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한상상력으로범람하는시어
현실을무너뜨리는다층적꿈의세계
2015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수상한임지은의첫시집『무구함과소보로』(문학과지성사,2019)가출간되었다.“이미지에대한변전(變轉)의상상력이과감”하고“일상적삶의풍경들을간결한터치로낯설게녹여”(문학평론가강계숙,강동호)낸다는평을받은시인이5년간쓰고다듬은시편들을한데묶었다.
등단당시임지은은“비약”과“질문을좋아”하고“시간이만들어놓은무시무시한질서를뛰어넘”고싶다는포부를밝힌바있다.이에걸맞게『무구함과소보로』에서시인은현실에서떨어져나온존재들을대신하여예리한질문을던지고,천진한상상력의시공간을펼쳐놓는다.“자꾸만사라지는것들에게이름표를”(「모르는것」)붙이고“나를뚫고나온질문들을”나무에걸어“대답보다거대”한열매를맺고자노력한다(「궁금나무」).행이거듭될수록의미가변모하는명사형시어들을통해현실의독자들이꿈의세계로접속할수있는통로이자교차점을제시하는것이다.그러므로『무구함과소보로』는수많은명사가뜻밖의의미로튀어오르는전환의순간을,무화된구조속에서시의새로운가능성을타진해가는과정을고스란히보여준다.
진술을무너뜨리는명사의도미노
『무구함과소보로』에는다양한명사형시어가등장한다.이들은낱낱으로해독되기보다하나의맥락으로연결되어독특한영향을주고받는다.마치도미노처럼하나가넘어져다른하나의상태를완전히전복하는방식으로연쇄되는것이다.
필통에코끼리를넣고다녔다
지퍼를열었는데코끼리가보이지않았다
거짓말이었다
오렌지였다
나는덜익은오렌지를밟고
노랗게터져버렸다
―「과일들」부분
“필통”과“코끼리”는현실에서거의무관한명사이다.그러나임지은의시에서코끼리는필통에넣고다닐수있는존재가되며,어느순간“보이지않”는대상으로변한다.눈여겨볼점은이러한진술들이“거짓말”이라는명사를통해모두지워지고“오렌지”로새롭게등장하는과정이다.
임지은은당장의진술이바로다음순간에거짓이될수있다는것,현실에서우리가확신할수있는대상은아무것도없다는이야기를하려는듯보인다.결국에는필통,코끼리,오렌지가바로다음연에서“나”라는일인칭으로수렴된뒤“노랗게터져”버리는것처럼말이다.이렇듯시인은명사가지닌확실성을역으로이용하여현실의모호성을환기하고,차곡차곡이해를쌓아가는기존의독법에낯선긴장감을불어넣는다.
“이꿈이언제끝날지알수없다”
그렇다면시인은단지현실의견고함을뒤흔들고그불확실성을지적하기위해자신의상상력을동원하는것일까.
꽃.
나는끝을꽃으로잘못썼다
신기했다
―「식물에가까운책」부분
임지은에게시는“쌓고쌓는것”이며“쌓고무너뜨리는”동시에“토닥거리는”방식으로씌어진다(「건축두부」).그가이러한무화의글쓰기를반복하는이유는궁극적으로‘안과밖’의경계를지우기위함이다.“끝”이“잘못”을거쳐“꽃”이될수도있다는것을,얼핏무관해보이는존재들이실은무관하지않을수도있다는것을증명함으로써독자들을생경한지점에옮겨놓는것이다.
이렇듯시인은수많은명사가기존에부여받은의미로부터벗어나뜻밖의자리를찾아나서길소망한다.모든존재가“긴밀하게부서지”(「구성원」)고변환되는상상의과정을거쳐“더이상갈아입을몸이없”(「존재핥기」)어질때까지거듭나기를촉구한다.이러한요청은임지은이세상에던지는질문인동시에자신의시쓰기를끊임없이담금질하는각오이기도하다.
누군가나를문이라고부르기시작한다
나는거의다휘어졌다
눈썹위에걸어둔표정이발등위로떨어진다
운동화의밑창이헐거워진다
어떤표정도짓지않음으로
나는계속될것이다
―「연습과운동」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