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걸어가

두 사람이 걸어가

$16.00
Description
젊은 마니아 독자층을 확보한 소설가 이상우의 세번째 책
이미지를 직조하며 써 내려간 이 시대의 감각
『프리즘』 『warp』 두 권의 책으로 마니아층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온 작가 이상우의 세번째 소설 『두 사람이 걸어가』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2018년부터 씌어진 것들로 각기 다른 지면을 통해 발표되었지만, 한 권의 책으로 묶이면서 장편소설의 형태로 편집ㆍ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이번 책에는 한국에 아직 소개된 적이 없는 인도네시아 작가 그라티아구스티 차나냐 롬파스Gratiagusti Chananya Rompas의 소설이 함께 수록되었다. 이상우가 직접 자신의 소설을 롬파스에게 소개하고 원고를 청탁함으로써 이상우의 소설과 잘 어우러지는 멋진 작품이 실렸다. 롬파스의 소설은 이 책과 같이 “두 사람이 걸어가”를 제목으로 하고 있으며 번역은 소설가 한유주가 맡았다.
이 책은 소설의 내용을 뛰어넘어 책의 실물 디자인에도 각별히 신경 썼다. 책 속의 화자가 계속해서 졸다가 깬다,라는 상황에 맞추어 곳곳에 끼워 넣은 검은색 속표제지 사이로는 기존 소설책들의 전형적인 디자인 틀을 벗어난 본문을 배치했다. 이상우의 이번 소설은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느낄 수 있을 법한 감각을 전달하기 위한 방향으로 구성한 것이다. 처음부터 천천히 살폈을 때에야 비로소 전체를 통으로 ‘느껴’볼 수 있는 소설을 소개한다.
저자

이상우

소설집『프리즘』『warp』가있다.

목차

두사람이걸어가
두사람이걸어가_그라티아구스티차나냐롬파스

출판사 서평

“한번떠올려봐.뭘?”
영상처럼흐르고이미지로읽히는문장들

다이너테이블접시위로버터조각이올려진팬케이크꼭대기에서부터흘러내리는투명한시럽이액체적미디어이자가상혹은디지털감각의다차원위상공간이되어겹겹이쌓인팬케이크라는도시들을연결시키는99페이지짜리개소리도있겠지.(p.5)

별빛같은빛깔들이옥상펜스너머로나타나면회전소리만가득히거리와골목사이로몇몇은올려다보던고개를숙이고술잔을홀짝이고현찰을뽑고키스를다시이어나가고머리밖으로멀어지던정찰헬리콥터흰빛으로휩싸이며직선에가까운섬광거리로쏟아낼때닿지못할높이로부터비스듬히건물외벽으로스며드는새하얀빛의안과밖한순간모두가상같았지요.여름부터가을,매일아침부터새벽까지눈부셨지요.한손으로눈앞을가리고서손가락사이로갈라져오는빛을보았지요.발레복을입고버스를기다리는아이들을보았지요.양팔가득시장바구니안고가는동성연인의커플쇼트팬츠를보았지요.스쿠터헬멧을쓴강아지를보았지요.(p.203)

이책의화자는느닷없는장소에서,느닷없는상황에서잠에빠지는행동을반복한다.깜박졸다가깨고다시졸다가깼을때화자는자신의앞에있는무언가를‘본다’.우리는이책을읽는데에있어이‘보다’라는감각에주목할것이다.작가는‘처럼’과같은조사나‘바라보다’등의서술어를문장의재료로활용하여글을읽어가는동시에이미지가연상되도록언어로써조형해낸다.중요한건이책에서의이미지는현실공간만을지시하는것이아니라,유튜브ㆍ영화ㆍ스마트폰과같은디지털로매개된(어쩌면우리가실제풍경보다더자주마주할지도모르는)화면을포함한다는것이다.디지털적감각으로느껴지는눈앞의이미지들은구체적이고고정적인실제장소라기보다는“흘러내리는투명한시럽”“겹겹이쌓인팬케이크”처럼유동적인가상공간일것이다.독자들은이가상공간에대한공통된경험을바탕으로각자다른공간에있을지라도문장을읽어내려감에따라감각되는이미지를즉각환기한다.
특히이상우는“집앞푸드트럭에서핫도그먹었다”와같은문장처럼의도적으로‘을/를’등의목적격조사를생략하여필수적인정보들이연속적으로이어지도록한다.조사가삭제된문장들을통해작가는여백의장면을빠르게뛰어넘고중요한장면을느리게재생하는것과같이주로영상에적용되는효과를문장에부여한다.작가가절묘하게조정한속도에맞춰하나의이미지위에다른이미지를얹고,그위에또다른이미지를겹겹이쌓아올리도록해글의마지막에이르러하나의심상이떠오르도록하는것이다.언어로이미지를그려내는방식과영상처럼재생되는감각의재현방식은이상우의충실한독자층이영상에매우익숙한세대라는점을떠올렸을때몹시강력한매력으로작용한다.


“우리의시점은더이상존재하지않는것같습니다”
겹칠수록투명해지는것

트램이떠나가고트램을기다리고기대보다이르게희망의종착지에남겨진채고개내려나가유미씨의메일읽을때면.제얼굴을비추는아이폰불빛어디에선가나가유미씨의얼굴또한비추고있는모습떠오릅니다.머리위로헬리콥터닿지못하도록흘러가면서닿을수있는시선주위를오가는새들따라조금씩드러나는거리의윤곽나가유미씨가적어준풍경과겹쳐져가로등과건물들자라나듯나타날동안똑같은파장의불빛속에서서로가모르는장소로밝혀지는우리의얼굴을말이지요.잎갈나무가로수무리뒤로고가교의전철이지나가고고개들면사라져버린전철불빛처럼믿을수없이희박한감각들만이남아빛의해상도로미래를베끼는데서로의메일을읽는우리,언제어디인지모르게각자의동시에게비춰지는얼굴밖으로우리의시점은더이상존재하지않는것같습니다.(pp.204~05)

감각적으로제시된이미지들사이사이에이상우는‘케이와와’‘링’‘조시’‘나가유미’등의등장인물들이일상적으로나누는대화나상황들을끼워넣는다.흥미로운점은그들이주변풍경에속해있다는느낌보다는조금씩포개지거나조금씩분리되어있는것과같은방식으로각각이‘그냥존재하는듯한’느낌을준다는것이다.
이러한생경한감각은이상우의문장이보여주는장면들이‘누가’보고있는것인지를명확히알수없다는데에서온다.실제로이책에는주어가누구인지알수없는문장들이다수등장한다.계속등장하는배경에대한세세한묘사는등장인물들이보고있는것일수도있지만그들이아닌다른누군가가보고있을수도있는것이다.나가유미의메일을스마트폰으로읽으며나가유미가있는공간을그려보는화자의얼굴이다시스마트폰에비치고,역시스마트폰으로누군가에게서온메일을읽으며그가있는공간을떠올리는나가유미의얼굴이휴대전화액정에비친다.서로다른공간에있지만스마트폰을통해상상한서로의공간은“희박한감각들”로각자의머릿속에공통의장소를지각하게해준다.가상의공간에대한경험은디지털을매개로각자의인물들에게동시적인감각을부여하고,그런감각들이겹쳐질수록투명해지는레이어속에서“우리의시점”은더이상존재치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