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숨

환한 숨

$14.00
Description
『빛의 호위』 『단순한 진심』의 저자 조해진 신작 소설집
너에게로 나의 숨결이 흘러들 때 되살아나는 온기 어린 이야기들
소외된 이들의 자리를 따뜻한 언어로 위로하는 조해진의 소설집 『환한 숨』이 출간됐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등 문단 내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며 저력을 다져온 작가가 지난 2019년 『단순한 진심』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후 선보이는 첫 책이다. 이 책에는 자전소설인 「문래」와 2019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환한 나무 꼭대기」를 포함한 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되었다. 특히, 「환한 나무 꼭대기」는 “어둠 속에서 빛을 더듬어나가는 듯한 섬세한 문장으로 쓰인 소설”이라는 심사평처럼, 인생의 굴곡을 어루만지며 말로 풀어내기 어려운 감정들에 환한 숨을 불어넣는 작가의 특장점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간 조해진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주민, 입양인, 노동자 빈민 등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도 가장 어두운 자리에 머무는 이들의 삶에 색채를 더하는 작업을 수행해왔다. 이번 책에서도 가려지고 외면된 자리에 놓인 이들, 이를테면 기댈 곳 하나 없이 암 투병 중인 중년 여성이나 수은중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해야 했던 미성년 노동자들, 이렇다 할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청춘을 허비하다 지쳐버린 남녀의 삶 등에 렌즈를 가져다댄다. 작가는 이들의 삶이 결코 여기서 끝난 것만은 아니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감각되지 않지만 존재하는” 개개인의 이야기에 온기를 더한다.

조해진 소설을 읽는 일은 맨손으로 찬 눈을 움켜쥐고 한동안 응시하는 시간 같다. 외면할 수 없는 딜레마 앞에서 우리는 ‘회전목마에 혼자 오른 어린아이’처럼 여러 번 어지럽고 불현듯 고독해지겠지만 그러한 고립이 끝은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자기 온기로 녹여 그것이 더 높은 차원에서 구원되기를 바라는 조해진의 아름답고 섬세한 “기도의 언어”가 우리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_김금희(소설가) 추천사
저자

조해진

1976년서울출생.200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중편소설「여자에게길을묻다」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천사들의도시』,『목요일에만나요』,『빛의호위』,장편소설『한없이멋진꿈에』,『로기완을만났다』,『아무도보지못한숲』,『여름을지나가다』,『단순한진심』,『환한숨』등이있다.신동엽문학상,이효석문학상,김용익소설문학상,백신애문학상,형평문학상,대산문학...

목차

환한나무꼭대기
흩어지는구름
하나의숨
경계선사이로
파종하는밤
눈속의사람
높고느린용서
숨결보다뜨거운
문래

해설/연루와비밀-김미정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그러나’뒤에오는가려진진심들
끝난자리에서다시떠오르는삶의시작점

호재와함께할미래는방금전에취소됐다.이제내삶은이커피숍의반복적인연쇄와같을거라고뒤이어생각하자오히려마음이편안해졌다.꾸부정히앉아혼자커피를마시는,기차칸처럼연결된수많은밤의커피숍들이고독한링을벗어난내삶의새로운무대가되는것이다.그러나……
그러나내가마지막으로하고싶었던말은이런것인지도몰랐다.
_「흩어지는구름」

누구에게나공평하게주어지는절정의순간들을파티라고말할수있다면,모든파티는결국끝난다.“순도높은열정”을지닌일상도,삶의환희로가득찬순간도,때로는너무나힘들어서“비관적인허무”에서벗어날수없던시절까지도말이다.그러나작가조해진은이것이진짜끝은아니라는듯절정이지나간자리에서“마지막으로하고싶었던”말들에기대어이야기를풀어나간다.
12년이라는세월을함께보낸호재와나는이별을결심하고,오랜연애끝에“내삶의새로운무대”가기다리고있을것이라는나의기대와별도로소설은“그러나”뒤에오는나의진심에주목한다.그진심은호재가있었던삶이어떻게가능했는지,그가조연출로참여했던다큐멘터리속에서호재가했던말들이어떻게나를살게했는지에관한진실된고백이다.
연애의종료와같은사건은때로는동창의죽음(「환한나무꼭대기」),불행한공장사고로의식을잃은미성년자(「하나의숨」),불미스러운사건으로사라진아버지와남겨진자매(「높고느린용서」)등으로변주되면서,작가는끝에가까워진이야기의꼬리를잡고,‘그러나’뒤에웅크리고있는개개인의이야기에숨을불어넣는다.우리의관계가때로는죽음으로,이별로,혹은크나큰시공간의격차로어긋나지만사실나에게는아직너에게하지않은그러나,너를향한이야기가있다는삶의진실이계속우리를살게하는것이아닐까.작가는흩어지고상처받은개인의이야기속에남은각자의진실된마음에주목하며참혹한결말이완전한“끝은아니라는믿음으로부터조심스럽게다시시작하기를”(김미정문학평론가)제안한다.

진실된마음이빚어내는찬란한순간들
서로를발견할때연루되는‘나-너’

“얼마전에무슨시민단체에서일한다는분이병원에찾아와서그러데요,이사회가하나를그렇게만든거라고요.그런가요,선생님?”
“……”
“근데요,그거잘몰라서하는말이에요.내가못나서하나가저렇게된거예요.고등학교중퇴에미혼모에,나좀못난거맞잖아요.”
_「하나의숨」

앞서이야기한이‘그러나’라는접속사는역사와사회의폭력에휩쓸리는개인들의삶에주목해온조해진의주요서사에서도힘을발휘한다.특성화고의비정규직교사로일하는나는계약해지를앞둔어느날제자‘하나’가실습을나간공장에서큰사고를당해의식을잃었다는소식을듣는다.하나의사고는물론이고이책에수록된또다른소설「파종하는밤」에서수은중독으로사망한소년들의이야기나,「경계선사이로」에서부당하게해직된기자들을대신해그자리를꿰찼지만누구에게도인정받지못하는신입기자의내적갈등등은늘반복되는일이지만여전히해결되지못한사건으로재현된다.
그러나,“사회가하나를그렇게만든거”라는짧은요약뒤에는진짜행복이있다고믿고싶은‘하나’가,그리고그런‘하나’가무의식속에서도행복한꿈을꾸기를바라는사람이있다.사회의단면뒤에자리한개개별의세계와꿈,공평하게간직한환한마음들이반짝떠오를때만들어지는내면의의지들은결코시스템으로환원될수없는지점들을만들어내며조해진소설의빛나는장면을조각해낸다.
예컨대「눈속의사람」에서‘나’와여진은과거출판사의구술사기획에참여해한국전쟁당시미군의북한군학살에동참했던정찰병최길남을만나게된다.오로지자신의목숨을위해많은이를죽였다는수치심에빠져사는최길남은딱한번자신의마음을진실되게만든순간을비밀스럽게털어놓는다.총소리가쏟아지는와중에공포에떨면서도“팔다리가짧고몸통이가는연약한생명”을구하기위해,제몸을던지게만든그한줌의찬란한순간은최길남을향해쉽게쏟을수있는비난의말아래감춰졌던또다른면을끄집어올린다.
이같이조해진의작품들은하나의사회라는큰틀안에서각자가자신의이야기를가질수있음을보여주면서동시에서로가서로의고유성을발견해내는경험을독자에게제공한다.이경험을두고김미정평론가는“이것은단순한‘연결’이라기보다,어떤세계?사건에서로깊숙이‘연루’되는사건들에가깝”다고말한다.즉,“이곳과저곳,이존재와저존재,과거와현재”라는현저하게다른위치에놓인이들이각자의고유성을간직한채서로에게스민다는것이다.집단안으로단순하게환원되고정렬될수없는주체들은서로를온전히이해할순없을지라도서로의마음에어떻게가닿을수있을지,어디서부터이들의이야기가다시시작될수있는지질문한다.“이어려운질문에기꺼이동참하기를권하는조해진의소설들앞에서세계는가늠할수없이깊고넓어진다”(김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