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경 달밤 (신영배 시집)

물안경 달밤 (신영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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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안녕.
이 말을 어디엔가 쓰고 싶었다.
물구두를 쓰듯이.
안녕.
이 말은 처음의 말이기도 하고 끝의 말이기도 하고.
물구두처럼.
안녕.
만나거나 헤어질 때.
눈을 뜨거나 감을 때.
물구두.
안녕.
이곳의 나에게.
당신에게.
저자

신영배

시인신영배는1972년충남태안에서태어나2001년『포에지』에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기억이동장치』『오후여섯시에나는가장길어진다』『물속의피아노』『그숲에서당신을만날까』『물모자를선물할게요』,산문집『물사물생활자』가있다.김광협문학상,김현문학패를받았다.

목차

시인의말

1부물송이1과물송이2와물송이3과물송이4와
달과마트/애인에게편지를썼다/물안경/데이트/그녀는가방을안고잠이들었다/풀과교복/물구두를신고/개밥과소녀/물속에서손을잡았다/터미널과생리대/물과B,80/이불과물의방/숲과물베개/물의자에앉아/B,풍기다/B,48/사과를팔았다/미용사B와비의날/물버스정류장/나의밤나의바다

2부물안경이떠있는테이블
끌다/아주희미한건반/물안경과푸른귀/물가위/물꽃뱀상자/물걸레와옥상/물기타/B와나는우산을같이쓰고있었다/물악기/물운동화1/물운동화2/물운동화3/칼과물거울/물빨간구두/물고무줄총/면도날과물비행기/물안경이떠있는테이블/방과어항

3부걸어가며마르는나무
달밤

해설물物과물[水]사이출렁이는B의세계ㆍ오연경

출판사 서평

단단하고난폭한세계를통과해흘러가는물송이들
어둠을벌려환한길을내는달밤의노래

시력20년차를맞는시인신영배의여섯번째시집『물안경달밤』이문학과지성사에서출간되었다.2000년대전위시의지형도에서진은영,김이듬,이기성등과함께‘마녀적무의식의시’(오형엽)로읽혔던신영배의시.그는그간‘물과그림자의시인’이라불리며무정형의존재들이흐르고투과하여낯선상상계로향하는과정을시로담아김광협문학상과김현문학패를수상하기도했다.특히일상적으로폭력에노출되는여성의삶에주목하여,날카로운폭력현장을부드럽고환상적인세계로옮겨내는부단한실험을감행하면서현대시사안에서자신만의독보적영역을확보했다.이번시집에서전세대를망라해다양한폭력을겪는익명의여성들을‘B’로부르며,그녀들의아픔이연결되어흐르는순간들을보여준다.전반부서른여덟편의시가1,2부에나뉘어담겨‘달리고날고돌고흐르는물송이’의운동을리듬감있게제시한다면,3부의긴산문시「달밤」에는시쓰는삶의면면이담겼다.B와나,찢기고뭉개진얼굴들이환한물송이로다시피어날환한날을향해신영배는오늘도꾸준히움직이고있다.

신영배는어둠속의사물을,잃어버린단어를,상처입은마음을한송이한송이물송이들로피워내려한다.폭력으로가득찬세계에서,찢기고버려진그녀들에게서,굳게닫힌사물들에게서가까스로하나씩물송이가피어날때,우리는어딘가환한세계로옮겨지는중임을알게될것이다.(문학평론가오연경)

물송이1,물송이2,물송이3……
물이되어만나고흘러갈상처입은여성들의역사

그녀(B,32)는남편이술취해서오는날이면부엌을치웠다칼을치웠다부엌칼에서멀리아이를떼어놓았다멀리아이를감추었다멀리아이를재웠다깨어나면죽을지몰라멀리멀리잠이들었다

물송이4가달렸다
-「그녀는가방을안고잠이들었다」부분

바다에밤이있다는것을처음안소녀를데리고물송이1이달린다,상처를감추기시작한소녀를데리고물송이2가달린다,깨진발등이드러나고물송이3이달린다,검은물을쓰기시작한소녀를데리고물송이4가달린다,시한편에넘어오는그녀(B,19)와푸른색에넘어가는나의밤나의바다
-「나의밤나의바다」부분

앞서언급했듯신영배의시에는B로표기된수많은‘그녀’가등장한다.A가아닌B,혹은비[雨].해설을쓴오연경은이명명법에대해“주류의여집합으로존재하는‘비非’주류로서의여성”을의미하는동시에“세계와언어를흐르게할수있는,기성의반대쪽으로옮겨갈수있는,주류의질서를부정할수있는가능성을부여받는다”라고설명한다.실종된15세소녀(「풀과교복」),망치로맞고유기된24세그녀(「B,풍기다」),가정폭력에시달리는32세그녀(「그녀는가방을안고잠이들었다」)등나이와함께(B,15)(B,24)(B,32)라표기된이들은“십대부터팔십대까지의익명의여성들로확장되고다른한편으로는생애에걸쳐폭력의경우의수를축적해온여성의일대기로압축된다”(오연경)고도읽힌다.하지만그녀들은폭력현장에고정되는수동적인존재로남는것이아닌유동의‘물송이’와함께움직임의주체가되어날고뛰고흘러간다.물로씌어진듯언젠가흔적없이말라버릴지라도,끊임없이씌어지고잃어버릴시가물송이들을추동하며리듬감있게풀려나오는이유다.

시라는무대에오른나와그녀
약한존재들과발맞춰나아가는용기

그녀가구두로등장하고춤을춘다.나도구두로등장한다.달이밝다.
그녀가모자로등장하고노래를부른다.나도모자로등장한다.밝다.
그녀가구두로등장하고내가모자로등장한다.
구두와모자.춤을춘다.노래를부른다.
내가구두로등장하고그녀가모자로등장한다.
구두와모자.춤춘다.노래한다.
구두와모자.벌어진다.
구두와모자.멀어진다.
구두와모자가걸어간다.그녀와내가걸어간다.벌어지는구두멀어지는모자,벌어지는모자멀어지는구두.달빛속에서우리가옮기는것은무엇일까.
-「달밤」부분(중략표기생략)

3부의장시「달밤」은마치이시집의프롤로그와에필로그가한데모인듯도하다.“나는시를쓰면안되는사람일지모른다”는솔직한고민앞에서우리는시인신영배가헤매고있는기묘한숲과골목을,시적자아와나의자리가수시로바뀌며서로를알아들을수없고엇나가는과정을,한시도멈출수없는시쓰기의고단함을엿볼수있다.‘그녀’들을바라보고대화하여한발씩나아가는시의여정.이는중간중간삽입된이탤릭체지문들을통해무대위에오른‘나’와‘그녀’가춤추고노래하는장면으로도압축적으로제시된다.시인은묻는다.“달빛속에서우리가옮기는것은무엇일까?”이시집의마지막장에이른우리는어렴풋하게나마답을느낄수있다.곧사라져버릴듯한환상의세계라해도,어두운밤약한빛아래서비릿한공기를마시며함께걷는물송이들의용기는결코미약하지않다는것을.신영배를읽는우리도오늘“다마르기전에눈을한번크게뜨는달밤”아래있다.

■추천의말

단단한사물을물쪽으로당겨물렁하게만드는그녀,상처의기억을어루만져물송이로빚어내는그녀,벌어지고멀어지는사태를겪어내는그녀,구두와모자를물구두와물모자로옮기는그녀가있어비내리는B의세계가,잃어버린B의세계가,미지의B의세계가‘활짝’열린다.신영배는시속의그녀와나에게묻는다.“달빛속에서우리가옮기는것은무엇일까.”이제는물송이들을따라여기까지걸어온독자가답할차례다.그것은시인과우리들사이,물物과물[水]사이,흔들리고출렁이는경계에서지어졌다사라지는시의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