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도 못했다 (김중식 시집)

울지도 못했다 (김중식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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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중식은 이 세계를 지옥이라고 진단했지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사랑을 노래했기에 비관주의자가 아니다. 시인은 이 세상, 곧 지옥의 세계를 면밀히 관찰한 결과 천국이 저 멀리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충만해 있다면, 바로 지금 이곳이 천국과 같음을 노래한다. 머물러도 떠돌아도 사랑이 있다면 바로 그 머물고 있는 그곳이 천국이었던 것이다.
저자

김중식

김중식은1967년인천에서태어나서울대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다.1990년『문학사상』에「아직도신파적인일들이」등을발표하며시단에나왔다.시집으로『황금빛모서리』,산문집으로『이란-페르시아바람의길을걷다』가있다.

목차

I
자유종아래/도요새에관한명상/스키드마크/랜섬웨어바이러스/지구온난화/보험사/1394is주체/시즌2/철한낸보서에국천/난리도아닌고요/금연포기/아파트오후4시/조망권/때수건이열리는물오리나무/비,스피드,그리고대서부열차/늦은귀가/극장해체공사/키다리풍선인형/꿈틀대며살아가는물생들이/파자/그대는오지않고/어쩌다종점

II
이더러운세상/노아의방주/바람의묘비명/바람물결위의텐트/만신전/만년설상가상/사막시편/편시막사/사막건너기/바다건너기/원년,안전선/모래시계/땀흘리는불/기차/요‘艸’모양의삶/사미인곡/속미인곡/저세상안쪽으로/피맛골빈대떡집/방랑자의노래/보름달계수나무/미래비전

III
경청/휴화산/곤충같은사랑/별이불타는밤에/관능/꽃/다시해바라기/꽃에서사랑까지/영변의약산진달래꽃/비냄새/대륙처럼/방사림아래/신재생알코올에너지/태양에너지/승천/밤바다천리향/그저살다/기러기떼헛가위질하듯/봄에취하다/참시끄럽다/세월이흐른뒤/물결무늬사막

해설머물러도떠돌아도무엇이있는게아니지만ㆍ차창룡

출판사 서평

이탈한자의귀환,
김중식25년만의새시집!

「황금빛모서리」「이탈한자가문득」등으로오랜시간널리사랑받아온김중식의두번째시집『울지도못했다』(문학과지성사,2018)가출간되었다.그는다소긴공백에도불구하고꾸준히회자된시집『황금빛모서리』(문학과지성사,1993)로독자에게여전히익숙한시인이다.첫시집을탈고하고1995년언론사에입사했던김중식은,2007년부터국정홍보처에서공직생활을시작했다.이후대통령비서관실에서뛰어난문장력과정치감각으로연설문작성을맡기도했던그는,이후2012년부터약3년반동안주이란대한민국대사관에서문화홍보관으로도재직하였다.시집『울지도못했다』는이전김중식의시세계가집중한암담한현실인식위에그간의다양한생활경험에서비롯한낙관성이더해져있음을발견할수있다.악다구니의고난속에서‘울지도못하고’또한발자국내딛어보는이번시집의의지는어디에서오는것일까?

1990년대당시시집『황금빛모서리』는한국시단에신선한바람을일으켰던시집으로손꼽힌다.그의시는매우실험적인듯하면서도시의전통을버리지않았고,시의본령을지키면서도자유로웠다.다소자학적이고자기파괴적인시들이담겼지만,그때부터생에대한애정어린시선이남달라“따뜻한비관주의자”(문학평론가강상희)라고명명되기도했다.하지만문단의호평과대중적지지에도불구하고이상과현실사이괴리로인한내적갈등과생계의무게로인해절필했던그는,이란에머무는시간동안혁명과역사,인간의근원적욕망에대해사유하며시를다시쓰는계기를맞았다.시인은뒤표지글에서“첫시집이고난받는삶의형식이었다면,이번시집은인간의위엄을기록하는영혼의형식이다”라고밝힌다.미래세대를위한책임의식을담았다는소회를밝히기도한김중식,그가세상밖으로나가땅에발붙이고치열하게써낸새로운시세계가펼쳐진다.


사막처럼끝없고지옥처럼끓어오르는생,
그러나“풀잎은노래한다”

혁명이아니면사치였던청춘
뱃가죽에불붙도록식솔과기어온생
돌아갈곳없어도가고싶은데가많아서
안가본데는있어도못가본덴없었으나

독사대가리세워서밀려오는모래쓰나미여,
바다는또어느물위에떠있는것인가
듣도보도못한물결이옛기슭을기어오르고
두눈은침침해지고뵈는건없는데

온다는보장없이떠나는건나의몫
신마저버린땅은없으므로풀잎은노래한다
온몸을떨었어도그대오지않았듯이
더듬어돌아올길이멀어지는게두려울뿐.
-「그대는오지않고」부분

김중식의시세계에서‘사막’은‘생의유비’로서꾸준히활용되었다.첫시집에서사막같은삶의고행에서이탈하여자유로워지고자했던욕망이컸다면,이번시집에서는이런지옥같은생을‘그래도’살아나가보고자하는의지가더돋보인다.인용된시에서보듯여전히날카로운감각으로세계를인지하지만,“독사대가리세워서밀려오는모래쓰나미”에서도“신마저버린땅은없으므로”,떠나고또성장해서돌아올날을가늠해본다.“지상에세운천국은/팝업그림책으로벌떡일어서는병풍지옥도”(「1394is주체」)처럼자유를억압하고인위적인천국을실현하고자하는힘을풍자하면서도,“세상이아니라사는게더러운것”(「때수건이열리는물오리나무」)라는입장을견지하는것이다.


사막을횡단하는고래,태평양을건너는낙타
기적같은삶을위한미래비전

이루지못할약속을할때
우리는다가가면서멀어진다
우는이유를잊을때까지우는여자여
우리는가끔씩울어야한다
우주가좁도록세포분열하는아메바처럼
우리는만난적도없는데한가득헤어져있기때문이다

내가아는건
가을숲불꽃놀이가끝나더라도
우리가할일은봄에꽃을피우는것
가장깊은상처의도약
가장뜨거웠던입의맞춤
할례당한사막고원에핀양귀비처럼

언제파도가왔다갔는지
사막에서바다냄새가난다
이루지못할약속을할때
우리는다가가면서멀어질지라도
봄에할일은
꽃을피우는것
-「물결무늬사막」부분

사막과바다는가장대조적인공간이지만시인은오늘도사막에서바다의물결을본다.그가불모의세계에서생명의힘을보는이유는,시집전체를관통하고있는사람과사랑에대한믿음때문이다.서로떨어져있어영원히만나볼수없을것같은존재들도서로교감이가능한만남,각기다른입장에있는이들이화합할수있는대긍정의세계를꿈꾸며좀더나은내일을준비하는시인의자세가시편들마다도드라진다.이시집의해설을맡은시인차창룡은위의시를「시인의말」말미의“천국은하늘에,지옥은지하에,삶과사랑은지상에”와연결해읽어내며“쓸데없이지상에천국을건설하겠다는욕망을버리고,지옥은지하에있으니걱정하지말고,사랑의왕국을지상에건설해야한다는말이다.그사랑의왕국은사실상우리가지옥이라고생각했던‘지금이곳’이기도하다”는점을짚는다.25년만에돌아온그가마음놓고숨쉬는것마저어려운오늘의지옥에내놓는‘소소하지만확실한희망’은결국사랑이다.


인공지능이신의영역에도전하고있다.나는인간의영역에재도전하련다.첫시집이고난받는삶의형식이었다면,이번시집은인간의위엄을기록하는영혼의형식이다.제3시집은누가쓰더라도인류의미래비전이될것이다.그래서자꾸뒤돌아보았던것일까.최후의인간이던시인이미래의인류를대표하리라.

사막을횡단하는고래,태평양을건너는낙타.젊은시절에나를숨쉬게해준이미지들이아직도내삶속으로걸어들어오고있다.짠맛없는바다가없듯이고통을피할수있는삶은없다.사람이바뀌지않는한,다른세상은없다.좀더나은사람을향하여갈뿐이다.세상은그만큼달라질것이라고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