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창고 (이수명 시집)

물류창고 (이수명 시집)

$12.00
Description
대상과 주체의 관계를 전복시키는 시 쓰기
한국 시의 관행에 반하는 이수명의 끝없는 실험!
감정을 덧입혀 대상을 왜곡하는 화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로지 대상을 중심으로 세계를 읽어내는 언어의 발견을 시작으로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이수명이 일곱번째 시집 『물류창고』(문학과지성사, 2018)를 출간했다. 『마치』 이후 4년 만의 시집이다. 이수명은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이래 일곱 권의 시집과 다수의 시론집, 평론집 들을 출간하며 현대시에 관한 깊은 연구를 기반으로 시단에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물류창고”라는 제목으로 총 열 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특별한 구분 없이 불쑥불쑥 등장하는 「물류창고」를 통해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그에 따라 어떤 행위를 하는지 명확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행위들이 무한히 반복하는 공간으로서의 물류창고를 보여줌으로써, 시인은 ‘무효’로 수렴하는 시적 언술을 향해 전진하는 말들을 풀어낸다.
저자

이수명

저자이수명은1965년서울에서태어나서울대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중앙대대학원문예창작학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1994년『작가세계』로문단에나왔으며,시집으로『새로운오독이거리를메웠다』『왜가리는왜가리놀이를한다』『붉은담장의커브』『고양이비디오를보는고양이』『언제나너무많은비들』『마치』,연구서『김구용과한국현대시』,평론집『공습의시대』,시론집『횡단』『표면의시학』,번역서『낭만주의』『라캉』『데리다』『조이스』등이있다.박인환문학상,현대시작품상,노작문학상,이상시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I
나의경주용헬멧/셔츠에낙서를하지않겠니/밤이날마다찾아와/물류창고/풀뽑기/물류창고/이디야커피/물류창고/이렇게/물류창고/최근에나는/물류창고/통영/물류창고/저속한잠/물류창고/아무도태어나지않은해였다/물류창고/여름에우리는/물류창고/항상새것같은/칩/휴가/물류창고

II
너는묻는다/조가비에대고/녹지않는사람/안부기계/연립주택/노면의발달/투숙/오늘의경기/다음뉴스/원주율/티베트여서그래/머릿속의거미/개가나타나는순간/시멘트가좋다/봄소풍/하양위로/인사를나누는동안/계속

III
오늘의미세먼지/주민센터/이불/여기서부터서울입니다/비를위해서/신분당선/흥미로운일/덤불가운데식탁보/나의중얼거리는사람/토마토수프/편의점/걸어가던개/우리를제외하고

해설
‘끝없는끝’의세계에오신것을환영합니다·조재룡

출판사 서평

“우리는물류창고에서만났지”
어디에나있지만어디에도없는새로운시적공간

시「물류창고」열편은제목만으로는서로를구별할수없도록일련번호를붙이지않았다.우리는여기서이시들이연작시가아니고그저‘물류창고’라는시로서흩어져있는별개의작품들임을짐작할수있다.그렇다면,왜물류창고일까,대체이공간에서무슨일이벌어지고있는걸까?
‘물류창고’는일반적으로물건을보관하는곳이며,상품을빼고넣을때에만열린다.물류창고라는공간의안팎에는보관되고운반되는대상이있으며,그를수행하는주체,그리고운반혹은보관등의행위가있다.무엇보다중요한특징중하나는물류창고들간에구별이쉽지않다는것이다.쉽게볼수있고,언젠가분명한번쯤은보았지만그렇다고물류창고를특별히의식하게되는일은많지않기때문에그것들사이의개별성을인지하기는쉬운일이아니다.

창고에서일하는사람처럼차려입고
느리고섞이지않는말들을하느라
호흡을다써버렸지

[……]

무얼끌어내리려는건아니었어
그냥담당자처럼걸어다녔지
바지주머니엔볼펜과폰이꽂혀있었고
전화를받느라구석에서있곤했는데
그런땐꼼짝할수없는것처럼보였지
―「물류창고」(pp.14~15)부분

어디에나있지만그래서오히려인식되기어려운곳,이수명의물류창고에서우리는이상한광경을목격하게된다.분명누군가가있는데그런데그들은마치“창고에서일하는사람처럼”차려입고,“담당자처럼”돌아다니며,“꼼짝할수없는것”처럼보일뿐이다.담당자면담당자고,일을하면하는것일텐데,‘~처럼’보인다는시인의언술은무엇을의미하는것일까.더군다나이들은“한쪽끝에서다른쪽끝으로갔다가거기서/다시다른방향으로갔다가/돌아오곤”하며,어떤행위를본격적으로수행하는데까지끝내다다르지못한다.해설을쓴문학평론가조재룡은『물류창고』속시세계에는“‘끝없는끝에서infinesinefine’오고가기를반복하거나그마저왔다갔다,그저따라하는주체가있을뿐”이라며,“새로운행위는실행되지않는다”는지점에주목한다.특히시인은「물류창고」열편과그외의시들을교차로배치시키는동시에,무한한행위가반복되는공간으로서의물류창고역시반복되도록위치시킴으로써이러한효과를증폭한다.누가무엇을,어떻게한다는것을명확히알기어려울때우리는자동적으로이런질문을떠올릴수밖에없다.대체여기서뭘하려는걸까?

“여기서뭘하려던거지”“글쎄모르겠어”
의미를갖기힘든행위의무한한반복

그는묻는다뭘모르는거지
나는말한다창고안을돌아다니면
뭘하려했는지자꾸잊어버려
저쪽으로갔다가글쎄모르겠어그냥돌아오게돼

―「물류창고」(pp.32~33)부분

이페이지를표시할수없습니다
앞으로페이지를넘기면다음페이지를참고하라는말만나온다.

―「흥미로운일」부분

더앞으로나아가야하지만자기안에서답을찾기어려울때우리는흔히다른사람의말이나글을참고한다.이시집안에서도역시“여기서뭘하려던거지”라는질문에답하기위해참고할페이지를펼치는화자가등장한다.그런데이참고페이지역시몹시수상하다.표시할수없는페이지가등장해서다시앞으로넘기면“다음페이지를참고하라는말만”나오고다음페이지에는다시“표시할수없는페이지”가나옴으로써,사실상참고할수있는것이전혀없는채로무한히페이지를앞뒤로넘기는동작만이남는다.
결국“여기서뭘하려던거지”라는질문앞에서화자는“글쎄모르겠어”라고답하는것외에달리할수있는일은없음을확인하는데이른다.무한히반복되는행동들에의미를부여하는것이불가능하다는결론에다다르고도그행동을계속하는것외에달리뭔가할것도없는상태속에이시집은놓여있다.알수없고,할수도없는상황속에서우리는무효로수렴되는행위를엿볼뿐이다.영원히무효의지점에도달하는곳이바로이수명의물류창고들이다.“‘나아갈수없음’과‘할수없음’을주체-대상-행위의무효를무한히방출하는고유한문장들로,소리없는아우성으로,그는‘오늘’을활활태운다”(문학평론가조재룡).

[뒤표지글]
대화는건물밖에서해주시기바랍니다

정숙이라씌어져있었고
그래도한동안우리는웅성거렸는데
이쪽끝에서저쪽끝까지소란하기만했는데

창고를빠져나가기전에정숙을떠올리고
누군가입을다물기시작한다.
누군가그것을따라하기시작한다
그리하여조금씩잠잠해지다가
계속계속더잠잠해지다가
이윽고우리는어느순간완전히잠잠해질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