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fi - 문학과지성 시인선 511

Lo-fi - 문학과지성 시인선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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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성은

1973년11월경상북도의성에서태어났다.책과음악이끌어준길을따라오다보니시를쓰게되었고여전히책과음악을좋아하는사람으로살고있다.겨울을좋아하고눈내리는풍경을좋아한다.잠을많이자고꿈을많이꾼다.세계의다양한캐럴음반컬렉션을갖는것이꿈이다.스물일곱,심심해서무작정서울로올라온이후로홍대인근에서십여년째살고있다.2005년문학동네「12월」외5편의시...

목차

시인의말

1부
섣달그믐/밝은미래/Ghost/그곳은평화롭겠지/사운드/카프카의잠/저녁의저편/채광/사랑의방/악령/환상의빛/안식일의유령들/Ghost/비닐하우스/미아의겨울/계면界面

2부
말을때리는사람들/동물원/부고訃告/낙관주의자/밤의광장/안티고네/Ghost/Ghost/저지대/환상의빛/여름일기/여름주간/0℃/거울을통해어렴풋이/유령선/나의나된것

3부
Ghost/거울/합창/환상의빛/공원/병원/까마귀들/밤을지새우는사람들/야간비행/Ghost/생각하는냉장고/알랭레네의마음/죽음에이르는병/야옹뚱뚱/단편같은장편/죄와벌

해설
결렬-장은정

출판사 서평

견고한현실을무너뜨리는상상력의시공간
황홀함을부르는나직한읊조림

강성은의세번째시집『Lo-fi』(문학과지성사,2018)가출간되었다.강성은은2005년문학동네신인상에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한이래동화적상상력을낯선방식으로풀어낸『구두를신고잠이들었다』(창비,2009)와무의식적주체를통해잠재된감각을탐구한『단지조금이상한』(문학과지성사,2013)으로평단의주목을받아왔다.이번시집에서강성은은기존에보여주었던초현실적상상력을뒤틀어현실세계를내파하는,그리하여미세한균열을통과해자신만의불가해한시공간을탄생시키는데이르렀다.

『Lo-fi』는‘저음질’을뜻하는음향용어에걸맞게독자들을한순간에정체불명의,나직하고깊은,확신이불가능한시공간으로데려다놓는다.“강성은이옹호하는세계는없다”(시인함성호)는말처럼이제그녀의시를읽는일은이편의세계에서저편의세계로건너가는일이아니라그동안안락하게누려오던현실세계가통째로무너져내리는감각을선사한다.이러한경험은모리스블랑쇼가정의한문학처럼읽는존재에게‘어떤일’이발생하도록이끌어우리가새삼어디에서무엇을하고있는지영문을알수없게만든다.세계에대한확신을걷어내야만비로소가능한삶으로순식간에독자의위치를옮겨다놓는것이다.그위치는우리가태어나기이전이거나영면이후의시공간이기도하고,현실도꿈도아닌지점이거나환상에서깨어나는과정이기도하다.그러므로우리자신의내면과현실세계,그리고시인이고유하게구축한‘어떤세계’까지한순간에감각하는경험은강성은의시를따라읽는독자들만이누릴수있는황홀한시적경험일것이다.

‘지금-여기’라는알수없는시공간에서

『Lo-fi』를여는첫시는음력의마지막날짜를의미하는「섣달그믐」이다.이는두번째시집『단지조금이상한』을열었던첫시가삶의마지막날짜를의미하는「기일忌日」이었던것과겹쳐진다.이처럼강성은은끝나야만새롭게시작할수있는,죽어야만새롭게살아볼수시적상황을펼쳐보이곤한다.“밖에선종말처럼어두운눈이내리고”있는데“나는이제잠에서깨버릴것같”다고말하거나(「섣달그믐」),“삶을포기하고나면/죽음을기다리고있으면/모든것이달라지는것//그가잠에서깨어나는것”(「카프카의잠」)이라고말하는식이다.이러한언술은독자를삶과죽음의경계라는시간적틈새로,현실과꿈의접점이라는공간적틈새로유도한다.시를따라읽던독자가어느순간살아있는것도죽은것도아닌,현실도꿈도아닌불가해한지점에당도하도록이끄는것이다.

어디선가살아있는것이낑낑거리는소릴들었지
눈속에파묻힌개를끌어올려품에안고
작은개야,오늘밤은나와함께가자
다시컴컴한어둠속에서
길을찾아집으로돌아가는것이었다

그장면을보던나는알아버렸지
아,나는아직태어나지않았구나
―「밝은미래」부분

어느겨울밤,한남자는“살아있는것이낑낑거리는소릴”듣고눈속에서파묻힌개를찾아낸다.그런데이장면을흐뭇하게지켜보던화자는별안간깨닫는다.“아,나는아직태어나지않았구나”.그순간독자는이목소리가어디에서누구로부터들려오는지가늠할수없게된다.시적상황에서비롯한불가해함이아직태어나지않은자의목소리를따라읽던독자의것으로고스란히옮겨지는것이다.강성은은이러한방식을통해독자가익숙하게확신해온‘지금-여기’라는감각이야말로가장믿기어려운감각이아닌지를묻는다.

생각이라는새로운삶의징조

그렇다면시인이펼쳐보이는세계의불확실성을읽고난후,우리는어디에도달하는가.시적경험을통해서만가능한생의이면을겪고난뒤,우리의삶에는무엇이남는가.

좋은사람들이몰려왔다가
자꾸나를먼곳에옮겨놓고가버린다

나는바지에묻은흙을툭툭털고일어나
좋은사람들을생각하며집으로돌아온다

쌀을씻고두부를썰다
식탁에앉아숟가락을들고
불을끄고잠자리에누워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
―「죄와벌」전문

이시에서‘나’에게는이렇다할사건이발생하지않은것처럼보인다.그러나“생각한다”라는구절이세번반복될때,우리는이시의제목인‘죄와벌’을자연스레떠올릴수밖에없다.좋은사람들에게버려진‘나’는응당내게있을어떤‘죄와벌’을,아무에게도고백한적없는‘죄와벌’을상기할수밖에없기때문이다.그러나이시가시집을닫는마지막시임을감안할때,시인이“좋은사람”의입장에서서독자인우리를징벌하려는것은아니라고짐작할수있다.이는문학평론가장은정의해설처럼“좋은사람”을“좋은시”로바꿔읽는순간납득이가능하다.좋은시들이몰려와서자꾸우리를먼곳에옮겨놓으면,우리는별일아니라는듯흙을툭툭털고일어나집으로돌아온다.쌀을씻고숟가락을들고잠자리에눕는등평범한일상을이어간다.그러나우리는다시금“생각”하게된다.생각하고또생각한다.그것은아마도쉽게잊히지않는“좋은시들”에관한생각일것이다.강성은은이‘생각’들을통해시적경험이우리의현실,각각의삶에현현하도록이끈다.불가해한경험을끊임없이상기함으로써만우리의경직된일상이미약하나마변화의징조를품은삶으로,새로운삶으로나아갈수있다고말한다.그러므로『Lo-fi』는시집을덮는순간황홀한시적경험을통과해온우리가조금씩달라지는현실과마주할수있는기회를안겨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