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

$32.00
Description
소비에트적 삶의 참모습, 그리고 오늘의 현실과 마주하다!
알렉세이 유르착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2005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학계에 큰 화제를 불러오며 후기 소비에트 시기 문화 연구의 붐을 일으킨 이 책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를 살아간 사람들이 현실과 관계 맺었던 방식에 대한 기존의 상투적인 가정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소비에트 시스템의 본질에 놓여 있는 이 역설을 해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저자는 강압, 공포, 부자유가 이상, 집단 윤리, 우정, 창조성, 미래에 대한 관심 같은 것들과 뒤섞여 있었던 실재했던 사회주의의 현실들을 보여줌으로써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삶을 성찰하고 ‘호모 소비에티쿠스’와 같은 말로 폄하되어온 소비에트의 주체성을 재인간화하고자 시도한다.

이를 통해 소비에트의 갑작스러운 종말이라는 하나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해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위기가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 경험되는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한때 영원했던 소비에트의 풍경은 지금 우리의 삶, 그러니까 어떠한 대안도 가능하지 않으며, 무엇을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영속성의 감각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생각거리를 안겨줄 것이다.
저자

알렉세이유르착

저자:알렉세이유르착
1960년러시아레닌그라드(현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태어나1977년레닌그라드국립우주항공기기대학교에서전파물리학을전공했다.졸업후레닌그라드‘포포프라디오수신및음향연구소’에서연구원으로근무했고,록밴드아비아AVIA의전속매니저로활동하기도했다.1990년에는미국으로유학을떠나1997년듀크대학교에서언어및문화인류학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버클리대학교인류학과교수이다.
2005년후기소비에트시대의삶을새롭게성찰한『모든것은영원했다,사라지기전까지는』을출간,2007년미국‘슬라브,동유럽및유라시아학회’에서수여하는최고저작상을,2015년러시아드미트리지민재단에서수여하는학술저작상을받았다.

역자:김수환
서울대학교노어노문학과및같은과대학원을졸업하고,러시아과학아카데미(학술원)문학연구소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지은책으로『책에따라살기』『사유하는구조』등이,옮긴책으로『코뮤니스트후기』『영화와의미의탐구』(공역)『문화와폭발』『기호계』등이있다.현재한국외국어대학교러시아학과교수이다.

목차

1장후기사회주의:영원한제국
2장형식의헤게모니:스탈린의섬뜩한패러다임전환
3장뒤집힌이데올로기:윤리학과시학
4장‘브녜’에서살기:탈영토화된사회적환경
5장상상의서구:후기사회주의의저편
6장공산주의의진짜색깔들:킹크림슨,딥퍼플,핑크플로이드
7장데드아이러니:네크로미학,스툐프,그리고아넥도트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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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글

출판사 서평

후기사회주의,혹은
삶이영원히지속될것이라여겨졌던시간에대한탐구

이책은1950년대중반에서1980년대중반에이르는약30년(흐루쇼프의해빙기에서브레즈네프의침체기까지),저자가“후기사회주의latesocialism”라고부르는시기를탐구한다.페레스트로이카로인한변화가시작되기이전,그러니까아직은체제가영원히지속될거라고여겨졌던시간이다.유르착은이중에서도소비에트시스템의독특한역설을어떤세대보다더강렬하게체험한,브레즈네프시기에청년기를보낸“소비에트마지막세대”의삶에특히더주목한다.
스탈린의사망으로이데올로기적담론들의기준이되었던“메타담론”이사라지면서,모든표현들이반규범적으로보일수있는상황을낳게되고,이는고정되고형식화된담론에대한강박으로이어졌다.이러한“규범화”는아예그자체가목적이되는지경에이르러,모든담론영역(포스터,영화,기념비,집회,보고서,기념행사,학교교과과정,도시공간의구성)에서규범적형식의재생산이이루어졌다.그러면서발화행위의수행적차원이더중요해지고담론의진술적의미는약화되는데,유르착은이러한“수행적전환”이후기사회주의에서권위적담론을작동시키고실천을재현·조직했던핵심원칙이라고설명한다.진술적차원이약화되었다는것은담론이“텅빈”의례로바뀌었다는것을의미하지않는다.그와는반대로진술적의미에대한관료주의적해석에얽매일필요없이,예측불가능하고비결정적인해석의가능성,다시말해사회주의적삶을창의적으로재해석할수있는가능성이열리게되었다.

어떤“영원했던”세계의“정상적인삶”에관하여

그런데여기서중요한것은이러한일들이소비에트의공식담론과의례에‘반하여’혹은그것의‘바깥’에서이루어진것이아니라는점이다.유르착은절대다수의소비에트인민에게사회주의적삶의근본적가치와이념이진정으로중요했으며,이렇듯체제의가치를믿고체제의일부로서살아가는“정상적인사람들”이담론과의례의재생산과정에참여하면서,다양한형태의의미있고창조적인삶의공간이열리게되었다고설명한다.체제의한복판에서일탈의시공간을여는“탈영토화”작업을수행한것은흔히가정하듯“반체제분자들”이아니라소비에트의평범한인간들이었다는것이다.그리고이런다채로운삶을가능하게만든것은소비에트시스템자체였다!
이책은공산주의적이상과록음악의가치를결합시킨콤소몰서기의이야기부터자발적으로보일러공이된록뮤지션들과박사들,그리고1970~80년대일상생활에만연했던부조리한유머와아이러니의미학,예술가들의기괴한퍼포먼스들까지,창조적일탈과전유를보여주는흥미로운에피소드들을풍성하게제시한다.유르착은모순적으로보이는이러한상황들이후기소비에트삶의‘규범’으로부터벗어난예외가아니라,규범이도처에서탈중심화되고재해석되었음을보여주는전형적인사례였다고주장한다.
그렇다면이런역설의사회의‘끝’은어떻게찾아왔을까.유르착에따르면페레스트로이카의진행과정은무엇보다도소비에트의권위적담론에대한해체를의미했다.개혁에의한당의붕괴는권력담론의와해로이어졌고,이에따라권위적담론의수행적재생산은불가능해졌으며,그것이수반했던창조적재전유도불가능해진다.담론조건의변화가영원히지속될것만같았던한체제를순식간에무너뜨려버린것이다.

이책의의의

체제의영원성에대한감각을그토록빨리붕괴의자연스러움에대한인정으로바꿔버린소비에트시스템고유의내적조건을밝혀내는유르착의이론적논의를따라가는것도흥미로운일이지만,이를위해그가펼쳐놓은엄청난양의인류학적자료들을따라읽는것은그자체로커다란즐거움을준다.당대의관점을알수있는후기소비에트시기의사적인자료들(편지,메모,일기,음악,아마추어영화등)과소비에트의공식출판물(연설문,신문,영화,사진,만화등),페레스트로이카시기와그이후양산된각종인터뷰,회고록,방송까지유르착이다루는자료는매우방대하다.
우리는이책을통해소비에트적삶의참모습을재구축하는것을넘어서,이를오늘의현실에대응시켜읽어볼수도있을것이다.이책을옮긴김수환교수가언급한것처럼,“‘후기’사회주의소비에트의일상적삶이근대‘이후’를살아가는우리의삶과만들어내는기이한공명은곱씹어볼만한가치가있다.”소비에트의붕괴는우리시대가기억하고있는가장가까운‘종말’의체험이다.그체험이어떤예감과충격을동반했는지,그몰락의과정에개입했던주체성의형상이어떤것이었는지를파악하는일은중요한우리시대의과제일것이다.

※이책으로유르착은2007년미국‘슬라브,동유럽및유라시아학회’에서수여하는최고저작상을,2015년러시아드미트리지민재단에서수여하는학술저작상을받았다.또한혁명기와스탈린시기,그리고해빙기에뒤이어‘브레즈네프시기’를소비에트문화연구의새로운중심으로대두시켰다는평가를받았다.이책의영향력은학술분야에만머물지않았다.영국다큐멘터리감독애덤커티스의영화「하이퍼노멀라이제이션」과키릴세레브렌니코프감독의영화「레토」역시유르착의연구에서직간접적인영향을받은것으로알려져있으며,그외에도많은예술가들의작업속에서유르착의흔적을발견할수있다.

※이책의표지에사용된‘엑스레이레코드’는유르착이직접촬영한것으로,이책에대한매우탁월한은유라고할수있다.엑스레이사진판에서구음악을사제녹음한이엑스레이레코드판은“소비에트적신체의뼈와동맥들이저편에서들려오는낯선사운드를위한내밀한공간을제공하는역설의상황을집약해서보여준다.”

본문속으로

소비에트시스템은엄청난고통,탄압,공포,부자유를야기했으며,이에관한기록들은고스란히남아있다.하지만시스템의이런측면만을강조하게되면,우리가이책에서제기하고자하는사회주의하에서의삶의내적역설들에관한물음에온전히답하기어렵다.이원론적설명은매우결정적이고외견상역설적인다음의사실을놓치곤한다.그것은절대다수의소비에트시민에게사회주의적삶의근본적가치,이념,현실들중많은것(가령평등,공동체,헌신,이타심,우정,윤리적관계,안전,교육,직업,창조성,미래에대한근심등)이진정으로중요했다는사실이다.(24쪽)

소비에트시민은당권력에대한완벽한충성,집단주의적윤리,개인주의의억제등을요구받지만,동시에호기심이많고창조적이며지식을추구하는독립적사고방식을지닌계몽된개인이되어야만했다.이러한르포르의역설의소비에트식판본은결코우연히발달된것이아니라,혁명적기획자체로부터자라난것이다.(29쪽)

보일러실기술자들은근무시간내내보일러실에있어야했지만,그안에서그들이할일은거의없었다.그들은4일에한번씩24시간교대제sutkichereztroe로일했다.봉급은매우낮았지만(한달에60~70루블로공공기관임금중가장낮았다),대신이직업은엄청나게많은자유시간을제공했다.[…]많은‘아마추어’록음악가들이이런직업을가졌고,그들은은어로“보일러실로커kochegary-rokery”라고불렸다.[…]당시이러한직업은아주흔해져서유명한록그룹아크바리움이“거리미화원과야간경비원들의세대”인자기동료들에관한노래를불렀을정도였다.(290~92쪽)

서구재즈와로큰롤에대한수요가급증했지만,소비에트국영레코드점에서는이런음악을찾을수없었다.이는자가레코드판이라는독립적인음악복제기술의발명으로이어졌다.재즈와로큰롤이담긴원본서구레코드판을중고플라스틱엑스레이판에복제했는데,이때문에“뼈에새긴록roknakostiakh”이라는아주흥미로운속칭이붙었다.[…]‘뼈에새긴록’의기이한물질성과이엑스레이판들이상기시키는명백한은유는소비에트팬들에게제법효과가있었다.이레코드판들은서구에대한상상력을두가지방향으로조성하는익살스러운논의를촉발시켰다.(344~45쪽)

1980년경미트키Mit’ki라고불리는기이한예술가집단이레닌그라드에등장했다.이집단의구성원들은시스템의사회정치적관심사들의브녜(내-외부)에서그로테스크한방식으로살아가는수행적실천을통해서,자신의일상생활을미적프로젝트로바꾸었다.[…]사실진정한미툐크는동네상점딱두군데,즉술집과빵집말고는알지도못한다.미트키가이런지식들을찾으려는노력을전혀기울이지않는다는사실은,그들이경력,성공,돈,아름다움,건강따위의일반적관심사를전적으로무시하면서,무의식적이고친근하며모든것을다받아들이는백수역할을지속적으로수행한다는뜻이다.(445~46쪽)

아비아는다양한시기에걸친소비에트이데올로기의열광적인선전선동전통에스스로를과잉동일시했는데,그것을탈맥락화하는과정에서낙관적인1920년대의아방가르드미학과침체된1970년대의굳어버린이데올로기형식을펑크와다소간에로틱한카바레의요소들과뒤섞었다.아비아의공연에서는스무명에이르는배우들이노동자용오버롤을입고구호와‘만세’를외치며,열의에차서종대로행진하고,인간피라미드를쌓는다.“공산주의의젊은건설자”의역할속에서그들은어찌나명랑하고열정적으로보이는지,때로광기에근접할지경이다.1980년대말에나는아비아의매니저로일하면서관객의반응을목격했다.라이바흐와아비아의공연관객중많은사람들,특히나이든사람과외국인들은이해프닝들을어떻게해석해야할지몰라갈팡질팡했고,종종완전히상반되는해석으로치닫곤했다.(473~74쪽)

페레스트로이카가불러온변화로인해시스템의불변성에관한경험을재생산하는일이더이상중요하지도가능하지도않게되었을때,후기사회주의의역설적인과정들도더이상유지될수없게되었다.동시에페레스트로이카초기의변화들은,모든이의일상적삶의일부분이된지이미오래되었음에도불구하고거대담론을통해서는발설되지않은채로유지되어올수있었던무언가,그러니까시스템의제도,의례,담론,생활양식에만장일치로참여함으로써모든사람이끊임없는시스템의전치에계속관여할수있게만든그무언가를결정적으로발설하고드러내버렸다.(529쪽)

현재가영원히지속되리라는느낌,이후론더이상결정적인변화는없을것이며,무엇을하더라도본질적으로바뀌는건없을거라는이런느낌은,어딘지모르게낯익지않은가?‘후기’사회주의소비에트의일상적삶이근대‘이후’를살아가는우리의삶과만들어내는기이한공명은곱씹어볼만한가치가있다.영원히끝날것같지않은기이한안정성의느낌,시스템의비작동이상례가되어오히려온전한작동이시스템을불안하게만드는이런영속성의상황이언제까지나똑같은모습으로지속될리는없다.(633쪽_옮긴이의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