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더카머 : 시, 꿈, 돌, 숲, 빵, 이미지의 방

분더카머 : 시, 꿈, 돌, 숲, 빵, 이미지의 방

$15.00
Description
이미지와 기억으로 가득한 내 머릿속 소우주
유년기 꿈의 잔해가 부유하는 그곳에선
목적지를 향한 길은 언제나, 이미 어긋나 있다!
“나의 분더카머 안에 무엇이 있을지, 그것들이 멸종한 무엇의 잔해이자 유물일지, 어떤 것은 여전히 생존하며 숨 쉬는지, 나는 조금쯤은 미리 알고, 대부분은 아직 전혀 모른다. 책의 끝까지 이르러서도 모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의 발굴, 수집, 진열, 해석 작업에 누구든 친구로서 함께하기를. 어느 날 나 역시 너의 분더카머를 들여다볼 수 있기를.”

특정한 장르로 분류하기 힘든 독창적인 스타일의 글쓰기를 통해, 예술과 문학 영역의 눈 밝은 독자들 사이에서 이름이 회자되어온 윤경희의 첫번째 책 『분더카머』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경이로운 방’이라는 뜻을 지닌 분더카머Wunderkammer, 즉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했던 실내 공간에 대한 설명에서 출발하여, 우리들 각자의 머릿속 내밀한 분더카머로 시선을 돌려 빛바랜 이미지와 기억과 텍스트 들을 소환해낸다. 어린 시절 창밖으로 바라보던 풍경, 첫 소풍날의 보물찾기, 어머니의 뜨개질, 친척집을 순회하며 벌였던 벽장의 모험, 이름 없는 독일 빵집의 냄새, 검은 숲 슈바르츠발트의 어둠, 누군가의 비석 위에 놓인 돌, 해석 불가능한 꿈들, 라블레의 허풍, 발터 벤야민의 체스 두는 인형, 롤랑 바르트의 동어반복, 그리고 각종 그림과 음악, 선물로서의 시들… 현재의 욕망과 불안의 근원에 다가가려는 열망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솟아오르고 조형된다
이 책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초대장이다. 독자들은 이 초대장을 들고 누군가의 어지러운 방을 탐험하다가 문득, 스스로의 유년기를 향해 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내가 드문드문 떨어뜨려 놓은 빵 조각들을 따라서.
저자

윤경희

파리8대학에서비교문학을공부했습니다.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수업하며문학과예술이야기를나눕니다.『분더카머』를썼고,몇권의그림책을번역했습니다.취미는산책하기,수영하기,창가의새들에게모이주기입니다.

목차

초대장
라멜리의독서기계
보물찾기
도자기와거울
그의손짓을알아듣다
메르헨
숲속의성
검은숲,동어반복,흰숲
빵집의이름은빵집
산문속의장미
돌의꿈
오역과사랑
foundfootage
금지된말들
전령사의꿈
생성의벽장
허구의도편
포르노그래피
쿠로스의꿈
묘지박물학
심장의열쇠공
사랑은예술에속한다

미주
도판

출판사 서평

이야기가떠오르고조형되고무너진다
빛바랜기원을향한무한한다가섬
분더카머는박물관이나미술관의전신이라고할수있지만,일정한체계에따라전시물들을수집하고분류하여일반에공개하는박물관이나미술관과는달리,개별소유주의독특한취향과정신세계를반영하고극화한다.예를들어덴마크의의학교수올레보름의분더카머에는상어,아르마딜로,큰바다쇠오리등수많은동물표본들과이국풍의외투,가면,뿔피리,지구본,해골모형,각종미술작품의모사품,태엽으로움직이는자동인형,그리고그밖에도무지용도를짐작할수없는다양한사물들이수집가의갈망과백과사전적지식욕을고스란히노출한채빼곡히들어차있다.이사물들은일견체계적이고합리적으로정리된듯보이지만우리는금세그공간을지배하는무계통의혼돈을간파할수있다.저자는분더카머가개별자가세계와상호작용하며겪어온고유한역사와기억의진열실이자마음의시공간의상징체라고말한다.따라서우리가각자의마음속에지은분더카머에도,가치높은예술작품의원형이나고도로완성된지적인사유의언어가저장되어있지않다.오히려언뜻보면무가치한,부서진,이름모를무수한말과이미지의파편들이혼란스럽게뒤섞여공존한다.저자는이러한파편들을건져올려조각을깁고해석을시도한다.하지만언어는결정적인의미화를회피하며,이러한해석의노력은자꾸만미끄러지고만다.저자가전경화하는것은해석그자체라기보단끝없는실패다.그럼에도불구하고저자는이렇듯내밀한분더카머의이야기를,말과글로붙잡을수없는것들이발산하는감정과감각을독자들과공유해보겠다는어찌보면무모한계획을세우고,기꺼이언어의유혹에,언어가벌이는게임에뛰어든다.

라멜리의책기계처럼끝없이돌고도는이야기,
너무나아름다운언어의모험
책을읽다보면다른색깔과호흡을가진텍스트들이어수선하게혼종되어있다고느낄수도있다.차분한목소리로메타포에관한다소진중한설명을들려주다가어느덧너무나도내밀한고백이흘러나오고,앞이야기가공들여쌓아올린것을다음이야기가부인해버리기도하며,종결을향해가던문장이새로운수수께끼를덧입더니방향을바꾸어질주한다.『분더카머』를제대로읽어나가기위해서는,이책에등장하는라멜리의‘독서기계(책바퀴)’의도움이필요할수도있다.16세기이탈리아출신의군장비기술자라멜리는여러권의책을바퀴위독서대에올려놓고,‘거동이불편한사람들도’앉은자리에서동시에읽을수있도록고안한기계장치의도안을남겼는데,이무용하기짝이없는기계는그자체유희적인속성을지님과동시에인간의정신작용과세계관을외화한극장식장치이기도했다.이장치는움직임이멈춘다리를불필요하게보충함으로써독자의불구성을예고하고,더나아가독서행위자체의불구성을사유해볼것을요구한다.그러나이장치에서가시적으로증폭되는것이있으니그것은바로언어다.“답답하게폐쇄된사물개체로서존재하는책꽂이의책들은독서기계에놓이고펼쳐지고돌아감으로써무한히새로생성되고변모하는광대한텍스트의그물을형성한다.”
끝없이돌고도는언어의운동.나자신의탐험가처럼기억과사물과텍스트사이를누비고,시,꿈,돌,숲,빵의길들을통과하며사유의모험을펼치는『분더카머』는그자체이독서기계를닮아있다.『분더카머』라는기계를한바퀴돌려첫번째글을다시펼치면원래의텍스트가조금바뀌어있는것을발견하게될수도있다.흑과백의문자가찡긋웃음짓는것도.그러나그렇게다시짜여진풍경속에서우리는자신에대해무언가를조금더이해하게되었음을느끼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