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취향 - 채석장 시리즈

아카이브 취향 - 채석장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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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진실의 작은 조각들이 지금 이렇게 아카이브에 좌초해 있다”
아카이브에서 역사를 쓴다는 것에 관한 어느 프랑스 역사학자의 치열한 고민과 성찰
18세기 고문서 더미에서 민중들의 삶을 건져 올리다!
2020년 3월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결단에 따라, 교황 비오 12세 시절의 비밀문서 아카이브를 개방하기로 했다는 것. 이 아카이브에 보관된 문서는 약 200만 개이고, 기록물이 보관된 선반의 길이는 약 85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이번 개방을 통해 2차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 관한 교황청의 입장과 역할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학계의 많은 관심과 기대가 쏠렸다. 누군가의 해석을 경유하여 ‘쓰여진 역사’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옛 기록 파편들, 그동안 묵묵히 잠들어 있던 문서 기록을 꺼내어 만지고 보고 읽고 베끼고 해석하여, 과거의 형상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일은 어떤 것일까? 어쩐지 그 속에는 엄청난 비밀이 잠자고 있을 것만 같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만 같다. 아카이브에는 역사책에 쓰이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보관되어 있다.

아카이브를 통해 역사를 쓴다는 것에 관한 깊이 있는 철학을 보여주는 책 『아카이브 취향』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한 역사 연구자가 아카이브 작업을 해나가는 노정을 따라가면서 그에 동반되어 생겨나는 고민과 성찰과 질문 들을 수려한 문체로 압축해 기록한 에세이다. 로버트 단턴이 “프랑스 최고의 역사가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한 역사학자 아를레트 파르주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연구해왔으며 『서양 여성사』 등 굵직한 유럽 통사 기획에도 참여한 인물로서 특히 대중, 빈민, 여성 등 소외계층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녀는 이 책에서 18세기 형사사건 아카이브를 연구하면서 얻은 단상들과 자신의 역사철학, 그리고 역사 연구자들을 향한 제언들을 전한다.

저자

아를레트파르주

18세기계몽주의시대를주로연구한프랑스역사학자.‘18세기파리의식품절도죄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으며파리형사사건아카이브를기반으로여성,빈민,대중행동등의주제를연구해왔다.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연구이사,사회과학고등연구원교수등을역임했다.프랑스퀼튀르방송사의[역사의월요일]프로그램진행자중하나였고같은방송사의[역사만들기]프로그램에도참여하고있다.미셸페로,조르주뒤비등이책임편집한『서양여성사』(총5권)중제3권을나탈리데이비스와함께책임편집하는등굵직한유럽통사기획들에도참여한바있다.1979년가브리엘타르드상을,2016년단다비드상을받았다.지은책으로『거리에살다:18세기파리인류학』『불안의삶:18세기파리의폭력,권력,연대』『말과험담:18세기의여론』『백야』『잊힌삶』『사생활의역사3』(공저)『가족의무질서』(미셸푸코와공저)『아무도정확히모르는것에관하여』(공저)등이있다.

목차

무수한흔적들
출입문에이용시간안내문이붙어있다
아카이브에누가있는가
필사자료열람실에왔더니패스를보여달라고한다
수집단계
좌초한문장들
필사자료목록대장열람실은거대한무덤같다
해변의역사가

옮긴이의글

출판사 서평

과거의무명씨들에게생명력을부여하는아카이브작업자의손길
무엇이어떻게역사가되는가?

프랑스파리에서가장아름다운도서관중하나로손꼽히는아스날도서관에는18세기각종형사사건과관련한대량의문서가보관되어있다.일명바스티유아카이브.처음에는축축한지하서고에보관되어있다가새어들어온빗물에손상된뒤에야귀중자료로분류되었다.바스티유에수감된죄수들의심문기록과재판기록,각종고발장,18세기경찰이벽에서뜯어낸불법벽보들이이곳에뒤죽박죽섞여있다.
아카이브는역사가집필된곳이아니라사소한것과비장한것이똑같은어조로펼쳐지는곳이다.그리고아카이브를선호하는연구자가주목하는곳은평범한등장인물의평범한삶이다.책에서연구대상으로삼은18세기바스티유아카이브에는,당시민중들이공권력의눈에띄지않았다면기록되지않았을잡다한이야기가쌓여있다.길거리의삶들,소문들,각종난투극,일반민중들의행동과의견등사소하기이를데없는사건들이아카이브속에서원석처럼발굴되기만을기다리고있다.하지만이들이빛을보려면,그속에담긴것들을질문의형태로바꾸어진실에다가가고자노력하는역사가들의수집과선별작업이필요하다.
이에관한두드러진예시가당대여성의구체적이고역동적인삶을주목하는부분에서드러난다.80년대이후역사학이사적영역에주목하게되면서그동안누락되어있던여성의존재가드러나기시작했으나,기존의역사적지식에부록을추가하는수준에그치는경우가적지않았다.그러나아카이브를들여다보면‘풍속화’를넘어서서살아움직이는‘입체적형상’의여성을발견할수있다.아카이브작업자는여성이어떤상태에처해있었는지,당대에여성을대하는사회적,정치적환경이어떠했는지살펴볼수있으며,여성이남성적세계에어떻게가담하는지,어떻게온전한사회적역할을수행하는지감지할수있다.여성이보이지않았던곳,역사가여성을보려고하지않았던곳에서여성을가시화하는작업이다.
아카이브자료들은이미만들어져있는이미지들을깨뜨림으로써민중의삶을사실그대로볼수있게할뿐아니라,기존의역사가승자의관점에서쓰였음을밀도있게성찰할수있도록해준다.

‘아카이브취향’을지닌역사가는어떻게작업하는가

“아카이브취향”이란역사가망각한무명씨들에대한자료더미를파헤쳐가며그속에묻힌것들을역사논의의장으로끌고와서이야기하고성찰하는특유의자세를의미한다.아카이브의언어를읽어나가면서낮은사람들의삶에귀를기울이는작업자는그때껏들을수없었던소리를들을수있게된다.아카이브취향은그간조명을받는일이거의없던매력적그림자들과의마주침,적대하면서적대당하는존재들과의마주침,시대의폭력에훼손당한사람들과의마주침을통해만들어진다.
그렇다면아카이브취향을지닌역사연구자는어떻게작업하는가?저자는자신의경험을토대로도서관에붙박여어깨와뒷목이뻣뻣해질때까지끊임없이자료를읽고베끼고분류하고해독하는,역사연구과정을낱낱이들려준다.또한저자는아카이브를토대로작업하는역사가의수칙에관해서도이야기한다.역사가는‘아카이브를욕망의대상으로삼지않기위해항상조심해야한다는것’‘한번읽어서알수있다는생각을버려야한다는것’‘자료와의거리를잃게하는동일화의위험이나자료를되풀이하면서무미건조한주석이될위험을경계해야한다는것’‘아카이브에생명력을불어넣기위해역사소설처럼허구를가미해서는안된다는것’‘연구대상을보편화하는시각을버리고당시의상황을최대한정밀하게세공해내는글을써야한다는것’‘사건의의미를끊임없이모색하면서도역사가자신의생각을덧씌우지말아야한다는것’등.
이처럼아카이브를기반으로삼는역사가들의작업방식을매우가까이에서들여다보게해주는이책은역사연구자나관련전공자들에게많은교훈과생각거리를안겨준다.나아가완료된결과물로서의역사책만보아온일반독자들의입장에서는이책을통해흔히접할수없었던역사가의치열한연구과정을지켜봄으로써지적호기심을채우고,참된학습의태도,연구자세등을생각하며유쾌한독서를즐길수있을것이다.

“역사를써야하는이유는
죽은과거에대해이야기하기위해서가아니라
살아있는존재들사이의대화에참여하기위해서다”

이책은흥미로운구성으로이루어져있다.뽀얀먼지가쌓인아카이브의거칠거칠한촉감과그방대함에관한이야기로시작해,아카이브작업과정을순차적으로조명하는총다섯편의에세이가실려있다.또한에세이들사이에는도서관에서좋은자리를차지하기위해경쟁하는모습,작은소음에도신경을곤두세우는예민한모습,다른사람은어떤자료를무슨이유로들여다보고있는지궁금해하는모습등도서관에앉아작업하는연구자의자화상을유머러스하게그려낸단편이삽입되어있다.
「무수한흔적들」은아카이브열람경험을감각적으로묘사하면서아카이브가어떤매력을지니고있는지,작업자는어떻게아카이브의매력에사로잡히는지짚어본다.인쇄된자료와필사자료,혹은자전적기록과아카이브의여러진술자료를비교하기도하고,아카이브문서자료사이에서발견해낸트럼프카드,깃털펜흔적,헝겊편지,씨앗봉투등풍부한예시를곁들여아카이브작업과정을설명해나간다.
「아카이브에누가있는가」는18세기파리의경찰조서를읽어나가면서무엇을발견하고어떤경험을하고무엇을통찰하는가를들려준다.대중이권력을상대로내놓는진술들속에서‘진실’은무엇이고‘실재’는또무엇일까.‘대중’의역사,‘여성’의역사는어떻게해야쓸수있을까?이처럼경험에서우러나온깊은성찰과질문이글속에압축적으로담겨있다.
「수집단계」는아무리과격한전망도옛날종잇장을한장한장넘기는일에서시작할수밖에없음을단조롭고기나긴작업과정에대한묘사를통해적나라하게보여준다.더불어역사연구자에게필요한자질과역량을에둘러일러주기도한다.
「좌초한문장들」은복잡다단한삶과형사사건자료사이의아득한심연,한사람한사람의이야기들과이른바역사적사실들사이의까마득한간극에관해서술한다.특히역사수정주의에대한저자의격렬한비판은읽는이에게깊은울림을준다.
마지막으로「해변의역사가」는왜역사를써야하는가에대한저자의조심스러운의견을제시하는것으로끝맺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