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 (김중일 시집)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 (김중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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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기억의 가장 슬픈 꼭대기로 더없이 천천히”
필연적으로 포개지는 삶과 죽음 위에서
다시 한번 만나는 상실과 사랑의 순간
반복되는 생의 회로를 섬세하게 붙잡아온 김중일의 여섯번째 시집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시인은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래 20년간 활발한 시작 활동을 이어왔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다시 한번 삶과 죽음을 포개놓으며 떠난 이들을 삶의 영역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김중일의 시를 꼭 떠난 이와 남겨진 이의 만남으로만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엔 살아 있으나 투명한 것,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수없이 많고 시인은 늘 그 곁에 있다.
발문을 쓴 박소란 시인은 그를 ‘슬픔의 수집가’ ‘슬픔의 계승자’로 명명하며, 죽음의 편에 가까이 서 있는 이 시들이 “신비하게도 상실의 시편이 아니라 사랑의 시편이 되었다”고 말한다. 2014년 아버지의 죽음과 세월호 참사 등 개인적·사회적 사건을 연달아 겪으며 슬픔을 기록하는 데 천착해온 시인 김중일은 어느덧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삶의 자장 속에 있음을 받아들인 걸까. 그는 한층 성숙해진 얼굴로 삶에 잠시나마 어린 것들을 기억하는 애도의 공간을 마련한다. 그렇게 슬픔 속에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이번 시집은 기획에 따라 부를 나누는 대신 사전의 형태를 빌려 가나다순으로 59편의 시를 배열했다. 그렇기에 독자는 어떤 의도를 의식할 필요 없이 개개의 시를 자유로이 탐험하고 찾아 읽을 수 있다.
저자

김중일

시인김중일은2002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국경꽃집』『아무튼씨미안해요』『내가살아갈사람』『가슴에서사슴까지』『유령시인』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가장큰직업으로서의시인/공기청정기와나/국수처럼쏟아지는잠/금연에대한우리의약속/깊은곳에나무를/나는태어나지않은사람/나의퍼즐/내시인의감은눈/내일오기로한사람/내일지구에비가오고멸망하여도한그루의/너라는사람과손잡는일/너와환절기와나/너의너머의너울/눈과사람의시작/눈물의형태/다가올지난밤들/뜨거운나뭇잎/마음의잠/만약우리의시속에아침이오지않는다면/머리위의그림자/미래로간시인의영혼/미세먼지와의전쟁/바다와의호흡/방에는밤/백자/비의마중/살짝식은공기/새들의호주머니/생각이든사탕/서퍼/서핑/손끝에자라는웃음/아직죽은사람/안부/어린이/어린과아린/얼굴빛/옆사람의거리/옆사람의두통/오늘은없는색/우화등선/워킹메이트/위독일기/유독무릎에멍이잘드는너와산책하는일/일교차/자꾸생각나는괄호/작명의외로움/잠의몸/정반대의카스텔라와우유식빵/조금식은공기/좋은날을훔치다/지구탈출불가능/지구가자꾸커진다/진짜하늘/창문/첫눈에알아보고떠나보내다/하루먼저사는일/햇살/호흡의비밀

발문지극한사랑의술법·박소란

출판사 서평

세상어디에나가득한애도의징후

나무관속에망자가들어가자,
마치새로운건전지를끼워넣은듯내가알던세상이
전혀다른리듬으로작동되기시작했다.
슬프도록경이로웠다.
그것은좋거나나쁘거나의차원이아니었다.
그저새로운세상이펼쳐지고있었다.
세상에아직죽은이들그리고어린이들과함께살아갈.
-「시인의말」에서

시인은나무관속에망자를모시는일상적인풍경에서한사람의죽음이일으키는세상의새리듬을포착한다.사랑하는사람의마지막을지켜보는일의슬픔이무색하게도,죽음이내려앉은자리에고요하지만분명한방식으로생명의기미가움트기시작한다.이는한존재가이세상에서사라진이후의삶이결코이전과같을수없으리라는자각으로이어진다.
김중일의시에는산자와죽은자의시간이함께흐른다.“나의숨은더이상나만의숨이아니”(「바다와의호흡」)고,“내눈에서,그가흘린눈물이흘러나”(「하루먼저사는일」)오며,“내옆에는죽은사람이앉아있다”(「나는태어나지않은사람」).곁에서그들의눈물을닦고안아주는화자에게이세계는상실의징후로가득하다.사라진이들은“너울성파도”(「너의너머의너울」),“해변의모래”(「만약우리의시속에아침이오지않는다면」),“낙엽한장”(「어린이」)의모습으로일상곳곳에문득문득나타난다.시집안에서만큼은현실과비현실,삶과죽음의경계가뒤섞이고죽은이들과의미래는우리가함께상상할수있는내일이된다.그러므로,이시집은세상그어디에나살고있는무수한‘너’에게바치는헌사이자,우리가‘시’속에서함께보낼회복의시간이다.

눈물의계절,투명한것을기억하는‘시인’의방식

시집은“내검은우산으로는막을수없는”눈물의흔적으로가득하다.시인은그것이자신의숙명이라는듯“몸안이비로침수된기분”(「머리위의그림자」)으로서있다.다만그슬픔에잠식당하기보다세상의소멸을먼저목격한이로서그것을증언하는쪽을택한다.

눈물의계절,먼수평선은시인의감은눈.
나의수평선으로까맣게몰려가눈썹처럼달라붙은철새들.
나의시인은,오늘도본참혹한장면들이눈밖으로새어나가흩어지고잊힐까봐
밤이오도록꼭눈감고있다.
-「내시인의감은눈」부분

이시집에는‘시’와‘시인’이라는단어가자주등장한다.시인과화자의구분이모호해지는이유다.매초마다갱신되는삶과죽음의기미를한발짝먼저감각하는시인은이를자신의책무로받아들이며“아무리빨아도결코다빠지지않는슬픔의때”(「가장큰직업으로서의시인」)를몇번이고다시씻어내고자한다.
시인의역할은전작의표제작이자,이번시집에도종종등장하는‘유령시인’의이름으로구체화된다.잘넘어지고주로밤에목격되는유령시인은먼미래의사람들에게아름다운까만글자로자아낸시를보낸다(「미래로간시인의영혼」).그미래에살고있다는죽은이들은“유령시인의애도시속에서우연히만나사랑”(「좋은날을훔치다」)을하고그의생존신호를건네받는다.시인은“생각하는대신,너를상상한다”(「뒤표지글」).생각의시간은과거에머무는반면,상상의시간은미래를향할것이고,그곳엔우리가함께있을것이다.

“살아남은이들은염치없게도죽은이들이언제까지고늘곁에함께있어주기를고대한다”(「얼굴빛」)라는대목에서시인이지시하는재생,회복의의미는좀더선명해진다.그것이산자와죽은자를함께일으키는방향으로작동하고있다는것.삶은죽음을위로하고,죽음은삶을보살피는것으로.삶과죽음이서로를“담요처럼끌어다가덮으며잠시서로의외로움을꺼주”(「작명의외로움」)는것으로._박소란(시인)