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이장욱 장편소설)

캐럴 (이장욱 장편소설)

$14.00
Description
“나는 밤이 알려주는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을 느낀다. 낮이 알지 못하는 밤의 이야기들을”

예기치 못한 생의 엇갈림 속에서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영원의 노래
문지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이장욱의 세번째 장편소설 『캐럴』(문학과지성사, 2021)이 출간되었다. 철학적 성찰과 영화적 형식으로 “신(新)서사”를 직조해냈다는 평을 받은 두번째 장편소설 『천국보다 낯선』 이후 8년 만의 신작이다. 계간 『문학과사회』에 2017년 겨울부터 2018년 가을까지 “밤과 미래의 연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작품을 깊이 숙고하여 다듬었다.

세련된 언어와 치밀한 구성으로 진실 너머의 미지를 묘사해온 이장욱은 이번 작품에서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인물들이 기묘한 궤적으로 연결되고 엇갈리는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알 수 없는 사이에 우리를 조금씩 다른 세계에 접속하게 만드는 순간들. 희미하고 파편적으로 잠복해 있다가 조용히, 때로는 갑작스럽게, 우리의 내부로 흘러드는 순간들”을 포착하려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별안간 틈입하여 삶을 변화시키는 불가해한 징조들을 아름답게 세공된 문장으로 그려낸다. 그러므로 『캐럴』을 읽는 일은 은연중에 반복되고 변주되는 서사의 흐름 속에서 탄생하는 독특한 리듬, 그 리듬 속에서 예기치 않은 합일과 도약이 일어나는 순간을 작가의 지적인 문장을 따라 경이롭게 감각하는 일이 될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이면과 언제나 타자로 존재하는 사랑의 신비로움까지 두루 살피며 삶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확장한다.

기억한다. 그때 밤하늘에 점점이 흩날리던 눈송이들의 궤적을. 눈송이들은 캄캄한 하늘을 배경으로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궤적들을 선으로 그려볼 수 있다면. 그 궤적들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다면. 그 모든 궤적을 계산해낼 수 있다면.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pp. 18~19)
저자

이장욱

2005년제3회문학수첩작가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고백의제왕』『기린이아닌모든것』『에이프릴마치의사랑』,장편소설『칼로의유쾌한악마들』『천국보다낯선』등이있다.문지문학상,김유정문학상,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0.밤하늘의수수께끼
1.크리스마스캐럴
2.코스타델솔의아침
3.미래의연인을기억하기
4.렛미인
5.마네키네코의아침
6.21세기로망스
7.체스의딜레마
8.람페는잊어야한다
9.골목에서골목으로
10.휘파람을불며휘파람을불며
11.자정의사무실은어디에
12.도미노
13.타우마타와카탕이항아코아우아우오타마테아투리푸카카피키마웅아호로누쿠포카이웨누아키타나타후
14.지하에서지하로
15.태양의해변에서
0.여기서부터미래의밤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이질적인그러나매혹적인세계로의접속

『캐럴』은2019년크리스마스이브저녁에윤호연에게걸려온한통의전화로시작된다.수화기너머의상대는자신이윤호연의아내선우정의전남자친구이고오늘자살할것이라며만나달라고청한다.자신이죽으면윤호연역시죽게되리라는허무맹랑한협박을덧붙이면서.그런난데없는통화에윤호연은알수없는호기심을느끼고약속장소로향한다.

“오늘죽을지도모릅니다.”
“응?내가?”
“네,그쪽이.”
“자네가아니고내가?”
흐흐.나는웃음을흘렸다.젊은친구는그런나를말없이바라보았다.나도웃음을멈추고그를바라보았다.우리의눈이마주쳤다.그순간이상한느낌이나를스쳐갔다.그의시선에서어딘지슬픔이라고할만한감정이전해졌던것이다.(p.48)

이수수께끼같은만남이후장이바뀌면1999년의어느아침,모텔에서깨어나는도현도의이야기가시작된다.지난밤윤호연을불러내함께술을마신청년이바로도현도였음이드러나고그의이불속에잠들어있는고양이,벽에걸린액자,식당에서우연히듣는말등을통해도현도의삶이윤호연의삶과부분적으로일치함또한암시된다.이후로도두인물의서사는대사와감정,이미지의중첩을통해20년이라는시차를가로질러세밀하게접합된다.마치작품속에서빈번하게흘러나오는바흐의「평균율」과「골드베르크변주곡」의정교한형식처럼.그렇게수없이겹치고어긋나던두이야기는도현도가느닷없이받게되는고액의채권추심통지서로인해분명하게포개어진다.통지서에연대채무자로함께적혀있는이름이윤호연이기때문이다.

아무래도자신에게채무가있는모양이라는생각이들었다.윤호연이라는사람에게도채무가있는모양이고……나에게도채무가있는모양이지……그런생각이들었다.생각해보면정말빚을진것도같았다.언제,누구에게,왜그랬는지는알수없지만,인생이란알수없는것이기때문에……(p.168)

그렇다면현실적으로는결코만날수없는두인물의삶을한데겹쳐놓는방식과그들이자기도모르는사이운명의공동체가되어버리고마는절묘한플롯을통해작가가표현하고자한바는무엇일까.

불가해한운명속에서하나로연결되는이야기들

『캐럴』은총17개의장으로구성되어있다.작품의주요한모티프인무한기호(∞)이야기를담은첫번째장을제외하면윤호연의에피소드가8개,도현도의에피소드가8개로동등하게분할되어있다.그런데책을읽다보면‘차례’에는표시되지않은,어두운바탕의페이지들이불규칙한간격으로나타남을알수있다.바로선우정의목소리가담긴장이다.이흑면의내용은마치한밤중에어디선가들려오는음성처럼,한겨울에쏟아져내리는눈송이처럼대응되어흐르는두서사의간극을부드럽게메우면서작품전체를조금씩장악해나간다.두인물이이유도알지못한채빠져들었던사랑처럼,자기도모르게저질러버린잘못과그로인해치러야만하는대가처럼.
이렇듯이장욱은표면에거의모습을드러내지않는,그리하여미리대비하거나제어할수없는영역에서부지불식간에현실로엄습해오는불가해한힘을작품의근원으로삼고있다.생을굴복시키는미지의영향력이과거에서미래로,미래에서과거로역전해올수도있음을다층적시공간의결속과순환을통해보여준다.그러므로『캐럴』은“모든것이연결돼있고이어져있다는것,그게이세계의원리”(p.236)라는진실을작가특유의보르헤스적상상력과문체로형상화한수작이다.어쩌면우리의삶이동일한궤적을공유하는단하나의삶일지도모른다는질문을던지는,밤하늘아래한줄기빛처럼찬연하고매력적인소설이다.

이제우리의이야기를시작하기로하자.두개의원이서로를바라보고있는이야기를.
너와나와그의이야기를.너와너의이야기를.
1999년서울에서2019년서울까지.
무한한빛을발하는밤하늘아래.(p.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