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조경란 소설집 | 양장본 Hardcover)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조경란 소설집 | 양장본 Hardcover)

$13.00
Description
동인문학상 ㆍ 현대문학상 수상 작가 조경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5년간의 여정

조경란의 일곱번째 소설집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일요일의 철학』 이후 단편소설집으로는 5년 만이다. 조경란은 1996년 등단 이후, 그간 여섯 권의 소설집을 포함해 총 열다섯 권의 단행본을 출간하며, 한국의 대표 중견 작가로서의 자리를 지켜왔다.
총 여덟 편의 단편소설로 이뤄진 이번 책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살피는 세심한 문장과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고백 조의 어조를 통해 작가가 지난 4년여의 시간 동안 고민해온 삶의 문제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수록 작품 중 다수에서 사람 사이의 시작되는 작은 변화들이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풀어내며, 개인과 타인의 문제를 각자의 삶과 연결해낸다. 더불어 조경란이 지속적으로 다뤄온 가족의 형태에 관한 문제를 섬세하게 파고드는 탐구 의식 역시 이번 소설집에서 이어진다. 온전히 나로서의 나, 가족 속의 나, 혹은 사회 속의 나 등 수많은 개인 ‘나’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에게 해당할 수도 있는 소설 속 삶의 여러 모습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작가는 ‘어떻게’에 짓눌려 그 한 걸음을 망설이는 이들의 등을 가볍게 떠밀어주는 듯하다. 목적지를 떠올리며 망설이는 대신 그저 걸으라고, 이미 그것만으로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한다고. 목적지를 몰라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속아왔던 과거가 떠내려간다. _황예인(문학평론가)
저자

조경란

1969년서울에서태어나서울예대문예창작과를졸업했다.1996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단편「불란서안경원」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으로『불란서안경원』『나의자줏빛소파』『코끼리를찾아서』『국자이야기』『풍선을샀어』『일요일의철학』,중편소설로『움직임』,장편소설로『식빵굽는시간』『가족의기원』『우리는만난적이있다』『혀』『복어』,짧은소설집으로『후후후의숲』,산문집으로『조경란의악어이야기』『백화점-그리고사물ㆍ세계ㆍ사람』등을펴냈다.문학동네작가상,현대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동인문학상,고양행주문학상을수상하였다.

목차

매일건강과시
11월30일
언젠가떠내려가는집에서
오랜이별을생각함
김진희를몰랐다
492번을타고
봄의피안
저수하(樗樹下)에서

해설|기억에없지만잊고싶지않다는말_황예인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수많은사람들이오가는자리,광장
아주작은인연이모이고모여새로운흐름을만드는곳

고개를내저으면서훈은노란불빛을따라걸었다.어른이되는시점같은건분명하게알기어려울지도모른다고,그저하루를,지금여기를통과하고내일과그후의날들을통과할수있을뿐이라고.어떤슬픔과어떤실망을통과해나갈수밖에없듯.그렇게말하면애늙은이였다던찬은알아들었을거라고,훈은고개를끄덕이면서결집된인파속에홀로서있었다.(「11월30일」,pp.60~61)

광장,사람들이모였다흩어지는곳,혹은시시때때로지나치는곳.어느도시에가든우리는곧잘광장을통과하곤한다.아주새로운도시에서는물론이거니와우리가아주잘안다고생각했던도시에서도광장의모습은그안에모여있는사람들에따라같다가도다르다.조경란의이번소설집에서광장의이러한특성은작품곳곳에자리한다.19년동안같은일을해온‘그녀’는낯선도시의광장에서새로운사람들과거리음악가를만나고(「매일건강과시」),작가‘나’는로마의수많은광장들을엄마와함께걸어다닌다(「492번을타고」).
그중에서도「11월30일」속주인공‘훈’이머무는‘광장’은작품의시작과끝에서서로다른모습으로등장하며,광장의의미를좀더다층적으로보여준다.훈은“미래를위해서뭘해야할지모르는상태”로하루하루를사는스물일곱살의청년이다.지하철역앞에서미키마우스탈을쓰고어학원홍보일을하는훈에게지하철역앞의공간은엄청난사람들이오가는동네의광장이자,스스로를노출하지않아도되는곳이다.
그러던중어머니의심부름차한농장을방문하고돌아오는길에미처광화문에서환승하지못한채버스에서내리게되고떠밀리듯훈은집회무리에섞이게된다.도심집회행진을위해모인많은인파속에서어디로가는지분명히알기어렵지만훈은그저“지금여기를통과하”는데에집중한다.앞선지하철역앞의광장에서는각기다른사람들이서로각자의목적을갖고그저‘유동’하고있었다면,여기서의광장에서는“밀고나가야해요”라는시위참가자의말처럼같은목적을가지고각기다른곳에서모인사람들로가득하다.이곳에서훈역시미키마우스탈을벗은자기자신의모습그대로한장소에서아르바이트를하는것이아니라광장을지나기위해발걸음을옮기는사람이다.마치이곳에서할수있는유일한일이한발내딛는일뿐이라는듯이.
도심집회와촛불,광화문,인파등의키워드는우리로하여금2016년많은사람들을결집시켰던집회현장을연상케하면서그안에우리를그리고,청년‘훈’을떠올려보게한다.서로다른공간에서각자생활하던사람들이같은목적을가지고공개된장소에서공개된모습으로한걸음씩발걸음을옮기는모습에서우리는단하나의이유만으로도서로하나의거대한무리가될수있는,서로에게서로가힘이될수있는희미하지만거대한공동체를상상해볼수있다.더나은내일을위해따로또같이지금이순간을통과하고있는우리의모습을말이다.결집된무리를지나개방된길에서훈은소리내어말한다.“내가어디에있는지는오,오늘이말해주고내가어디에있어야하는지는내,내내일이말하게하라.”미래를완전히알수는없지만오늘은오늘의삶을살고,내일은내일의삶을살겠다고다짐하는훈의말은결국작가조경란이좀더나은내일을위해매일매일을통과하고있는이들에게건네는위로와지지가아닐까.

쌓이고쌓였던말들이더듬더듬풀려나오기시작할때
나의삶은달라지고,우리의삶은연결된다

그럼에도우리는한공간에단순히모여있는것만으로는우리사이에어떤연결고리가생길것이라고기대하지는않는다.모여있다는것은그저모여있다는것외에다른의미를지니지않기때문이다.

도서관유리문을열고신발을찾아신으면서나는경아가시장왔다가들러봤다는말을어떻게질문으로할지궁금했다.경아가질문하면내가말을너무많이해버린다는걸이제는그애도알거다.벤치뒤성긴숲에서매미소리가울렸고내가옆에앉자경아가무덤덤한소리로물었다.(「언젠가떠내려가는집에서」,p.84)

서른일곱살의‘나’는‘아버지’의양자이다.나는“친구도없고누구를깊이사귀어본경험도없지만부모에관해한마디도하지않는사람”.아버지에따르면“다른집”에서온사람이바로‘나’다.그리고두남자의집에새로운가사도우미‘경아’가찾아온다.경아는무언가평범하지않은과거를지닌사람으로묘사되지만,나에게경아는“가시없는저늙은오이로요리를할줄아는젊은여자애”,무엇보다나에게질문을던지며내삶에성큼들어온사람이다.경아가나에게질문을던지면나는누구에게도털어놓지않았던나의이야기를경아에게털어놓기시작한다.그리고다시이어지는경아의질문들.그동안말하지않았던것들이경아의등장으로쏟아져나오면서나와아버지,그리고경아,이세사람은함께저녁을먹는사이,즉가족으로발전한다.
결국필요한것은‘말’이다.서로가까워질수있는,서로연결될수있는고리로서의말은이소설집내에서매우일상적인형태로등장한다.짧은문장들로시를쓰는그녀(「매일건강과시」),김진희라는여자아이에게전하는정미의말(「김진희를몰랐다」),선생님과자신의이야기를학생들에게더듬더듬털어놓는남자(「봄의피안」),오랜이별을앞두고미처얼굴을보고하기는힘든이야기를서간체로풀어내는남자(「오랜이별을생각함」)등작가는마음에만머물던자신의이야기가밖으로나오는순간들을포착해낸다.즉말을건네는행위,말이시작되는순간의너와나의관계성은조경란의이번소설집이계속해서주목하는것이다.그간작가의소설에서말은군더더기없고매우정돈된형태와정확한단어들로신중하게씌어졌음을상기해볼때일상적인대화하나하나일지라도작가가일상의문장들에얼마나큰무게를두었는지짐작할수있다.
표제작의마지막장면에서나는경아와함께텔레비전을보고,태풍과홍수로떠내려가는집에서구조되는사람들을목격한다.헬리콥터에서내려온밧줄이한명한명을다시생(生)으로끌어당길때그렇게연결됨으로써그들에게또다른내일이주어졌듯이,“떳떳하지못한마음으로”평생을살았던나에게도작은일상이모여만들어진이들과의관계는나를구해내는끈처럼작용하며우리가함께하는미래를그려보게한다.어쩌면우리를잇는말들은거창한말이아닐지도모른다.아주일상적인안부인사,서로를향한관심어린질문하나하나에서시작된서로의이야기,이런‘말’들이우리사이의관계를만드는최초의점이아닐까.아주작은말들에서시작된대화가우리의이야기로이어지고,따로또같이오늘을통과할때오늘보다나은내일을만나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