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심장 (김숨 장편소설)

제비심장 (김숨 장편소설)

$14.00
Description
“고통스럽고 아름답고 당대적인 노동소설 한 편을 읽는 행운”
_김형중(문학평론가)
〈2021 올해의 문제소설〉 선정
노동의 폐허에 스며든 잿빛 심장의 노래
‘기억의 증언자’ 김숨 신작 장편소설 『제비심장』 출간

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이상문학상·김현문학패 수상 작가 김숨의 장편소설 『제비심장』이 출간되었다. 입양아, 철거민에서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 이주 고려인까지, 제자리에서 뿌리 뽑힌 사람들에 주목해온 작가. 이번엔 사려 깊되 집요한 시선으로 조선소 하루살이 노동자의 삶을 뒤쫓는다.
김숨은 2005년 첫 소설집 『투견』을 시작으로, 16년간 스무 권이 넘는 소설을 발표했다. 이토록 오랜 세월 꾸준히 쓸 수 있었던 건 한번 붙들린 이야기에서 쉽사리 놓여날 수 없었기 때문일까. 데뷔 작품 두 편을 14년 후에 개작해 새로 출간하거나, ‘위안부’ 피해자 증언 소설 연작 다섯 권을 묶어낸 독특한 이력은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를 여전히 돌아보고 기억하는 이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김숨이라는 뿌리에서 태어난 이야기들은 그렇게 다시 새 가지를 뻗으며 넓어지고 깊어진다.
『제비심장』은 그가 『철』 이후 13년 만에 다시 써낸 조선소 이야기다. 「철(鐵)의 사랑」(〈문장 웹진〉 2020년 6월호), 「철(鐵)이 노래할 때」(『릿터』 2017년 10/11월호) 등 그간 여러 지면을 통해 연작 형태로 발표했던 소설을 장편으로 엮었다. 같은 노동자를 세 부류로 나누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등장은 그가 내내 조선소 주위를 맴돌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우리는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를 겪었고,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어처구니없이 죽어나가는 장면들도 지켜보아야 했다. 아울러 저간의 노동자 투쟁 속에 여성의 자리라곤 없었다는 사실, 한국의 가장 험한 노동 현장의 위험을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싼값에 외주했다는 사실도 확인해야만 했다. 『철』을 썼던 김숨이 다시 한번 조선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정황은 그렇게 이해된다. 그는 집요하게 윤리적인 작가니까.”_김형중(문학평론가)
저자

김숨

1997년『대전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간과쓸개』『국수』『나는나무를만질수있을까』,장편소설『바느질하는여자』『L의운동화』『한명』『군인이천사가되기를바란적있는가』『듣기시간』등이있다.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이상문학상,동리문학상,김현문학패,요산문학상,동인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제비심장
해설|우리는세부류로나뉜다·김형중

출판사 서평

“조선소에서버티는건쉽지않아.일하다죽기도하지.
그것은조선소의하루살이노동자라면누구나아는비밀이자진실이다.”

“세계1위조선소가되면무엇하냐?누구와같이만든세계1위냐?”
-대우조선해양하청업체소속여성발판공나윤옥노동자(〈국민연금체납항의기자회견〉,2021.9.14.)

대한민국조선산업은세계1~5위를모두차지하며세계조선시장을주도하고있다.특히올해는“13년만에역대최대수주실적달성”“지난한해전체수주량5개월만에달성”같은화려한타이틀과함께조선산업의밝은미래를전망했다.하지만조선소노동자의현실은제자리걸음이다.세계1등조선소(2021년7월수주잔량기준)라는삼성중공업거제조선소에서작년에만두명,올해또한명의노동자가숨졌다.국내에서유일하게위험관리평가최고등급A를획득한조선소에서벌어진일이다.
『제비심장』의노동자들은병들고아프거나죽는다.도장공들은페인트와시너냄새에피부가일그러지고후각을잃는다.발판공들은철상자안의공중누각을짓다가추락한다.용접공들은강한불꽃에시력이망가지고,샌딩공들은철알갱이와불순물을들이마시며일한다.조선소에서가장고되다는포설공들은전선의무게탓에손목인대가파열되고근육이늘어나며,죽기도한다.아무리안전에주의를기울여도,용접불꽃을피하려다허리를삐끗해다치거나,위에서떨어진발판에맞아어깨에금이간이들도있다.조선소노동현장에는피할수없는사고와은폐된위험이곳곳에도사리고있다.
불감시자인‘나’(혜숙)는물량팀노동자다.조선소노동자들은정규직노동자,하청업체노동자,하청업체에서재하청을받는물량팀노동자,세부류로나뉜다.조선소에서하청을주는것은노동자들을관리하지않아도되는데다인건비가적게들기때문이다.노란완장을찬안전요원들은‘도장과화기혼재작업금지’를지키라고지시하지만,하청업체반장들은작업기간단축과인건비절감을위해고용한노동자를한꺼번에들여보낸다.일당으로임금을받는물량팀노동자들은몸이아파잔업을빼먹거나,작업기한을지키지못해눈밖에나면다음일감을받기어렵다.개인사업자로등록된탓에산재보험이적용되지않아일하다다치거나죽어도책임져줄곳이없다.

반장들은우리에게말한다.“뛰지마.오늘안으로끝내야해.”뛰지않으면오늘안으로못끝낸다는걸그들은우리보다더잘알고있다.그래서우리가오늘안으로끝내려고뛰어다니다넘어져서다치기라도하면그들은펄쩍뛰면서말한다.“그러게뛰지말랬잖아.”(p.61)

“나는눈을감고숨을크게들이마신다.비릿한피냄새가맡아진다.
이상하다.어째서쇳덩이에서피냄새가나는걸까.”

작품의주배경이되는‘철상자’는조선소에서만드는철배의조각이다.무게가2,3톤쯤나가는철판을이어붙여더큰철판을만들고,그철판을짜맞춰철상자를만든다.60여톤에달하는철상자3백여개를조립해연결하면철배가탄생한다.철배의일부를구성하지만,그곳에서나올수없는철상자는중간착취의욕망아래부품처럼쉽게쓰이고소모되는노동자들의운명을암시한다.
『제비심장』의노동자들은끊임없이철상자안에서길을잃는다.작업을끝내고철상자에서나오던‘선미’는그안에갇혀죽음을맞는다.‘나’는당시선미의짝이었던‘최씨’를보며그가한번쯤뒤를돌아보았다면선미가철상자안에혼자남겨져길을잃는일은없었을지모른다고생각한다.하지만‘그녀의죽음은누구탓일까’거듭되묻던‘나’는이윽고깨닫는다.“하루살이노동자인나는(우리는)조선소에서유령과같아실은철상자안에없”다는것을.그러니까“나는(우리는)길을잃고싶어도잃을수없다”는것을.
이들은철상자안에서평생을보내지만철배를본적이없다.철배를보지못했듯,조선소주인도본적이없다.조선소정문전광판에는‘무재해무사망’일수를뜻하는숫자392가떠있다.오늘은392,내일은393,그렇게하루가갈때마다1이더해진다.이숫자가0으로돌아가면안되기에,노동자들은일하다다쳐도산업재해신청을할수없다.철배를만들기위해다치고죽어가지만,결국철배는존재하지않는다는아이러니는전광판숫자에가려진진실을알고싶게한다.

철배는없다.우리중아무도그것을보지못했으니우리에게철배는없는것이나다름없다.철배는없지만철배를만드는철은있다.우리는우리의살보다,뼈보다철을더많이만진다.
우리는철배가없다는생각을못하는데우리는그것의심장이될철상자속에서종일살기때문이다.그속에서종일철을망치질로때리고,페인트를칠하고,철을자르고붙이고다듬기때문이다.게다가우리는그것을만드느라불구가되고,병이들고,죽기도한다.(pp.9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