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부제가 썩는 나라 (최승호 시집)

방부제가 썩는 나라 (최승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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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인 최승호의 신작 시집 『방부제가 썩는 나라』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최승호는 1977년 등단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시들을 쏟아내며, 마치 온몸을 시에 부딪치는 듯한 강렬한 시적 상상력을 보였다. 사물을 느껴지는 그대로 포착해내는 직관력을 바탕으로 시인은 현대 문명의 화려한 껍데기 아래 썩어가는 사회의 단면을 들추어내면서 죽음을 향하는 육체로서의 인간을 노래하는 시들을 써왔다. 신작 시집 『방부제가 썩는 나라』에는 총 105편의 시편이 실렸으며,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강한 비판 의식을 비롯해 특유의 위트 있는 시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악마의 배설물로 가득한 사회,
그곳에 화두를 던지는 시인의 외침!

최승호의 시 세계에서 이곳은 “방부제도 썩는 나라”다. 여기서 썩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하나, “뻔뻔한 얼굴”(「방부제가 썩는 나라」)뿐. 또한 이 나라는 악마의 배설물, 즉 돈! 오로지 돈으로 가득 찬 곳이며, 악마의 배설물들이 넘쳐흐르는 곳, “황금구더기 우글거리는 똥바다”(「악마의 배설물」)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자본주의를 향한 강한 믿음에 취해 모든 것이 부패해버린 곳, 최승호의 “방부제도 썩는 나라”는 바로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이 세계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먹고 번식하라
종족을 번식시키며 먹어라
그것밖에 너희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괌 과일박쥐 튀김 요리」 부분

노랑부리저어새의 긴 입으로
나는 말하겠습니다
시화 갯벌에서는 우리 모두가 무력하게 죽었지만
새만금에서는 우리의 숨결이
거대한 관을 깨뜨릴 것입니다

―「말 못 하는 것들의 이름으로」 부분

방부제도 썩는 나라에서 우리가 살아갈 이유는 “먹고 번식하”는 일뿐이다. 스스로에 대한 기억이 없는 “여든 살 로봇처럼”,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고철 무덤으로 걸어가는 로봇처럼”(「내 몸에서 내가 모르는 일들이 일어난다」), 최승호의 시 세계에서 인간은 그저 생존을 위한 활동에만 목을 매는 고철 덩어리 혹은 고깃덩어리이다.
때문에 최승호는 인간으로서의 ‘나’가 아닌 다른 타자/생명체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이 시집에서 “나”로 지칭되는 화자는 대개 인간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위치에 놓인 다른 생명체로 드러난다. 새만금 사업으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갯가재, 가시닻해삼, 달랑게……” 등의 이름 뒤에서 나는 “시화 갯벌에서 죽은 민챙이의 입으로” 말한다. 나는 “노랑부리저어새의 긴 입으로” 말한다. 자연을 훼손하는 새만금은 “세계 최대의 관”이라고, 그곳에 머물던 자연을 죽이는 일이라고 말이다. 최승호 시에서 자연의 생명체는 시인의 입을 빌려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들이 시인의 입을 통해 스스로 목소리를 가질 때 “거대한 관을 깨뜨릴” 가능성이 생길 수 있음을, 자연의 숨결이 똥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에 다른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저자

최승호

시인최승호는춘천에서태어났다.시집으로『대설주의보』『고슴도치의마을』『세속도시의즐거움』『그로테스크』『반딧불보호구역』『아메바』『아무것도아니면서모든것인나』등이있다.오늘의작가상,김수영문학상,미당문학상,대산문학상,현대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I
대파/얼어죽을무소유/죽어봤자고깃덩어리/내죽음에바코드를붙이지마라/국가가유령을책임져야한다/방부제가썩는나라/파리채/큰빗이끼벌레는그놈의아바타다/대운하/악마의배설물/변기트럭/먹는일밖에일이없는일요일/멍때리기대회/백수는과로사한다/불로장생법/커튼콜/두개의혀/굴비가강연을한다/우리는쥐뿔들에게상처받는다/복수심이강한노새/월식/머리잘린개구리/스테이크위의정육점/나와나타샤와당나귀식당/외눈박이동물원/캥거루에게두들겨맞아턱뼈가부러진캥거루사냥꾼에게보내는편지/모든낚시는사기다/내몸에서내가모르는일이일어난다/괌과일박쥐튀김요리/복부비만/절망은제얼굴을안보려고술에머리를처박는다/재벌4세는모르리라/콧방귀/타조털먼지털이개/공겁회귀/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나는밥도둑이다/개망초꽃

II
말죽거리주유소에고독이찾아온다/큰개자리별의개죽음/큰개자리별에서무슨메아리가돌아오나/어두운죽음의마을/송장헤엄치게의황금빛눈알/내눈에지느러미를다오/말못하는것들의이름으로/겨울은시베리아횡단열차보다길다/봄밤/골초/폭죽소리/우리가누구인지도모르는생애/캥거루족/쥐코밥상앞에앉은생쥐들처럼/황혼이혼/며느리의이름으로/중대가리풀의괴로움/꽃나무/구석/꼬막/마지막코뿔소/슬픈진화/두접시에나눌수없는외로움/치과의사가세상에없다/아픈개미가있다/불가촉천민/엽낭게의사생활/종이접기가끝났다/지중해난민선/일곱살염전노예/다슬기해장국집에서/마침표/도마/손을잡지않는펭귄공동체/그마을을일찍떠났어야했다/그로테스크한동굴속의흰지네

III
복면가왕/사막의목소리/누란樓蘭왕국/확실한것은없다/허공을걸어다니는구두/하루로가는길/이를악물고달리는노인/걸어도발자국은없는것/로봇걸음을걷다/이백의백발/흰긴수염고래의노래/쥐라기해안/노래가되지못한노래기/미세먼지주의보/돌들의시간/죽은시간의악령/꼬리없는시간/흐린날의장례식/귀머거리마이산/부도밭/절대로변하지않는것/우리는이름뒤로사라진다/황산벌에서/바람의노트/버마비단뱀가죽가방/비누/분화구/별들을풀어줄때/붕鵬새의새장/추운날/흰올빼미의본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