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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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런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연민이 이 전쟁에서 남은
유일하게 위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러시아의 대표적 문학상 ‘볼샤야 크니가’상 수상작!
체첸전을 배경으로, 혼란스러운 현실의 파도에 몸을 실은 이들의 이야기

러시아 현대문학의 거장 블라디미르 마카닌의 『아산』이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60번으로 출간되었다. 러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마카닌은 1965년 장편소설 『직선』으로 등단한 후 2017년 80해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비에트와 포스트 소비에트 시절을 아우르며 ‘두 세기, 아니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러시아의 두 시대의 척추를 연결하는 사실상 유일한 작가’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동인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동시대 작가들과 달리 소비에트 시기부터 줄곧 단행본을 출간하며 공식 문단의 외부자로 살았던 그는 격변하는 시대에 민감하게 공명하는 작품으로 자신만의 확고한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아산』은 러시아에서 2008년에 출간된 장편소설로, 러시아 현대사의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는 체첸전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으로 작가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볼샤야 크니가’상을 수상했고, 이로 인해 평생에 가장 ‘소란스러운’ 명성을 얻게 되었다. 수상 소식을 들은 일군의 체첸전 참전 작가들이 마카닌은 체첸전의 현실을 전혀 모르며, 그가 그려낸 것은 말도 안 되는 허구라고 맹렬하게 비난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에 마카닌은 체첸전이 참전 작가들에게만 독점권이 있는 고유 영역이 아니며 참전했다고 해서 그 전쟁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작품에서 드러난 사실의 오류 또한 명백했다. 이렇듯 이 전쟁에 대해 말할 권리에 대한 싸움으로 시작된 논쟁은 결국 전쟁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장르론으로까지 이어졌고, 『아산』은 ‘전쟁에 관한 우화’ ‘인생에 대한 우화’로 평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카닌은 예술 작품에서 사실의 진위 여부가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으며, 전쟁문학은 전쟁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기보다 그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역설했다.

『아산』은 체첸전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급격한 속도로 세워지던 러시아의 혼란스러운 현실의 파도에 몸을 실은 한 개인의 내면을 성실하고 치밀하게 그려냄으로써, 마카닌은 우리 시대 비극의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전쟁의 실상은 소설 속 모습과 다를지 모르지만, 독자들은 혹독한 현실에서도 일말의 선량함과 나름의 도덕적 지향을 지닌 ‘우리 시대의 작은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주인공 질린 소령의 모습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저자

블라디미르마카닌

ВладимирСемёновичМаканин(1937-2017)
러시아서부의작은도시오르스크에서건축기사였던아버지와러시아문학교사였던어머니사이에서태어났다.2차대전이후체르니콥스크시로이주하여그곳에서중·고등학교를다니며수학과체스에남다른재능을보였다.1960년,모스크바대학교수학과를졸업한후10여년간고등교육기관에서수학을가르치면서극작수업도받았다.1965년장편소설『직선』으로등단했고,1971년극작으로학위를받은후로는출판사‘소비에트작가Советскийписатель’에서일하며‘아름답지만심장을뛰게하지는못했던’자신의전공영역을떠난다.소비에트와포스트소비에트시절을아우르며독자층을보유한매우드문작가로일컬어지는그는격변하는시대에민감하게공명하는작품들을발표했다.대표작으로『캅카스의사로잡힌자』(1994)와이미현대고전의반열에오른『언더그라운드,혹은우리시대의영웅』(1998),포스트소비에트시기에발표된『공포』(2006),『아산』(2008),『두자매와칸딘스키』(2011)등을들수있다.그의작품은20여개언어로번역되어전세계의독자들을만나고있다.포스트소비에트시기에도활발하게작품활동을이어오던블라디미르마카닌은2017년11월1일,로스토프나도누근교의작은마을크라스니에서타계했다.

목차

아산

옮긴이해설·아산-‘우리시대의영웅’
작가연보
기획의말

출판사 서평

한개인의내면을통해서본,또다른전쟁의모습

전투병이아니라창고와주택건설을위한공병으로파병된질린은모든책임을전가하고떠난상급자들로인해홀로창고에남겨진다.체첸반군들과하루하루싸우며창고의무기와휘발류를지키던그는체첸반군의수장두다예프와의우연한만남을계기로한칼라지역일대의휘발유왕으로거듭난다.게릴라전으로위험한체첸의길을따라러시아부대와러시아측체첸군부대에휘발유를배송하고그대가로배송한휘발유의10분의1을챙기는것이다.그는이렇게번돈을부지런히아내에게송금하여러시아의큰강주변에이층집을짓고있다.한밤중에휘발유창고들사이에자리한작은뜰에서아내와통화를할때행복을느끼는평범한가장인동시에수없이죽을고비를넘기며이무의미한전쟁의문법을온몸으로체득하는질린소령은,그속에서전쟁의신‘아산’으로살아가기도한다.
이책의제목이기도한‘아산’은작품속에등장하는바자노프장군의말을빌리면,한때체첸지역을휩쓸었던알렉산드로스대왕의대항마로산사람들이만들어낸피를탐하는전쟁의신이다.고대의아산은피를원했지만,현재의아산은돈을원한다.알렉산드르세르게이치라는이름을발음상의이유로아산세르게이치라부르는데서온호칭이기도하지만,휘발유가부족한이지역에서휘발유를소유한질린소령을체첸인들도,러시아인들도아산으로인정한다.

전쟁통에서돈벌이를하고있지만,주인공질린소령을움직이는건결국멋모르고전쟁터로끌려나와죽거나체첸반군의포로가되어끔찍한일을겪는수많은러시아‘애송이’에대한연민이다.그의내면에모순적으로공존하는냉혹함과관용,두려움과용기,냉소와연민,선량함과강퍅함,부당함과정의로움등은읽는이로하여금공감을불러일으킨다.전쟁이라는극한상황속에서자신의작은존엄성을지키기위해고군분투하고,고향에두고온처자식을걱정하고,그들에게더나은삶을선물하고싶어하고,또그런자신을부끄러워하고,애송이들때문에날린돈을아까워하면서도동시에보호받지못하고죽어갈어린청년들을안타까워하는질린소령의모습은우리의모습과그리다르지않다.

마카닌은등장인물들의축재와부정에면죄부를주지도,그것을고발하지도않는다.질린소령이지키려애쓰는최소한의도덕적선을찬양하지도않는다.전쟁의신아산조차피보다돈을구하는이새로운시대에자신을지키고,가정을지키고,작은양심을지키고자하는소박한인간의내면풍경을꼼꼼히그릴뿐이다.질린은사회주의가무너지고자본주의가도래하고모든것이혼란스럽던시기,이미애국심이나일체의대의명분이사라지고돈이모든것을지배하기시작한시기를나름의개인주의로살아내는인물이다.그에게이전쟁은목숨을걸어야할만한그어떠한이유도없다.그가발견한이전쟁의유일한논리는‘승자가정해지기전까지전쟁은부조리하다’는것이다.그런그가자기부대를잃고떠돌이병사가된올레크와알리크를구하고그과정에서비극적인최후를맞이한다.어찌보면가장평범한소시민인질린은소비에트전쟁문학에서넘쳐나는‘거대한영웅’은아니지만,개인의양심을끝까지따라가고자했던‘우리시대의작은영웅’이라할수있다.

600페이지가훌쩍넘는적지않은분량이지만,한개인의내면을통해경험하는전쟁의또다른모습은매력적인흡인력으로독자의눈과마음을사로잡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