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에서의 하루 (김선재 시집)

목성에서의 하루 (김선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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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기척 없이 기적 없이 일상에 스미는 움직임
마음의 자취를 새기는 위상기하학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재의 두번째 시집 『목성에서의 하루』(문학과지성사, 2018)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 『얼룩의 탄생』에서 흐리마리한 흔적들을 더듬으며 상실의 슬픔을 담담하게 기억해냈던 김선재는 소설집(『그녀가 보인다』), 연작소설집(『어디에도 어디서도』), 장편소설(『내 이름은 술래』) 등 여러 소설을 선보이며 ‘기억’과 ‘관계’를 미학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 또한 받아왔다. 감각적인 문장과 풍부한 표현력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쓰는 사람’으로서의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준 김선재는, 이번 시집 『목성에서의 하루』를 펴내며 또 다른 도약을 보여줄 채비를 마쳤다.

구석에서부터 타전된 작고 분명한 움직임

갈 곳이 없을 때마다 위와 아래를 바꿨지만 여전히 위와 아래는 자랐다 누군가 빠져나가면 누군가 들어오고 고개를 흔들수록 선명해지는 그늘
- 「철봉」 부분

첫 시집이 불분명한 기억 속의 슬픔과 재회하는 과정을 담았다면, 두번째 시집은 일상을 미세하게 진동시키는, 마음의 한구석에서부터 전해져온 감정의 궤적을 보여주고 있다. 처연하지만 담담하게 우울을 응시하는 시적 태도가 유지되면서도, 이번 『목성에서의 하루』는 표현의 절제와 언어의 조직을 통해 가닿고자 하는 감정의 공간을 좀더 자유자재로 변주한다. 특히 경계를 지시하는 시어들을 빈번하게 등장시키며 이 효과를 증폭시키는데, 문학평론가 조강석은 시집 해설에서 이를 물리적?심리적 위치와 연결 방식의 변형을 통해 마음의 궤적을 추적하는 ‘위상기하학’이라고 명명하며 경계와 관련한 시어들이 기능하는 원리에 대해 설명한다. “안과 바깥, 위와 아래라는 물적·심적 ‘방위사(方位辭)’들이 시집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공간의 규모를 수시로 조절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지평선, 해안선, 테두리, 가장자리, 모퉁이, 구석 등이 심리적 변경의 수축과 확장을 주관하고 있다.”
저자

김선재

시인김선재는1971년통영에서태어나서울에서자랐다.숭실대학교문예창작학과박사과정을수료했으며,2006년『실천문학』에소설을,2007년『현대문학』에시를발표하며문단에나왔다.시집『얼룩의탄생』,소설집『그녀가보인다』,연작소설집『어디에도어디서도』,장편소설『내이름은술래』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열대야/백白/부정사/담장의의지/한낮에한낮이/하지/오늘하루무사하리라는걸알고있었지만/서쪽으로난창이있는집/사실과취향/거리의탄생/그날이후/우리는누군가가되어/모임/방의미래/눈사람/열리는입/반성의시간/한낮의독서/관계후의자세

2부
목성에서의하루/가벼운나날/사탕이녹는동안/순서/꿈의서사/평면위에서/달리기/남은것과남을것/Biei/적선동/밤의동물원/그곳/희고차고어두운것/남아있는부사/그린란드/흔들리는노래/바람이우리를/이상한계절/없어요

3부
중얼거리는나무/뜀틀/철봉/오늘의기분/십일월/새가새로/1인용식탁/전날의산책/언덕들은모른다/믿음/주말의영화/언젠가의석양/큰새/구석의세계/어떤날의사과/머리위의바람

해설
구석으로부터의타전·조강석

출판사 서평

가도가도덥고슬픈꿈은계속될까

가도가도여름이었죠.흩어지려할때마다구름은몸을바꾸고풀들은바라는쪽으로자라요.누군가길을묻는다면한꺼번에쏟아질수도있겠죠.쉼표를흘려도순서는바뀌지않으니까.곁에는꿈이니까괜찮은사람들.괄호속에서깨어나는사람들.[……]잎사귀처럼바닥을굴러몸을만들면,바람을숨긴새처럼마디를꺾으면,안은분명할까요.뼛속을다비우면,바깥은안이될까요.아직가도가도어둠이에요.
-「열대야」부분

감정의공간을탄력적으로운용한다고해도마음의자취를좇는일은만만치않다.서시「열대야」의맨첫문장에놓인“가도가도여름”이라는표현은한계에부딪친상황속에서의힘겨운모색을잘보여준다.“쉼표를흘려도”“바닥을뒤집어도”혹은“마디를꺾”거나“뼛속을다비”워도순서는,안과밖은,어둠은여전히그대로인것만같다.“창문이정지하고안은쏟아진다쏟아지는안을닫을길이없다그곳에닿을길이없다”(「한낮에한낮이」)라거나“갈곳이없을때마다위와아래를바꿨지만여전히위와아래는자랐다누군가빠져나가면누군가들어오고고개를흔들수록선명해지는그늘”(「철봉」)에서보이듯,마치초현실주의회화처럼사방의경계가무너지고전복되는와중에도실패는반복되고모색은계속된다.

그럼에도오늘을밀고가는힘,“내일은다시없는사람들이되어요”

무한의방그방의구석,구석의한가운데앉아있다.주위에는무수한창.창은풍경을되비추지않는다.다만어떤예감이되어지나갈뿐.흰물방울이흐를뿐.버려진공처럼구를뿐.그러니점이되기로한다.잠잠히점이되기로하자.어제지운상처와내일의상처사이에서.

때로사람의기록과사랑의기록사이에갇힌다.기억은종종기억을버리고기록이되는쪽을택한다.나는기록을지우는사람.지워지는사람.서쪽의구름처럼모여드는이름을되뇌는사람.어떤겨움의겹은계단처럼희다.셀수없이부풀어오른다.부드럽고고소하게,고소하고따뜻하게.

[……]

마지막계단에서처음의계단을향해
기록되지않은사실에서
기록을버린기억쪽으로

기적없이나는잘살고있다.
-「희고차고어두운것」부분

방은한정된공간이지만공에게는넉넉한공간이되고,점에게는거의거의무한이된다.흥미로운점은“어제지운상처와내일의상처사이에서”내밀해지면서무한을얻는법을알아간다는점이다.어제와오늘이상처만을통로로지닌다면누구에게도넓고따뜻한방이주어질수없겠지만,상처와상처사이가무한이되는변환을통해“겨움의겹”을“부드럽고고소하게,고소하고따뜻하게”발표시키는효소가첨가될수있다.‘기억’과‘기록’사이의화학반응이일어나는방,그한구석을멀리멀리확장해나가는힘,그꾸준한저력이도드라진다.

젖은바깥이안이되는
거기에는
내가있고내뒤에는
바닥없는당신이있어서
기척없는기적은일어나지않아도
내일은

사람이되어요
다시없는,
사람들이되어요
-「머리위의바람」부분

막혀있던구석이또다른밖을향하는하나의경계로다시설때,우리는다시없는사람으로다시만날것을약속할수있다.오늘닿은“여기도거기는아니”(「십일월」)겠지만,당신과나는또“겨우어긋나”(「거리의탄생」)겠지만,그렇게시로써나아가면서내일의상처와삶,사랑을만날것이다.김선재는시인으로서부드러운손가락으로미묘한감정의경계를더듬으며마음이움직이는궤적을따라걸어가고있다.

■추천의말

이시집은자신의자취를조정하는내밀한방에비견되며,변화무쌍한자취를조율하는시어는안과바깥,위와아래라는물리적이고심리적인‘방위사方位辭’들이시집곳곳에서반복적으로사용되면서공간의규모를수시로조절한다.“유머가된사랑”이나“추억이된혁명”과같은소문과비밀들이영토확장에따라하강과상승을거듭하는세계들의기저에기입되고그것은이따금일상적지각에기별을전해온다.마음의모양을결정하던사람과사실과사태와사랑이모두해가기우는쪽어딘가로옮겨지고이제그것은변경을밀고가는이에게는무한이될“지상의영토끝까지”동행한다.덤덤하고수일하며수일하고덤덤한데어쩌면이리도처연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