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와 그녀

초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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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며 [……]
영원히 끝없이 나는 한강일 거야.”
기억에서 시작된 낯선 체험을 다루는 서사 실험
저자

김효나

저자:김효나
1982년서울에서태어나서울대학교도자공예과를졸업했다.2016년『쓺』을통해소설을발표하기시작했다.연작소설집『2인용독백』이있다.

목차

Ⅰ가라앉는대화
Ⅱ초와그녀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침묵과발화를반복하는화자
독백에가까운말로채워지는꿈의대화

어쩐지나는네가내게서사라짐을조금씩연습하고있음을,내일은다른형태의사라짐이,모레는또다른사라짐,글피는,또글피의글피는……조금씩,자진하여,위험에처하는연습을하다가어느날완전히그것을이행할것임을,이미그순간전부예상했는지몰라.그래정말로,너를이렇게다시만나게될줄은몰랐지.너를만나다니정말꿈만같아.혹시……이게꿈은아니지?(p.37)

수록작「가라앉는대화」에서나는10년만에만나‘그’와과거의이야기를나누다가불쑥시제를당겨현재의이야기를꺼냈다가오랜만에만난사람들이으레그러하듯뚝뚝끊어지고야마는대화를나눈다.결말쯤에이르러서야“이게꿈은아니지?”라는물음과“나는언제나당신의꿈을꾸”(p.38)었다는고백끝에이대화가‘나’의꿈에서일어난일이었음을짐작게한다.
김효나의글은그의첫책『2인용독백』에서이번신작에이르기까지대화체의서술방식을택함으로써일관된형식을보여주지만,실은대화처럼보이는독백이라는점에서매우독특한의미를갖는다.둘로구분된화자가등장하는장면은연극적인공간처럼보이도록구성되어있으나,이야기가진행될수록그들의대사는읊조림에가깝고희곡이라기보다는꿈속의대화혹은누군가의머릿속에서재연되는하나의발화같기도하다는것을눈치챌수있다.때문에작가의글은누군가의기억혹은꿈속을유영하는듯한느낌을주며계속해서단절되는장면들을더듬어보는경험을선사한다.‘기억’의문제를다루는김효나의화자와만나기위해서독자들은우선작가가준비해놓은꿈의대화,둘이지만하나로보이는이가상의공간에발을들여놓아야한다.


거대한덩어리가되어버린기억의형체
그안에가라앉아벗어나기를거부하는이들

이제그만해.
……
할만큼했으니제발그만해.그때문에너의모든게엉망이되지않았니.너는직업도없어.집도없어.직업과집을구하려는마음도없어.오직그마음만있어.그것이너를망치고있어.병들게하고있어.병들었다는걸알면서도계속하고있어.고집부리고있어.집착하고있어.여전히그곳에있어.거기가어디인줄도모르면서언제나그거대하고막막한곳에서아직,아직이라중얼대고있어.가라앉는거야.
(pp.126~27)

김효나는망각된기억을다시주워올린뒤그기억을이리저리살피면서어떻게처리해야할지몰라그저바라보기만하는시선에초점을둔채로이야기를진행시킨다.특히이번소설에서그무게는한층더무거워져,작가는소설을읽는이들을기억이라는거대한물덩이안으로밀어넣고기억을응시하도록한다.
작가에게‘기억’은아마도남겨진자들이감당해야하는것으로보이는데,“아직,그를사랑해?”라는질문에화자는끝도없이계속해서,언제까지라도그럴거라답한다.“할만큼했으니”그만하라는말에“그만하라는너의그말을”거부하고,계속그자리에머물기를택한다.소설에서는사랑했던그가떠난뒤에도“아직도그대로인마음”(p.128)으로그를사랑하거나,인간에게버려진작은개들의악몽까지끌어안아주기도하고,오래전실종된아이를찾기위해끊임없이현수막을새로거는남자의검은손을바라보는등,누군가를잃어버린뒤남겨진이들의모습이다양하게변주하며등장한다.
시간이흐를수록한때함께였던이들을기억하는자리는사라질줄모르고,김효나는이기억이라는무형의것을물덩이,돌덩이등의‘덩이’라는물체로치환하면서그것이가지는무게와크기를감각할수있는것으로만들어낸다.예상할수있듯이오래전의기억일수록그덩이는커진다.거대한기억의덩어리는때로는‘한강’의모습으로“아득한바다에침몰하는것과같”(p.21)이무거운침묵을불러오기도하며,때로는초에맺힌촛농의모습으로녹아내리고가라앉는형태로모습을드러낸다.끝없이무거워지고녹아내리는공간이주는무게감때문에화자는때때로침묵하며띄엄띄엄힘겹게발화하려는시도를지속한다.형태가무엇이든,그거대한웅덩이아래웅크려앉아나오기를거부하는이들은모두가잊어버린것들을홀로끌어안고오래도록계속해서기억할것이다.






■본문중에서

그래놓고무엇을기대했단말인가요.무엇을기대할수있었나요.
그방을.
그러니까그방의무엇을.
그저,그방을.그방자체를.도저히참을수없어도망쳐온그방.모든걸너무정면으로봤던방.정면으로맞섰던방.정면승부했던방.그방이미치도록그리웠어요.그방에대한갈망의거대한풍선이믿을수없이부풀어올라이방을가득채웠어요.이방의잠을하얗게태웠어요.이방에오면잘잘줄알았는데.이방에오면.
(pp.16~17)

우리가강렬히누군가의꿈을꿀때,그누군가는이를느낄까?강렬히,누군가와내가꿈에서결합할때적어도그누군가는,자신을향한보이지않는열망이어딘가꿈틀거리고있음을희미하게나마감지할까?열망의꿈이꾸어지는동안,그열망의재생시간동안,그사람이반드시잠을자고있을거라는보장도없지만은혹여나그사람역시꿈을꾸고있는중이라면그꿈의아흔아홉가지장면중어느한신scene의어두운구석에서흔들리고있는그림자로라도나의열망은등장하게될까?그는당연히전혀다른기쁨과친화성속에머물고있겠지만어떤흔들리는그림자하나가,두눈이뻥뚫린그림자하나가자신을응시하고있음을,내면의내면에서,무의식의무의식에서,꿈의꿈에서끈질기게바라보고있음을감지하는찰나가있을수있을까.
(pp.42~43)

남자:직전과직후,오직그것만이존재하기때문이라고?
여자:……
남자:직전에서직후로,언제나직전에서직후로,시간이절단났기때문이라고?
여자:……
남자:그런가요?물어주십시오.그렇습니다.대답하겠습니다.
여자:……
남자:그런가요?다시한번물어주십시오.그렇습니다.오직직전과직후만이말해질수있을뿐입니다.대답하겠습니다.
여자:……
(p.73)

범람하는생각은누구에게말해야하나알수없어침묵해.말하면말이되는말인걸까,말과말아닌것의경계를알수가없어침묵해.어떤말은현수막업체에서거부한다.이표현은좀과하다고.이문장은너무감정적,또는너무극단적이라고.그들이거부하는그말이말아닌것일까.그러나말아닌것이사실은내가정말하고싶은말인데.말안되는것이사실인데.말이되었다면갑자기그애는사라지지않았겠지.말이되었다면그애는어느날갑자기흔적도없이사라지지않았고그게벌써20년전의일이지않았겠지.그러나벌써20년전의일이고사람들은말한다.이제그만하시라고,이제그만.할만큼했으니제발그만하세요형님.
(p.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