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 (김언 시집)

한 문장 (김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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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언의 다섯번째 시집 『한 문장』은 제목에서 기대되는 바와는 달리 하나의 완결된 의미를 만드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오히려 현실의 의미 체계를 뛰어넘는 시도와 현실을 가득 채운 의미 체계를 공동(空洞)으로 만드는 지속적인 반복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겼다. 동시에 언어의 감옥, 답습되는 틀에 갇힌 말을 떠나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김언의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저자

김언

1998년『시와사상』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숨쉬는무덤』『거인』『소설을쓰자』『모두가움직인다』,산문집으로『누구나가슴에문장이있다』등이있다.

목차

1부
지금/있다/있다/고향/저것이가을인가?/결정/불변/중/폭발/균열/그생각/중지하는사람

2부
어원/북방의말/내가말하는동안/내가없다면/판결/유리창/추모식/자유의지/인상/이미지/한계/나와이것/당신과그것/그것없이도/나와저것

3부
고용/친구/물/가족/부음/모닥불/모습/가족/응시/사이/만남/방/참치/하지못한말/물한잔의시간/물한잔의시간에담긴물한잔의노트

4부
한문장/자존/혀를통해서/화근/색청/밀실과털실/그렇군요그렇지요/열매같은것들/등록/장래희망/너로인해/절망/불청객/싸움/마음/강철보다단단한밤하늘을별은어떻게운행하는가?/어디까지가자연인가?/왕이되어가다/호위견/완제품

해설
시적언어기원론ㆍ남승원

출판사 서평

김언이라는이름에부여된시적운명
시의밖을꿈꾸는시작(詩作)

김언의다섯번째시집『한문장』이문학과지성시인선2018년첫책으로출간됐다.시인은첫시집『숨쉬는무덤』(천년의시작,2003)에서부터기존의관념에갇힌‘시’의경계밖으로향하는작업에집중하며,‘시’가아닌시를자아내고있다.끊임없이바깥을볼것을강조하는그의시세계는,이러한특징때문에딱한가지로정의하기어려우면서동시에영원히실패해도계속해서써볼수밖에없는부단한시도로점철되어있다.
이번시집『한문장』은제목에서기대되는바와는달리하나의완결된의미를만드는데에관심을두고있지않다.오히려현실의의미체계를뛰어넘는시도와현실을가득채운의미체계를공동(空洞)으로만드는지속적인반복의기록이고스란히담겼다.동시에언어의감옥,답습되는틀에갇힌말을떠나언어의새로운가능성을찾아나서는김언의시세계를엿볼수있다.

금세사라져버리고마는‘지금’
길을잃은말들이놓인진공상태

지금말하라.나중에말하면달라진다.예전에말하던것도달라진다.지금말하라.[……]지금은변한다.지금이절대적이다.그것을말하라.지금이되어버린지금이.지금이될수없는지금을말하라.지금이그순간이다.지금은이순간이다.그것을말하라.지금말하라.
―「지금」부분

시집『한문장』은“지금말하라”는강력한목소리로시작한다.말은바로지금이지나가기전에나와야한다고말한다.그런데‘지금말하라’는말은가능한가?지금이기준이지만,우리가‘지금’이라고말하는바로이순간에도시간은흐르고계속해서지금은과거가된다.기준이되는시점이달라지는시간의운동성속에‘말’이놓여있다.시를이끄는이운동성은언어로,말로점철된시세계를만들면서도거듭해서독자를진공의상태로끌어간다.이를두고문학평론가남승원은시인이“승패여부에매달리는것이아니라대결의무효”를주장하고있다고말한다.즉,누가이기고졌음을계산을하는것자체가불가능해지는방향으로시인이의미구조를재편한다는것이다.「중」「균열」등의시에서도두드러지게드러나는이같은특징은“지금의자리만차지하고,더이상의미를축적해나갈수없는독자들을‘지금-의미’그자체안으로불러들인다”.

손을씻고나오는사람도
그물에다시손을씻는사람도한문장이다.
나는얼마나결백한가아니면얼마나억울한가
아니면얼마나우울한가의싸움앞에서
앞날이캄캄한걱정스님의말씀도한문장이다.
옆에서듣고있던격정스님의말씀도한문장이다.
“흥분을가라앉혀라.”
―「한문장」부분

표제작의제목인“한문장”만놓고본다면,절대적지침으로서의한문장으로나아가는여정혹은하나로수렴되는방향성을예상하기쉽지만정작김언의시는그렇게읽히지않는다.“자연이말하는방식”도“내가말하는방식”도모두한문장이다.나를넘어“이곳의날씨”와“저곳의풍토”도한문장이다.많은말들을계속해서쏟아내고덮고,덮은것들을다시덮기위해다시문장을쏟아내면서,오히려‘한문장’의의미는모호해지고만다.너무많은것은사실없는것과같다는것을증명하듯‘한문장’의의미는다시질문을만드는방식으로열려버린다.
이에더해흔히인생의통찰을주기위해권위를지닌자의한말씀을인용한다는친숙한원리를김언의시와비교해보자면,시의말미에서‘스님의말씀’이갖는의외성은몹시특징적이다.“앞날이캄캄한”스님의이름은‘걱정’이다.“흥분을가라앉혀라”라고말하는스님의이름은‘격정’이다.시「한문장」은시가점점고조되어가는지점에서언어유희로긴장감을끊어놓으며,‘한문장’의의미를전혀알수없는상태로만든다.문장이중첩되면서시의의미를찾아가는것이아니라오히려방향을잃게만드는,알던길도놓치게만드는방식과마주할때김언의시를읽는재미는배가된다.

텅빈공간을채우는끝없는가능성
아직도래하지않은말을찾는시인의여정

사실상공백으로비워진‘한문장’은뚜렷한목표를갖고있지않은동시에,그럼에도말하려는의지를갖고있기때문에‘무한한가능성’을내포한다.

나는내의지로거기있다.거기서헤어나오질못하고있다.순전히내의지로조종당하고있다.순전히내의지로사경을헤매고있고순전히내의지로기적에서깨어났다.

[……]

순전히내의지로버스는출발했고비행기는멈춰있다.순전히내의지로무관하고무의미하고무성의하고어쩐지축제같다.아침마다오는발기의순간도순전히내의지로감퇴했다.짜릿하게.
―「자유의지」부분

이시에서벌어지는수많은사건들,이를테면‘모르는명단에내가껴있는것’‘기차가오고비행기가멈추는것’등은누군가의의지로할수있는일이아니다.그럼에도시인은사건이모두“내의지로”일어난일임을주장한다.내의지와무관한행위들을‘의지’라는단어와나란히놓음으로써,시안에서의지라는단어는무력화된다.나의의지가향하는방향이비어버린자리에서시인은“어쩐지축제같다”고고백한다.무(無)가되어버린공간은김언에게‘축제’이다.기존의정해진틀밖으로나아가는자유로움과새로운언어를만날가능성은답습되는의식체계가사라진뒤에야가능하기때문이다.
‘지금말하라’는김언의외침은‘나를지배하는언어’를벗어나아직오지않은말을찾고자하는시집의시적여정을알리는시작과도같았다.무한한가능성속에서자유로운글쓰기에몸을맡긴김언의시적여정은여전히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