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게임

저녁의 게임

$19.00
Description
“아버지와 나는 낡고 너덜너덜해진 각본으로 끊임없이 연극을 하고 있었다.”
허락된 이야기를 버리고 시대의 거울을 찾아내다
오정희 중단편선 『저녁의 게임』
오정희의 『저녁의 게임』(문지작가선6)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데뷔작 「완구점 여인」(1968) 등 초기 소설과, 시대적 어둠을 통해 현재의 여성적 삶을 비추는 대표 작품인 ‘전쟁 3부작’ 「유년의 뜰」(1980), 「중국인 거리」(1979)「바람의 넋」(1982)을 포함해 총 11편의 중ㆍ단편소설이 실렸다. 특히 오정희 소설에서 두드러지지 않았던 ‘아버지’를 좀더 선명하게 재현한 「저 언덕」(1989), 작가 특유의 모순적 존재론이 두드러지는 「얼굴」(1999), 떠돌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원천을 조망한「구부러진 길 저쪽」(1995)은 〈오정희 컬렉션〉(문학과지성사, 2017)에 미수록된 작품들로, 작가와 해제자, 출판사의 면밀한 검토와 협의를 통해 새롭게 다듬어 실었다.

책임 편집과 해제를 맡은 문학평론가 심진경은 오정희 소설에 대한 모호한 수식어구와 정형화된 해석에 갇힌 그간의 평가가 여성문학을 해석하는 클리셰가 되었다고 지적하며, “궁극적인 문제는 내면성의 탐구가 아니”라는 작가 본인의 말에서 출발해 당시의 사회적 문제점을 되비추는 반사경으로서의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 따르면 오정희의 소설은 “폭력적 권위와 위선으로 몰락조차 달콤한 실패담으로, 혹은 또 다른 성공담으로 윤색”해온 남성 중심의 낡은 서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사를 발명해내려 한 결과물이다. 또한 가부장제적 억압에서 비롯된 여성의 무력감ㆍ좌절감에 대한 역사적 기원과 맥락을 되짚어가는 이야기다.

오정희 소설의 아버지는 상상 속에서 미화되거나(「유년의 뜰」), 생계를 위해 딸을 착취한다(「저녁의 게임」). 그러나 가족을 방치한 채 허황한 이념만을 좇는 무력한 인물이더라도 ‘아버지’란 이름의 폭력적 권위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딸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 때문에 제도권 안에서의 정돈된 삶에 대한 강박적인 욕망을 갖게 된다(「저 언덕」). 가장 또렷하게 존재하는 것은, 누군가의 딸이며 어머니이자 아내이면서도 그에 앞서 무엇보다 자기 자신인 여성 인물들이다. 억압적 삶과 권태를 견딜 수 없어 충동적으로 집을 나가 떠돌아다니는 ‘은수’(「바람의 넋」), 통렬한 자기 인식 끝에 ‘아버지가 다르게 살았다면 나 역시 지금과는 달리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 일갈하는 ‘원단’과 끝내 제도에 저항하며 살기를 선택한 ‘미옥’(「저 언덕」), 웃지도 않고 말도 않고 식탐만 많은, “다른 애들하고는 좀 다른” 명민한 관찰자 ‘노랑눈이’(「유년의 뜰」), 패를 알고 하는 낡은 게임은 재미가 없다며 무능한 아버지와 가부장제에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나’(「저녁의 게임」)가 그렇듯이, 치열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았던 여성 인물들과 그들을 대하는 사회의 모순적 한계까지가 시대를 명료하게 비추어내고 있는 것이다.
저자

오정희

1947년서울에서태어나1970년서라벌예술대학문예창작과를졸업했다.1968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완구점여인」이당선되어등단했으며,1979년「저녁의게임」으로이상문학상을,1982년「동경(銅鏡)」으로동인문학상을수상한이래동서문학상,오영수문학상,현대불교문학상등주요문학상을수상했다.2003년에는독일어로번역출간된장편소설『새』로독일리베라투르상을수상했는데,이는해외에서한국인이문학상을받은최초의사례로서한국문학의해외진출사에서매우뜻깊은사건으로평가받는다.저서로소설집『불의강』『유년의뜰』『바람의넋』『불꽃놀이』,짧은소설집『돼지꿈』『가을여자』,장편소설『새』,동화집『송이야,문을열면아침이란다』를비롯해『내마음의무늬』등다수의수필집을펴냈다.대한민국예술원회원이다.

목차

완구점여인|번제燔祭|저녁의게임|저언덕|얼굴|동경銅鏡|유년의뜰|중국인거리|바람의넋|구부러진길저쪽|옛우물

출판사 서평

문학과지성사의새로운소설시리즈〈문지작가선〉

오늘의눈으로다시읽는어제의문학,〈문지작가선〉이지난7월첫발을떼었다.또한번의10년을마무리하는2019년,문학과지성사는한국문학사,나아가한국현대사에깊은족적을남긴작가와그들의작품을가려뽑아문학성을조명하고새로운의미를부여해나갈목록구성이필요한때라고판단했다.진지한문학적탐구를감행하면서도폭넓은독자들의지지를받으며한국문학의중추로서의미있는창작활동을이어온작가들을선정한다음,그들의작품을비평적관점에서엄선해독자들에게선보이고자한다.또한권별책임편집을맡은문학평론가들의해제를더하여해당작가와작품이지니는문학적ㆍ역사적의미를상세하게되새길계획이다.
〈문지작가선〉의시작점은억압된시대속정치적격변기를거치며권력과사회에대한비판과저항을문학의언어로표현한‘4ㆍ19세대’작가다.최인훈,김승옥,서정인,이청준,윤흥길의중단편선이1차분으로출간되었고,이어서한국현대여성소설의원류인오정희,박완서의중단편선을2차분으로준비했다.지난1월타계9주기에맞추어박완서의책『복원되지못한것들을위하여』를특별히먼저선보였다.

“결혼하면다똑같은말을해.간신히난파선에서구조된사람들이아직남아있는사람들을향해하듯쓸데없이오지랖넓게걱정하고수선을떨어.결혼이과연그렇게안전한닻이되는건가?”
-「저언덕」(p.160)

그어느때보다여성작가의소설이주목받고있는때다.은수,원단과미옥,노랑눈이와‘나’들은오늘의작가들이고민하고있는문제에대해오정희역시고민했고,작가자신만의답을찾으려했다는것을보여주는살아있는증거가아닐까.오늘씌어졌다고해도놀랍지않을「저언덕」속문장은오정희소설의생명력을드러내는동시에,세상은생각보다더디게변한다는비감을느끼게한다.어제의고민을바라보며오늘의문제를풀어나갈실마리를찾는것.“모든좋은문학작품은해석을기다리는고정된실체라기보다는언제나현재의맥락에서끊임없이수정되고재창조되는사건에가깝다.[……]이런측면에서오정희의소설은언제나오해된소설이고,새로운해석을기다리는새로운소설이다.우리가지금,오정희의소설을다시읽어야할이유다”(심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