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나전복으로도설명되지않는
3차원세상에언뜻언뜻드러나는다른차원의시
20여년이지나도여전히새롭고놀라운‘여주인공,마라나’
1975년문학과지성사창립과함께시작하여지난40년동안독자들의사랑과문인들의아낌속에한국문학사상가장강력한고유명사로자리매김한〈문학과지성시인선〉이2012년겨울부터그안에방하나를새로내어〈시인선R〉을펴내기시작했다.20세기후반기에출간되었다가여러사정으로절판된시집들가운데,지금-여기에서새로운시의미적갱신과우리의새로운정신적지평을여는데기여하는시들을찾아소개하는시리즈이다.이성복,황지우,오규원,김혜순,이수명들의시적요체를가장그들다운시적틀에담고있는시집들부터황병승,김경주,이민하,신영배들의신선하고독특한매력을아낌없이담고있는첫시집들까지〈시인선R〉의목록은한권한권이쌓일때마다,단순한‘복간’이나‘반복’에그치지않고중요하고개성넘치는또하나의현대시사로거듭나고있다.이시리즈의열세번째시집으로박상순의『마라나,포르노만화의여주인공』(문학과지성시인선R13,2017)을소개한다.
“예술은하나의세계를대체하는끊임없는생성의놀이”
1991년『작가세계』로데뷔해올해로등단29년차인박상순은첫시집『6은나무,7은돌고래』(1993)를낸이후『마라나,포르노만화의여주인공』(1996),『LoveAdagio』(2004)를내고오랜시간동안시집을엮지않다가13년만에네번째시집『슬픈감자200그램』(2017)을낸,과작이지만자신의시세계를확고히구축한중견시인이다.
문지시인선R로다시태어난『마라나,포르노만화의여주인공』은1996년세계사에서발행된두번째시집으로,첫시집『6은나무,7은돌고래』이1990년대시단에가한충격을이어가는첫시집의후속편이었다.더욱이당시는물론지금도관행처럼되어있는시집해설을싣지않은파격을보여준시집이었다.해설을배제한시집구성은,이후박상순시집의특징이되었다.
22년이지난지금에도여전히새롭고신선한시편들로가득한『마라나,포르노만화의여주인공』은그어떤시집보다문지시인선R에부합하는시집이다.1부는1996년세계사에서출간할때의형태를유지하면서새롭게추리고시어의교체와삭제,시행의배열에변화를주었다.2부는1996년판에는없는미출간작품으로구성되었다.또한해설대신1997년에쓴시인의산문을수정,보완하여실었다.
“시는언어의예술이다.이때의언어는질료인으로서의언어이다.약속된질료는예술이되지못한다.따라서시적언어는약속되지않은질료이다.그것은오직하나의동인(動因)만을제공한다.실재와상상과상징의세계따위를밀고당기는힘.
그힘은말하려는것바깥에또다른말해짐이존재하는것을보여주는힘이다.이때언어는말하려는것이아니다.바깥에존재하는말해짐도아니다.그러한에너지의존재를표출시키는것이언어예술이취할미적태도이다.”(시집수록산문「그림카드와종이놀이」에서)
풀밭에는분홍나무
풀밭에는양세마리
두마리는마주보고
한마리는옆을보고
오른쪽가슴으로
굵은선이지나는
그림찍힌
티셔츠
―「양세마리」부분
박상순은일상의단어,미니멀한말들로써,지금까지대부분의시가외면해온문장으로자신의언어를세우고허물고또그자리에세우기를반복한다.이때의반복은단순반복,즉같은것을세우는반복이아니라난반사의반복,무정형의반복이다.그가세운언어의,시의세상은쉬우면서도어렵고보이면서도보이지않는세상이다.집으로비유하면허공에띄운집이거나,쉼없이굴러가는집이다.중력없는,대지없는건축물처럼비현실적이다.하지만그와같은건축물은과학적으로건축적으로불가능한것은아니다.그러므로그의시는비현실적이고초현실적으로보이지만사실은과학적인구성물,시인의표현을빌리자면구축(물)인것이다.
두세기에걸친,30여년의전위,20여년의전복
전위라는수식어로만박상순의시는규정되지않는다.전위라는말에는당연히시간성이내재해있다.시간의흐름에따라전위는소멸하거나정전(캐논)이된다.물론이시간은일상의시간이나역사의시간으로대체할수는없지만어쨌든전위는언제나전위에머물지는못한다.그런데『마라나,포르노만화의여주인공』가발행된지20년이넘었지만그시편들은소멸은커녕여전히정전의자리에도안착하지않았다.그러므로박상순의시편들을굳이전위라고한다면여전히지금여기에서도전위이다.
전복이라는수식어로도그의시를온전히설명하지못한다.기존의질서를일시에뒤집는,기존의서정시또는“리얼리즘이판을치는우리시단”(이승훈,첫시집해설「결핍의공간에서태어나는자아」)을뒤집는반리얼리즘시라는평가는박상순시의한단면일뿐이다.
잘가세요.그여자는물속에서다시떠오를거예요.당신의빵공장엔아직도사람이살고있나요?기차가지나가고있나요?
그기차는빵을싣고가나요?저아래서지하철을타세요.내어머니가기다리실거예요.그렇지만당신어머니는,당신을만난다할지라도당신을알아볼수없겠지요?그렇군요.그래요.당신그림엔당신이없겠군요.그렇겠지요.
―「빵공장으로통하는철도로부터22년뒤」부분
박상순시는각각의이미지가레이어로겹쳐있어가까이있는것같지만엄연히층위가다른곳에존재한다.박상순시에등장하는단어(빵,공장,철도여자,물속,가다,싣다,기다리다,떠오르다등등)는그자체로새롭지도않고미래적이지도않다.그렇다고낯간지러운(?)‘시적허용’식의단어도없다.‘바로이곳’의사람들이말할때쓰는그런평범한단어다.문장을이룬단어들은시가아니라면너무도평이해문장하나하나무엇을의미하는지읽는사람들은바로알수있다.그러나곧그의미는휘발되고이미지와이미지는서로다른레이어에놓여겹쳐지면서충돌하거나아득히멀어지기도한다.이렇게구축된시편들은3차원이상에자리하면서3차원적의미를무화시킨다.독자들은3차원이상에존재할수없으므로시적상상력으로3차원이상에실재해야그의시를온전히읽을수있다.아니,그시편들을읽음으로써독자들은3차원이상의시적차원을상상할수있다.
차원이다른시,“구조에서구축으로,시선에서포착으로”
시는이해하는것이아니라발견하는것이다.장님코끼리만지듯해도코끼리의전체상을알게되는것이시적발견,시인의말로는‘포착’이다.그것은쉽게말해시적상상력이다.이때상상력이란허무맹랑한,기괴한등의수식어로눙칠수있는것이아니다.이는무엇보다과학적상상력에가깝다.2차원의사람은3차원의사람이길을가다가점프하는것을볼수없다.이때2차원의사람이보는것은3차원의사람이길을가다가불현듯이사라졌다다시나타나길을걷는것처럼보일것이다.박상순의시를읽는독자들이어리둥절할때는바로이런때이다.이미지와이미지사이,느닷없이사라진이미지때문에“난해하다”“기괴하다”는감상평이첫시집이후지금까지나오는이유일것이다.
현실,즉3차원의세계에서시는세개의좌푯값을갖는다.어떤변방의시도,전위의시도,인생과자연을노래하는서정시도그좌푯값은x,y,z세개다.세개의값을숫자로변환하여표시했을때그들숫자사이가멀다해도결국은3차원공간어느자리의한점으로표시된다.시인들은영원한현재의한지점으로시의자리를표시해온것이다.현대시는여기에시간을더함으로써자신의모습을현대화한다.박상순의시편들은여기에또한차원을더해자신의시적공간을확정한다.
3차원이상을표현하기위해과학자는수식을사용하고,시인은시적언어를사용한다.수식이나언어는모두3차원의것이므로그자체로는한계를가질수밖에없다.수식으로표현된명제,언어로표현된시는다른차원의단면을3차원의사람들에게그이상의차원을상상하게해준다.과학적상상력,시적상상력이란보이지않는다른차원의모습을보게하는힘이다.
“수용자가어떤구조적관점에놓일때,작품은항상배타성을지닌다.배타성내에서예술적대상은비로소이타화될수있다.여기에의지가개입한다.그러나의지의개입을자의적으로차단할때한편으로예술은고유성(최소단위의정체성)을성취한다.고유성은의지의발동을호소한다.동시에의지는고유성에게복제를호소한다.이것은정신과형식을연결하는내적필연성인예술적표현의지이다.”(「그림카드와종이놀이」에서)
심심한앵무새와흰두발짐승
이라고쓰고
물병또는사랑이라고읽는다.
심심한앵무새와흰두발짐승
이라고쓰고
불평또는햇빛쏟아지는거리라고읽는다.
또는너에게,또는나에게,라고도읽는다.
우아한곡선,밤새도록내리는비
라고도쓰고
심심한앵무새또는
휘저을팔이없는,흰두발짐승이라고읽는다.
―「두눈을깜박이는기하학적공간」전문
“[……]내시에나타나는끝없는변주와그런변주의결과로빚어지는수많은이미지들의모든과정은하나의트릭trick입니다.이것은어떤방식의마술이며장난이고혼란입니다.트릭이라면혼란일수도있지만때로는고급한기술hightech이빚어낸혁신일수도있습니다.나는이런혼란과혁신을통해<미적경험>을만들고자합니다.그래서그것의즐거움을통해문학적인의미나가치를확장하고자합니다.[……]
[……]환상이나초현실적인이미지를담고있는나의시들또한일상의삶에서분리되지는않습니다.다만시적인것을만드는작업의과정과결과가<미적경험>이라는범주에있기때문에다른방식의대화가필요합니다.[……]
그래도그것이내안에존재하는이유는내가아직생명의상태로존재하기때문이겠지요.그런데그것은일상적인사랑의모습으로싹트기도하겠지만,어떤다른방향으로,포물선이나진자운동처럼방향이나속도가변합니다.내적으로이것은자유나욕망의운동력이되고,외적으로는실험이나변혁에관한에너지가됩니다.그것이증폭되어,내시는물론나의삶을예술적방향으로전환시킵니다.[……]
그렇게만나는접점에서우리는시대정신에관한그림을그리고,문학적형식을만들고의미나가치의변화또는재정립을시도하며인생의시간을소진합니다.그러나나의삶은,모든것을헛되이다써버리는‘탕진’일수도있습니다.또는벌거벗은생명으로체제안에서희생되는‘호모사케르homosacer’일수도있습니다.이성이나역사등의추상적인관념만을높이세운다면생명은파멸에나파국에나이르겠지요.”
―박상순·김호성대담,「미적경험의즐거움」,『현대시』(2017년4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