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최윤 소설집)

동행 (최윤 소설집)

$14.00
Description
2020년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수록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는 동행의 힘!
5월 광주의 비극을 다룬 작품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를 발표하며 “가장 뛰어난 증언의 문학”(김병익 문학평론가)이라는 수사와 함께 등장한 최윤의 신작 소설집 『동행』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작가는 「회색 눈사람」으로 동인문학상을, 「하나코는 없다」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 책에 수록된 소설 「소유의 문법」으로 2020년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유의 문법」은 ‘나’가 은사 P의 배려로 딸아이 ‘동아’와 함께 은사의 전원주택에 들어가 살며 목격한 시골 마을 주민들의 탐욕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소유와 탐욕의 시스템에 길들어 ‘이 세상에 올바른 모습으로 거하는 법’을 잊어가는 현대인에게 ‘소유의 문법’을 뛰어넘는 뜨거운 생의 진실을 깨우치는 수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에 선정되었다.
전작들에서 역사와 시대의 갈등을 온몸으로 겪었던 작중인물들이 중심이었다면, 작가의 근작은 좀더 일상에서 발생하는 각기 다른 모습의 아픔에 주목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은 삶의 고통은 그들의 신체에 증거물처럼 남아 과거의 상처를 현재로 불러들인다. 최윤은 아픔 가운데 ‘겨우’ 유지되고 있는 인물들의 삶을 파헤치기를 거부하고 되려 지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맞아들임으로써 어떻게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을 수 있는지에 관한 답을 보여준다. 재난이 일상이 되어버린 2020년 현재에 우리는 줄곧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 수도 없이 묻곤 하지만,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결론이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돕는 연대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모두를 위한 작가의 응답과도 같다.
저자

최윤

1953년서울에서태어났다.서강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프로방스대학에서불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1978년『문학사상』에평론을,1988년『문학과사회』에소설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저기소리없이한점꽃잎이지고』『속삭임,속삭임』『열세가지이름의꽃향기』『첫만남』,장편소설『너는더이상너가아니다』『겨울,아틀란티스』『마네킹』『오릭맨스티』『파랑대문』등을펴냈다.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이효석문학상을수상했다.서강대학교프랑스문화학과명예교수다.

목차

동행
서울퍼즐-잠수교의포효하는남자
분홍색상의를입은여자
숨바꼭질
손수건
울음소리
소유의문법
옐로
애도

해설/타자와의동행-어떤환대의세계박혜경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어느반항의사춘기,가출을할생각으로기차를타고이부근을지나쳐,당시의세상끝인동해안까지갔습니다.그해안도시의한책방에서시집을몇권사들고여관방에서하룻밤을지냈습니다.[……]이것이저의처음이자마지막가출이지만,맘속으로저는늘가출중입니다.제게제공된경계를떠나고있습니다.제가넘어온곳의풍경을바라봅니다.그때서야왜그랬는지가보입니다.더잘보기위해서그랬습니다.감히문학을위해서그랬습니다.
-최윤,‘2020이효석문학상수상소감’중


말로설명해낼수없는상처와고통,
그아픔을육체에새긴채‘겨우’살아가는자들

어차피빈아파트일바에야아주황량하게비어있는것이좋다.이것이그와나의공동의취향이되었다.실내는작은부엌쪽을빼고는완전히비어있다.이안에서는모든것이‘겨우’다.부엌도겨우부엌의면모를갖추었고침실도겨우침실을닮았을뿐.응접실이라부르기에는너무작은그공간에소형텔레비전한대가‘겨우’놓여있다.이것이그와나의평화의방식이다.
-「동행」

표제작「동행」은스스로목숨을끊은열두살남자아이의부모인나와남편을중심인물로한소설이다.자식을잃고하루아침에하얗게세어버린남편의머리칼처럼나의일상역시송두리째뒤바뀌어버린다.소설은왜이런일이벌어졌는지그이유를찾아나서는듯하다이내부부가놓인답답한상황자체에주목한다.최윤이‘왜’라는질문에명료한답을내놓지않는것은부부가아무리매달려도설득력있는답을얻을수없다는사실때문이기도하지만반백이되어버린머리칼처럼육체에남은상흔과함께삶이계속해서진행되고있다라는현실이좀더강력하게작용하고있다는데에서기인한다.
가슴에사무치는아픔을간직한채로도일상은계속굴러간다.대신최윤의인물들은밖으로드러나는모습을최대한단순하고평평하게만들어간다.모든것을비워버린뒤겨우삶이유지되는정도로만,딱그정도로삶을가볍게정리하는것이다.「서울퍼즐」에서는동생을잃은형이등장한다.그의아픔은한순간에머리칼이세는것과같은극적인변화를동반하지는않지만오히려치통과같은좀더직접적인고통으로드러나면서간헐적으로그러나점진적으로그를조여온다.생생한치통의아픔을새기면서「서울퍼즐」속형역시마치자전거를타기위해사는것처럼자전거이외의것들을축소하는방식으로상실을견디길선택한다.


말로다할수없는아픔을짊어진채
우리를‘다시’살게하는연대의가치

K가돌아왔다.하강과실추의드라마를온몸에싣고.

궁금해하지말자,절대내입으로질문을던지지말자!라고나는거의입밖으로중얼거리다시피다짐했다.내속에서강렬하고도끈질기게일어나는궁금증을억누르고나는그녀를보살피게되었다.
-「분홍색상의를입은여자」

극도로쪼그라든삶을유지하는작중인물들을‘다시’살게끔하는일상의작은반전은갑작스럽게,그리고아름답지만은않은방식으로들이닥친다.「분홍색상의를입은여자」속의‘나’는“거리에서죽을일은없”다고할만큼최소한의삶을유지하며살아가는인물이고,‘K’는매우유명한사진작가로과거에나와잠시인연이있었던지인이다.어느날나로부터는물론세상에서도모습을감추었던K가우연히내앞에등장한다.“하강과실추의드라마를온몸에싣고.”
잘나가던과거를모두지운초라한모습으로등장한K를두고나는그의지난삶이궁금하지만묻지않기로결심한다.‘왜’라는질문앞에서답을찾지않고오로지현재의K옆에함께있어주기를택하는것이다.이와같은선택에대해이책의해설을쓴박혜경은“침묵의환대”라일컫는다.침묵의환대는책에서다양하게변주하여등장하는데,학교폭력으로고통받는친구가우는소리를묵묵히들어주거나(「울음소리」),처음보는사람이눈앞에서오열하는데도당황하기는커녕그저지켜보는한남자의모습(「손수건」)등에서그러하다.언어로명확히정리될수없는고통을감내하고있는인물들에게“‘왜’라고묻는대신조용히옆에앉아있거나그저침묵하며같이울수밖에없는환대의방식”을최윤은보여주는것이다.최윤식환대는‘겨우’살아가는이들의내면에자그마한파동을불러일으키면서동시에함께걷기,즉동행의가치를일깨운다.육체와삶에새겨진상처를그대로받아들이면서같이걸어가는동행의삶이야말로최윤소설속인물들이“타자의고통에응답하는방식”(박혜경)이자다시서로를일으켜세우는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