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 노트 - 문학과지성 시인선 509

울프 노트 - 문학과지성 시인선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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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06년 『현대시』로 등단하고 두번째 시집 『울프 노트』(문학과지성사, 2018)를 발간한 시인 정한아. 가식 없이 솔직하게, 가차 없이 소탈하게 보고 느낀 세계를 직접 치고 들어가는 언술들. 독자들은 이 시집의 호쾌함에 정신없이 빨려들다가도 마지막엔 땅콩사탕을 먹다가 입천장이 홀랑 까져버리듯 어딘가 욱신거리는 마음 한구석을 경험하고야 말 것이다.
저자

정한아

저자:정한아
1975년경남울산에서태어나,성균관대학교철학과를졸업하고연세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2006년『현대시』로등단했고,시집으로『어른스런입맞춤』이있다.‘작란’동인이다.

목차

수국水菊/생일/겨울달/봄,태업/나는왜당신을선택했는가/어제의광장과오늘의공원사이/프랜차이즈의예외적효과에관하여/축일祝日/표적/성聖토요일밤의세마포/(단독)‘울프노트’의잃어버린페이지/독감유감2/우리가우리를/둘의진화/샬롬/대장장이/대장장이의아내/샬롬2/(단독)추문에대하여/계명啓明/자기가병조림이라믿은남자/첫사랑/개밥바라기/편도선염을앓는벙어리신神의산책로/영도零度/성찬/사육제/꿀과달/물거미/후식/허밍/무연고無緣故/노老시인의이사/이즈음의신경증/폭염/크루소씨의가정생활/입동立冬/만화방창萬化方暢/이팝나무꽃/유행流行/인수공통전염병냉가슴발생첫날병조림인간의기록/창백한죄인/미모사와창백한죄인/어떤봉인/랄라와개와친구와20년전의엽서/간밤,안개구간을지날때/다음날/돌림노래/PMS/꽃들의달리기,또는사랑의음식은사랑이니까/흰수염고래와그의노래/(단독)아마도,울프씨?/스물하나/고양이의교양/하느님은죽어서어디로가나

해설부정성의시학조재룡

출판사 서평

망한사회,잃어버린이상,어정쩡한세대……
가식없이가차없이세계를파고드는루머

(문학적)세대론이라는것이정말로가능할까?나는당분간망설이지않는작품(사람)을무턱대고믿을수없게되었다.너무빠른전향도,과거에의고착도,신이죽었으니이제아무거나할수있다고착각한망나니실존주의자처럼반쯤고의적인망각도,쉽사리믿을수가없다.특히견딜수없는건,자신을판관이라고여기는확신에찬‘선의담지자’들이다.
(정한아산문,「SentbyPost」,『문학과사회하이픈』2016년가을호,p.43)

1975년생,94학번,철학과문학을10년넘게공부하고또가르치는사람.2006년『현대시』로등단하고두번째시집『울프노트』(문학과지성사,2018)를발간한시인정한아의간단한이력이다.한때‘신세대’‘X세대’로불렸고지금은‘포스트386’이라지칭되며,문학적으로는‘포스트미래파’로묶이곤하지만어떤것도딱들어맞는명명이라기엔좀어긋나고어정쩡한세대명이다.광장대신공원이제공되는기만적인평화의세계에서그얄팍함을냉소하며,동시에선명한색깔과확실한전망만을부르짖는공허함을경계하는망한세계의언니.이‘멋짐’이야말로시인정한아를설명할수있는단어일것이다.가식없이솔직하게,가차없이소탈하게보고느낀세계를직접치고들어가는언술들.독자들은이시집의호쾌함에정신없이빨려들다가도마지막엔땅콩사탕을먹다가입천장이홀랑까져버리듯어딘가욱신거리는마음한구석을경험하고야말것이다.

자명한폐허에서태어난존재들이
부서진것들을모으는손길

쓰는일을,읽는일을
게을리해도아무도벌하지않고
생각을중단해도누구하나위협하지않는
더러운책상앞
불빛은떨어지고밤이면길에서
조용히죽어갈어린고양이들의
가냘픈울음소리

[……]

도무지장난칠맛이안나는날
밥먹는일을등한히하여도누구하나
엄포를놓지않는
임투도등투도없는
더러운책상앞

손없는새들이깃털로창공을어루만질때
죄없이부푸는잎맥의감탄과탄식사이에서

일이란무엇인가
사람의일이란대체무엇인가
-「봄,태업」부분

여의도광장은보라매광장은
공원이된지오래
우리에겐공원이필요했지
그늘이사생활이손톱밑의가시와섬세함과
머큐로크롬,놀란가슴과위안의손길이

도서관앞에회관앞에
나무들이무성하고뿌리는얕다평화는
숙성기간이필요하답니다오랜고요가
심오한의미를담는법이죠하지만

[……]

차마말할수도노래할수도없는
그,뭐냐,거시기가
산책하듯엷은평온으로덮이었을때
그,뭐냐,거시기를
실종된우리들의理想이라불러본다면;
-「어제의광장과오늘의공원사이」부분

오로지책상머리에서나와의싸움을계속하며“등투도임투도없는/더러운책상앞”을노려보는연구자의봄날.광장대신공원을강요받는고요의세계에서한때의‘유서’와‘시’‘노래’를회상한다.차마온전한글자로는써보지도불러보지도못하는“이상理想”에대한그의복합감정을고려하면“더러운책상앞”의답답함이단순한일상의반복에서온것은아니리라는것을눈치챌수있다.“이모든것은헛되고헛되었으나/세상은언제나완전했네”(「수국水菊」)라고씁쓸하게읊조리듯,‘폐허’위에자라난그의세계관은다소강렬하다.첫시집에서“아무것도아닌모든것에베이는나”가“이더러운새벽,순결한것은오직내일의폐허위간신히몰래내리는피,피곤한빗소리”(「타인의침대」,『어른스런입맞춤』,문학동네,2011)에귀기울였듯,이번시집에서도지옥인듯폐허인듯온통망가지고녹아내리는세계에서태어나버린존재들은그럼에도불구하고부서진것들을모은다(「꿀과달」).망한세계를영웅적으로돌파하기보다는자신만의방식으로,가끔은유폐와소극을무릅쓰며남아서견디고또대결하는것이다.

태생적으로모든것과불화하는외로운늑대,
루머로남은울프노트에대한질문

4년전에갑자기해고통지를받았습니다마지막으로퇴근을하고나오는데외제차한대가골프채를싣고지나가더군요그때부터……

그는훔친골프채를하나도팔지않았다카메라는골프채로가득찬그의아파트창문을비추며서서히줌아웃한다골프채로이루어진집안의인공산은그의
복수의가시성
억울함의물리적변용
그는새벽이면골프채산아래좁은마룻바닥에몸을누이고새우잠을잤다그는
나날의소소한승리로점점좁아지는(안그래도좁은)아파트에서자존감의붕괴를막기위해기꺼이자기의깡마른몸을난해하게접어가고있었다그는

훔친골프채로골프를치지않았다아무것도
치지않았다아무데서도
일인시위를하지않았다청와대신문고에
호소문을게시하지않았다노동위원회에부당노동행위로사측을
제소하지않았다노조에
가입조차되어있지않았다자활센터에
등록하지않았다사장집현관옆에서

어둠이오기를기다려꿀밤을때리고달아나지도않았다중고외제골프채를팔아
중고외제차를사지않았다욕을
하지않았다메롱을하지도
않았다시민단체를
찾지않았다
불법적행위에합법적대처는너무불공평한거아니냐?
소리치지도않았다

왜안그러셨습니까?

그런건……어떻게생각해내는거죠?

세상에는덜치명적인방법으로복수하고싶은억울하고
몹시내성적인사람이얼마든지있는것이다

그가울프씨의언제적모습인지는아직알려지지않았다
-「(단독)아마도,울프씨?」부분

론울프lonewolf.직역하면외로운늑대이지만,단독범행자혹은고립주의자를의미하기도한다.정한아시에서울프씨는세계의문제를거창하게부풀릴줄모르고,또한불의와타협할줄을몰라서태생적으로불화한다.그의노트는루머로서만존재하며,종종거짓과추문으로몰리곤한다.하지만부적응과자기폐쇄로사회와동떨어진듯보이는이울프씨야말로세상의‘명쾌’와‘간편’의대척점에서서세계를똑바로반성하게끔하는존재들이라는사실을정한아는간파한다.이부정성의세계에서끊임없이분투할울프씨에대한각별한애정이결국시인이지향하고자하는바를시사하기도하는것이다.
천박과악다구니로가득한세속의것들을질료로삼아시를쓰고세계를느끼는것.히스테릭할정도로반성과경계를집요하게촉구하면서도한편으로는결국땅에발붙인속된것들만이가질수있는변화의가능성을이야기하는시인정한아.그가사랑한울프씨의노트가이제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