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 이상의 모형 (김유림 시집)

세 개 이상의 모형 (김유림 시집)

$12.00
Description
하나이며 여럿인 이름의 책
어긋남이 만들어낸 우연한 파문
늦여름이다. 하늘하늘 땀이 흘러내리는 혹서에 너를 사랑해. 그들은 나를 대신하여 말했다.
-「나의 검은 고양이」에서

2016년 현대시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유림의 두번째 시집 『세 개 이상의 모형』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544번으로 출간되었다. 첫 시집 이후 약 반년 만에 나온 이 책은 『양방향』 이전에 씌어진 원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책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시들을 빼고 고치고 덧붙이면서 처음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되었다.
『세 개 이상의 모형』에서 김유림은 기억을 지긋이, 유심히, 끈질기게 지켜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시간과 기억을 끝없이 떠돌며 두려워했던 지난 시집에서 좀더 나아가, ‘나’라는 내밀한 장소마저 허물어 무수한 문장과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해설을 맡은 강보원의 말을 빌리면 이 책은 김유림에게 놀이 장소이자 전시 공간, 영원히 임시에 불과한 거주지, 고집스럽고 (이제는) 즐겁게 헤매려는 기록이다. 김유림의 시는 진지한 해석이 필요한 텍스트이지만, 책의 질서에 몸을 맡긴 채 둥둥 흘러가다 보면 기묘하고 귀여운 모형들을 거쳐 경쾌한 파동을 마주치게 될 거라는 기대 또한 걸어봐도 좋겠다. 당신은 우연히 이 시집을 만난다. 당신은 이 책을 헤매고 싶어질 것이다.

저의 시에서는 시간을 건너뛰거나 시간을 끌어오는 것이 중요하고, 장면이 중요하고,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들이 중요하고, 기억이 중요하지만 또 지금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한데 모아 집어삼키는 책이라는 존재가 중요합니다. 선형적인 시간의 경험을 제공한다고 여겨지는 책이라는 존재가 이것들을 데리고 갑니다. 「뒤표지 글」에서
저자

김유림

2016년현대시학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양방향』이있다.

목차

1
엘레네

2
별자리2
별자리
영상들2
나의검은고양이
1나의마음
1나운의마음
2거울꿈
2거울꿈
3
4도넛거울
5탈출
6너의의미
7사랑
7수영장
8거울요정
91998년극장
10해민의경우
11
12거울사요나라
12
13
13유진생각
14
14세개이상의모형
15거울연못
6너의의미
16
16잃어버린것은잃어버린

17
18
18벽
19기계
20
21하나의집
22거울운동
나의검은고양이
23다음

3
생전유고

4
외투들
나무들
니스
중노동


탐정

K
세개이상의모형
안개
안개
바다가보이는집
속초
노래하고사라진사람들
사라진사람들
겨울
꿈꾸는사람들
바게트
어딘가따뜻한나
주유소에서
누군가는반드시웃는다
꿈의

노천탕은작았다
사랑하는나의연인

해설하나는여럿둘은셋ㆍ강보원

출판사 서평

기묘한이세상의기억들을집어삼킨책
“나는유심히보는너를유심히보았다.놓친것.흐른것”
뒤표지글에적혀있듯김유림의시에서는시간,장면,사람,기억이중요하다.『세개이상의모형』은이들이뒤섞인,선별된질서로이루어진전시공간으로읽힌다.김유림이상상한전시는이렇다.“사람들은모여서세개의방을관람하고있다.[……]세개의방은김유림의세개의방으로알려졌지만세개의방이아니다.문짝을떼고벽을헐어서양식통로를만들어모두에게익숙한전시공간이되었다”(「나의검은고양이」,p.21).세개의방을나누었던건익숙한질서다.사람들은한때방이었으나김유림이분류를“떼고”“헐어”어디에속하는지모르게되어버린,그러니까1)과거/현재/미래중언제인지2)일어났는지일어나는지혹은일어나지않았는지3)꿈인지현실인지모를어떤‘곳’에서김유림의안내에이끌려‘떠다니는장면들’을지나친다.이제사람들은궁금해하며“도마뱀시와망아지시와코끼리시를읽고그아래전시된작은모형들을보고있다”(「14/세개이상의모형」).

여러시들의제목에붙은숫자대로시집을읽어나가는건힌트일수도트릭일수도있다.일단“동선이헷갈리지않게헷갈리는모든것을정리했습니다”(「나의검은고양이」)라는문장을믿어보자.같은번호가붙은시들은거의비슷한문장을반복하면서내용을비틀어확장하고서로의“다른버전”이된다.한편어떤제목의시와그시를쓰고있는누군가를관찰한같은제목의시도있다.간결하게서술된또다른시는전후에나란히배치된시들과관계지어읽었을때더큰맥락안에포함될수있다.이처럼이시집속에서시들은거울처럼“서로를바라보거나서로를바라보는서로를등지고있다”(「14/세개이상의모형」).김유림의〈세개이상의모형〉이라는전시가기억으로이루어져있다면,각각의시는이어지는기억과,기억의공백과,누구에게나기억은다를수있으며결국“언제나달라지는기억만이화자가가진전부”(강보원)라는것을자연스레증명하는것이다.

잊기는잊었다.반복하는것이다.사이사이잊기를잊게되면무시할수없는기억이무시무시하게반복한다.기억이반복하는것이다.기억이반역하는것이고.
-「영상들2」에서


하나이며여럿인이름들
“우리는생각하는김유림을감싸안는다”
이전에김유림은구멍난‘나’의기억을그저집요하게바라보고있었을것이다.구조물이되지못하고“벽만으로이루어진벽”에드리워진너무큰시간과기억의“그림자”(「18/벽」)에파묻히기직전까지,김유림은“무서웠지만어디까지나가보자는심정”(「나의검은고양이」,p.68)으로밀어붙였을것이다.마침내두려움도무서움도공허해지는데다다랐을때빈이름의자리를채우는것은우연히지나고스쳐가는다른사람들의이름이다.나운,나영,유진,해수,타오밍,명수등각각의이름은“무언가를적는”“네가보는”“내가생각하는”(「소」)이름으로서기입되는자리마다모습을달리하며반복된다.김유림의시가다른이름들보다강력한고유명사인“김유림”을통해서만가능했다면,김유림은“그림자가떠나는순간을포착할길이없”어계속불어나는벽의그림자만을내내바라볼뿐이었을것이다.빈원본의자리를대신하는어긋남을생산하면서,사람들-이름들과김유림은“때로서로사랑하고.다투고,오해하고,같이전시를기획하고,엇갈리며,함께걷는다”(강보원).이한권의전시를관람하고나서당신은“일렬로일렬이지만일렬에반하는형태로천천히빠져”나오고,“무리를지어그러나여전히무리의바깥에서”(각각의)“사람으로서”걸어갈것이다.“여기가끝인가”(「엘레네」),어리둥절한채로말이다.

사람들은흩어지고나는그제야기지개를켜고뒤돌아본다.그때부터다.내가글을쓰기시작하는것은방이있고작은방이있고잘모르는방이있고그렇지만방이있고거기서쓰기시작하는것이다눈을들어이곳에서빠져나가는그림자를
-「나의검은고양이」(p.68)부분

김유림의시를읽는다는것은끊임없이자리를바꾸고다른곳에서나타나며반복되는텍스트들의이동을체험하는일이다.이시와모형들의전시를모두관람하고나서우리는궁금해하고어리둥절해하며돌아갈것이다.돌아가면서가져가는책과가져가도여전히남아있는책으로이책은갈라지고반복될것이다.그반복과갈라짐속에서“우리를만드는벽과우리를허무는벽과우리를그래서점유하는공간이책이되어갈”것이다.그러나이책은여전히책이거나책이아닌채로헤매고있을것이고,당신은단지우연히이책을만난다.강보원(문학평론가)

뒤표지글(시인의글)
제가생각할때저의시에서는시간을건너뛰거나시간을끌어오는것이중요하고,장면이중요하고,사람이중요하고,사람들이중요하고,기억이중요하지만또지금이중요합니다.그리고이것들을한데모아집어삼키는책이라는존재가중요합니다.선형적인시간의경험을제공한다고여겨지는책이라는존재가이것들을데리고갑니다.그러나사람들은사라지고사람들은꿈꾸고사람들은사라지지만사라지지않았고그렇지만사라져서어디엔가는반드시공백이나간격이있다는것.장면과사람과책이중요합니다.시간과공간이,선별된아름다움이중요합니다.이전의것과지금의것은결코이어질수없지만하나의장면을통해이어질장면을마련하는것처럼도보입니다.
어째서아름다운기억은선별되는가.그리고그대로둘것인가.그대로둘것인가.그대로를둘러싼긴장은점점커져서아예사라져버린것같기도합니다.그긴장에서등돌리고멀어지는또다른아름다움의거대한무게를가로지르며저는거리를걷고나무를좋아합니다.
내가본골목의오리를다른사람도본다는사실에부드러운충격을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