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중얼거리다』(문학과지성사,2019)는기형도의30주기를맞아그가남긴시들을오롯이묶은기형도시‘전집(全集)’입니다.그의첫시집이자유고시집인『입속의검은잎』(1989)에실린시들과미발표시들97편전편을모으고,‘거리의상상력’을주제로목차를새롭게구성한책입니다.‘길위에서중얼거리다’는‘정거장에서의충고’와함께생전의시인이첫시집의제목으로염두에두었던것으로익히알려져있습니다.여전한길위의상상력으로해를거듭할수록두터워지는기형도시의비밀스런매력이야말로우리가끊임없이그의시를찾고또새롭게읽기의가능성에도전하는이유일것입니다.
“30년이라는긴세월은기형도라는이름을잊게만들기보다는더풍요롭게만들었다.어떤문학,어떤이름들은망각을향해가는시간의힘을거슬러가는기이한힘이있다.그힘을만든것은기형도시내부의뜨거운생명력이며,기형도라는이름과함께30년을보냈던익명의독자들이다.저30년동안새로운독자들이나타나기형도시를새로읽었고다시읽었다.기형도의시는잊히기는커녕끊임없이다시태어났다.“추억은이상하게중단된다”(「추억에대한경멸」)라는그의문장과는달리기형도의추억은중단된적이없다.30년동안새로운세대의독자들이계속출현하고있다는것은한국문학사의예외적인사례에속한다.
우리는다시기형도의거리에서있다.“저녁거리마다물끄러미청춘을세워두고”(「질투는나의힘」)“그렇다면도대체또어디로간단말인가!”(「여행자」)“길위에서일생을그르치고있는희망이여”(「길위에서중얼거리다」)라고탄식하던거리,길위에서문득“일생몫의경험을다했다”(「진눈깨비」)“모든길들이흘러온다,나는이미늙은것이다”(「정거장에서의충고」)라고읊조리던바로그거리말이다.“너무많은거리가내마음을운반했구나”(「가수는입을다무네」)라는문장처럼시인은거리에서어떤낯섦과경이를마주한다.거리에서그는목표도경계도없는헤맴사이로다른삶의가능성을꿈꾸었다.거리는가야할곳을알려주지도머물지도못하게하지만,다른시간을도래하게하는유동성의공간이다.거리의낯선순간들에대해“그것들은대개어떤흐름의불연속선들이접하는지점에서이루어진다.어느방향으로튕겨나갈지모르는,불안과가능성의세계가그때뛰어들어온다.그‘순간들’은위험하고동시에위대하다.위험하기때문에감각들의심판을받으며위대하기때문에존재하지않는다.”「어느푸른저녁」시작(詩作)메모)라고쓴다.기형도는거리의혼란과현기증을새로운감수성의원천으로만들었다.거리는특정한장소에고정될수없게하고그장소의정체를알수없게한다는측면에서‘장소없음’의공간이지만,장소없음은역설적인희망의사건이었다.거리는현대적불안의공간이며,무한한잠재성의시간이었다.
기형도의거리는시인의사회적경험과미적감각이동시에관여하는현대적인지점이다.거리는동시대의사회적감각을일깨웠으며,다른한편으로는거리에서쓰는자로서의새로운심미적개인의얼굴을탄생시켰다.“나는한동안무책임한자연의비유를경계하느라거리에서시를만들었다”(『입속의검은잎』시작(詩作)메모)는기형도와그세대의문제적인감수성이었다.“거리의상상력은고통이었고나는그고통을사랑하였다”(같은글)라는고백은그시적감각의일부를날카롭게드러낸다.이문장을변형하여이렇게말할수있을지도모른다.‘기형도의상상력은고통이었으나우리는그고통을사랑하였다.’하지만,고통을사랑하는것은하나의방법만이아니며권위를필요로하는것은아니다.기형도라는이름의보이지않는이우정의지평에서아무도기형도를독점할수없다.‘거리’의문맥을지우고도기형도를읽는방법은무수히많다.기형도의시앞에서다만그고통을나누어사랑할뿐,기형도시의비밀은세대를이어가며오히려풍부해진다.깊은사랑의경험은대상의정체를파악하게하는것이아니라,그비밀을더두텁게하고그앞에서겸손하게한다.지속되는사랑은새로읽기와다시읽기를멈추지못하게한다.그것은차라리은밀한무지를발견하는일이다.바라건대이시집을통해기형도시의비밀이더두터워지기를.”-이광호(문학평론가),「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