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 (한유주 소설집)

연대기 (한유주 소설집)

$15.00
Description
마음껏 언어를 낭비하고 탕진한 한유주의 소설집!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한유주 소설의 발걸음을 기록한 연대기이자 짧은 지면에서 다 말할 수 없는 어떤 사건들 이후 우리가 연대(連帶)한 기록을 담은 한유주의 네 번째 소설집 『연대기』. 구체적인 개인, 존재했다가 사라진 누군가/무언가의 이름을 찾기 위해 쉴 새 없이 자문자답하며 끊임없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이야기, 수록된 서로 다른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힌트처럼 읽히는 여덟 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같은 작업실을 공유하는 네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오늘의 우리를 발견하게 되는 《그해 여름 우리는》, 이름이 비슷한 사람의 집에 대신 살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여자의 이야기 《식물의 이름》, 죽음을 앞둔 한순간을 늘려놓은 소설 《왼쪽의 오른쪽, 오른쪽의 왼쪽》 등의 작품을 통해 저자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저자

한유주

서울에서태어났다.소설집『달로』『얼음의책』『나의왼손은왕,오른손은왕의필경사』,장편소설『불가능한동화』가있다.한국일보문학상,김현문학패를수상했다.

목차

그해여름우리는
일곱명의동명이인들과각자의순간들
식물의이름
왼쪽의오른쪽,오른쪽의왼쪽
은밀히다가서다,몰래추적하다
한탄
낯선장소에세사람이
처음부터다시짖어야한다

출판사 서평

그러므로너는있고,
하지만너는있고,
그런데너는있고,
그러나너는있고,
그리고너는있다.

“나는언어를탕진하고싶다”

“쓰고지우며쓰고지우는”문학적실험을거듭하면서독보적인세계를구축해온작가한유주의네번째소설집이출간되었다.『나의왼손은왕,오른손은나의필경사』(2011)이후소설집으로는8년만이다.한유주의소설을말할때또렷하게떠오르는방식이있다.단어와문장이반복,나열,부정,역전을거듭하면서직조되는이야기,온전한의미에가닿는일이불가능하다는것을알면서도실패를향해내딛는걸음.이번소설집에서도한유주는마음껏언어를낭비하고탕진한다.2014년부터2018년까지발표한소설8편이묶인새소설집『연대기』는한유주소설의발걸음을기록한연대기chronicle이자짧은지면에서다말할수없는어떤사건들이후‘우리’가연대(連帶)한기록이기도하다.

그해여름‘우리’,
이름을알수없는얼굴들
같은작업실을공유하는네사람의이야기인「그해여름우리는」에서오늘의‘우리’를발견한다.우리는“늙어가는대신썩어가고있”다.행복하지도불행하지도않다.우리는서로의밑바닥을보고싶지않아피상적인질문만을건넨다.우리는세금과건강보험료를내면서나름대로사회에기여하고있다고생각한다.복권을사거나담배를피우고술을마시며납부하는간접세도일종의사회공헌이라며우스개를던지기도한다.자살이라는단어가수십번등장하는이소설에서“그래도우리는전반적으로,대충,보통정도로,어쩌면평균이상이라할수있을만큼,유쾌”하다.우리는죽고싶기도하고죽고싶지않기도하다.그저이게다일까,싶으면서도실은이대로아무일도일어나지않은채늙기를원한다.
‘우리’가공유하고있는것은같은공간과같은시간을살아간다는사실뿐이다.그러나바로이것이,헐겁지만확실한연대의조건이아닐까.우리는우리에매몰되어이름없이죽어갈것이다.구체적인개인은어디에있는가.한유주는『연대기』에서구체적인개인,‘존재했다가사라진누군가/무언가’의이름을찾기위해쉴새없이자문자답하며끊임없이쓰고지우기를반복한다.

“아직네이름을찾지못해서미안해”

“존재하다존재하기를그만둔것을어떻게불러야할지몰랐을때부터셀수없는것들을세려고하고이름붙일수없는것의이름을알려고했던거예요.”(「식물의이름」)

『연대기』에수록된여덟편의소설들은서로다른소설을이해하는데도움을주며힌트처럼읽힌다.이름이비슷한사람의집에대신살게되었다고주장하는여자의이야기인「식물의이름」에서한유주는위문장을빌려자신의문학적방식을이야기하고있는것같다.작가는구체적인개인/대상에게그대상의모든의미를포괄하는단하나의이름을찾아주고싶어하는듯보인다.(그것이아주어렵거나웬만해서불가능하다는것은이미알고있다.)이를테면개를말할때‘개’라는명사나‘포메라니안’이라는품종으로는‘내가길렀던개’를말할수는없다.그개의이름이었던고유명사를넘어개의오렌지색털빛깔과두툼한앞발,풍성한꼬리털,개의짖음과미소와기타등등을모두의미할수있는단하나의이름을찾고싶은것이다(「처음부터다시짖어야한다」).이는법적이름과생몰연월일,성별따위의정보가아니라“하나의이야기가시작되자마자존재하는이름,하나의이야기가닫히고나서도존재하는이름”(「낯선장소에세사람이」)이다.그리고이름붙임의계기가되는것은“존재하기를그만둔것”,죽음혹은사라짐이다.
어쩌면‘우리’가함께겪은여러사건을거치면서작가는붙들수없는것을열망하게된것이아닐까?“나는죽음에대해쓰고싶다.”“나는많은죽음들을보았다.그러나그들의죽음을구체적으로쓸수는없었다.[……]그들과개는추상적으로죽었다.그리고쉽게쓴문장들로남았다”(「한탄」).구체적인죽음이란무엇일까.죽음을앞둔한순간을늘려놓은소설「왼쪽의오른쪽,오른쪽의왼쪽」에서그시도를엿볼수있다.데이트폭력에서도망치려는인물이머리채를잡힌채계단에서한발을뗄까말까하고있는아주짧은순간은마치영원처럼길다.

정확히,그러니까정확히,
한문장도쓸수없다
한유주는짐작하거나이해하고있다고착각한것들에대해단언하지않는다.그는소설을발표하는사이사이에다양한책의번역작업을해왔다.번역이란가장적확한의미에가닿을수있도록말을잇는작업이며,결국불가능할지라도다른언어끼리최대한어울리는‘이름’을짝지어주는일이다.한유주가소설에서감행하는실험의확장이기도할것이다.
마치연작처럼읽히는「한탄」과「낯선장소에세사람이」「처음부터다시짖어야한다」에서는“쓰고지우고쓰고지우는”행위에대해상세히서술되어있다.함부로써왔다.함부로쓰지않고서는아무것도쓸수없다.그러면서도관습적으로사용하고있는단어들을경계한다.슬픔은무참하지않으며(“무참하다는표현을언제어디서어떻게사용해야하는것인지도알수없었다”),이것이고갈된기분인지장담할수없다(“고갈된기분이다.그러나나는고갈이무엇인지정확히모른다”(「한탄」).이렇게작가는“쓰고지우고쓰고지우는과정에서구조를잃은문장몇줄이라도,무의미한단어몇개라도남기를바란다”.“그것들을너라고부를수있”기를바라면서말이다(「낯선장소에세사람이」).

「은밀히다가서다,몰래추적하다」에서스토킹을당하는소설가이자강사인‘너’는소설수업에서“해상도가높은글을쓰라”고말한다.오래된모니터에눈을가져다대면글자는도트형태로분리되어보인다.도트하나로는아무런의미도만들어내지못하지만도트가작고많을수록해상도가높아진다.한유주에게도트란문장들일것이다.문장을비축하고,낭비하며,쓰고지우고,쓰고지운다.의미에서미끄러지며초과하거나미만한표현들을너무쉽게써왔다.그래서“처음부터다시짖어야한다.”이는반성이라기보다앞으로나아가야할방향에대한훌륭한프레젠테이션처럼보인다.한유주는한없이언어를비축하고낭비할것이다.

“나는사실을제외한모든것을말할수있어요.그러면어떤사실이말없이드러날수있지않을까요.이름을제외한모든것을말할수만있다면,굳이이름을말하지않아도좋지않을까요.이름을붙여줄시간도없이,이름을불러줄시간도없이사라진것을나는생각해요.내가너무많이말하고있나요.내가지나치게많이말하고있나요.그래도들어야해요.이것은처음이자마지막이고마지막이자처음이기때문입니다.”「식물의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