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로렌의 시간 (기혁 시집)

소피아 로렌의 시간 (기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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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기혁 시집 [소피아 로렌의 시간]. 《네번째 사과》, 《바리데기를 새기다》, 《엘리자베스 시대》, 《블라디보스토크》, 《마블링》등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저자

기혁

1979년경남진주에서태어나한국예술종합학교서사창작과를졸업하고동국대학교국어국문학과대학원에서박사과정을수료했다.2010년『시인세계』신인상시부문,2013년『세계일보』신춘문예평론부문으로등단했다.시집『모스크바예술극장의기립박수』가있다.김수영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소피아로렌의시간
소피아로렌의시간
대이동
물의오파츠
남반구
루프트한자Lufthansa
창문극장
라디오데이즈
네번째사과
무연탄
몽타주
독재자
봄의그라피티
무반주첼로모음곡이들리는가로수길에서
내간內簡
눈내리는마을
직립보행

2부봄은한쪽눈을감고온다
아지랑이
직립보행
심장
바리데기를새기다
금환일식
여독旅毒
인클로저enclosure
생일
두더지
신촌에서
외올실
봄은한쪽눈을감고온다
우로보로스
전신목
지하철3호선

3부버드배스birdbath
랜드마크
붉은물병
바바리맨
옐로카드
DSLR
천사의몫
헬보이Hellboy
엘리자베스시대
동해안
릴리퍼트플레이홈스
파르티잔리뷰
테이블
은유돼지삼형제
주사위
안녕하세요,쿠르베씨
버드배스birdbath
신호등아래서
육교위에서

4부태양의풍속
포스트post
태양의풍속
자살한인공위성이우리의두눈을꽃잎으로문지르고
미세먼지
블라디보스토크
오비디우스
말풍선
미셔너리포지션missionaryposition
마블링
턱선
숲길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
우각雨脚
지구
입속의검은잎
고급독자

해설
권태의고고학ㆍ함돈균

출판사 서평

청춘의페이지에담긴폐허의눈빛
권태의고고학으로희망을말하다

깊이가증발한이세계의증인,시인기혁의두번째시집이문학과지성사에서출간되었다.기이하고아름다운시적무대를한편의부조리극처럼연출하며김수영문학상을수상한첫시집이후4년만이다.이번시집『소피아로렌의시간』에서기혁은메마른풍경으로만설명할수있는이시대의진실을‘기억’을통해선연히드러낸다.황량한세상에켜켜이누적된희미한삶과슬픔의내력은,65편의시들에화석처럼단단히남아있다.시인은이‘상처의일기’로,돌아가야할풍요로운말과진정한삶이우리에게있다는사실을암시하면서역설적으로희망의증거를내비치고있다.

이시집에서세계는똬리를틀고있다.현재는까마득한태고와연결되고,일상의집은황량한인도어느사막으로이어지며,사물세계는유물들의전시관이된다.전지구적으로뻗은문명론적촉수는또다른장소와시간과사물을지시하며연관을맺고있다.타버린도시의폐허에남은그을음처럼,세계는지금여기가유일한시간이아님을다만암시하고있을뿐이다.지금여기는지나간시간의잔해다.우리시대의진실은이지극히말라붙은풍경을통해서만드러날수있다.심연이증발한세계에서기혁은그증발의풍경을궁핍한언어로드러내면서,희망을희망하지않는방식으로희망의근거를내보인다.사막의어둠한복판에서그는‘기억’을통해새로운탄생을감지하고있다._함돈균(문학평론가)

권태의시대,사라진진실을찾아서
한번도타인의일생을감전하지못한기억들이살아있는나무처럼낙엽을흩뿌렸다
―「전신목」부분

한시절을풍미했던배우의이름이담긴제목과세피아톤을띠는시집빛깔에서자연스레떠오르는정서가있을것이다.기혁은무성영화의스크린처럼황량한오늘을그대로보여주는것으로써우리시대의진실을상연한다.그런데한가지,이시집속‘소피아로렌’은배우가아니라‘미라’다.시인이표제시에덧붙여둔말을옮겨보면소피아로렌은1934년타클라마칸사막에서발견된,머리카락과눈썹이그대로보존돼있던백인미라의별칭이다.같은해가을태어난배우소피아로렌의이름을따후대의연구자들이그런별명을붙였다고한다.시인이바라보는이시대사람들의모습은미라와닮았다.“매순간의삶을이미지가선점하도록내버려”(「입속의검은잎」)둔채,“나는점점더관광지가되어간다”(「루프트한자」).“어떤비밀도없다는듯”“무언가/뻑뻑해지지않도록”서로에게무해한‘스몰토크’를주고받지만그것은대화가아니다.“속뜻은어딘가에감춰져”있고(「생일」)진심은“입술을통과하지못한말들”로남아머릿속을맴돌며영영전해지지않는다.겉은멀쩡하지만껍데기뿐인,살지도죽지도않은존재.“자신의머리카락에휘감긴”“TV속미라”와“방바닥”위에서“백년뒤자랄머리카락을기르고있”는나는그러므로다르지않다(「소피아로렌의시간」).말들이어떠한의미도갖지못한채헛돌때세상은표면적으로아무일도없는것처럼무미건조하고지리멸렬하게흘러간다.내일도변함없이권태로울것이기에아무것도하지않지만더더욱아무것도하고싶지않은나는다만매일같이다짐할뿐이다.“오늘하루,심장은잊기로하자”(「봄의그라피티」).

기억,희망을희망하지않는방식으로희망의근거를내보이다

세계의아침은언제나아플뿐,
코피를쏟아가며뛰고넘어지고
다시일어서야하는이유를묻지는말자.
―「옐로카드」부분

『소피아로렌의시간』은“피복이갈라진고압의삶을지탱할수록소음과광증”을더해가는세계를마주해적어내려간“일기장”(「전신목」)이다.그러나이는권태의일기일지언정절망의기록은아니다.
시인이발을딛고살아가는이곳은우리보다앞서살아갔고죽어갔을누군가가스며있는곳이다.기혁에게시를쓰는일은이세계의역사를쓸어보고만져보는일이며,그래서“아프다.”세계의역사는곧“상처의역사”와마찬가지다.상처의역사는풍화되고사라지는것이아니라화석처럼단단히남아영원히죽지않고오히려새롭고도“강건하게태어난다”(시인의말).수백만년전인류(‘아르디’,「직립보행」),고대의상징(「우로보로스」)이나유물들(「물의오파츠」),백석,김수영,김기림,서정주,최승자,기형도처럼“침묵에서형식을상연할수있었던”선배시인들에대한편지혹은오마주……“내력”이나“자취”,또는“흔적”이나“얼룩”이라고일컬어볼수있을이풍부한기억들은일상과까마득한태고를하나로이으며,“56억7천만년이지났지만/여전히길이들지않는햇살속에서/조물주가만든이상한/규칙들을뒤바꿔보면서”무언가를할수없을까궁리해온시인의깊은고민의궤적이다.기혁은심연이증발한시대의권태나상처를드러내보이는데서멈추지않을것이다.“검푸른멍들을저녁이라부르지말자.”아직해가저물기까지는긴시간이남아있다.아무것도끝나지않았다.우리를쓰러뜨리는것들(“파도”“바람”)에게는“어떤입도/허락하지말자”(「옐로카드」).‘없음’을통해‘있음’을드러내면서,세계의구멍들을쓸어보는것으로새로운탄생을말한다.기혁에게는여전히할말이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