니라,그의언어가늘미지의언어이자1980년대에는없었던새로운영토에서끌어온것이기때문이다.전에없던지평에서씌어진그의언어는지금-여기에서생생한언어로다시읽힐것이다.
현재진행중인그곳-그날의고통
타자의몸으로써내려간미지의언어
이시집은총여섯편의『그곳』연작으로시작된다.“끝없이에피소드들이한두릅썩은조기처럼/엮어져대못에걸리는”곳,아버지가“말씀의채찍”을휘두르는곳,나를“발가벗기고”아버지의채찍에매맞는곳,고문과수치,고통이버무려진자리가“그곳”이다.이시집의시들이씌어질당시가“엄혹한시대를통과중”이던1980년대의한국이었다는점을염두에두고보았을때시인을둘러싼폭력적이고억압적인환경은충분히상상가능하다.
시인은그날,몸에채찍이날아들고,“학대받는새끼짐승”처럼웅크린채로국가의폭력에,일상의도저한억압에몸을낮추고또낮추었던그날의말들은결코‘시’가되지않는다고말한다.‘너무차가워서’그리고‘너무뜨거워서’그날그시간속의말은“시가아니다”.이는곧,그날의언어로,그곳의질서로는시를말할수없다는시인의자각이기도하다.“새옷”을입는것이아니라“다만헌옷”을즉,기존의체계를벗는데에서시의가능성은시작된다.세계의틈새,허공에떠도는타자의언어로그날-그곳을말할때,때론비명으로,때론알수없는기호들로미지의언어를뱉을때비로소시는씌어진다.
다시한번정리해보자.1980년대시인을옭아매던시공간은어떤곳인가.그가그시대의,그공간의언어로는도저히말할수없던,시적언어로풀어낼수없던그날,그곳은어떤곳인가.이시집의해설을쓴오연경(문학평론가)은시적화자를둘러싼세계속아버지라는상징적존재를“수세기전부터이무대를장악해온역사와법,권력과체제,문명과남성의얼굴이며,이성과질서의이름으로명령하는자,억압하는자,처단하는자”라고서술한다.이는곧정해진질서와언어를강요하고이를따르도록하기위해수많은사람들을짓밟는,사실상현재진행형인지금-여기의모습이기도하다.즉,김혜순이끊임없이시로풀어내고자하는그곳,그날의이야기는1980년대를넘어우리가시인의시를읽는현재이시점,이공간까지품게되는것이다.
죽어야살수있는여성의언어
2017년,다시도래한여성으로서의시쓰기
“아버지의폭탄이터진뒤라고한다”로시작해서“어머니가눈물을삼키며식사를준비하고계셨다”(『엄마의식사준비』)로끝나는시가있다.그사이의시구를다읽지않아도,우리는알수있다.거대한권위앞에서눈물도쏟아내지못하고밥을차리는여성의모습을,그폐허가된마음을.부유하는몸,이세계의질서와끊임없이불화하는김혜순의시는필연적으로‘여성으로서의몸’을중심으로한다.세상의절반을차지하지만한편사회적소수이자,타자인‘여성’으로서의자기인식과‘여성시인’으로서의삶에대해꾸준히자신의언어로말해온시인에게있어‘여성시’‘여성으로서의시적화자’는결코빼놓을수없는주제다.
여성의몸은“가슴에매달린두개의봉분”으로바로여기의“무덤”이다.오랜시간남성들의언어에몰매맞아죽은몸들,세계의질서에목매인채죽고또죽어영원히부유하는몸.피흘리며무덤에갇혀버린몸이야말로여성시인으로서의김혜순이시를시작하는태초의장소이다.
죽어야지만죽었을때야비로소“일생동안먹었던밥들이”“일생동안뱉었던말들이”똥들이,물들이몸속으로쳐들어온다(『전세계보다무거운시체』).사회에서부여한여성성을묻어야(죽여야)전세계의이야기들이다시생성되고,새롭게부활하며새로운언어로발화되는것이다.이과정을통해한번도세상의주체인적없던타자의몸,여성으로서의시인은세계로다시흘러들어간다.김혜순의시속여성화자는“나는나란말이야!/만지지말란말이야!”(『잠시후의나를위하여』)라며세계의불합리를몸으로기꺼이받아내며,그에저항한다.또는여성에게로향하는욕지거리에도“늘듣고살았다”“돌아서면잊힐말”(『하늘아래새로운것없다더니』)이라며주체의언어적폭력을무력화시키기도한다.이것은“타자화·대상화되어왔던여성적목소리를주체의자리로돌려놓는일이자타자화·대상화하는데능한언어로하여금내어주고섞이고변용되고생성되는몸그자체가되도록만드는일”(오연경)이다.
여성으로서의자신을인식하고,주체의언어를제것으로만들거나되려타자화시키는김혜순의언어는단순히타자의고통을호소하는데에서그치지않고자신의자리를만들어낸다는점에서매우소중하다.더욱이꾸준히페미니즘이슈가떠오르고있는이시점에서김혜순의시적언어는여전히당대적이고,한편미래적이다.그의말은지금-여기로계속도착하고있다.우리는매번새롭게도래하는김혜순의언어를,그의시를매순간다시읽게될것이다.
역동적상상력과무한한체험의반복Repetition,
몸잃은거룩한말들의부활Resurrection
문학과지성시인선의일련번호가운데새로운기호‘R’이생겨났다.한국시의수준과다양성을동시에측량해한국시의박물관이되어온문지시인선이지만이완전하고자하는노력밖에서일어나는빗발치는망망한말의유랑이있었음을아쉬워할수밖에없었다.하지만이러한거룩한유랑들이출판환경과개인의사정으로독자들에게로가는통로가차단당하는사정이있어,문학과지성시인선은이에내부에작은여백을열고이독립행성들을모시고자했다.‘문학과지성시인선R’.문지시인선번호어깨근처에‘리본’처럼달린R은직접적으로는복간reissue을뜻하며이반복r?p?tition이곧새로태어나는일이기에부활resurrection의뜻을함축한다.문학과지성시인선의일련번호속에서다문다문R을만날때마다그안에숨어있는낱낱의꽃잎이신기한언어의화성으로울리는광경을목격하기를기대한다.그때쯤이면되살아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