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왜곡설 (현길언 소설집)

언어 왜곡설 (현길언 소설집)

$14.00
Description
거짓 없는 소통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현길언
4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 문학 그 자체에 이른 원로!
현길언의 소설집 『언어 왜곡설』이 201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현길언은 1980년 『현대문학』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곧 등단 40주년을 맞는다. 작가는 소설집 『용마의 꿈』, 장편소설 『한라산』 등을 통해 그의 고향 섬 제주도의 4·3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를 꾸준히 써왔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사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소통의 문제에 주목해왔다. 이 책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주연은 현길언의 문학을 두고 “그 의미의 중요성에 비해 다소 덜 조명되어”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그간 스무 권 이상의 책을 발간하며 쌓아올린 현길언의 문학 세계에는 여전히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삶의 질문이 가득하다.
이 책은 ‘관계’와 ‘언어’에 대한 현길언의 오랜 관심을 바탕으로 내밀한 관계에서 관찰되는 애증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무리 원로인 작가라 할지라도 관계에 대한 소설은 쉽지 않기에 인간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 무엇이 올바른 관계인지를 탐구하는 작가의 고뇌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특히 김주연은 개인 사이의 문제는 물론이고,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사의 비극을 면밀하게 파헤쳐온 현길언의 문학을 “‘진실’로의 갈망”이라고 명명함으로써 익숙한 허구 속에 감춰져 있던 민낯과 마주하길 두려워하지 않는 작품의 강점에 주목할 것을 권유한다.
저자

현길언

제주에서출생하여제주대학교를졸업하고성균관대학교에서석사학위,한양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제주대학교교수를거쳐한양대학교에서정년퇴임하였다.성경과제주설화의토양위에서소설을쓰고연구해온저자는인간의주변적진실을추구하는것이소설의몫임을확인하고,여기에서신앙·문학·생활이만나는자리를추구해왔다.1980년『현대문학』에단편「성무너지는소리」가추천되어문단에나왔다.소설집으로『용마의꿈』『우리들의스승님』『닳아지는세월』『무지개는일곱색이어서아름답다』『껍질과속살』『배반의끝』『나의집을떠나며』『유리벽』『누구나그섬에갈수없을까』『불과재』『뿔달린아이들』,장편소설로『여자의강』『회색도시』『투명한어둠』『한라산』(전3권)『열정시대』『숲의왕국』『꿈은누가꾸는가?!?섬의여인,김만덕』『비정한도시』『묻어버린그전쟁』등이있다.녹원문학상,현대문학상,대한민국문학상,기독교문학상,백남학술상,김준성문학상등을수상했다.
소설연구서로『소설쓰기의이론과실제』『문학과사랑과이데올로기?현진건연구』『한국현대소설론』등을출간했고,성경의문학적이해의방법론을탐색한『문학과성경』『인류역사와인간탐구의대서사?어떤작가의창세기읽기』『솔로몬의지혜』,제주문화와역사에대한관심으로『제주문화론』『제주설화와주변부사람들의생존양식』『섬의반란,1948년4월3일』『정치권력과역사왜곡』을썼다.

목차

애증
아버지와아들
이야기의힘
미궁(迷宮)
별들은어떻게제자리를차지하고있을까?
언어왜곡설
광대의언어

해설왜곡과위선,언어는진실한가?·김주연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계약과관습으로지탱되는관계
진심을주고받을수있는방법은무엇일까

순간나는사람과의관계를유지하는것이무엇인가,생각이떠올랐다.윤리란무엇인가?자식은자랄수록부모로부터점점떨어져나가기를원하고있는데,세상은그것이두려워도덕과제도로서그허물어지는관계를유지시키려는것인가?그러한윤리와도덕은사회통합의근원이되기때문인가?그래서사람들은자신과부모의관계를다알고있으면서모른척한다.모른척함으로써일종의음험한결탁을하는것이다.(「아버지와아들」,pp.97~98)

남편만을사랑했다는것은남편밖에관계맺을수없기때문이아니었을까?더좋은즐길거리가있다면,돈버는일이나,일에미치도록몰두했다면?내사랑도일상적인것에불과했을까?[……]사랑은일종의감성이고,결혼은그것을더견고하게만드는관습이아니었을까?(「별들은어떻게제자리를차지하고있을까?」,pp.202~03)
수많은대화와만남이있었는데도우리는종종서로를도저히이해할수가없다.아무리그관계가부부,부모자식,연인으로묶여있다고할지라도말이다.현길언은이번소설집에서친밀한관계속겹겹이쌓인오해와그오해에서비롯된관계의모래성을드러내는데힘을쏟는다.사랑하는아내를두고6·25전쟁중자신의제자와사랑에빠진아버지를아들과그가족들은이해하기어렵고(「애증」),딸뻘의여자와결혼하기위해어머니와이혼을결심한아버지를아들은도무지이해할수가없다(「아버지와아들」).부부간에도다르지않다.온전히한몸이나다름없다고생각했던남편을먼저떠나보낸후에야‘임여사’는고민에빠진다.우리사이에결혼이라는계약관계가없었다면,“남편만을사랑”한다는것이가능했을지말이다.
중요한것은이이해할수없는일들이벌어지기전에는분명이들사이의관계가더없이온전하고완벽했다는데에있다.겉으로보기에충실하기그지없던관계가어떻게이렇게쉽게깨어질수있는가,라는질문을파고들며현길언은그간관계를지탱했던제도과관습에주목한다.우리의마음은분명오래전부터서로멀어지기를소망했으나,그것이두려웠던탓에“도덕과제도로서그허물어지는관계를유지”시키려했던것이아니냐,라고질문한것이다.“일종의음험한결탁”이라고도표현된현길언의질문은그간작가가견지해오던사회공동체안의허위와거짓을폭로하려는주제의식과도맞물려있다.이는곧바로서로의마음을온전히이해할수있는방법은무엇인지에대한고민으로자연스레이어진다.

왜곡되기쉬운언어의한계를뛰어넘어
진실한소통을꿈꾸다

“방송국이그것을조작했다하더라도,사람들은그사실을믿고싶으니까,조작했다는사실은문제가안됩니다.진실이문제가아니라,그보도내용이마음에드느냐가문제지요.믿고싶으면팥으로메주를쑨다고해도믿지만,믿고싶지않으면콩으로메주를쑨다고해도안믿어요.”
나는딸의말에긴장했다,조작된거짓도내가좋아하면진실이된다.그것이우리사회풍토라면,두려웠다.(「언어왜곡설」,p.265)

만약그뇌에잠자는언어를찾아내는기구가발명된다면언어는투명해지고우리는더행복할수있지않겠어요?나는빈잔에와인을채웠다.자,세명휴먼사이언스의회복을위하여.(「이야기의힘」,p.112)

결국은인간의언어가문제다.우리밖으로발화되는순간,자신의진심이무엇이었는지는중요하지않다.그말을받아들이는사람과사회가어떻게이해했는지가핵심인것이다.제도와관습역시언어로씌어지고전해졌다는것을상기한다면,현길언의관심이언어에머무는것은전혀이상한일이아니다.그런데이언어라는것은왜곡되기너무나쉬운성질을지녔다.“진실이문제가아니라”“마음에드느냐”에따라언어의내용이전혀다르게해석될수있다는것이다.이는특히「광대의언어」에서대중을상대로설법을전하는무연스님과벽으로쌓인암자에서홀로수행하는현운스님의모습을대조함으로써두드러지게드러난다.대중들이듣기좋아하는말을골라하는무연스님이죽음을앞두고자신의삶을반성하며스스로를‘언어의광대’라고칭함으로써작가는언어의한속성을비판한다.
하지만작가라는본분에맞게현길언은단순히언어를비판적으로바라보는것에서멈추지않고언어가가진힘을이끌어내는데까지이야기를진행시킨다.「이야기의힘」에서아들은식물인간상태의아버지를돌보며아버지의“뇌에잠자는언어를”찾아내기위한노력을포기하지않는다.이야기의마지막에이르러아버지가이끌었던‘세명휴먼사이언스’사에서실제로잠든뇌속언어를끌어내는기술을완성시킴으로써,현길언은육체를넘어선소통의가능성을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