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 (윤병무 시집)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 (윤병무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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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힘겨운 오늘을 지우고 ‘옛날’과 ‘훗날’만 남아
별처럼 반짝이는 삶

1995년 동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와 올해로 등단 24년을 맞은 시인 윤병무의 세번째 시집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529번으로 출간되었다. 두번째 시집 『고단』 이후 6년 만에 찾아온 새 시집이다. 첫 시집 『5분의 추억』 이후 두번째 시집 출간까지 1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던 데 비하면, 이번 시집 출간까지는 그리 오래 걸린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4년이라는 그의 짧지 않은 시력에서 드물게, 그래서 귀하게 찾아온 세번째 시집이기에 기대와 반가움이 더욱 크다.
일상의 서정이 차곡차곡 쌓인 전작 『고단』에서 드러났던 고단하고 비루한 삶의 하중과 슬픔은 그대로 이어지지만, 이번 시집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에 이르러 시인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삶이 정말 고단한 것일까?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두 개의 소제목 아래 나누어진 58편의 시편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저자

윤병무

1966년서울에서태어나대전에서성장했다.1955년가을동서문학신인상을수상하면서등단했다.시집으로『5분의추억』『고단』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자는사람슬퍼서자는사람
달이불
-ㄴ지모르겠어
불면
보월步月
기쁜-슬픈이야기
당신과나의학이편
아닌이야기
당신의괄호
이름에는까닭이
달우물

초가을초저녁초승달아래
그만―,
이웃집
타박네
불면2
재채기
청소년
반달
춘분
고무장갑
정월의밤
조타수
뒷모습
죄와벌
작별동행
아버지의베개
관상
불기2563년춘분
실상사철조여래
말의뒤편
그믐달
생각을생각하며


볕요를깔고
수압
꽃버선
갑티슈
고봉밥
노을님의말씀입니다
요凹에뉜아이
달집
물비늘
집으로집으로
헛가래
양치
달마을
홑이불
서울역
가훈
볕요
날개없는새
붕어빵
조문
조문2
속편
세면과체면
청산도에가면
어떤날
술과말
문자메시지

해설
시인이여는또다른우리의세상?김동원

출판사 서평

시속에녹아든과학적관점
시는새로운관점으로새로운세상을연다.그것은과학과비슷해보인다.새롭게알려지는과학적사실들또한우리에게그이전과는전혀다른세상을열어주기때문이다.그러나시가과학과다른점은과학이새롭게밝혀진하나의사실을근거로하여새로운관점을열어준다면,시는시인마다다른관점으로세상을볼수있다는것이다.이번시집에서윤병무의관점은과학의관점마저수용하여그만의새로운세상을펼쳐보인다.

걸음을본다
발길을듣는다

내행성행인들이
아침이면떠날곳으로바삐돌아간다

백육십오년에한살먹는해왕성은
밤길에말을분실한다

소란한소행성의상념이
운석으로다져진발끝을본다

비가역으로이끄는중력을본다
양말이라도홀랑뒤집고싶건만
―「집으로집으로」전문

퇴근하고집으로돌아가는직장인의흔한일상을그리는이시가평범하지않게보이는이유는그들을“내행성행인”으로바라보는시인의관점에서비롯된다.“내행성행인”이“아침이면떠날곳으로”돌아가는퇴근길.그걸음은행성의움직임을동시에만질수있게한다.이번시집의해설을쓴문학평론가김동원은이구절의관점이“달의지평선너머로떠오르는행성으로서의지구를보았을때와동일한관점이라고”지적하며,“시는과학의관점까지시의이름아래녹여내새로운세상을열곤하며,그때면우리의삶도다른세상을살수있”는데,바로이러한시의특성이“윤병무의이번새시집에서특히눈에띄는점이”라고덧붙였다.

힘겨운삶의위안을주는것들
윤병무의시가향하는걸음은주로고단한일상이나슬픔의자리를향한다.윤병무의시에“우리시사에서간과되고있는생활의서정이있다”고말한이는시인함성호였다.그는또한“거기에는생활하는자의슬픔이아니라,생활이라는삶자체의슬픔이있다.그슬픔을윤리적으로인간삶의보편성과마주하려는한도덕적자아가여기있다”라는말로“슬픔의윤리학을통한도덕적지향”이“윤병무시의핵심이고그의생활이추구하는목적이”라는생각을역설했다.(『고단』해설)그러나이번시집에서윤병무는슬픔에만머물지않는다.

머리를헹구는데
수압이낮아졌다

당신이돌아온것이다
돌아온당신이손을씻는것이다

기쁜상상은그만두자
당장눈이매우니
―「수압」전문

수압의변화로도감지할수있는‘당신’의존재는오랫동안함께살아온이라는것을짐작하게한다.이렇게늘함께하는이의부재는부재자체로는실감을주지못할지라도,그가돌아왔을때의함께있다는느낌이삶의큰위안을준다.“생활의서정”을이보다더감각적으로드러낼수있을까.윤병무는이러한위안을사람뿐만아니라자연을통해서도얻는데,그가주로기대는자연은바로‘달’이다.

올봄에도
돌고돌아
꽃보다먼저달이만개했다
―「불기2563년춘분」부분

‘불기2563년춘분’은‘2019년3월21일’이었으며,이날은보름이었다.보름달은언젠가는돌아오게되어있다.주기적으로반복되는자연스러운현상이때로는희망으로여겨지기도하는것이다.이는이번시집에유독많이등장하는‘반달’이시인의슬픔과외로움을나누어가지는모습을보여주었던것과맥을같이한다.완전하지않은반달에서자신의모습을보았던시인은온전하게제모습을갖춘보름달을기다리고있는것이다.

삶을다시채울수있는여지
첫시집『5분의추억』의해설말미에서문학평론가이광호는“윤병무의시에서시간의발견술이시간의원근법으로,혹은시간의직유법이공간의환유로전환되고있는장면을목도하고있”다고밝히고,“그런의미에서윤병무의화자들이뿜어내는고독의이미지들은고독의진술이아니라고독의존재감으로구상화되고있다”고지적한다.“우리가만나는세상의고독이란결국고독의실감,고독의시간성”이기때문이다.그리고이광호가설파한,“시간의발견술이시간의원근법으로,혹은시간의직유법이공간의환유로전환되”는이러한시작법은윤병무만의독특한시세계를만들어냈다.이번시집에서는여기서한걸음더나아가,과학의관점마저수용하며새로운세상을열어보인다.

우주의은하,은하의태양계,태양계의지구
지구의한반도,한반도의신도시
동산을눈붉은신발한짝이공전해요

오른신은괜찮다하고
왼신은절망해요
기쁨을향해슬픔을걸어요
기쁨을지나슬픔을맴돌아요
동산한바퀴가태양한바퀴면좋겠어요
곧장서른세바퀴돌고나면
기쁜-슬픈이야기의데자뷔를들려드리겠어요
오래전사라진별의빛을보여드리겠어요
―「기쁜-슬픈이야기」부분

우주에서은하로,은하에서태양계로,태양계에서지구로,지구에서한반도,그리고한반도에서신도시의동산까지시인의시선은상상할수도없는먼곳을바라보다가현실의공간으로점점가까이다가온다.그러나그것은단지공간의이동이아니라“신발한짝이공전”하는시간을의미하기도한다.“동산한바퀴가태양한바퀴면좋겠”다고바라는시인의마음은곧태양을한바퀴도는데1년의시간이걸리는것처럼시간이짧은산책을하듯지나갔으면바라는것인지도모른다.그렇게시간이흐른후에시인은“오래전사라진별의빛”을보여주고자한다.김동원은해설에서“우리가힘겨워했으나오래전에사라진과거어느순간의삶이어느별의행성에선빛으로반짝거릴수있다”는말로그의미를찾아냈다.현실의관점이아닌우주적관점으로보면지금의슬픔도별처럼반짝일거라는얘기다.하여“시인은우리에게가장힘겨운오늘을지우고‘옛날’과‘훗날’만을남긴다.”

당신과나의시간이엇갈려지나가도
당신은나의옛날을살고
나는당신의훗날을살고있는지모르겠어
―「-ㄴ지모르겠어」부분

이렇게남은‘옛날’과‘훗날’은,사라진다해도오랫동안반짝이는빛이되거나아직살아가지않은미지의시간이된다.슬픔에잠긴지금의삶도,이렇게빛날수있고또한채워나갈수있는여지를갖게되는것이다.

*뒤표지글

몸소갇혔던시의집을나선다.그동안밤이열리고문이닫히고,닻을내린채달이출렁였다.날마나달은잠겼다떠올랐다기울었다침잠했다.염주나묵주매듭을엄지로집듯,마모된달이매일한칸씩밤을감았다.닻의사슬은길겠지만,결국돌중하나일테다.녹슬어끊어지거나,끝까지감아올려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