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시대 : 박경리 중단편선 -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48

불신시대 : 박경리 중단편선 -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48

$14.00
저자

박경리

1926년10월28일(음력)경상남도통영에서태어났다.1945년진주고등여학교를졸업하였다.1950년황해도연안여자중학교교사로재직하였다.1955년에김동리의추천을받아단편「계산(計算)」과1956년단편「흑흑백백(黑黑白白)」을[현대문학]에발표함으로써문단에나왔다.1957년부터본격적으로문학활동을시작하여단편「전도(剪刀)」「불신시대(不信時代)」「벽지(僻地)」등을발표하고,...

목차

일러두기

계산
흑흑백백
암흑시대
불신시대
벽지
환상의시기
약으로도못고치는병



작품해설
환상없는밤의시간/강지희
작가연보
작품목록
참고문헌
기획의말

출판사 서평

전쟁이후를살아가는여성의빈곤,수치,폭력

하루살이처럼위태롭고서글픈생활이었다.그러나그런불안전한생활기반마저두달전에아주잃어버리고말았다.실직을한것이다.혜숙은이렇게궁해져도도무지기질만은옛날과같이변하지않는다.아니꼽고더러우면팩하니침뱉고돌아서버린다.이러한성질은가난한그를더욱가난하게하였다.(「흑흑백백」)

총알이오가는전쟁만큼이나두려운것은이후끈덕지고비루하게이어지는삶이었다.전후에씌어진박경리의자전적소설들에는특히자존심강한여성이가장으로서생계를꾸려가는동안느껴야했던수치와모멸이생생하고복합적으로드러나있다.대표적으로「흑흑백백」에서는남편이폭사하여친정어머니와딸을부양해야하는‘혜숙’이구직과정에서겪는편견과치욕을그려낸다.학교예산을횡령할뿐아니라한때제자였던유부녀‘황금순’과불륜을저지르고있는장교장이‘혜숙’을다른이와착각하여문란한여성이라고낙인찍는아이러니를통해남편없는여성의경제활동을가로막던다양한차별의시각을꼬집었다.

젊은중은들고온그릇에다영가앞에차린음식을조금씩덜어놓는다.나물,떡,자반,과실,그렇게차례차례손이간다.마침먹음직스러운약과에손이닿자별안간목탁을치던중이,
“그건그만두구려!”
바락소리를지른다.(「불신시대」)

이번중단편선에서는실제로박경리가아들을화장터에서떠나보낸날부터집필했다고알려진「암흑시대」와,그로부터한달여쯤지나죽은아들을추모하기위해종교에절박하게기대던나날을담은「불신시대」도연이어실렸다.작가는돌발적인사고로머리를다쳐병원에실려간아들이허망하게죽음에이르게된과정을반복적으로톺으며,뇌물없이는수혈조차받을기회가없고,명령과책임계통마저분명치않던“그야말로없는놈에게는병원이라기보다는생지옥”(p.84)이었던1950년대의료시스템의붕괴현장을낱낱이보여준다.더하여신을섬기고망자를추모하기보다는경제적이해타산에만골몰한종교의식들을경험하며말그대로의‘불신시대’에서어떻게인간다운삶을살수있는가끈덕지게질문한다.

낭만적사랑,혹은환상

“그래너는사실만가지고따지는구나.나를냉혹하다고생각하니?그래도좋다.사실지금까지난경구씨에대한내처사가옳았고,그른걸생각해본적이없었어,내감정이모든것을포기한그것뿐이야.”
“회인아넌너무철없다.넌뭐라해두경구씨같은사람그리흔하지않아요,난어디까지나현실적이야,그까짓말몇마디가지구그럴것없잖어?더군다나그가지금얼마나고민하고있는가를생각할때.”(「계산」)

박경리의데뷔작「계산」에서는실리적수단으로서의결혼을거부하고순수한사랑을지향하는낭만적시선이담겨있다.하지만절대적사랑을꿈꾸며약혼자를떠나려결심한여성이얼마나절망적인세태의벽에가로막히는가를그려내며,현실의구차함과이상주의사이의간극을여실히보여내어그균형감을맞춘다.

“에이잉!하필이면일본애한테,일본애하고S한조선애는전교에서한명도없다.넌정말엉뚱한짓을했구나.그래마지마선생이뭐래든?”
“네가쓴거냐고묻더군.편지엔이름도안썼는데.”
“그야글씨를보면당장알지.그능구랭이가모를라구?그런데어쩌다들켰니?그놈의계집애가갖다바쳤을까?”(「환상의시기」)

한편작가자신의유년과진주여고시절을재구성한중편「환상의시기」는이책의가장큰분량을책임지고있는작품으로,동성간의사랑을다루고있다.이소설은주인공민이가일본인여학생오가와나오코에게반하여S교제를청하면서도,‘일본인’‘여학생’을향한감정을부인해야하는수치심이중첩되어그긴장감과흡입력이높아진다는특장도가지고있다.책임편집자강지희는이소설이그간연구자들에게1965년한일국교정상화국면이후식민지시기의기억을조명했다는점에서주목받으면서도역사적의미를찾기보단사적체험에압도되었다평가받은점을지적하며,실은이작품이“여학생들사이에서강렬한밀도의동성애적친밀성을다룬소설로,민족의경계뿐만아니라이성애정상성과충돌하는소설로서새로읽힐필요가있다”는점을제시한다.

비극을딛고예술로향했던고결한여성의일생

장대한작품세계를이루어낸생이었기에하나로단언될수없는박경리의삶과소설이지만,그의여성인물에게서두루엿보이는꿋꿋한생의의지와고고함은작가의정신을닮아온것이리라짐작해볼수있다.박경리의회고에서반복되어이야기된“인생이행복했으면문학은하지않았을것”이라는말은,부지불식간에두가족을잃고무너진사회안에서여성으로서분투하며살았던경험을향해있다.오늘날박경리를읽는일은단지과거의일제강점기와전후시대상을돌아보는것에그치지않고,불합리에타협하지않는엄준함과이상을향한지치지않는열정을배우고자신의삶에녹여갈계기를맞는마중물을만나는일이될것이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