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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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길고 긴 비문록의 본격적 서막”
선언을 예감하는 거인의 문장들
저자

김언

시인김언은1973년부산에서태어나1998년『시와사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숨쉬는무덤』『거인』『소설을쓰자』『모두가움직인다』『한문장』『너의알다가도모를마음』,산문집으로『누구나가슴에문장이있다』,시론집으로『시는이별에대해서말하지않는다』등이있다.미당문학상,박인환문학상,동료들이뽑은올해의젊은시인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키스/키스2/거품인간/폭발/신기루/발음/유령-되기/불멸의기록/다음날/없는사람과의이별/장례식주변/아무도없는곳에서/쏜다/사건현장/새의윤곽/바람의실내악/한사발의손/돌멩이/돌의탄생

2부
다리의얼굴/다리의얼굴2/그가토토였던사람/드라마/잘못한사람/서있는두사람/차분하게고통스럽게/모종의날씨/돌멩이2/暗시장/납치/홀/누구세요?/엄마배고파/드라마2/판다/가능하다/토요일또는예술가

3부
뱀사람/뱀사람2/유령/즐거운식사/숨쉬는로봇/거인/어느갈비뼈식물의보고서/잠입/기원전/사라진사람/안보이는숲의마을/외투/떨어진사람/고가도로아래/이동네의길/표면적인이유/내가벌써아이였을때/청춘/시집

부록
詩도아닌것들이-문장생각
詩도아닌것들이-탱크애벗의이종격투기

해설문장의중력·박혜진
기획의말

출판사 서평

언어를통해세계의전복을시도해온시인김언의두번째시집『거인』이2021년문학과지성시인선R시리즈열일곱번째책으로복간됐다.2005년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나온초판과2011년문예중앙개정판을거친세번째출간이다.시인의첫시집『숨쉬는무덤』이“여전히불만스럽기때문에아직은할말이많은얼굴”(「뒤표지글」)의출현을예고했다면,두번째시집『거인』은“장차김언의시세계가보여줄길고긴비문록의본격적서막”(박혜진)으로서언어와현실의경계를실험한다.
“한나절의공포가그를밀고할것이다”(「거품인간」),“구름은조금더높은곳에서방향을바꿀것이다”(「바람의실내악」),“서있는두사람이그렇게단정할것이다”(「서있는두사람」).이시집에는선언을연상케하는문장이자주등장한다.무언가를예감하는이문장들에서세상을구성하는“모두가움직인다”는감각에서출발해아직오지않은“한문장”을찾기위한전조를감지할수있다.

독자를언어의탐정으로만들어의심하고취조하고심문하게만드는것이시인의일이라면김언은누구보다더혹독한시인이며김언이야말로하나의언어를중단시키고다른언어를출발시키는예외적존재로서의시인이라할수있을것이다._박혜진(문학평론가)

고향을상실한유령의언어

초판을내고서른번도넘게비행기를탔던것같다.
많이탄것인가,적게탄것인가는중요하지않다.
몇번을탔든마지막에는다돌아오는비행기였다.
집으로돌아오는비행기.고국으로돌아오는비행기.
다만고향이멀었다.고향만이멀었다.
-「시인의말」부분

김언은무적자다.경계밖으로향하려는여정은시가되는순간늘내부로향하지만,1998년등단이래20년넘게시를써온시인에게도“고향”은아직멀기만하다.『거인』을대표하는감각은‘없는존재’다.‘거품’‘연기’‘먼지’‘신기루’‘유령’처럼고정된형체가없는이미지,혹은‘사라진사람’‘떨어진사람’‘없는사람’처럼존재가불분명한대상의행렬은돌아갈고향을상실한시인의정서를대변한다.
시인의정체성에해당하는고향이시라면,“작곡하듯이”(「시집」)혹은“전혀시적이지않은소설”(「소설을쓰자」,『소설을쓰자』)을쓰듯이시를대하겠다는의지를이해할수있다.이는음악이나소설을닮은시를쓰겠다는말이기보다는‘시밖의시’,즉기존의관습에얽매이지않는시를쓰겠다는의지의표명이다.시를무술에비유할수있다면김언은“사각의링이든팔각의철조망안이든”“그것을구분하지않는”“스트리트파이터”다(「詩도아닌것들이-탱크애벗의이종격투기」).이번R시리즈를복간하며새롭게추가한작품「유령」은『거인』을다시읽기위한준비운동으로적절해보인다.

미안하지만유령은짜맞춘듯이찾아온다.
온몸이각본으로만들어진사람같다.
그가어디를가든예정에없던
장소가나타난다.어디서보았더라?
나는내뜻대로움직이는실오라기
하나를주워서후,불었다.
발자국이멀리걸어서갔다.
마치냄새가퍼지듯이
내몸에꼭맞는연기를따라서갔다.
엉킨털실이옷을만들어놓고기다렸다.
주인을기다리는장소에
이제그가들어간다.
-「유령」전문

유령은흔히생각하는것처럼죽어서만질수도볼수도없는존재가아닌“각본으로만들어진사람”이다.“나에게소통이불가능한(사실은어려운)시는있어도모두에게소통이불가능한시는있을수없다.[……]그차이를절대적인차이로부각할때,나아닌다른누구와도소통이안되는것처럼과장할때,소통불능이라는그시를읽고공감했던사람은그럼뭐가되는가.유령인가?”(『시는이별에대해서말하지않는다』).
해설을쓴문학평론가박혜진은“유령을이루는각본은모두가읽을수있는문장이아니라한사람만읽을수있는비문”이라고이름붙이며김언의물음에응답한다.있는장소에방문하는것이현실의이치라면,김언(言)이라는언어로축조한세계는“모두를향해열려있지만누구나들어갈수는없”다.의심의말들로씌어진56편의시는이비문의세계를모험하며기꺼이걸려넘어지기를자처하는자(「청춘」)에게주인이되는경험을선사한다.

모든것을버리고태어난진화의방향

조그만공이라고생각했는지모른다.지구밖으로튀어나와이게내손이라고자기얼굴을가리던그손으로가장높은산맥과봉우리까지움켜쥐던사람,그사람의이름을편의상거인이라고부르자.

[……]

개중엔낯익은이름도섞여있다.부를때마다달라지는이름,이를테면사람.
-「거인」부분

거인이‘유령’이나‘먼지’와달리중력의영향을강하게받는존재임을고려할때,부재하는이미지로가득한이번시집의표제작이「거인」이라는점은눈여겨볼만하다.어쩌면가장많이등장한시어지만지나치게“낯익은이름”이라눈에띄지않고“부를때마다달라”져서스쳐지나갔을거인은“여러사람이모여”이룬“한사람”이다.그는“기록하는사람”이자“소멸하는”사람인동시에,쓰고지우기를반복하는그“손을쳐다보는사람”이다.
끊임없이몸집을키워온인간의역사를돌아보며김언과거인의이름이자꾸겹쳐보이는것은왜일까.시인은자신이이야기하는대상보다그것을이야기하는방식,즉“진화의방향”(「거인」)에주목해달라고말하는것처럼보인다.“진실을말하시오.아니면거짓을말할테니”(「서있는두사람」),“살고싶지않으면무기를버려라”(「납치」).어느쪽도선택할수없는상황에서자신이믿어온모든언어를버리고씌어진문장들은,역으로가장태초의언어가탄생하는순간을되비추며김언시의궤적을가늠하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