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자서전 (이기성 시집)

동물의 자서전 (이기성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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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맨발로 죽기 전에 우리는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잿빛 언어로 써내려간 혁명의 시
삶의 황폐한 이면을 뼈아픈 성찰의 감각으로 묘사해온 이기성의 다섯번째 시집 『동물의 자서전』(문학과지성사, 2020)이 출간되었다. 고된 노동과 비극의 풍경을 정제된 언어로 다룬 『사라진 재의 아이』(현대문학, 2018) 이후 2년 만의 신작이다.
이번 시집에서 이기성은 도시에 만연한 죽음의 그림자를 남다른 감각으로 사유한다. 자본의 폭력에 의해 “회색의 고기”(「고기를 원하는가」)로 무참하게 씹히고 삼켜진 이들의 흔적을 시의 언어로 어루만지고자 한다. “오랫동안 1970년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쓴다”라는 뒤표지 글처럼 이기성은 “도시의 첨탑 위에서” 시위하다가 “추락한 사내”(「소년에게」), “농성장에서 팔을 치켜든” “테러리스트”(「감자의 시」), “아름다운 옷을 짓기 위해 목소리를” 버린 “재단사”(「재단사의 노래」) 들을 잊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쓴다. “도시를 불태울”(「어쩌면」) 기세로 분노하고 “혁명의 이마 위에서 틱틱톡톡 명랑한”(「도서관」) 춤을 출 날을 고대한다. 그러므로 『동물의 자서전』은 “잿빛 먼지”(「외로운 책」)처럼 스러져간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한 실천의 기록이자 “백 년 동안 검은 전염병이 창궐한 뒤에도”(「이야기」) 도시 곳곳에 울려 퍼질 투쟁의 목소리이다.

어떤 문장은 얼음 바다보다 깊습니다. 그건 자정보다 어둡고 밤의 허벅지를 찌르는 파란 뿔을 가지고 있고

어느 날에 꽃을 피웁니다. 그것은 30년 후에 혹은 백 년 후에 돌아올 폭풍과 같으며 눈물처럼 범람하는 것
-「동물의 자서전」 부분
저자

이기성

1998년『문학과사회』에「지하도입구에서」외3편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불쑥내민손』『타일의모든것』『채식주의자의식탁』『사라진재의아이』,평론집『우리,유쾌한사전꾼들』『백지위의손』등이있다.제60회현대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망각/동물의자서전/도서관/마르크스를훔치는시간/재단사의노래/죽을/죽기전에/적막/그림자/고기를원하는가/햇빛/생일/산책자/영영/

2부
풀이되다/이상한우정/이야기/선고/한사람/그녀/검은식당에서/회색구두/스틸라이프/도착할때/구빈원에서의하루/소년에게/우리는왜동물처럼울지못하는가

3부
시/밤의아이/시인은질투때문에죽는다/당나귀와의독백/풀/회색의시/어쩌면/감자의시/회색/사랑에관한시/연인들/매혹/시인의죽음

4부
즐거운날에/외로운책/밤에하얀모래밭에/Q를위하여/자정의버스/유령의나날/가방/우체국여자/이봐요,오리들/세이렌/새야/꽃을사는저녁/노래

해설
회색사유자의노래ㆍ송승환

출판사 서평

사라져간이름들의자서전

이기성은도시의삶을회색으로인식한다.그것이눈부시게생명의빛을발하지도못하고“검은유령”처럼한가롭게“지루”(「유령의나날」)해지지도못하는노동의색이기때문이다.

그애가회색이되겠다고했을때모두웃었다
모두가웃을때그애는조금회색이되었으려나
-「회색의시」부분

“회색이되겠다”는말에사람들은일제히웃음을터뜨린다.그것이비웃음이라는것을눈치채기는어렵지않다.그들이웃는이유는회색이의지로써도달해야할목표가아니라조롱과업신여김을당함으로써저절로이르게될처지임을알기때문이다.그러므로“모두가웃을때그애는조금회색”이되고만다.“잿빛안개가득한도시”(「소년에게」)에어울리는존재로변해간다.이기성은이러한회색의삶에관심을갖고그들의언어를좇고자한다.“회색의입술”통해흘러나오는“회색의말들”(「회색」)을받아적으려노력한다.그것은도시에서노동을하다가“잿빛누더기를걸치고눈먼맨발로”(「어쩌면」)사라져간이들에대한기록을남기기위해서다.자본에의해침묵과망각을종용당했던인간들이마땅히누렸어야할존엄성을잊지않기위해서다.

골목의지하방에는슬픔의재단사들이잠들어있어요그들은밤새은빛가위로밤을오려가장검은외투를만들었답니다당신의것이될외투를재단하느라부르튼손으로
딱딱하게굳은세월의심장을어루만지며
-「재단사의노래」부분

가장낮고어두운곳에서이루어지는결속

해설을쓴문학평론가송승환은시로씌어진이야기가“이야기되어지는사람들에대한기억을불러일으키고”그로인해“다른이야기가될수있는가능성을”열어주리라예견한다.이기성의시가언어적매개로서죽은자와산자를잇는통로의역할을하고,이러한만남이우리를진정한공동체로서단합시켜주리라기대한다.“존재의전이를이뤄내는시와노래”를통해서만“사랑과혁명”의가능성을발견할수있다고믿는것이다.

밤의노래를네게주리.죽은자의관에너를넣어주리.죽은자의귓속에서울게하리.죽은자의꿈속에서무한히걷게하리.죽은자의뺨에흐르는눈물.그에게서훔친푸른조약돌을꼭쥐고너는영원히죽은자의얼굴을가지게하리.
-「노래」전문

그러므로첫시「망각」으로시작하여마지막시「노래」로끝나는『동물의자서전』은이시집을읽게될독자들에게작품속‘나’의곤궁과비참을현실속‘나’의것으로끌어안는체험을선사한다.과거와현재를아울러‘나’에서‘너’로,다시‘우리’로의확장을경험하도록이끈다.이러한작업을통해이기성은우리가“어디에서왔는지”(「검은식당에서」)를진지하게묻고자한다.시와존재의근본적인의미를묻고,우리가동물이아닌인간으로서살아가기위해어떠한노력을멈추지말아야하는지를묻는다.

어느날우연히
이책을펼쳐보게될
당신에게,

이것은사랑에관한시입니다.
당신의말입니다.
-「시인의말」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