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인용하세요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12.00
Description
“나는 그냥 일어날 일을 쓴 것이다”

김승일, 예언가 혹은 연출자
믿는 만큼 보이는 기계신의 놀이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 김승일의 두번째 시집 『여기까지 인용하세요』가 출간되었다. 「나의 자랑 이랑」 등 매력적인 수록 시들로 독자들에게 받았던 사랑만큼, 유독 다양한 비평적 추정과 주장과 진단이 부여되었던 첫 시집 『에듀케이션』(문학과지성사, 2012)에서 누군가는 ‘“뜻 모를 아픔”이 몸을 숨긴 유희’(민경환)를 발견하고 누군가는 ‘비성년 소년의 날목소리’(함돈균)를 읽어냈다. 2020년을 앞둔 지금, 김승일은 또다시 어떻게 읽힐지 기대되는 시집 한 권을 선보인다.
『여기까지 인용하세요』에서는 성별?연령?국적은 물론 거주 행성까지 다양한 화자들이 “있을지 없을지 모를” 시공간에서 “진지한 이야기”(하혜희)를 나눈다. 시인은 입력된 규칙대로 행동하지만 그 규칙의 목적이 무엇인지 규칙을 입력한 사람조차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기계를 시의 화자로 등장시켜 기계들의 규칙이 어떤 알레고리를 만들어내는지 지켜본다. 형식 자체가 시가 되고 배후에는 의미가 없다. 김승일의 시를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머신 픽션? 기계우화? SF시? 무엇이라 부르든 규칙에 동의하는 순간 설득당하는 것은 분명하다. 믿으라. 이 시집은 재미있다.
저자

김승일

김승일
1987년경기도과천에서태어나2009년『현대문학』신인추천으로등단했다.시집『에듀케이션』이있다.2016년현대시학작품상을수상했다.http://completecollection.org/

목차

시인의말


주인
그럼안녕
액체와희망
컴플리케이티드
돌포비아
레파도미솔
눈물의방
가장좋은목표
의도하지않았다
지옥
나는계속이렇게할수있다
어시스턴트
홀이모든것이숫자로보인다고했다
신뢰
행복한죽음
유리해변
여기까지인용하세요
기계문과있었다
장미정원
히말라야시다
무인도의왕최원석
채찍든사람
채찍
인식의확장
아픈아이와천사
남아공사람이한국시를쓰려고쓴시
대단원의막
Youcannevergohomeagain
네이처
프랑스사극
종교시직전
첫상봉
종로육가
공략집
인기생물
나진짜대단하다
에필로그
무엇이사랑할수있을까
마지막수업

해설

출판사 서평

이제부터우리는신의놀이를한다
정말로이것(시)은내가쓴가면(화자)의이야기인가?
_2018년9월23일김승일의일기에서

하지만확실한것은화자라는가면을쓰고있는것은언제나작가자신이고,타자나현실을반영하려고했다는노력은변명에불과할때가많지.
_2018년문보영시인과의인터뷰에서

시인과화자는붙어있지만,글을쓸때의나와생활할때내가완전히같을순없죠.문학의가장큰특징중하나는번복이에요.하나를묘사하더라도우리는여러가지방식으로묘사할수밖에없어요.우리는문학에서말을계속번복하고,그말을전달하는사람도계속해서달라져요.지금누가이이야기를하고있는지질문하는것만으로도시가한결쉬워져요.하고싶은말이더앞서고,누가말하는지계속잊어버릴때현학적이고뜬구름잡는이야기가되기쉬워요.그러니언제나내가누구로서말하고있는지연습해보는거죠.
_2019년강연에서

독자는화자와시인을동일시하기쉽다.화자들을만들어낸사람이한명의연출자(시인)이기때문에묻어나는일관성은지워질수없다.그러나김승일의시에서화자들은비교적독립돼있다.『여기까지인용하세요』를재밌게읽는방법하나는김승일이묻었으나김승일과다른존재,화자가누구인지찾아보는것이다.
김승일이고른화자가누구로서말하고있는지짚어읽다보면이시집은선실마다화자를싣고시간여행의좌표를수시로넘나드는난파우주선처럼느껴지곤한다.누군가는남편과함께우주선냉동고에얼려진채목적지에다다르기를기다리는49세기사람이다(「돌포비아」).다른누군가는창문바깥으로“행성의숲”이바라다보이는선실박람회의대구관館에서나무의이름을손녀에게알려주며“실재했던대구시를떠올린다”(「히말라야시다」).“무중력상태에서는눈물과오줌이공중을날아다”니는데“물방울이기계속으로들어가면기계가망가”지니까우주선한쪽따로제일크게“눈물의방”도만들어뒀다(「눈물의방」).2019년처럼“세계가좁았을때”는상상도못하는이야기다.생물부터무생물까지,고대그리스에서올지안올지모를먼미래까지를포괄하는,‘있을지없을지모를것을기다리는사람을위해서,있을지없을지모를것속에서,있을지없을지모르는것들이운명을걸고나누는진지한이야기’(하혜희),그러므로이시들을SF라불러본다.


믿는만큼보이는머신픽션MF의이해
쓰고싶은데그게무엇인지잘모르겠는것들이있으면기계를등장시켰어.마치데우스엑스마키나처럼.기계가등장하면나는이풍경을,사건을,감정을이해하지못하지만내시에나오는이기계는이해하고있다고썼지.나는그런일을꿈꿀수도,절대이룰수도없지만내시에나오는기계는그런일을수월하게해낸다고도썼지.
_2018년인터뷰에서

엠에프는머신픽션의약어고요기계앞에앉은사람에대한시를쓴다음부터쓰게되었습니다키워드를입력하면자신이그키워드(지시체)라고착각하는기계에대한글도썼는데요저는그기계를홀이라고부릅니다엠에프는인간이기계의메커니즘은이해할수있지만영혼은이해할수없으며기계의영혼을영혼이라고명명할수도없다는전제를바탕으로둔장르입니다기계에파롤이있다면이역시포함시킬수있겠습니다최근에어떤기계가되고싶냐는질문을받았습니다시쓰는기계랑쾌락느끼는기계랑꺼진기계랑망가진기계랑없어진기계랑다시만난기계가되고싶다고답했습니다
―「여기까지인용하세요」부분


김승일은사람을좋아하는일이피곤해진다음부터기계를시에등장시키기시작했고,몇년동안계속기계시를써왔다고한다.머신픽션,‘엠에프’는시쓰기를쓰는것에대한시다.시집의첫시「유」에서화자는기계상자앞에앉아있는신이다.「그럼안녕」에서는시「유」와동일한상황이명료한문장으로요약돼있다.“신과상자가마주보고앉아있다.상자는상대방을완벽하게학습하는기계장치다.상자가신의모든것을학습한다.신이신으로남기위해선누구보다전능해야한다.신의전능이늘어난다.상자가다시학습한다.반복이다.이어서김승일은“키워드를입력하면자신이그키워드(지시체)라고상상하는기계”(홀)를상정한다(「홀이모든것이숫자로보인다고했다」).“홀을작동시키기위해당신은홀이자신이홀임을의심하지않고의심할수없고의심하지못하고있다는것을믿어주셔야합니다”(「여기까지인용하세요」).이제글을쓰는것은시인이아닌기계다.기계들은믿고싶지않은일을,믿기지가않을일을,일어나지않은일을,일어났던모든일을믿는다(「신뢰」).①규칙을따를것②의심없이믿을것.어디서많이본이야기다.머신픽션은종교를닮아있다.“엠에프를처음전개한사람의초기발상은자신이만든종교가사이비라는것을처음부터대중에게주지시키면서도자신은그종교를믿겠다고피력하는일종의라이프스타일이다”(「여기까지인용하세요」).믿음에동의한다면만날수있는새로운세계.김승일은머신픽션으로신과세계가작동하는시스템을연출한다.

어째서신이라는비유를완전히포기하지못하는걸까?그건우리가형체를통해서만사랑하기때문같아요.너와나를갈라세우는형체가있어야만,피조물이라는비유가있어야만,다시꺼내볼수있는,저장해놓을만한옛순간,우리가만들어지는순간이있어야만사랑하기때문에,그리고허망해지기를두려워하기때문에.하혜희(시인)

이시집의해설을쓰기위해‘독자평의회’를구성(혹은그렇다고주장)한시인하혜희는말한다.“여기서정말로어떤문제,다시돌아오는문제가있다면그것은언제나독자들,뭔가를들여다보고있는독자여러분이아닐까?”규칙속에서시들이별자리처럼이어져있는이시집에서예측불가능한것은독자여러분뿐이다.김승일은마지막시에서“더는기계에대해서쓰지않기로했”다고말했다(「마지막수업」).김승일의처음이자마지막기계시집을놓치지말것.“더많은독자들이읽어야할놀라운작품”(시인의글),이시집의기쁜변수가되어주기를독자들에게요청한다.

그래여러분.지옥에서만납시다.생각을들고.아직지옥이없어서지옥부터만들것이다.

상자가만들것이다.
―「그럼안녕」부분

*재밌긴재밌는데뭐가재밌는지집어말하기힘든『여기까지인용하세요』의재밌음을말하기위해여러인터뷰및기사와김승일의개인홈페이지를참고하였음을밝힌다.주요인용된글의출처는다음과같다.
http://completecollection.org/
김승일-문보영인터뷰,「그많은죽고싶은김승일은누가다훔쳤을까」,『현대시』2018년11월호.
정의정기자,「김승일“한국어로사랑을고백하기위해쓰는시”:『오늘부터,詩作』출간기념강연회」,〈예스24〉2019년10월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