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김행숙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김행숙 시집)

$12.00
Description
“나는 당신이 꾸는 꿈을 꾸고 싶다”
자신의 언어와 존재를 모두 내걸고
당신의 말과 꿈에 다가가는 김행숙의 시 쓰기
올해로 데뷔 21년 차를 맞는 김행숙의 여섯번째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문학과지성사, 2020)가 출간되었다. 2000년대 시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온 미래파의 대표 시인 중 하나였던 김행숙은 그간 과감한 시적 실험과 예술을 향한 끈질긴 질문으로 작품 세계를 넓혀왔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오랜 지지와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의 문학적 성취와 역할을 인정받아 미당문학상, 노작문학상, 전봉건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행숙은 유연하고 변주되는 형상들의 세계, ‘녹아내리는 얼굴’과 ‘반사되는 메아리’에 집중해온 시인이기도 하다. 온전히 완성될 수도, 완벽히 새로울 수도 없는 불가능한 글쓰기의 숙명을 마주한 채 ‘진정한 말의 가능성’을 끈질기게 모색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심부름꾼 k가 내놓은 이야기들’로 자신의 고민을 구체화해낸다. 카프카, 괴테, 배수아, 기형도 등의 여러 텍스트가 김행숙의 시 속에 직접 들어온 듯하지만, 마치 시인의 기억 바구니에 담겨 한참 동안 깨지고 번져나간 듯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모해 천연덕스럽게 전개된다. “가짜에 가짜가 거듭 반사되는 거짓말의 세계”이지만, 그것이 “우리 세계의 진짜 모습”(문학평론가 박슬기)임을 보여주는 시인. ‘문학’이라는 수수께끼를 앞에 놓고 해답을 구하기보다는 질문을 증폭시킴으로써 시를 밀고 나가는 김행숙은 그렇게 우리가 잘 아는 낯선 이야기를 잔뜩 들고 심부름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저자

김행숙

저자김행숙은1970년서울출생으로1999년'현대문학'으로등단하였으며시집'사춘기'와'이별의능력','타인의의미'를펴냈다.그외에'문학의새로운이해,'창조와폐허를가로지르다'도출간하였다.현재강남대국문과교수로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기억이사람을만들기시작했다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주어없는꿈/1월1일/돌속에돌이있고/밤의층계/덜빚어진항아리/의식의흐름을따르며/커피와우산/우산과담배/담배와콩트/고도의중얼거림/일순간/낮부터아침까지/겨울-나무로부터봄-나무에로/유리의존재/우리가볼수있는것/체크아웃/굴뚝청소부가왔다/열대야/마지막여관

2부바보의말을탐구해보자
변신/바보의성격/이세계/공범자들/그림자가길다/우리를위하여/무슨심부름을가는길이니?/「변신」후기/카프카의침상에서/그복도/지구를지켜라/그레고르잠자의휴일/카프카씨,들으세요

3부우리가그림자를던지자첨벙,하고커다란소리를냈다
늑대만남았다/검은숲/죽지않는그림자/밤의실루엣/한밤의기도/밤의한가운데/꿈속에서/아침에일어나는일/두자매/이별여행에대해아는게별로없지만/봄날은간다/노랫말처럼/에코의중얼거림/우리가어딘가닮았다면/어머니의분노/잠을기다리며/그창문/아이가왔다/눈과눈/구름과벌판과창고

해설진정한말의시,함께?있는밤을위하여ㆍ박슬기

출판사 서평

더자유롭게,강물을거슬러오르는물고기처럼
총53편의수록작은2014년출간된『에코의초상』이후씌어진시들이다.지난6년은김행숙이새로운시적국면을맞게된시기이기도했는데,그이유는지난해발표된시인의산문에서엿볼수있다.그는2015년관절의극심한통증으로방문손잡이마저돌리기어려웠던시기를겪고난이후“보이고만져지는모든것이내게착달라붙지않고삼센티미터쯤떨어져멈춰있는것같은느낌,안개를한겹두르고있는것같은”기분이었다고술회한바있다.그런상황에서시를쓰게되자“마치외국어로글을쓰는사람처럼나는내문장이조합되는과정을생경하게의식”하게되었고,“강물을거슬러오르는물고기처럼언어에부딪히는느낌”이었다고밝혔다.이전까지폭발하듯쏟아지던시들이어떤신체적/언어적저항력에부딪힌다음조금씩활기를찾듯진척되어온결과물이이번시집이기도하다.

내기억이사람을만들기시작했다
나는무엇으로구성되어있는가,그래서나는무엇인가
사람처럼내기억이내팔을늘리며질질끌고다녔다,빠른걸음으로나를잡아당겼다,촛불이바람벽에다키우는그림자처럼기시감이무섭게너울거렸다
사람보다더큰사람그림자,아카시아나무보다더큰아카시아나무그림자
그러나처음보는노인인데……힘이세군,내기억이벌써노인을만들었다면나는어떻게되었을까
나는생각을할수없었다,생각을하는누군가가나를돌보고있었다

기억이나를앞지르기시작했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전문

이여정속에서시인이찾았던열쇠는바로‘기억’이었다.단순히개인의생사고락에관한사적기억이아니라,그동안삶에서접해온많은서사가스미고짜이는장으로서의기억.완벽히내것이라고부를수는없지만,마치중역에중역을거듭하듯내안에서소화되어나의언어를이루는기억의발견.「변신」을비롯한카프카의작품다수에서부터,브룩스의『잘빚어진항아리』,굴뚝청소부와밀가루장수의우화등시인은여러이야기에자신만의방식으로이입해들어갔다가전혀다른영혼이되어빠져나오기를반복한다.이렇게서사를유영하는와중에“나를앞지르”는기억이시가되고,익숙한장면이깨지고번져나가전혀다른이야기에가닿는,독자-창작자의자유로운전환경험이이시집에고스란히담겼다.

주어없는꿈속을유영하는카프카의얼굴

55킬로그램의인간그레고르잠자는왜소했으나,55킬로그램의뼈와살과피의새로운조합으로탄생한이거대한벌레앞에서라면누구든지경악의외마디와함께뒷걸음질을치다가엉덩방아를찧게된다.다시말해그누구든지우스꽝스러워지는것이다.당신은지금막외계의생명체를본것이다.당신은온우주에뉴스를전파하고싶지만,공포와흥분으로전신이떨리고특히턱이빠질듯이달달달달떨리게된다.
나는완벽한벌레의꿈이다.
-「변신」부분

글과꿈이뒤바뀌는건다반사.그러므로내가카프카의침상에서깨어났을때에도그는별로놀라지않았다.그래,어느날아침,한국노동자金이벌레가되어눈을떴다고가정해보자,[……]나는나를뒤집어야한다.허공을향해가늘고많은내다리들이웃고있다.아우성치고있다.이봐,날좀도와줘.카프카,카프카,지금대체뭘보고뭘듣고있는거야.쫓기는사람처럼카프카가맹렬하게글을쓰기시작한다.
-「카프카의침상에서」부분

이번시집에서다양하게변주되는주요텍스트는카프카의작품들,특히소설「변신」이다.180센티미터가넘는장신에55킬로그램으로빼빼말랐던카프카는병을앓으면서도엄청난분량의소설과편지를강박적으로썼던작가로알려져있다.「변신」은존재를잃고벌레가되었지만끝내인간의흔적에매여완전한변신에마저실패하는이야기라는점에서자전적고백으로도읽히는데,이작품은김행숙의시에서수많은굴절거울에반사되어“완벽한벌레의꿈”으로펼쳐지는현장으로새롭게풀려나온다.“글과꿈이뒤바뀌”어무한한존재전환을이루는자들은글쓰기의세계속에갇힌그레고르잠자,한국노동자김,혹은카프카이다.그들은그안에서“맹렬하게글을쓰기시작한다”.

훔쳐온말을돌려주기위해밤을기다리듯이

훔친물건을돌려주기위해다음날밤을기다리는
도둑이있었다.

저마다
더깊은밤이필요했다.
-「시인의말」

그는끝없이변신하면서자기자신을영원히지워나가는자다.그렇다면중요한것은이토록위험한글쓰기를이시인은왜계속하는가하는것이다.이시인에게시쓰기란자기의존재를거는모험이자그자신의존재를찾아가는유일한길이기때문이다.(박슬기해설,p.136)

김행숙은나를이루고있는기억과내가구사하는말이단지‘내것이아님’을안다.이깨달음은시인의존재를송두리째흔들지만,“훔친물건을되돌려주기위해다음날밤을기다리는도둑”처럼,심부름에서돌아오는“전달책k”(「무슨심부름을가는길이니?」)처럼,말을전달하기위해자신의전부를건다.시인의이러한위험한모험은“밤의한가운데로걸어가”“길을잃어버린아이의필사적인두리번거림같은것”(「밤의한가운데」)이라두렵기도하지만,그럼에도그는밤을견딘다.그리고여름밤이시집을읽어나갈용감한당신에게이렇게말한다.“양배추밭사잇길로어둠을쏘아보며씩씩하게걸어오세요”(「이별여행에대해아는게별로없지만」).

■추천사

김행숙은우리세계의진짜모습을,가짜에가짜가거듭반사되는거짓말의세계를펼쳐놓았다.이세계는너무나아름답지만그중심점으로서의내가단지거울에지나지않는다면우리는어떻게이세계에서말하고쓰는자로존재할수있는가.그러나어떤불가능한열망이김행숙의시를이끌어간다.말들의거울로서의우리가하나의존재일수있는이유를,사람과사람사이의진정한말의가능성을탐구하는것이다.시인은이불가능한글쓰기가문학의운명임을발견한다.우리는가짜로서가아니라진짜로서,나의존재그자체로서타인의존재로이끌린다.그녀의진정한말을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