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탄식 (마종기 시집)

천사의 탄식 (마종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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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시인 마종기,
아주 멀리서, 실은 당신 곁에서 건네는 그의 맑은 위로
올해 시력 60년을 맞이한 마종기 시인이 신작 시집 『천사의 탄식』(문학과지성사, 2020)을 펴냈다. 제23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마흔두 개의 초록』(2015) 이후 5년 만의 시집으로, 타국에서 한 편씩 써온 시 54편이 3부로 나뉘어 묶였다. 시인은 60년간 타국의 일상 속 성찰이 담긴 담백하고 아름다운 시어로 씌어진 10여 권의 시집과 시선집, 산문집을 꾸준히 선보이며 시인 자신과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져왔다.
젊은 시절 이 땅을 떠나야만 했던 시인 마종기는 시 쓰기로 고국과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왔다. 이번 시집에는 퇴직 전 반세기 동안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살아가며 겪었던 외로움이나 고국의 작은 골목을 그리워하는 일에서부터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깊은 회한, 삶에서 마주한 소박한 존재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성찰까지, 마종기 시 특유의 쓸쓸하고 따스한 아름다움이 더욱 짙푸르게 녹아 있다. 무엇보다 평생 시인, 의사, 신앙인으로서 살아온 그가 자신의 시적 기원을 밝은 눈으로 돌아보면서 언젠가 다가올 세상과의 이별, 그 다음의 만남을 준비하는 겸허한 시들로 가득하다. 인생의 가을을 지나고 있는 시인에게 이별이란 슬프지만 따뜻하다. 그렇게 어떤 슬픔은 위로가 된다.

우리는 이 시집에서 빼어난 서정적 지성이 가꾼, 연민과 응시와 회억의 큰 숲을 본다. 일찍이 규모와 세련을 이룬 마종기 시인의 언어적 도구는 세월이 흐르면서 근간의 안정과 성숙을 성취했고 그 도구를 다루는 몸과 마음은 뚜렷한 연륜을 더하여, 그의 시 시계는 광활하고 울창해졌다. 이제 눈앞에 펼쳐진 풍요로운 숲을 걸으며, 지속과 변화의 미세한 결을 찾아 읽는 일은 앞으로 오래 독자들의 행복이 될 것이다. 이희중(시인, 문학평론가)
저자

마종기

1939년일본도쿄에서태어나연세대의대,서울대대학원을마치고1966년도미,미국오하이오주톨레도에서방사선과의사로근무했다.1959년『현대문학』추천으로시를발표하기시작한뒤,『조용한개선』(1960),『두번째겨울』(1965),『평균율』(공동시집:1권1968,2권1972),『변경의꽃』(1976),『안보이는사랑의나라』(1980),『모여서사는것이어디갈대들뿐이랴』(1986),『그나라하늘빛』(1991),『이슬의눈』(1997),『새들의꿈에서는나무냄새가난다』(2002),『우리는서로부르고있는것일까』(2006),『하늘의맨살』(2010),『마흔두개의초록』(2015)등의시집을펴냈다.그밖에『마종기시전집』(1999),시선집『보이는것을바라는것은희망이아니므로』(2004),산문집『별,아직끝나지않은기쁨』(2003)과『아주사적인,긴만남』(2009),『당신을부르며살았다』(2010),『우리얼마나함께』(2013),『사이의거리만큼,그리운』(2014)등이있다.한국문학작가상,편운문학상,이산문학상,동서문학상,현대문학상,박두진문학상,대산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1
이슬의명예
사순절의나비
신설동밤길
바다들의이별
투옥의세월
갈리폴리1
갈리폴리2
저집의봄
나그네의집
서울의흙
비오는칠레
잡담길들이기20
소름의역사
친구를위한둔주곡
저녁기도
겨울의끝날
사소한은총
파타고니아식변명

2
이사
는개의시간
진혼의해안
바지락이나감자탕이나
노는땅
무용가의초상
마지막/시차적응
동생의도시
시간의그늘에서
노을의주소
화가에드호퍼의겨울
잡담길들이기21
잡담길들이기22
새의안부
다행이다
침몰하는바다
늦가을감기

3
아내의꽃
아침산책
월요일의그림자
젊고싱싱한단어는
코끼리의후퇴
큰참나무의눈
이슬의기상
사자는정말시인일까
안동행일지
기도해주어!
빨강머리앤
아무리그래도그렇지
이별하는새
남해밤바다
즐거운송가
자화상2
천사의탄식
장미,요한이살던마을
다시만나야하니까

해설이별너머ㆍ이희중

출판사 서평

길이시작된곳에서다시피워낸깊고투명한희망

그게정말길이었을까,
가쁜숨쉬고땀흘리느라
고개숙이고주위를살피느라
정작지나온긴나날은
보지도못했네.길이었을까.

헤치고밝히며온발걸음은
춥기도하고바람도불고
더워서지치기도했었지만
스쳐온밤낮에흩어져있던
꽃냄새,빗소리,강물빛까지
그게온통한생의속살이었네.
-「친구를위한둔주곡」에서

시인은매해두세달씩고국에머물곤했지만올해는팬데믹탓에올수없었다.여느해같았다면고국에서보냈을시간동안,마종기는차분하게자신의삶과시력60년을반추하며시적기원을찾아간다.그는이십대에군사정권에의해투옥당했고추방당하다시피미국으로향해야만했다.생명을다루는의사라는직업은시인에게긍지와고통을동시에안겨주었다.“사람의신음사이로열심히배어드는일,/그어두움안으로스며”(「신설동밤길」)들어갈때마다마종기를붙들어주는것은마음속고향서울의노을을닮은“따뜻하고편한”(「노을의주소」)모국어와시였을것이다.시와함께그의삶을지탱해온다른한축은신앙이었다.천주교신앙은낯선세상에던져진채로늘“삶과죽음”을응시할수밖에없던의사마종기에게시인으로서의“고통과희생과보살핌”(「시인의글」)을기쁘게자처하고매순간자기자신을반성하게하는원동력이자버팀목이되어주었다.그로써“내안에서시작되고그래서내가책임지고내가울수있는그런시를쓰고싶다”(『마종기깊이읽기』)라는의연한다짐이가능했으며,“꺾이지않았던날들”을모아“꽃이나열매로이름을새”기는‘후회없는’경험도쌓을수있었을것이다(「신설동밤길」).
지금같은환란의시기는오히려“무섭고겁이나도돌아설수가없”는때다(「파타고니아식변명」).길을잃고모든것이흔들리는이때,마종기는초월적이며거대한존재인대자연과‘신’에한발더다가선다.표제시이자최근작인「천사의탄식」초반부에서그는“창궐하는역병”을마주하고무력함을느낀채“60년전시인이되겠다고한건방진약속”을취소한다.그러나끊임없이반문하고,자신의영혼에귀를기울이고,거칠었던삶을찬찬히돌아보면서,시의말미에이르러오늘들려오는“탄식”은호통이아니라“살아오면서자주들었던”“다시시작하라는”“다정한”위로임을비로소자각한다.그렇게시인이자의사이자신앙인이라는정체성은초월자앞에선‘인간’마종기안에서하나가된다.시집『천사의탄식』에수록된여러시에는이렇듯자연스럽게흔들리고고민하다가마침내작은희망을발견하고야마는너무나도인간적인과정이담겨있다.

재회를기다리는청명한이별

세상에는도대체몇개의마지막이있을까.
-「마지막/시차적응」에서

어느덧“해가뉘엿뉘엿지는나이”(「갈리폴리2」)에이른시인은그리운것이많다.“어릴때살던헌집”마당에서챙겨온흙을종종들여다보며소중히간직한다.“혹시라도내가이국땅에서갑자기가면/이한줌흙을꼭내손에쥐여달라”(「서울의흙」)는서러운마음.“모든사람이태어난나라에서죽지는못한다”(「갈리폴리2」)고하더라도“이승을하직한후에는안동에와살고싶다”(「안동행일지」)며겨우그마음을달랜다.“세상에서제일힘든것은이별이겠지만/내흙을보고있으면이별도부드럽다”(「서울의흙」).
이처럼‘부드러운이별’은이번시집에서유독두드러진다.어머니,아버지,동생,친구들……그리운이름들을가만히하나씩불러보고,추억을되새기며애타게그리워한다.그렇지만“지상의날은얼마남지않은것같”다고(「자화상2」)쓰면서도그‘떠남’이절절히슬프기보다“청명하고명랑한”것은(「즐거운송가」),먼저떠난오랜친구의약속,“내옆에남겠다는그약속”(「는개의시간」)에대한믿음때문일것이다.자연의이치이든삶에대한비유이든“질긴평생”을마무리하는“겨울의끝날”은“그뒤에오는”봄이있어“오히려정답다”(「겨울의끝날」).지극한그리움끝에‘다시만나게되면반가워웃을지오래참아우는얼굴일지모르겠지만’,언젠가,어딘가함께모여사는곳에서우리가다시만날것이분명하므로(「다시만나야하니까」).“나이들어가는”길위에서“다행이다”이야기할수있는마음,오래바라본그리움과이별의슬픔은그렇게시인의시선을거쳐쓸쓸하지만따뜻한위로가되어우리에게손을내민다.“어둠속에서혼자일때,세상을헤맬때”“기댈곳이늘있으니다행이다”(「다행이다」).

뒤표지글(시인의글)
시는사랑의한표현방법이고체온나눔이고생환훈련에서살아남기위한방편이다.적어도나는그렇게믿고한세상시를사랑하며살았다.시의목표가사랑이아니라면그런시는내게필요없는존재다.왜냐면세상은보기보다잔인하고외롭고힘들기때문이다.시는삭막한세상에서상처치유의도구가되어야한다.아마도내직업이의사였던때문일까.내관심사는언제나삶과죽음,고통과희생과보살핌이었다.나머지는모두내게는제스처이고껍데기고믿을것이못되는것들이었다.

의사였을때는보이는것을자세히그리고정확하게보는것이중요했고들리는소리를확실하고분별있게듣는것이필수였다.그런데내가시를쓰는이유는,보이지않는것도보고싶어서이고들리지않는소리도듣고싶어서이다.보이지않는것을보려고시도하지않는시인이라면시인의감수성이나상상력이란것이어디에무슨소용이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