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송지현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송지현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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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바삭하고 건조해지는 것 말이야.”

한없이 자유롭고 특별히 고귀해지고 싶었던 시절을 떠나보내며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송지현의 첫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문학과지성사, 2019)가 출간되었다. “좋던 시절을 흘려보낸 이들의 우울한 자화상”을 포착하여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소설가 오정희?성석제)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은 등단작 「펑크록 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를 포함하여 작가가 7년간 쓰고 다듬은 소설 9편을 한데 묶었다.
송지현은 회고와 추적의 방식으로 ‘돌아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작가다. 지나가버린 시절의 번민을 거듭 조망함으로써, 그 불가항력의 경험이 작중 인물들에게 남긴 비의를 섬세하게 짚어낸다. 그렇게 완성된 9편의 에필로그는 우리가 한때 어른이 되기 위해 혹은 사회로 편입되기 위해 겪어야만 했던 체념적 성장통을 떠올리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송지현이 무언가를 잃어버리면서 맞이해야 했던 성인식의 경험을 호들갑스럽지 않게, 시종일관 ‘바삭하고 건조한’ 스타일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인물들의 불행을 조금도 과장하지 않으면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성찰하는 이 젊은 작가의 시선은 오늘날 청년 세대의 막연한 상실감과 자조 섞인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는 우리가 지금-여기에 이르기까지 감내해야 했던 인생의 마디들을 되짚어보는 진귀한 경험이 될 것이며, 그 시기를 웃으면서 안타깝게 떠나보내는 또 한 번의 성인식이 될 것이다.

송지현의 소설은 우리를 웃겨주고 울려주며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게 만든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게 만든다._박상영(소설가)

비전 없는 나날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웃음과 슬픔, 그런 소소한 삶의 기척들을 포착하고자 하는 송지현의 소설이 나는 진솔한 리얼리스트의 선택처럼 보인다._신샛별(문학평론가)
저자

송지현

1987년서울에서태어났다.2013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펑크록스타일빨대디자인에관한연구」가당선되어등단했다.

목차

선인장이자라는일요일들
이를테면에필로그의방식으로
탐정과오소리의사건일지-봄,여름
좀비아빠의김치찌개조리법
탐정과오소리의사건일지-밤을무서워하지않는아이,가을
흔한,가정식백반
구석기식단의유행이돌아올때
탐정과오소리의사건일지-의뢰가없는탐정,겨울
펑크록스타일빨대디자인에관한연구

해설|이야기를상상해드립니다_신샛별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불가항력의성장을돌아보는방식으로

송지현의작품속인물들은어느날불현듯이‘한시절의끝’과마주하는상황에처한다.그때이들은당황하거나슬픔에잠겨들지않고과거의시간과함께자신이무엇을유실하게되었는지를골똘히살펴본다.자유와혼란의펑크punk정신을버리고,규칙과질서의현실로진입해가는과정을담은「펑크록스타일빨대디자인에관한연구」의주인공도그러하다.

나를제외한모두가진지했다.무섭도록고요한시험장에서나는,이것이나의인생이고연습따위는없다는것을어렴풋이깨달았다.(p.207)

수능시험장에서난생처음현실의냉혹함을마주한‘나’는마치고향을찾듯클럽으로달려간다.그곳에서거리의명물인‘빨대맨’을만나계시와도같은이야기를듣는다.“펑크의시대는끝났네.”
이러한정황은표제작「이를테면에필로그의방식으로」에서“시절의완성”이라는제목의자전적페이크다큐멘터리를찍으려는인물들을통해서도나타난다.그들은K의자취방에모여허송세월하는방식으로,영화를준비한다는명목으로‘시절의완성’,즉‘성장’을미룬다.머리를붉은색으로염색하고이성을쫓아다니며소설을습작하거나자살을꿈꾼다.

에필로그의방식으로말하자면,사실K의자취방은1층이었고,창문은아주작았다.사람이통과할수없을정도로아주,아주,작았다.그곳에선아무도자살할수없었을것이다.(p.62)

그러나이러한방식의유예는지속되기어렵다는것을,현실로부터빠져나가기란불가능하다는것을작가는소설말미에담담하다못해산뜻한어조로명시한다.그러면서작중인물들이추구하는죽음이그저무책임한회피나항복선언이되지않도록,죽음을감내하는방식으로생의연장이가능해지는역설을보여주기도한다.

라면이익는3분동안나는내가언제쯤죽을수있을까생각했다.물론실업도실연도하지않았을때여야했다.그러니까아무래도사회적으로안정적인궤도에오른뒤여야하는것이다.어쩌면영원히살게될지도모르겠다는생각을하며나는컵라면을후룩댔다.몸이따뜻해졌고,면도칼따위는잊은채로편의점을나설수있었다.(p.182)

‘죽음’이후에시작되는에필로그의삶

송지현의소설에서죽음은상시적으로찾아오는현상이다.자살이든사고사든의문사든거의모든소설에죽음이등장하는데,그렇게산재하는죽음은너무평범하게다뤄져마치사건조차될수없는듯하다.
「선인장이자라는일요일들」에서사춘기에접어든언니의자살기도에대한가족들반응또한그렇다.가족들은언니의방황을“축축하게젖어버리는어느한시기”쯤으로여기고“저러다가사람돼서나오겠지”하며대수롭지않게넘긴다.마치죽음충동이란누구나한번은겪는통과의례라는듯이말이다.여기에는성장통이란그리특별한일이아니어서시간이흐르면자연스레삶의의지가회복된다는작가의경험적확신이어려있다.

사이클머신의페달을꾹밟았다.아무데로도나아가지않는,조금은이상한자전거였다.그러나삶에도움이되는것은오히려이런것들이다.나는한발한발순서대로번갈아페달을밟았다.진화하는느낌이었다.(p.184)

어쩌면송지현에게죽음이란새로운탄생으로,체념을통해어른의삶으로나아가는성인식의또다른이름이아닐까.그러므로『이를테면에필로그의방식으로』는어느새성장을마친우리가무심코지나쳐온시간들을되돌아보게만드는,그리하여남은생을기꺼이살아가도록북돋워주는고마운소설이다.

■작가의말

요즘나는동해에서지낸다.동해에온지는1년이조금넘었다.월화는카페에서일하고목금토일엔이마트시식코너에서일하고있다.
‘작가의말’을쓰느라내가썼던신춘문예당선소감을찾아보았는데,당시엔아르바이트를찾고있었나보다.아르바이트공고를훑던내가7년만에아르바이트몬스터가되어있는것을보니,‘녀석,성장했구나……!’라며코를쓱훔치는일본만화장면이그려지……기는커녕,성장이라는게이런것일리가없다고생각한다.
소설집을준비하는동안내소설을여러번봐서같은단어를여러번발음할때처럼낯설고이상하게느껴진다.책이될수있을까,라고혼자한질문에,
그래도우린결국먹게될거야.
라는대사가생각났다.이대사는참문득문득나를찾아온다.결국이라는단어가주는오만함이웃기기도하고.

동해에온뒤친구들이많이도놀러왔다.여름바다에서는맥주나와인을마시며해수욕을했고,겨울바다에서는추위에덜덜떨며빨개진얼굴을하고사진을찍었다.나는친구들에게먹을것을해주느라요리가늘었다.
친구들이가고난밤이면그들이오가는도로의거리를생각한다.그러고나면한없이고마운마음이든다.나를보러왕복4백킬로미터가넘는길을와주다니.고마운마음이들면체력이넘치는사람이되고싶어진다.더많은요리를하고더많은청소를하고더많은사랑을하고싶다.
이소설집은친구들에게많은빚을지며씌어졌다.이건그냥비유적문장이아니라실제의이야기다.친구중한명이내학자금대출을갚아준것이다.덕분에생활이한결나아졌다.엄마는이얘기를듣더니가난한부모를만났지만좋은친구를만나서다행이다,라고했다.가난의반대말은부자가아닌가,라고생각했지만,뭐어쨌거나.
그외에도친구들은놀러올때마다각종술과안주를사왔고,무슨무슨날이면택배로음식을한박스씩보내왔다.모두내몸에쌓여(이것역시비유가아니다.실제로10킬로그램이쪘다)힘을내어뭐라도쓸수있었다.
그리고이소설집의탄생에도친구들은힘을보태주었다.이효영군은프로필사진으로쓸사진(아무도와인을마시고있는지모른다)을찍어주었고,박상영소설가는「이를테면에필로그의방식으로」에나오는대사(이게프로이트다!)를주며더불어추천사까지써주었으며,신샛별문학평론가는눈물이고일정도로촉촉한해설을보내주었다.

나는기본적으로인간을싫어하는타입인줄알았다.그러나누구보다인간을사랑하고있다는걸이책을준비하며깨달았다.불행히도대가를바라는사랑이어서소설을쓰게되었다고.그러므로나의글은언제나사람들에대한연서이다.

*

나는또등단소감에이렇게썼다.
함께새벽을지켜준고양이에게감사한다고.그고양이는지금세상을떠났다.나는과거로점철된인간이라떠난것들에게더마음이쓰인다.곁에있는친구들은이런내게가끔서운함을토로하기도한다.그렇지만떠난고양이와사람들과사물들까지도모두곁에있을때보다더사랑했다고말할수밖에없다.
이책도내게서떨어져나오는순간너무사랑하게될것같아벌써부터겁이나체력이바닥나고있다.조금이라도남은체력을유지하려면덜사랑해야하고,그러기에곁의사람들이떠나지않도록잘하려고한다.
특히존재하는것만으로도위안이되는동생에게.동생이없었다면나는이세상을너무도외롭게살아갔을것이다.외로운줄도모르고.동생이라면모든체력을소진해서라도언제든떠날것처럼사랑하겠노라고자신있게말할수있다.

ps.
원고를쥐고넘기지않아서책이나오는데오래도걸렸다.담당편집자가되어원고를함께준비해주신박선우편집자와문학과지성사직원분들에게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