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탄생하라 (이원 시집)

사랑은 탄생하라 (이원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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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원의 시집 『사랑은 탄생하라』. 이 시집은 이원의 시 작품을 엮은 책이다.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을 시인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저자

이원

저자이원은1968년경기도화성에서태어나서울에서성장했다.서울예술대학교문예창작과와동국대학교문예대학원문예창작학과를졸업했고,1992년계간『세계의문학』가을호에「시간과비닐봉지」외3편을발표하면서등단했다.시집으로『그들이지구를지배했을때』『야후!의강물에천개의달이뜬다』『세상에서가장가벼운오토바이』『불가능한종이의역사』가있다.현대시학작품상,현대시작품상,시작작품상,시로여는세상작품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애플스토어
모두의밖
모자는왜
지구로못돌아와도좋다
애플스토어
하루
의자에어울리는사람이되기위해
우리는지구에서고독하다
뜻밖의지구
애플스토어
거위를따라갔던밤
모두고양이로소이다
15분동안눈보라
당일오픈

밤낮
검은모래
애플스토어
봄셔츠
밤낮
검은그림
우리는진열되었다
플라밍고
플라밍고
이쪽이거나저쪽
죽은사람좀불러줄래요?
뛰는심장
기둥뒤에소년이서있었다
구름드로잉
귀드로잉

쇼룸
빛을펼쳐라
어쩌면버렸다
당신이라니까
부리가생긴자화상
실내복
호주머니칼
후렴
쇼룸

악수합시다

큐브
4월의기도
4월의기도
삼백
검은홍합
사월四月사월斜月사월死月
사월四月사월斜月사월死月
사월四月사월斜月사월死月
아이에게
목소리들

큐브
한편의생이끝날때마다
이것은절망의노래
밤낮없이
작고낮은테이블
방문객
천사의날개
이것은사랑의노래
사람은탄생하라

밤낮없이
오늘은천사들의마지막날
오늘은천사들의마지막날
애플스토어
엄마가너무많다
엄마와내가아직이세상에오지않았을때
이것은희망의노래

해설/희망을꿈꾸는천진한행진·박상수

출판사 서평

천진함의힘으로
이슬픔의경계에서더멀리가보기

시인이원은1992년『세계의문학』으로등단한이래,그만의유니크한언어와이미지로현대문명의비인간화된풍경,그곳에서낡아가는삶과실존적방식을날카롭게해부하며한국현대시의전위의한축을담당해왔다.‘전자사막’이라는적실한표상을길어냈을뿐만아니라구원과고통,희망과절망이교차하는이세계를부유하는인간의정체성에대해치열한사유와질문을던져온그가다섯번째시집『사랑은탄생하라』(문학과지성사,2017)를출간했다.직전의시집『불가능한종이의역사』(2012)이후5년만이다.
‘애플스토어-밤낮-쇼룸-큐브-밤낮없이’라는제목으로이어지는다섯개장에시61편을묶은이번시집에서이원은,삶에내재한죽음과고독의심연을외면없이직시하되,미완의역동적인에너지로충만한아이들의천진함에기대어현실의조건과물질적속성의한계를뛰어넘는유연한상상과자립적이미지를그려내보인다.더욱이현실속의아이들이바다에서돌아오지못했다는지극한슬픔과절망,고독으로침잠하게되는그순간에아이들의순결함과천진함을그곁에놓아두는(‘아이-단추-콩알’)자신만의시적·언어적방식으로깊게애도하고,이슬픔의경계를지나새로운꿈으로함께나아갈수있다는희망,다시새롭게태어나는사랑의가능성을노래하고있다.

언덕을따라걸었어요언덕은없는데언덕을걸었어요나타날지도모르잖아요
[……]
노래불러요음이생겨요오른손을잡히면왼손을다른이에게내밀어요행렬이돼요

목소리없이노래불러요허공으로입술을만들어요언덕을올라요언덕은없어요

주머니에손을넣어요새의발이가득해요발꿈치를들어요첫눈이내려올자리를만들어요
-「이것은사랑의노래」부분

“맞지않는모자가됩시다”
-잠재한언어와이미지의역동성
이번시집의곳곳에서시적자아는‘목적없이걷기’를통해‘나’와‘대상’을벗어나는순간의사유를반복적으로시도한다.시인은일상에서일상너머로,상식을뛰어넘는사선의상상력으로산책중에마주하는대상에서다른존재로의변화를감지해내고시각적이고도신체적인이미지를다채롭게끌어낸다.늘“딛고선자리에서더멀리나아가려는이원시의생래적에너지”(박상수)가바로이것이다.
움직임을멈추지않는시적자아의발걸음과집요한시선으로인해이원의시들은자주서사의축적대신뜻밖의사건들이잇달아출연하고각각독립적인사태로존재하는형상을띠기도한다.익숙한현실감을안겨주는일상의장소와사물들사이를얼핏무연하게오가는것같지만,간명한언어와극단으로밀어붙인상상력은사물의속성과본질을예리하게드러내고,그앙상한현실을극복하려는의지를숨기지않으며“간절함너머까지”“본적없는아름다움”을찾아다시나아간다.그러기위해시적자아는예측불허의엉뚱함과천진함으로똘똘뭉친아이의목소리와자연스럽게함께한다.

천개가넘는전화번호를저장한휴대폰을옆에두고
벽과나란히잠드는우리는
지구에서고독하다

꼭껴안을수록뼈가걸리는당신을가진
우리는지구에서고독하다
[……]
막힌문을향해뛰어가는비상구속초록인간과함께
우리는지구에서고독하다

시체를뜯어먹는독수리들과함께
높은곳의바람과함께
다른말을하나로알아듣는이상한경계와함께
우리는고독하다

흰변기가점령한지구에서우리는고독하다

변기의무릎을갖게된우리는
[……]
오로지긴귀가머리위로솟아있다
-「우리는지구에서고독하다」부분

어둠이사과속에들어가는것을허용했다
사과속에씨앗이들어가는것을허용했다
열매와돌을같은모양으로만들었다
반숙완숙이공존했다
[……]
엄지에게전권을주었다
표지판을세우고길을잃는놀이를멈추지않았다
냉장고안에서벌어지는일을알고싶어졌다
햄버거는내부구조를바꾸지않았다
돼지와닭들을생매장했다
[……]
발가락이향하는곳을여전히앞이라고불렀다
원스톱쇼핑몰귀신출입을금지시켰다
희망을허용하고있었다
-「뜻밖의지구」부분

“가장끝에서부터걸어가보자다시”
-잃어버린얼굴,잃어버린말에가닿기위한감각의집중
유연한상상력을타고땅을디뎌앞으로나아가는산책과더불어이번시집에서두드러지는또하나의풍경과이미지가바로허공에부려지는‘사과-둥그런흔적들’이다.실제로「애플스토어」라는동명의제목을가진각기다른시네편이실려있기도하다(“의자는허공을단련시키는일을멈추지않는다”“계단은허공의고독으로만들어지는것이라고”“한밤중허공의정중앙에떠있다”).
‘어둠과빛,밤과낮이회전하듯뒤섞이고,신맛과단맛이뒤엉키고깎이고구르다가어느모퉁이에서돌연출현할지모를사과,무릎을둥글게깎아내는데몰두하는인간,비상을꿈꾸며눈알을떼굴떼굴굴리는거위’의이미지들은저마다부박한현실원칙의한계를넘어미지의가능성,언제어느때도래할지모를희망을놓지않으려는시적자아의의지가투영된감각의집체들이다.중요한것은여전히경계너머,더멀리닿기위해멈추지않고움직인다는사실이다.

어디에도없는골목에서아가들이눈을뜨는소리

횡단보도마다달빛이삶을끌고가는소리

모퉁이를돌면어떻게사과가나타날수있습니까

모퉁이를돌아나타난사과는무엇입니까
-「당일오픈」부분

동그란눈알과동그란입술이
나란히벌어질때까지
작은것속에서큰것이튀어나올때까지
뺨이번질때까지
휘파람이될때까지
숲에바람이새지않을때까지
구역을잃어버릴때까지
-「당신이라니까」부분

“우리의심장을풀어,다시일렁이기시작하는것”
-슬프고도천진한기도로애도의사회적확장을꿈꾸기
지금껏‘지금여기서더멀리가보려는마음의행진’으로아이들의순결함과천진함을호명해온이원의시들은시집의중반부를넘어서며더는상징이아닌현실속의아이들,그아이들이바다에서돌아오지못한슬픔과고통을정면으로안는다.“오도가도못하는허기가몇년째목구멍에걸려”(「뛰는심장」)“울음을터뜨리기직전의얼굴”(「기둥뒤에소년이서있었다」)은점차“갖고있던표정”을모두써버려더는“꺼낼수있는표정이없다”(「한편의생이끝날때마다」).
시집곳곳에서“느닷없이쏟아지는눈물”과“목구멍의불편함”을동시에담는이원만의언어적방식으로,애도의사회적확장을불러오는데전심을다하는시적목소리들과마주하게된다.슬픔의공동화에서‘떠난아이들의순결함을다시호명하는행위로서의시쓰기를경계까지밀고나가며,그곁에자신의믿음인아이들의천진함을다시놓아보는방식으로의애도’(박상수)가가능해지는대목이다.

인사한다.이상한새소리를내서.
인사한다.꽃잎과꽃잎사이의그늘에숨어.
인사한다.작은나무아래그림자가되어.
인사한다.세상에서아무것도배우지않은얼굴이되어
인사한다.없는모자를벗어두손에들고.
[……]
인사한다.똑딱.
인사한다.단추.
인사한다.심장.
인사한다.멈춤.

없는모자를벗어두손에들고.

인사한다.뚝뚝떨어지는눈물로.
인사한다.고개를들지못하고.
인사한다.얼굴이쏟아지도록.
인사한다.바람이부드럽게눈감겨주기를.
인사한다.꼭쥐고있던주먹은내가가져온다.
[……]
인사한다.데리고왔다.너의목소리.간결한길.
인사한다.거역할수없는순진함에.
인사한다.장미가피어날시간으로.
인사한다.목덜미에.
인사한다.풀밭에서.
인사한다.데리고왔다.둥근풀밭.
인사한다.침묵을조금옮겨놓으며.
인사한다.봄을조금옮겨놓으며.

인사한다.

긴행렬.
-「아이에게」부분

“인사하는행동곁에바둑돌처럼놓이는슬픔의이작은조약돌들.‘아이’라는단어와‘단추’라는단어는,입술을깨물며언어를가만히내려놓는시적스타일과내용과형식의면에서적절하게조응한다.[……]고통앞에서우리는깊은무능감에사로잡히지만그순간오히려”거역할수없는순진함”에자신을내어주고,그순진함의힘으로분명불가능할것을알고있지만그불가능마저밤과낮을뒤섞듯사과안에서회전시킨다면,불현듯침묵이옮겨지고,봄이옮겨질수있으리라는기대를하게되는것이다.”(박상수)
그순간,타인의고통에감응하는우리의마주잡은두손을간절한기도로,손발이허락되지않아얼굴을일그러뜨리며울다가도무릎이있던자리를조금더구부려보는안간힘을절망에굽히지않는의지로새겨도좋을것이다.해서우리는다시한번“사랑이라는저오래되고도포기할수없는단어”(박상수)를믿어보려한다.

작고낮은테이블이사이에있어우리는
비어있는둥그런접시를들어올렸지요

네개의손이하나의접시를잡을때

어떤기원을부르기위해서는
우리의얼굴을지나
허공의입구까지빈접시를들어올려야했나요
접시는소용돌이를언제멈출수있을까요

볼로접혀들어가는얼굴

깨져버렸어요
다리가없는사람이되었어요
우리는무릎이있던자리를조금씩조금씩구부려보았어요
-「작고낮은테이블」부분

사람은절망하라

사람은탄생하라
사랑은탄생하라

우리의심장을풀어다시
우리의심장
모두다른박동이모여
하나의심장
모두의숨으로만드는
단하나의심장

우리의심장을풀면
심장뿐인새
-「사람은탄생하라」부분

셔츠를입은사람과셔츠를입은사람을보고있는사람.

이쁘다.마주서서단추를하나하나채워줄때.
잘다녀와.어깨를쓸어줄때.알맞은길이의셔츠소매를괜히걷었다다시내릴때.
재미있는시간보내고와.채워진단추에시선을주며시간을세어볼때.손아니고소매깃을살짝잡아볼때.
그러고는.금방와.구겨진곳없는등을쓰다듬으며따라갈때.

남겨지는적막.발소리.슥슥.슥슥.셔츠의팔안쪽과옆구리스치는소리.

조금만더보이지않는셔츠를떠올리자.보이지않는셔츠는구하고싶은셔츠.마음이원하는형상.한땀한땀바느질로간절함너머까지닿아보자.하나의감각기관이박탈당하면고도의집중력이생긴다.이것은절박한생존이다.한이야기에서,눈먼사람은수술실에들어갔고눈먼동료들은수술실앞까지일렬로손을잡고걸어간다.손은하나가아니어서오른손을잡히면왼손을다른이에게내밀었다.본적없는,볼수없는이들은침묵한다.전력을다해.생각의형상에닿기위해.

셔츠가나타날때까지셔츠를떠올리는일.셔츠를만지는일.셔츠가생겨날때까지셔츠를생각하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