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14.00
Description
“나는 매번 웃지 않을 수 있는 쪽을 선택해왔다”
『최선의 삶』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임솔아 두번째 소설집
문지문학상 수상작 수록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진심으로 연기하는 공모자들
모든 것이 말해졌다고 믿는 세계에서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마음을 기다리는 일

깊고 단정한 문장을 신중하게 건네는 작가 임솔아의 두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임솔아는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최선의 삶』과 2017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등을 출간하며 소설과 시를 써왔다. 이 책에는 제10회 문지문학상 수상작인 「희고 둥근 부분」을 포함한 아홉 편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첫 소설집 ‘작가의 말’에서 “삶을 이어갈 나와 내 소설 속 인물이 앞으로도 닮은 모습일 수 있을까. […] 내가 쓴 소설 곁에 내가 있고 싶다”라고 바랐던 것처럼, 임솔아의 소설 속 사람들은 작가와 함께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변화해왔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에서는 주로 이십대 중반에서 삼십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전까지 나와 닮은 존재를 새기려 애썼던 작가는 이제 다른 희미한 존재들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듯하다.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우리 각자의 어제를, “미래의 나에게 전해질 문장”(『Axt』 인터뷰)들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임솔아의 소설은 희미해서 보이지 않는 눈송이 같은 이들을, 선명히 구분되지 않는 진심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저자

임솔아

저자:임솔아
2013년중앙신인문학상시부문을,2015년문학동네대학소설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눈과사람과눈사람』,장편소설『최선의삶』,시집『괴괴한날씨와착한사람들』『겟패킹』등이있다.

목차

그만두는사람들
초파리돌보기
중요한요소
희고둥근부분
내가아는가장밝은세계
마피아는고개를들어서로를확인해주세요
아무것도아니라고잘라말하기
손을내밀었다
단영
해설|먼곁_홍성희

출판사 서평

“잠깐만그럴듯하게보이면돼요”
겹겹의최선으로이루어진완벽해보이는세계

모두에게는저마다의입장이있다.누군가는제도와환경이부여하는몫이나타인이나에게기대하는역할을충실히따른다.다른누군가는그것을따르지않거나수행하지못해소외되거나스스로배제된다.임솔아의소설에는최선을다해이역할극을해내느라자신을기만하거나서로에게악의없는악의를건네는사람들과,역할극의공모자가되지않기위해애쓰는사람들이뒤섞여있다.작가는그들을판단하지않고그들의입장을가만히이어나간다.
요즘사회가사람들에게바라는능력은눈치가아닐까.새로운무언가를요구하면서도‘안전한비판’‘익숙한다름’처럼제도가허용하는범주안에있기를바라며,그에응하지않거나못할때는쭉정이처럼골라낸다.「내가아는가장밝은세계」에서눈치는‘웃음’으로구현된다.교실에서장난을당해넘어진아이를보며반아이들이터뜨리는웃음,넘어져피가난아이가애써흘리는웃음,엄마가선생님앞에서만짓는굽신거림섞인추임새같은웃음……어릴때부터‘나’는웃음을매개로힘있는자와힘없는자가공모해만들어내는눈치라는세련된억압에동조하기를거절한사람이다.
소설은“내가선택한무표정을지”키며사는10년차프리랜서인‘나’가자신의집을마련하고유지하는동안그밝은무표정의세계에어떻게웃음이비집고들어가는지를보여준다.서울집값때문에지방으로가고,겨우입주한빌라앞에고층건물이들어서눈앞을가리고,날림시공한천장에빗물이새곰팡이가핀다.성실하게살아온‘나’가마음편히살아갈수있는‘내명의의집한채’를가지려할때들이닥친현실이다.‘나’는보험제도의빈틈을교묘하게이용해집을고칠때,그집을모델하우스처럼꾸며다른사람에게팔며낚았다는기분이들때히죽이며웃는다.이웃음은“내가한선택에대한자조”도“나의선택에대한가책을삭제하면서생기는빈틈에재빠르게메워지는대체감정”도아니지만,결국공모에동조하게되어버렸다는사실에는변함이없다.그는자신이그어놓은‘선’을넘는경험을했고다음에는더쉽게넘게될것이다.그의선택을냉소하기어렵다.임솔아의소설은공감할수밖에없는현실로우리를데려다놓는다.

열심히하지마요.[…]
너무열심히하면무서워요.
―임솔아,「리기다소나무」부분

자신에게기대되는역할에충실한사람들도있다.간절히일하고싶었던오십대여성원영은연구용초파리를돌보는아르바이트를했다(「초파리기르기」).원영은가족을돌보듯초파리를아끼고보살폈다.연구소에서일한뒤병에들자딸지유는산재가아닐까의심하지만원영은자신이‘여성,아내,엄마’가아닐수있었던곳,꿈이이루어졌던곳에원인을돌릴수없다.「손을내밀었다」의학교는학생들의자살이빈번해지자자살한학생들에게서나이가많다는공통점을엮어낸다.학교는만학도들을자살위험군으로분류하고규칙적인상담을받기를의무화하며이를어길경우불이익을주겠다고선언한다.자살위험군에속한하연은학교의요청에따라자살한학생의룸메이트인척애도문을읽는다.죽은학생이얼마나학교를사랑했는지와‘손잡기’의중요성을역설하는하연의감동적인거짓말은문학평론가홍성희의말처럼“효과적으로작동하는제도속에서역할극이어떤방식으로승인되고확대되는지”를보여준다.「단영」의효정은사찰하은사의충실한주지다.절을살리기위해최선을다하던그는출가를한승려는무성의존재로살아가야하지만비구니는무성으로살아남을수없다는것을깨닫는다.그뒤로효정은이상적인여성성이라는역할을적극적으로이용하고신도들의판타지에부합한다.어떤상황에서도지을수있는“온화한미소”를띤채효정은꽃이아름다운하은사의특성을유지하기위해매일밤심어두었던꽃을짓밟고다닌다.여성을위한공간이지만찾아온여성들의사연을모른척한다.
임솔아는2017년경「신체적출물」을집필할때부터스스로공감하고옹호할수있는입장외에자신과반대되는사람들의입장에도동등하게이입해맥락을이해해보려시도했다고최근한강의에서말했다.『아무것도아니라고잘라말하기』에는그시도의결과물이실려있다.자신을기만하는데서시작하여타인을배제하고스스로제도와동일시하는데까지다다른그들은어쩌면그저최선을다했을뿐이다.진짜인지가짜인지를떠나,문제는역할에따라연기하기를요구하고강요하는타인의시선과제도라고임솔아의소설은되풀이해이야기하고있는것이다.

“안보이는것을어떤방식으로보여줄수있어?”
세상을견디게하는임솔아식온기

입장의차이로관계는삐걱거린다.「희고둥근부분」의진영은교사로서자신을신뢰하는학생민채에게최선을다해부응하려했지만,진영의진심은어느시점부터민채에게“하는척”으로느껴진다.밀가루를먹을수없는원영의생일에케이크를준비하는지유와오랜만에만난딸에게지유가더이상좋아하지않는첵스초코를준비하는원영처럼(「초파리기르기」)서로를아끼지만정작서로가원하는것을주고받을수없기도하다.그러나임솔아가오랜시간을들여소설에여러입장을그려넣은것은,“우리의소통에불일치하는지점이존재한다는것이우리를대화하게”(「마피아는고개를들어서로를확인해주세요」)하기때문이아닐까.
표제작에서“아무것도아니야”라는대답은두가지의미를지닌다.「아무것도아니라고잘라말하기」의문경과아란은10년전기숙학원에서만났다.문경은돌보는일이천직이라생각해간호대를가지만꿈을포기해야했다.문경은아란에게더는푸념하고싶지않다.문경의꿈을너무잘알고곁에서응원하던아란은그렇기때문에힘들어하는문경에게왠지미안해진다.그들은서로상대를위해서(혹은자신을위해서)친구라는역할을연기하면서“아무것도아니야”라는말에진심을숨기고선을긋는다.그런데10년전처럼그네를타며통화하던어느밤,문경이새로던진“아무것도아냐”라는말은관계의매듭을짓고진심을이야기할수있게만든다.“나는이제아무도안보살펴.나만생각해.[…]근데,나이제좀만족해.지금내가좋아.”
새로운연대의가능성은「그만두는사람들」에서도발견된다.집필당시문학을그만두고싶었다던작가의마음이드러나있는이소설을채우는것은본래의자리를떠났거나떠나려고준비하는,경계에서있는사람들이다.그만두는것을억누르기위해쓰는사람이되어버린‘나’는그만두기전마지막전시를연미술작가재연의전시에위로를받는다.스웨덴에서유학중인친구혜리는인종차별을당했지만토로할곳이없어‘나’와메일을주고받는다.서로에게“가까워질수도개입도불가능하고그저듣기만하는사람”이었던그들은여전히멀리있지만일상을공유하고부탁을들어주는사이가된다.
임솔아의사람들은「마피아는고개를들어서로를확인해주세요」에서만난다.소설집에실린소설일곱편으로부터각각이름하나씩을가져온이이야기에서,등장인물들은함께독서모임을하는것일수도있고이름만같은채설정만빌려온것일수도있다.인터넷커뮤니티에서마피아게임을하는것처럼보이는글들은자신의입장을이야기하거나누군가를저격하고있다.진심을말하고있는지실제로마피아게임을하고있는지그렇다면무엇이마피아의거짓말인지확신할수없다.중요한것은“거짓을말하든진실을말하든둘을교묘히겹쳐이것이기도저것이기도한것을말하든”“말해지는것혹은말해졌다고믿는것속에서말의이면을보는일”일것이다(홍성희).“침묵할수있어서좋았던관계”였던독서모임이“침묵으로모두에그저동조하려고,동조를하면서그저지속하려고”“할말을삼키려고침묵”하는관계가되었다.임솔아의사람들은그침묵을깨려매듭을짓고이야기를꺼낸다.단호한끝맺음다음다시새로운대화를시작함으로써보이지않는것을보고말해지지않은마음을기다린다.임솔아의소설을관통하는장면을떠올려본다.허공에서흘러내리는물을여러사람의손이조금씩받아내는「그만두는사람들」속재연의전시처럼,“내머리위로떨어질비를저손들이다받아내고있는것”처럼,작고오랜시도가무언가를해낼수있지않을까.목격이불가능한경계선(「희고둥근부분」)을찾으며임솔아는가만히말을건넨다.“그만두지않고엉성하게같이했으면좋겠어요.”

허공에서물이흘러내렸다.한사람이두손을오목하게모았다.두손으로흘러내리는물을받았다.손안에투명하게차오르던물이손가락사이로이내흘러내렸다.다른사람의두손이그물을받아냈다.또그아래에오목한두손과흘러내리는물이.또그아래두손과흘러내리는물이……비가오는것같았다.내머리위로떨어질비를저손들이다받아내고있는것같았다.
「그만두는사람들」

그만두기직전에그만두지않는일을지속하는것.제도가주거나빼앗는역할이사라진자리에서임솔아의사람들은그렇게자신의역할을만들고,그것을지킨다.족쇄가되지않는역할들로만날것을기다리며,그것이가능하기를작게바라며.홍성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